2010.2 |
[문화칼럼] 톳골댁은 살아 있을까?
관리자(2010-02-02 13:37:21)
톳골댁은 살아 있을까?
- 정영선 (주)브랜드스토리 기획이사
“스토리텔링 마케팅이 뭐예요?”
이런 질문을 받을 때면 나는 그녀를 떠올린다. 하도 주름이 많아서 표정도 제대로 읽을수 없었던, 그렇게 무서운데도 묘하게 사람을 끌었던 그 사람, 톳골댁.
데쓰노트(death note)가 있었다면
여섯 살이 되던 어느 겨울날, 나는 키를 뒤집어쓴 채 싸리 울타리 뒤에 몸을숨기고 있었다. 자꾸 미끄러져 내려오는 키를 치켜 올리며 울타리 너머 마당을흘낏거렸다. 마당에는 연탄 화덕이 나와 있고, 무엇인가가 설설 끓고 있다. 하회탈 같은 얼굴을 한 노파가 기다란 나무주걱으로 그‘무엇인가’를 휘적휘적젓고 있다. 톳골댁이다.‘아, 죽겠다 고마. 또 저 할무이한테 소금 얻어야 되나?’. 나는 유난히 늦되었다. 여섯 살이 되도록 간간이 오줌을 쌌다. 그런 날이면 키를 뒤집어쓰고 집집을 돌아다니며 소금을 얻어왔다.“아이고, 낼 모레 시집갈 처녀가 이기 무신 꼴이고~”. 동네 어른들은 웃으며 꿀밤을 한 대 먹이고 소금을 주셨다. 그 정도는 견딜 만했다.하지만 톳골댁은 달랐다. 일단 손에 잡히는 대로 연장(!)을 들고 때렸다. 톳골댁의 마당에는 정말로‘연장’이 많았다. 싸리 빗자루, 부지깽이, 심지어 절굿공이까지…. 연장선택은100%‘ 랜덤’이었는데, 싸리빗자루가걸리는날은행운이었고, 부지깽이가 걸리는 날은 죽음이었다.(절굿공이가 걸리지 않은 게 어디인가!)“뭐꼬? 이 가시나, 또 오줌 쌌구나!”갑자기 떨어지는 벼락같은 쇳소리! 울타리 뒤에서 탐색하던 나를 톳골댁이 발견한 것이다. 부리나케 도망갔지만 톳골댁은 어느새 따라와 내 엉덩이를 냅다 때렸다. 아프기도 아팠지만 무엇보다 너무 뜨거웠다. 집에 돌아와서야 알았다. 그날 톳골댁이 선택한 연장은 마침 손에 들고 있던 나무주걱! 내 바지에는 간장 냄새가 깊게 배어 빨아도 빨아도 없어지지 않았다.(그날 톳골댁은 간장을 달이고 있었던 것이다)아! 만약 당시에 데쓰노트가 있었다면, 나는 맨 앞 페이지에‘톳골댁’이라고 썼을 거다.
톳골댁은 무당이었다
시골에서는 여자를 부를 때 친정동네 이름을 붙여‘~댁’이라고 했다. 김천에서 오면 김천댁, 하동에서 오면 하동댁. 그렇다면 톳골댁은 톳골에서 왔다는 건데, 그때나 지금이나 나는 톳골이라는 지명을 들어 본 적이없다. 톳골댁은 무당이었다. 철만 되면 굿판을 벌였고, 아이가 배탈이라도 나면 머리맡에서 징을 쳐댔다.(그소리에 머리가 너무 아파서 배 아픈 걸 잊어버렸으니 소기의 목적은 달성한 셈)그래도 역시 톳골댁의 주 업무는 사주나 토정비결을 봐 주는 거였다. 육갑을 헤아리기도 하고, 쌀알을 헤집기도 하고, 국수 가락처럼 가는 종이를 뽑게도 하면서 참 많은 예언을 했다. 하지만 거의 다 빗나갔다. 나을거라는 사람은 죽었고, 돌아올 거라는 사람은 함흥차사고, 붙을 거라고 한 사람은 떨어졌다.그래도 톳골댁의 집에는 손님이 끊이지 않았다. 겨울 늦은 밤, 혹은 나른한 여름 오후, 마을여자들은 혼자서, 혹은 둘이서 톳골댁의 오두막을 찾았다. 예언하는 족족 틀리는 무당인데 어째서 손님이 끊이지 않는걸까?
충성고객? 단골손님!
전문용어로‘충성고객’이라는 말을 쓴다. ‘브랜드에 대한고객의 충성도’라는 단어도 쓴다. 어딘가 오만한 느낌이 들지않는가? 기업과 브랜드는 고객의 선택을 기다린다. 그런데,그것을 뒤집어 고객이 기업과 브랜드에‘충성’을 한다고? 물론 현실적으로 고객이 기업과 브랜드에‘충성’하는 경향이 있는건사실이다.(심한경우‘맹목적충성’을하기도한다)‘ 충성고객’이라는 말 대신, 정말 딱 맞는 우리말이 있다. 바로‘단골’이다. ‘단골’이라는 말은 상인과 고객이 함께 쓴다. 단골집, 단골손님…. 대체 이 단어는 어떤 사연을 갖고 있을까?우리 마을 사람들은 톳골댁을‘당골네’라고 불렀다. ‘당골’은‘무당’이라는 뜻이다. 그‘당골’이 변해‘단골’이 되었다. 이웃 간에 숟가락 젓가락 수까지 알고 있는 좁디좁은 지역사회에서, 정작 사람들은 외로웠다. 소문이 무서워 이웃에게 고민을 털어놓을 수도 없었고, 위로를 주고받기도 어려웠다. 만약 그 상태가 평생 지속된다면 사람들은 우울증 환자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그럴 때마다 사람들은 톳골댁을 찾아갔다. 남에게 내놓기 부끄러운 속살을 드러내고, 상처를 보여 주었다. 톳골댁은 그 사람들의 이야기를 묵묵히 들어 주었다. 그리고 그 비밀을 평생 지켜주었다. 사람들에게 톳골댁은 정신과 의사이자, 고해성사를 받아 주는 신부였다. 사람들은 점괘 보려고 톳골댁을 찾아간 게 아니다. 그저 마음편하게 속을 털어놓을‘친구’를 찾아간 것이다.즉,‘ 단골’은 단순히 재화와 상품을 주고받는 사이가 아니다. 가족한테도 말 못할 고민을 털어놓을 수 있는 흉허물 없는사이를말하는것이다.‘ 충성’은수직적이다. 강제성을띨수도 있다. 때로는 계약관계일 수도 있다. 계약이 깨지면 충성도 사라질 수 있다. 그러나‘단골’은 수평적이다. 자발적이고 진정성이 있다. 그래서 훨씬 더 오래갈 수 있다. 기업과브랜드가 살기 위해서는‘충성고객’을 확보하는 것보다‘단골’을 만드는 게 중요하지 않을까? 고객에게 물건을 팔 생각을 하기 전에 고객의 마음을 헤아려 주는 것, 고객의 친구가되어 주는 것, 고객과 기업이 서로의‘단골’이 되어 주는것…. 그 더 이상적이지 않을까?
감성마케팅- 스토리텔링
수원 못골시장을 스토리텔링할 때 잡은 콘셉트가 바로‘단골 만들기’였다. 넉 달간 상인들과 살다시피 하면서 그들의인생 이야기를 취재했다. 그렇게 취재한 인생 이야기를 기반으로 매대와 간판을 디자인하고, 스토리북을 만들었다. 생활고 때문에 농구를 그만둔 채소가게 아저씨의 간판에는 농구골대를 달고, 리어카를 끌고 수원 시내 곳곳을 돌아다니며신발을 팔아 아들을 파일럿으로 키운 아버지의 가게에는 장난감 비행기 날개가 달린 신발을 달고, 잡곡을 팔아 아들을챔피언으로 키운 아주머니의 노점에는 권투장갑을 달고, 평생 자전거 배달을 해 온 건어물 가게 아저씨 가게에는 자전거 모형을 달고…. 이처럼‘이야기하는 간판’이 있는 가게 앞에서 손님은 상인의 인생 이야기에 매력을 느끼고 말을 건다. 자식 키우는 부모의 마음으로, 부모에게 늘 죄송한 자식의 마음으로, 잃어버린 꿈을 그리워하는 늙은 피터 팬의 마음으로 서로의 인생이야기를 듣고, 친구가 되고, 서로에게단골이 된다.오래 전, 톳골댁을 찾아와 고민을 털어놓던 손님들의 마음, 손님의 고민을 들어 주고 자기 인생 이야기도 들려주며위로하던 톳골댁의 마음. 그 관계 속에서 자연스럽게 형성되는 끈끈한 정. 그것이야말로 가장 고급스런 감성마케팅이 아닐까? 스토리텔링은 바로 이러한 감성마케팅의 핵심열쇠다.어릴 때는 그렇게 미웠던 톳골댁. 그러나 중년이 되니 그리워진다. 세상사에 부대끼고 지친 날이면 키를 쓰고 그 마당으로 가고 싶다. 싸리 빗자루도 좋고, 부지깽이도 좋다.뭐, 이젠 절굿공이로 맞아도 견딜 수 있을 것 같다. 그저, 그녀와 이야기를 하고 싶다.톳골댁은…살아 있을까?
정영선 한동안 TV 드라마 작가로 활동했었다. 현재Storytelling Agency (주)브랜드스토리에서 스토리텔링 기법을활용한 기업과 도시브랜드, 관광상품 개발 및 마케팅에 주력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