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1 |
[서평]『생각의 좌표』
관리자(2010-01-05 17:47:28)
『생각의 좌표』
홍세화, 청년들에게‘생각’을 묻다
- 성재민 인터넷신문 선샤인뉴스 대표
2년쯤 전으로 기억한다. 전북대학교 사회과학대학의 초청으로 홍세화 선생이 특강을 했던 적이 있다. 강의 주제는‘비판적 사고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였다. 당시 대학생이었던 나는『나는 빠리의 택시운전사』를 통해 한국에‘똘레랑스’개념을 소개한 홍세화 선생의 생각은 얼마만큼 진보적인지, 그가 프랑스에서 살며 얻어 온 경험적 지식은 어느 정도인지 궁금해 기대감에 들떴었다. 선생은 반백발의 머리와 다소 부족해 보이는 머리숱을 가진, 나이 들어 보이는 사내였다. 그는 강연 내내 한국 사회의 문제점을 자신이 15년간 살았던 프랑스와 비교해가며 비판했다. 열정적이었다.그로부터 1년 뒤, 선생은 또다시 전북대를 찾았다. 주제는‘그대 이름은 무식한 대학생’으로 바뀌었으나 내용은 다르지 않았다. 선생의 강연은“지금의‘무식한’대학생들이 가진 문제는 무엇이며 그들에게‘비판적 사고’를 길러주기 위해 어떻게 할 것인가”를 말하고 있었다.
회색의 물신사회에 중독된 우리의 20대
6년 만에 내놓은 신작『생각의 좌표: 돈이 지배하는 사회에서 생각의 주인으로 사는 법』(한겨레출판)은 선생이 그동안 여러 강연에서 주장해 온 이야기들을 묶어 낸 책이다. 홍세화는 자신의 가장 큰 자산이자 장점인 15년간의 프랑스 생활을 통해 얻은‘경험적 지식’을 자신의 주장에 녹여 에세이집을 만들어냈다.최근 홍세화의 강연주제는 대부분 대학생으로 대표되는20대 청년층에게 맞춰져 있다. 책의 내용도 20대들을 둘러싼 환경과 그로 인한 영향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의 주장을들어보자.“내가 갖고 있는 의식이어서 그것을 고집하며 살아가지만 나에게 그 의식을 갖도록 한 주체는 내가 아니라 지배세력이라는 것이다. 우리에게 제도교육과 미디어에 대한 비판적 성찰과 분석이 요구되는 까닭이 여기 있으며, 사회를 비판적으로 바라볼 줄 아는눈이 필요한 까닭이 여기에 있다. 지배세력의 기획에 의한 일방적세뇌와 주입에서 벗어나 제대로 된 성찰을 하기 위해서는 폭넓은독서와 토론, 직접적인 견문이 꼭 필요하다.”홍세화에 따르면 지배계층은 기득권층인 자신들의 지배를용이하게 하기 위해 실질적인 피지배층들에게‘왜’라는 물음을 던질 기회를 주지 않는다. 그러기위해 결과를 중시하는줄세우기와 등수매기기, 암기위주의 학습을 통해 사고능력을 빼앗는다. 그들은 목적달성을 위해‘세계에서 가장 많이공부하면서도 인간과 사회에 대해서는 자기 생각과 논리가없어 지배세력에게 자발적으로 복종하는 사회구성원을 양산하는’‘미친교육’과‘조중동’을 앞세운다.모든 학생을 등수매기기와‘성적의 노예’로 만드는 지금의우리 교육은 확실히‘미친 교육’이 맞다. 이는 우리가 선진국이라 부르며 마냥 부러워하는 나라들과의 비교에서 잘 드러난다. 홍세화는 말한다.“왜 우리는 만점이 100점일까? 다른 나라들처럼 10점이나 20점이 아니고? 점수 폭이 넓어야 학생들을 일등부터 꼴등까지 줄을 세우기 쉽기 때문이다. 유럽의 학생들은 가령 12점(20점 만점)이상을 받으면 그 시험 영역에서 벗어나 다른 일을 한다. 대학은평준화되어 있고, 고등학교까지 학생들에게 석차나 등급을 주지않고 합격/불합격 기준으로 절대평가만 하기 때문이다. … 다른나라 학생들이 책과 토론과 여행으로 사회와 다양한 방식으로 만날 때 우리 학생들은 오로지 시험 문제지만 만난다. 상상력이나창조성을 기대할 수 있을까?”적극 공감한다. 가장 많은 꿈을 꾸어야 할 성장기에 우리는 끊임없이 성적유지와‘자리지키기’를 강요받는다. 그 과정에서 함께 생각과 마음을 나누어야 할 친구들은 잠재적인‘적’이 된다. 이는 곧 성년이후의 삶에도 영향을 끼친다. 타인과의 관계를 잠재적 경쟁관계로 설정하게 돼 다른 이들과의 연대를 어렵게 만든다.경쟁이라는 틀을 만드는 것은 제도이지만 경쟁을 부추기는 건 물신사회다. 홍세화의 표현을 빌리자면‘회색의 물신사회’다.홍세화는‘21세기의 이 땅에선 물질을 더 많이 획득하기위한 욕망이 사회문화적 소양을 포함하여 인간 존재를 풍요롭게 하기 위한 모색과 긴장을 압도하고 있었다.’고 말한다.그에게회색은‘이사회의욕망의색이다.‘ 희지도않고검지도 않다. 그렇지만 때에 따라 희기도 하고 검기도 한’색이다. 사회의 물질은 대부분 기득권층이 가지고 있기에 그들은획일화된 교육과 물신주의 풍조의 주입을 통해 기존 사회질서의 공고화를 꾀한다. 강력한 물신주의 사회는“부자되세요”란 말이 사람들에게 건네는 꽤 좋은 새해 인사로 여겨지게 하고, ‘가난한 사람, 쪽방촌에 사는 사람에게“당신이 사는 곳이 당신이 누구인지 말해줍니다”라는 저급하고 야만적인 언어적 폭력’을 휘두를 수 있게 하는 것이다.
물신사회의 대안-독서와 토론
해방 이후 한국사회의 우경화를 지적한 최장집 교수의 말처럼, 기존의 기득권적 질서가 장악하고 한국사회를 돌파해나가기란 결코 쉽지 않다. 홍세화는 자신이 처음부터 이 책의 독자로 설정한 청년들에게 몇 가지 대안을 제시한다.그는 물신사회에 대해“지금 젊은이들에게 당부하고 싶은말은 무엇보다 이 사회를 지배하는 물신에 저항할 수 있는인간성의 항체를 기르라는 것”이라며“물신은 밀물처럼 일상적으로 그대를 압박해올 것이며 … 앞으로 살아가면서 끊임없이 물질의 크기로 비교당할 것이다. 그것에 늠름하게 맞설수 있으려면 일상적 성찰이 담보한 탄탄한 가치관이 요구된다”고 말한다.교육과 미디어에 대해서는“(비판적 의식의 형성은) 어떤특별한 계기로 해서 그때까지 갖고 있었던, 제도교육을 통해형성되고 미디어를 통해 확인하던 의식을 스스로 반전시킴으로써 갖게 되었을 것”이며 그 계기는“대개 선배나 책을 통해 이루어진다. 스무 살 즈음에 배움터에서 선배를‘잘못’만나 제도교육과 미디어를 통해 형성된 의식에 스스로 질문을던지게 됨으로써 비판의식의 지평이 열렸던 것이다. … 우리에게 비판의식을 갖도록 이끈 것은 결국 독서와 토론”이라고말한다.
생각의 좌표, 결국 자신의 몫
홍세화로선 오랜 시간 고민한 뒤 내린 결론이었겠지만 대안은 다소 약해 보인다. 그가 제기한 문제의식에 대해 생각과 고민을 공유하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나, 자신이 제시한대안에 대한 구체성은 담보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홍세화가독자들에게 바라는 것은 그들 스스로의 실천적 대안을 고민해보는 일이지 저자의 해답을 대신 고민해주는 것은 아니지않은가.그가 제시한 대안에는 물신주의에 대한‘항체’는 어떤 것인지, 독서와 토론은 어떻게 행해야 하는지에 대한 구체적방법이없다.‘ 대안없는비판’이아쉬운부분이다.그럼에도 이 책은 20대에게 권할만한 책이다. 홍세화는머리말에서“젊은이들에게‘사유하는 인간’으로서‘사회를비판적으로 바라보는 안목’의 실마리라도 제공한다면 그지없이 기쁜 일”이라고 썼다. 저자의 의도에 따라 이 책은 구체적인 대안보다는, 독자들이 생각할 기회를 만들어준다. 글의형식도 그의 경험적 지식과 사유를 녹여낸 에세이라 읽기 편하다. 그럼에도 책 곳곳에서 던져지는 질문들은 독자들에게무겁게 생각할 만한 어떤‘꺼리’를 만들어준다. ‘생각의 좌표’를 옮기는 것은 결국 자기 자신의 몫이기 때문이다.
성재민 현재 인터넷신문 선샤인 뉴스의 대표로 활동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