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1 |
[서평]『거짓말 학교』
관리자(2010-01-05 17:47:12)
『거짓말 학교』
거짓말 같은 진실과 진실 같은 거짓말 그 불편함에 대해
- 김재근 책마루 어린이 도서관 사무국장
어린이문학상 대상 수상작에 대한 서평을 쓰려니 왠지‘걸려들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미 전문가들의 평가는 나와 있고 출판 일자를 보니 아직 많은 독자들이 채 읽기 전인 것이 확실하고. 그림책이나 유쾌하게 읽는 내게는 정말 난감한 상황에 걸려들은 형국이다.
거짓말 학교의 불편한 진실
<거짓말 학교>라는 제목부터 비범하게 다가온다. 표지를 비롯해서 중간 중간 들어간 그림은 편안하지 않은 색채와 초현실적인 구성, 뾰족뾰족한 인물들의 얼굴, 히뜩히뜩돌아가는 눈빛이 몹시 불편하게 만들었다. 배경, 그림, 전개방식, 결말 등 모든 요소가 강렬한 인상을 주는 작품이다.그동안 읽은 어린이문학에서는 볼 수 없었던 독특한 주제와구성으로 가득 차 있다. 무척 신선하기도 하지만 매우 낯설었다. 나도 전통적 동화의 그늘에 놓여있는 인물이구나!거짓말 학교는 진짜 학교다. 지도에는 표시되지 않는다.제주도 부근 외딴 섬에 위치하며 국가기밀에 속하는 학교이다. 한 학년이 섬 하나씩 차지하고 있다. 중학교 3년 과정의 학교로 입학과 동시에 대학 졸업 때까지 정부로부터전액 장학금과 용돈까지 받는다. 입학생은 전국에서 우수한 학생들을 추천받아 몇 차례의 까다로운 심사과정을 거쳐 선발한다. 일단 이 학교에 입학하게 되면 학생과 보호자는 학교에 대해 비밀유지 서약서에 서명해야 하며 이를 어길 시에는 즉시 학교에서 퇴학당한다. 1년이 지나면 입학생30명 중 10명이 학교를 떠나야 하는 경쟁 상황 속에서 아이들은 서로 치열하게 눈치 보고 치열하게 서로를 속인다.거짓말 학교에서는 사회에 나가 성공하는 길도 또 우리나라를 세계에서 으뜸이 되게 하는 길도 오직 거짓말을 잘해야지만 가능하다고 말한다. 그래서 학생들이 거짓말을잘하도록 거짓학, 논리학, 진실학 등의 과목을 가르친다.또 거짓말 헌장을 암기한다.‘우리는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이 땅에 태어났다. 공익과 질서를 앞세우며 능률과 실질을 숭상하고, 유구한 역사의 뿌리 깊은 거짓말 전통을 이어받아 인류공영에이바지하자. 이제 창의적이고 이로운 거짓말을 교육의 지표로 삼는다. 성실한 마음과 튼튼한 몸으로 거짓말 기술을배우고 익히며, 타고난 저마다의 소질을 계발하여 창조적인 거짓말을 개척하는 데 온 힘을 쏟는다’. 국가를 발전시키는 좋은 거짓말은 창의적이고 신선해야 하며 그렇지 않으면 뻔뻔하고 용기라도 있어야 한다.매주 월요일과 금요일에 10분 가량 시청하는‘거짓말뉴스’를 보다가 학생들이 쓰러지게 되면서 사건은 깊어진다.나영, 인애, 도윤, 준우 네 명의 아이들은 이 사건을 계기로 학교의 비밀을 파헤치려고 애쓴다. 한 가지씩 알아갈수록 학교는 더 거짓말 속에 잠기게 된다. 그러는 과정에서아이들은 서로에 대해 믿음과 의심을 반복하면서 서로의아픔을 하나하나 다 들춰내게 된다. 가장 소중한 친구, 가장 존경하는 선생님에 대한 신뢰를 잃어가면서 인간 자체에 대한 신뢰도 서서히 잃어간다. 그리고 며칠 전까지 선명했던 사실들이 흔들리는 화면처럼 머리를 어지럽히는 순간주인공은 스스로에게 물으면서 이야기는 끝맺는다. ‘강인애, 이제 어떡할래?’착한 그림책만 읽어 온 나에게는 참으로 충격적인 결말이다. 거짓말 같은 진실, 진실 같은 거짓말의 세계 속에서 진실에 대한 치열한 갈망을 내보여준다.
재미와 낯섦, 불편함의 진실
거짓말 학교에서 벌어지고 있는 심상치 않는 사건들의진실이 무엇인지 찾아가는 과정은 추리 소설을 읽는 것만큼 흥미롭다. 나영과 인애가 번갈아가며 자신의 이야기를서술하는 독특한 구조로 이루어져 있다. 마치 동일한 장면을 두 곳의 카메라가 다른 각도에서 찍은 모습을 보여주는영화처럼 차례로 등장하는 나영과 인애의 진술은 같은 상황에 대해서 지속적으로 엇갈리는 판단을 하게 되고 그러면서 거짓과 진실은 점점 더 불명확해지게 된다.성장소설에서 볼 수 있는 10대 중반 아이들의 심리묘사가 다양한 방법을 통해서 적나라하게 그려졌다. 나영, 인애, 도윤, 준우의 모습을 보면서 인간관계에 있어서 거짓과진실에 대해 계속해서 생각하게 된다. 그 친구가 나를 속이는 것인가? 내가 스스로 그 친구를 못 믿는 것인가? 내가그 친구를 못 믿는 사실을 그 친구는 알면서도 모르는 척진실을 숨기고 있는 것인가? 아이들 속에 있던 모든 거짓과 진실, 혼돈을 다 끌어올린 다음에‘이제 어떡할래?’라고 묻는 것이다.추리소설처럼 재미도 있고 인간에 대한 성찰을 유도할만큼 깊이도 있는데 왠지 마음 한쪽은 껄끄럽다. 나도 아이들을 창의적이고 이로운 거짓말을 만들어내는 전문가로 키우고 싶어 하는 교장이나 거짓학 선생과 같은 사람이기 때문일까? 아니면 셜록 홈즈처럼 숨겨진 미스터리가 하나하나 밝혀지기를 기대하면서 책장을 넘겨서일까? 동화 속에서 숨겨진 진실을 다 보여주는 것이 작가의 관심사가 아닌것은 분명하다.210여 쪽 밖에 되지 않는 동화 속에서 작가는 너무 많은사실 혹은 거짓을 보여주려고 고심한 것 같다. 이 모든 것을 받아들이고 소화하기에는‘거짓말 헌장’이 더 친숙하게다가오는 내게는 어려운 이념 서적보다 더 버겁다. 전통적어린이 문학에 길들여진 이유 때문일 것이다.2009년 한국 정치가들의 모습을 재현하듯 거짓학 선생님이 들려준 정치가들이 위기를 모면하는 7단계 전략은 아이들에게 비판적 사고보다는 현실 정치에 대해 불신과 무관심을 가져다주지 않을까 염려스럽다.언젠가 TV 드라마에서 들은 대사가 떠오른다. ‘진심은통하고 진실은 힘이 세다’아직은 이 대사를 신뢰하고 있고신뢰할만하다고 생각하는 내게는 그래서 거짓말학교가 재미와 함께 낯섦, 불편함이 어울러져 다가왔는지 모르겠다.
아직은 진실을 말하고 싶다
어느 전문가는 거짓과 진실에 대해 규정하지 않고 독자들에게 질문을 남겨둔 결말이 대해서 매우 좋은 평가를 하기도 했다. 본문보다 어려운 전문가 서평을 해독할 문학적전문성은 전혀 없지만 그래도 나는 아이들에게 거짓과 진실을 분명하게 구별해 주며 또‘이렇게 사는 것이 행복하단다’라고 말해 주고 싶다. 창의적이고 이로운 거짓말을가르치는 학교가 없이도 진실이 승리하는 삶을 살아내고싶다. 거짓과 진실이 구분되지 않는 세상 속에서라도 모든아이들이 목숨을 걸고라도 진실을 추구할 가치가 있다는말을 쉬운 언어로 듣기를 바란다.
김재근 한국외어국어대학교 스페인어과를 졸업한 후 현재 전주책마루어린이도서관 사무국장으로 활동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