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1 |
김규남의 전라도 푸진사투리
관리자(2010-01-05 17:45:23)
“누워서 떡 먹기는, 고물이나 들어가지….”
‘누워서 떡 먹기’는 천하 쉬운 일을 가리키는 속담이다. 이 말에‘고물이나 들어가지’란 말을 붙이면 천하 쉬운 일, 누워 떡 먹기와 비교하여 그보다 더 쉬운 일이 있다는것이다. 즉 누워서 떡 먹기는 떡에서떨어지는 고물이 눈에 들어갈 수도 있기 때문에 편안하고 쉬운 일이지만 그래도 조금 신경써야 할 거추장스러움이 있다는 말이다.이 말은 우리가 통상적으로 알고 있는 쉬운 일보다 더 쉬운, 어떤 새로운 영역을 표현했다는 점에서 표현으로서의 신선함이 돋보인다. 기왕의 표현이 가진상황을 꼼꼼히 관찰하고 그 상황에서 일어나는 어떤 순간을포착하여 그것을 가지고 새로운 영역을 표현해 낸 솜씨가 재미나다.이에 덧붙여‘누워서 떡 먹기’보다 더 쉬운 일이 도대체 무엇일까도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그 궁금증을 가지고 메주덩어리 대롱거리는 사랑방으로 함께 떠나보자. 아래 인용한말은 호흡의 단위마다 쉼표를 찍어두었다. 그것은 전형적인말하기 구조에서 나타나는 현상이 문장 단위로 의미가 전개되는 것이 아니라 호흡의 단위로 의미가 전개되며 그래서 문장의 개념보다는 호흡의 단위가 더 기본적이고 중요한말하기의 단위임을 의미한다. 따라서 쉼표를 살려 도막도막 읽어 내려가면 그것이 할머니의 말하기와닮은 말하기이며 그래서 할머니의 말하기 느낌을 되살릴 수 있다.여름에 물오를 적에, 껍데기 벳기다, 네모 빤뜻허게, 깃여,1) 나무에서잉, 잘든 칼로, 그리갖고, 이르케벳기먼, 물이 오르먼, 잘 뻣어져2). 그놈을 갖다, 인자, 말류아,3)말류아서, 막, 저, 촌에서는, 실겅 가래를, 하나썩 에서,4) 얹어놔.그리놨다가 인자, 겨을에, 막, 추문,5) 삶아서, 그리서 먹어.
임실 오수에 사시는 소재남(75세) 할머니의 이 이야기는이 땅 어디를 가나 쉽게 들을 수 있는, 배고픈 시절 소나무껍질 벗겨 먹던 회고담의 일부이다. 즉, 소나무 껍질을 쉽게벗기기 위해 여름에 소나무 껍질에 칼집을 내두었다가 그것을 벗겨 시렁에 얹어놓은 채로 보관한다. 그리고 그것을 겨울에 삶아 먹었다는 이야기다. 사실 이런 이야기는, 우리와동시대를 살고 있는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직접 겪은 일임에도 불구하고 지금 우리에게는 마치 아프리카 오지 마을에서나 있을 법한 이야기처럼 요원하게만 들린다.
쌀게6) , 몽근지7) , 그것을 모다, 막, 팔아다가, 돈 없는 사람은, 그것도 못 팔아, 돈 있는 사램이 팔지. 널어 말류았다가, 볶아, 볶아서먹으먼, 꼬솨. 근디, 그것을, 아 지금은, 체다도 못 보제. 그런디, 그때는, 그런 것 먹고 살아. 그건 고깁여. 그저, 콩깨목, 정부에서 나오머는, 콩깨목도, 강냉이 거, 막, 썩은 거, 삘건허이, 고것을, 못 먹으머는 인자, 인자, 보통 존 놈은, 놀허니 존디, 고놈은 괜찮여, 고놈도 보대끼지만, 고놈은 괜찮여, 그런디, 요러케 떠, 요러케 요러케 썩어들어간 디, 요러케 뜨머는, 고놈을 갖다가, 물에다 당과, 당구먼, 삘건헌 물이 나먼, 메칠이고 당궜다가, 고놈을 울궈 부리고,고놈을, 죽을 끓이서 먹어.
정말 그럴 수 있었을까 싶은 일이지만‘쌀겨’를 사서 볶아먹는 것은 그나마 돈 있는 사람들의 호사고, ‘콩깨목’8) 을 배급으로 배당받아 연명하거나 그것도 안 될 때는 강냉이 썩은것을 물에 며칠씩 담가두었다가 우려낸 썩은 물을 여러 차례버려 그 알갱이로 죽을 끓여 먹었다고 하니, 가축의 사료로나 쓰는 콩깻묵도 없어서, 썩은 옥수수 죽을 먹고 산 분들이우리 곁에 있는 할머니, 할아버지들이라는 게 도대체 믿기지않는다. 그도 그럴 것이 이야기가 무르익을 무렵, 소재남 할머니의 목소리도 당시의 절박함만큼이나 격앙되어 있었다.
그리도 보대껴, 그리도 사램이, 보대껴 죽어, 지금은 양석 없다고, 옛날에, 허먼, 양석 없으먼 라면 삶아먹제, 아덜이 그러먼, 라면이 어디가 있어, 라면이, 어디가 있으먼 그런 소리를 혀. 그 인제참, 내가 참, 칠십오 년을 살았는디, 예렛살 안에, 열두세 살, 아호여덜, 그 시간에 그릿어요. 그 시간 때, 그 시간 때, 그렇게 살았어.근게 참, 그렇게 살았다는 것이, 아조, 참, 기가 맥히게 살았지, 모다, 나뿐 아니라, 전체가 그런게,
할머니가 열두세 살 무렵이었으니 지금부터 약 60여 년전 1940년대의 일이다. 일제 강점기 그 분들의 삶이 얼마나곤궁했는가를 실감하게 한다.앞서 말한 바와 같이, 이 이야기는 누구를 만나든지 쉽게들을 수 있는 고생담이다. 또한 너나 할 것 없이 이야기의 마지막은 손자들의‘라면’타령으로 마감된다. 그런 점에서‘소나무 껍질 벗겨 먹는 이야기’와‘라면이라도 삶아 먹지’는 하나의 서사 구조를 갖는 이야기 일부이다.그 이야기 끝에 덧붙는 것이, 그리고 반드시 생각해 봐야할 것이, 지금의 삶이다. 가만히 앉아서 손가락 하나로 모든것을 해결하는 삶, 밥솥의 단추, 텔레비전 리모컨의 단추, 보일러의 단추, 수많은 단추 하나들로 모든 것이 해결되는 천하 쉬운 삶, 이것이 바로‘누워서 떡 먹기는 고물이라도 들어가지…’란 말로 표현된 지금의 삶이다.삶이 곤궁하게 느껴지거든‘누워서 떡 먹기는 고물이라도들어가지…’란 말에서 굳이 표현하지 않은 숨은 의미를 생각해 보시라. 당시의 사람들이 절박해하며 몸을 부리던 그 공력의 십분의 일만으로도 지금 우리의 상황에서 이루지 못할일이 무엇이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