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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 |
[내 인생의 멘토] 내 꿈의 길잡이-세 분의 스승
관리자(2010-01-05 17:45:11)
스승과 함께 걸어온 음악의 길 - 김홍연 전주시립교향악단 수석 첼리스트 2002년 6월! 대한민국이 월드컵의 열기로 후끈 달아올랐던 초여름이었다. 스포츠에는 문외한이면서 별 연관성을 못 느끼던 나라는사람도 스페인과 승부차기를 하던 시각은 도저히 한 자리에 앉아TV를 지켜볼 수 없어서 거실과 베란다를 정말 수십 번 왔다 갔다했던 기억이 난다. 지켜 볼 수도, 안 지켜 볼 수도 없었기에…. 그때 내 눈에 비쳐졌던 스타디움의 응원석에 새겨졌던글씨!“ 꿈은 이루어진다”. 그 문구를 보았을 때 내 생각은“그래, 꿈! 좋은 거지. 하지만 꿈은 꿈일 뿐이야. 꿈이 이루어진다는 것은 진짜 꿈이지!”라는 거였다. 약간은 부정적인(?). 하지만 지금 나는 확실히 말할 수 있다.“ 꿈은이루어진다!”고.그리고 나에게 이런 확신을 심어준 분은 내 음악인생의 영원한 멘토인“한성환 선생님”이라고. 사실 내가 음악을 나의 길이라고 인식하기도 훨씬 전 아주 어렸을 때인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나는 음악의 길을 걷고 있었다. 그러기에 길다면 긴 내음악의 길에는 멘토의 역할을 해주신 고마우신 분들이 여러분 계신다. 지금도 잊을 수 없는 내 인생의 멘토 그중에서도 중학교 1학년 때 게으름 때문에 피아노 연습을 허구한 날 빼먹는 철없는 제자를 위해 하루도 거르지 않고 매일 아침 일찍 등교 전 일부러 우리 집까지자전거를 타고 오셔서 자는 나를 깨워 뒤에 태우시고 당신 집으로 가셔서 피아노연습을 한 시간 꼬박시켜주시던 지금은 고인이 되신 김용준 선생님. 덕분에 난 지금도 가르치는 학생들의 콘체르토나 소나타의 반주를 해줄 수 있게 되었다. 그때잠이 덜 깨어 선생님의 등에 기대 비몽사몽 매달려가던 어릴 적의 나를 떠올리면스승의 따뜻함을 지금도 느낄 수가 있다.또 한 분은 대학원 논문 지도교수를 맡아 주셨던 원용숙 교수님. 대학 졸업 후 몇년이 지나 시작했던 공부라 매사에 힘이 들고 서울과 전주를 오가며 일과 병행하는학교 활이라 무척이나 어려웠었다. 독주회야 무사히 마쳤지만 논문이라는 벽은 나에게 너무도 커다랗게 다가온 장애물이었다. 그 높은 장애물을 원교수님은 때론 격려로, 때론 채찍으로 나를 넘게 해주신 분이다. 집 가까이에 있는 교회의 새벽 종소리가 울릴 때까지 원고지에 매달려 있다가, 바로 새벽 첫 고속버스를 타고 학교 도서관으로 달려가 책과 씨름 할 수밖에 없던 나를 만드셨던 분. 그러면서도 늦게까지교수님과 공부하느라 마지막 버스를 놓치는 시간이 되어버리면 (그때는 심야우등버스가 없을 때니까) 건넛방에 손수 이불을 펴주시며 매번 재워주셨다. 내가 너무 죄송해라 하면 그럴 때마다 당신도 당신의 은사님께 받기만 했으니 자신의 학생에게도 그렇게 해주어야 한다고 말씀하시곤 했다. 지금의 내가 나의 학생들에게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고자 할 때마다 나는 나의 은사님이셨던 원교수님을 생각한다.내 꿈의 길잡이, 스승 한성환그리고 한성환 선생님! 1992년 독일에서 돌아온 후 내가꿈꾸고 계획했던 중요한 일 중 하나가 첼로 앙상블을 만들어연주하고자 했던 것이었다. 그래서 1993년 11월 의욕적으로만들어 연주를 몇 번 해내긴 했으나, 음악을 만드는 일, 앙상블 악보를 구하는 일 등, 너무도 많은 문제들이 있었다. 벽에부딪혀고민하고있을때,‘ Werner Thomas’라는유명한독일 첼리스트와 첼로 앙상블을 이루어 한성환 선생님이 전주에서 연주를 하셨다. 그 때의 내 심정은 심봉사가 개안을 한느낌이 바로 그랬었을까? 그때부터 이어진 앙상블의 사부(?)이신 한선생님과의 인연이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한선생님께 받았던 음악적인 가르침과 영향 외에도 내가살아가면서 가져야 할 목적의식, 해내야 할 일들을 계획하는것에도 많은 영향을 받았다.그러던 중 첼로 앙상블을 오랫동안 해오면서 꿈이 생겼었다. 창단 15주년이 되면 한선생님을 모시고 12명의 단원으로 첼로 앙상블음악의 꽃인‘빌라 로보스’의‘브라질풍의 바하’를 연주 하는 것. 허나 그건 진정 꿈에 불과한 이야기였다. 우선 12명의 단원을 모으는 것도 너무 힘든 일이었고, 한선생님은 캐나다로 영주하시러 몇 년 전 한국을 떠나신 상태였기 때문이었다. 앙상블 단원들조차“그건 불가능 한 얘기예요”라고 했을 정도니까. 그러나 그 꿈을 가능한 이야기로,현실로 만들어주신 분이 바로 한선생님이었다. 정말 어렵게연결된 선생님과의 첫 연락에서 흔쾌히 우리의 초청을 단 한번에 승낙하셨다. 모든 일정을 다 접고 우리의 연습 스케줄에 맞춰 거의 열흘 이상 같이 연습할 수 있도록 미리 한국에오셔서 매일매일 쉬지 않고 더운 여름날을 같이 연습으로 보내 주셨다.결국 2008년 8월 29일. 나는 나의 자그마한, 그러나 커다랗기도 한 나의 꿈을 이루었다. 한국소리문화의 전당 연지홀에서 한선생님을 모시고 12명의 첼리스트와 함께‘빌라 로보스’의 음악을 연주해 낸 것이다.내가 소속된 오케스트라의 아끼는 후배가 한 이야기가 있다. “선생님. 꿈을 꾸는 사람은 꿈을 이룬데요”라고. 그렇다.꿈을 꾸는 사람은 언제나 계획하고 노력하고 준비하기 때문에 이룰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이룰 수 있도록 곁에서 도와주고 길잡이를 해줄 수 있는 그 누군가를 만날 수 있다면 더욱 금상첨화가 아니겠는가!나의 음악인생에서 만난 나의 멘토. 오늘의 내가, 그리고미래의 내가 누군가의 도움이 될수 있는 음악인이 되는 데에는 그분들이 내 곁에 존재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김홍연 숙명여자대학교와 동대학원을 졸업했다. 글로리아 스트링 오케스트라 단원과 필하모닉 첼리스트 앙상블의 리더로활동하다 현재는 전주시립교향악단의 수석 첼리스트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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