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1 |
[신화이야기] 이해경의 신화로 본 세상
관리자(2010-01-05 17:44:52)
남성 신의 패권과 순환성
- 이해경 전북대학교 인문학연구소 전임연구원
모권 중심에서 부권 중심으로의 이동
『신통기』에는‘가이아가 맨 처음자신과 동등한 별 많은 우라노스를낳은 것은 그가 그녀를 완전히 덮고축복받은 신들에게 결코 흔들리지않는 거처가 되게 하기 위함이다’라고 이야기 되어 있다. 그러나 자신의아들이자 남편인 우라노스는 거대하고 괴물 같은 자기 자식들을 두려워하여, 자식들 모두를 대지, 즉 가이아의 품속에 숨겨 그들이 햇빛에 나오지 못하게 한다. 가이아는 우라노스와‘동등한’지위를 가지고 있다고 하지만, 우라노스가 자식들을 가이아에게서 태어나게 하고 다시금 가이아 속에 숨김에도 속수무책이어서‘결코 흔들리지 않는 거처’역할을 할 수 없고오히려 고통을 감내해야만 하는 상황이 된다.레아도 마찬가지이다. 레아는 크로노스에 의해‘제압되어’자식들을 계속 생산해내는 수동적인 상태에 머무르고, 크로노스가 자식들을‘어머니의 성스런 질에서 무릎에 나오자마자 집어 삼킴’에도 그에 맞서지 못한다. 이에 대한 고통 속에서 레아는 새로 태어난 막내아들 제우스를 어머니 가이아에게 넘겨주고 대신 강보에 싸인 돌을 크로노스에게 넘겨줘 삼키도록 할 뿐이다. 자식들을 보호하는‘거처’역할을 할 수없는 레아를 대신하여 가이아는 겨우 손자를 일시적으로 보호하는‘거처’역할을 할 뿐이다.반면 헤라의 경우는 다르다.제우스의 정실부인 인정의 약속과 가이아로부터 석류(혹은 황금사과)나무라는 결혼 선물은 레아의 합법적인 정실부인의 지위를대내외적으로 인정하는 것이라할 수 있고, 여기에 헤라가 제우스에 맞서 투쟁하는 이유가 있다. 헤라는 자식들에 대한 거처역할에는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오히려 자신이 낳은 헤파이스토스를 다른 신들에 비해 못생기고다리까지 전다는 이유로 바다에집어던졌듯이 자식을 보호하는거처 역할은커녕 자식을 학대하는 여신으로 묘사된다.이처럼 여신들은 자신의 아들이나 자신의 남동생과 결합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이들에 제압되거나 이들의 부당한 행위에 속수무책이다. 이것은 남성 신들이 여성 신에 비해 상대적으로 강한 지배권을 갖게 된다는 것과 모권 중심에서 부권 중심으로의 질서가 재편되는 과정 속에 있음을 의미한다.
권력에 대한 신들의 욕망
영원한 삶을 산다는 신들도 한번 누리게 된 힘과 패권을빼앗기지 않고 계속 누리고 싶은 욕망을 가지고 있다. 아버지는 아들을 추방함으로써 자신의 권력에 대한 위협을 제거하고, 아들은 자신이 아버지로부터 위협 당하는 것에 대한두려움과 또 아버지의 패권에 대한 부러움으로 아버지를 제거한다. 그럼으로써 아들은 자신에게 드리워져있는 위협을제거함과 동시에 원래 아버지에게 속했던 모든 권리를 자신이 누리게 되고 그 힘을 자신이 가질 수 있는 것이다. 우라노스는 자식들에 의해서 자기가 가지고 있는 패권을 빼앗길까봐 자식들을 가이아 속에 가두고, 크로노스는 자신의 아버지에 대한 죄와 자신의 자식에 의한 패권상실이라는 예언때문에 자식을 집어 삼킨다. 그러나 이와 같은자신의 패권을 빼앗기지 않으려는 노력은결국 자신의 아들에게 자신의 패권을 넘겨주는 빌미가 된다.부당한 짓을 하는 남편 신에 직접적으로 맞설 수 없는 여신들은 자식들을 동원한다. 이때 막내아들이 결정적인 역할을 담당한다. 가이아의 선동에 따라 막내아들 크로노스는 저녁에 가이아를 안으려 하는 우라노스에게서 남근을 낫으로 잘라버린다. 이 낫은 가이아가 만들어준 금속으로 된 것이었다. 낫으로 아버지를 거세하였던 크로노스 역시도 자신의 부당한 짓에 대해 아들에 의해 응징된다. 태어나자마자 집어삼켜지는 운명을 피하고 성장한 제우스는 가이아의 영리한 조언에 따라 크로노스에게구토제를 먹여 집어삼킨 자식들을 다시 토해내게끔 했다. 제우스는 이어서 우라노스에 의해 가이아의 대지에 숨겨져 빛을 못 보게 된 아버지 형제들을 구출하고, 그에 대한 보답으로 그들로부터 막강한 권력의 상징인 천둥과 벼락, 광선을 받아 인간과 신들의 진정한 지배자가 된다. 한편 제우스도 자식에 의한 패권박탈이란 운명을 똑같이 가졌었다. 제우스는 메티스를 좋아했지만 그 여신과의 결합으로 낳게 될 아들이 자신의 왕좌를 찬탈할 것이라는 예언에 메티스를 인간과 결혼시킴으로써 아버지와 같은 자신의 운명을 피할 수 있었다.아들이 아버지로 성장하고 아버지는 그의 아들에게 권력을 빼앗김으로써 더 이상 생의 의미를 갖지 못함은‘시간’이라는 의미가 있는 크로노스의 이름에서도 유추 해석할 수 있다. 크로노스가 사용한 낫은 생산력을 무력화시키는 상징적인 역할을 하면서도, 동시에 아버지의 패권을 거두어들이는 의미를 가지게 됨으로써‘추수의 낫’으로 이해되고, 이는 그를 추수의 신으로 이해하게 하였다. 우라노스와 크로노스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하늘을 주재하는 남성 신의 탄생, 성장, 제거의 반복적인 과정은 씨앗이 싹터 성장하였다가 열매를 맺고 다시 씨앗으로 돌아가는순환과정으로 이해 할 수 있다.반면에 여성 신들은 자식들에 의한 제거 과정을 거치지 않는 것에서 볼 수 있듯이 그들의 영향력은 미약하나마계속 유지되고, 그를 중심으로 하는 질서가 부분적으로 유지되고 있음을 의미한다. 가이아와 레아, 헤라가 서로 도와 자식을 출산하고 지켜주면서 생명력을 끊임없이 유지하는 대지의 영원성은 남성 신의 순환성과는 대비된다.
이해경 전북대학교 독어독문학과를 졸업하고 독일 하노버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전북대학교 인문학연구소에서 전임연구원으로 활동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