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1 |
[신귀백 영화엿보기] 파스빈더 1974
관리자(2010-01-05 17:43:41)
둥근 영혼아, 사랑으로 불안하라 !
<불안은 영혼을 잠식한다. 파스빈더 1974>
보이지 않는 곳에서 누가/ 포도송이처럼 영글어가고 있는 나의 꿈을/ 뚝뚝 떼어내며 웅크린 내 잠에/ 확 불빛을 쏘아대었다// 어디선가 물 떨어지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하고/ 어둡고 따스한 잠 속에 끊임없이 울려오는/ 무거운 물방울 소리들// 신성한 외로움에 빠진 나의/ 둥근 영혼을 누가 불안하게 하는가// 물이 주르륵 흘러내리고/ 아직 단단해지지 않은 머리가 먼저/으깨어진다 세상에 대한 불길한 나의 사랑이/ 누군가를 붉게 물들인다 (조용미의 시「불안은 영혼을 잠식한다」전문)
불 안 의 시 작
불안은 영혼을 잠식한다. 맞다. 아프고 정확하며 때론 멋지기조차 한 이 말은 아랍 속담이란다. 자우림의김윤아는 같은 제목으로 진청의 그림자를 드리운 단 꿈에 침식되는 마음을 노래했고, 시인 조용미는 쏘아대는 불빛과 적막을 뚫는 물방울 소리가 외로운 영혼을 불안하게 재촉한다고 썼다. 모두 파스빈더의 영화가 모티브가 된 장르일 것. 이 영화 그리 어려운 텍스트가 아니다. 인종차별 철폐가 주제라면 주제일 텐데. 이렇게빡빡한 주제를 전달하기 위해서 파스빈더는 영리하게도 멜로드라마 어법을 차용한다.음악이 깔리는 까페의 오프닝. 우리네 남도 구음 비슷한 사운드다. 비 오는 저녁, 한 여인이 비를 긋기 위해카페에 들어온다. 한 눈에 봐도 퍽 늙었다. 늘어진 볼, 불어난 몸매의 여인은 어디 음악이냐고 묻는데, 아랍음악이란다. 대답하는 까페 사람들의 빤한 시선이 부담스럽다. 20년 동안 한 번도 춤을 추어 본 적이 없는 이여인은 여기서 수염 기른 젊은이의 이끌림을 받는다. 그리고 집으로.몸 돌리기도 힘든 작은 부엌에서 한 잔의 브랜디를 통한 서로 알기가 시작된다. 모로코 출신 이 남자는 2년동안 카센터에서 죽도록 일만 한 사람. 독일에서 아랍인은 인간취급을 못 받는 개라고 말한다. 이에 여인은죽은 남편도 차별받던 폴란드 출신이란 것 그리고 자신은 청소부라 말한다. 외로움과 소외에 대한 동병상련이 알코올처럼 쫙 퍼진 후, 여인의 남편이 입던 파자마를 받고서 이 남자는 자신은 유목민의 후예라며 아랍식이름을 밝힌다. 엘 헤디 벤 살렘 바렉 모하메드 무스타파 알리가 본명이란다. ‘나 같은 늙은 여자’라는 자조(自嘲)의 말에 알리는 마음만 착하면 된단다. 글쎄, 파스빈더의 명성에 비해 그 시작이 너무 쉽지 않은가. 이파스빈더 판‘독일인의 사랑’은 보는 이에 대한 도발인 것. 사랑이라고? 자기검열이 사랑의 시발점일 텐데.매혹 없이도 사랑이 가능한 나이와 권력이란 하나도 없는 가난한 남자를 찬찬히 들여다보면, 슬프다.
침 식 되 는 단 꿈
‘구로프스키 부인’으로 불리던 여인에게 제 이름을 찾는 경이가 찾아온다. 에미! 알리는 에미의 집에 기거하면서 주저 속의 인정감을 느끼고 에미는 나름 맞벌이의 소소한 즐거움을 맛본다. 행복? 파스빈더는‘육체의 약속’그런 것 말고 늙고 힘없는 사람들이 무엇으로 행복해 하는가를 안다. 늙은 에미와 외국인 노동자 알리와의 관계는 포도송이처럼 쉽게 영글어가지는 못한다. 유색인종을 사랑한다는 이유로 에미는 가족과 이웃이 쏘아대는 가시 눈총을 받고 직장의 따돌림이 일상이 된다. 1972년 뮌헨 올림픽 암살 사건 이후 아랍인을보는 시선이 달라졌기 때문에. 아파트에서는 하숙을 칠 수 없다는 동네 여편네들의 태클이 들어오지만 에미는굳게수비벽을풀지않는다. 사랑하니까,‘ 지금. 여기’가좋으니까.계단에서 종이를 펼치고 점심을 먹는 하류인생인 청소부 아줌마들도 누군가 시피 보는 안주가 있어야 즐거움이 있다. 그들은 에미가 음탕한 저질이라고 대놓고 왕따를 놓는다. 참을 수 있다. 거기다 싸가지 없는 아들은 엄마를 창녀로 몰고, 집안의 텔레비전을 부순다. 그리고 동네 사람들은 할망구 망령들었다는 식이다. 그래도 에미는 그의 긴 이름을 다 외운 후, 호적 사무소에 가서 함께 결혼을 신고한다. 김수영의 시(詩)대로‘그들의적은늠름하지도않으며’,‘ 전선(戰線) 또한눈에보이지도않기에「( 하…그림자가없다」中에서)’….외부인이 던지는 불안의 공기는 이 둘을 절망에 몰아넣기도 하지만 그들을 단결시킨다. 슈퍼 주인은 부정확한 발음으로 물건을 사러 온 알리에게 골탕을 먹이고 아파트에 크게 들리는 아랍음악이 소음이라며 동네사람들은 경찰을 부른다. 옹졸한 민간인들은 아랍인은 폭탄 같다고 말하지만 오히려 장발의 경찰은 좋은 말로타이르고 돌아간다. 한동안 시기와 따돌림을 한밤의 손전등처럼 들이대던 동료들의 관용은 엉뚱한 데서 온다. 유고슬라비아에서 온 신참 청소부가 그들의 새로운 안주감이 되었기에. 아들놈은 어린 자식을 맡겨야 하는 실용적 이유로 사과를 하면서 엉성한 봉합이 이루어진다.이들에게 동료나 가족의 억압이 사라지자 더 큰 불안이 그들에게 달려든다. 이제는 인종의 벽이 아닌 인간의 벽이 기다리는 것. 사랑 그 다음 문제는? 바로 누구에게 권력이 있는가, 아니겠는가? 그리고 그들에게 균열이 찾아오는데, 안도와 함께 찾아온 인간의 대상화가 그것. 단꿈에 빠진 에미가 친구들에게 젊은 오빠의 알통이나 자랑하는 속물임을 드러내자 분노를 표출할 수도 없는 알리는 노름을 하고 옛 애인의 아파트에 찾아간다. 생각할수록 서러운 것이어서, 그는 거울을 보며 자신의 뺨을 때린다. 결국 실의와 수치 속에 스트레스성 위궤양으로 쓰러지는 알리…. 김윤아가 노래하던‘침식되는 단꿈’이 갉아먹는 영혼이 이런 것 아닐까?
서 정 시 를 쓰 기 힘 든 시 대
비텍스트적 요소로 뉴저먼 시네마의 기수로 불린 파스빈더의 생애를 돌아보자면 37세에 요절한 그에게는전설이 많다. 13년 동안 무려 40 편을 연출하고, 이 작품도 불과 2주 만에 만들었다니, 천재다. 누구는 1970년대 파스빈더가 만든 이 독일시민사회의 속물성과 불안을 표현한 반성문으로 하여 인종주의 국가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고 하는데, 영화 한 편으로 과연 그럴까?파스빈더의 영화는 2차 대전 패망 이후 라인강의 기적을 일군 독일인들이 가지고 있는 뻔뻔함 속에 감춰진불안의 모습을 벗겨낸다. 유럽인에 대한 얼마간의 죄책감과 미국인에 대한 열등감을 겨우 극복한 후 터키인과 아랍인에 대한 차별, 직업과 직종에 대한 편견, 노인에 대한 무시로 이어지는 불온한 공기를 필름 속에 담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마리아 브라운의 결혼>에서처럼 게걸스러운 경제적 성장은 가져왔지만 역시 브레히트 말대로‘서정시를 쓰기 힘든 시대’라는 것. 파스빈더는 독일이라는 자아의 불균형한 발달을 표현하는방법으로 침묵과 스톱모션의 카메라워킹을 보여준다. 그래서 일상의 파시즘과 불안을 붙들기 위해 영화 속인물들은 대개 창틀이나 계단을 통해서 모습을 드러낸다. 에이미가 공원에서 다른 사람들에게 바락바락 악을쓰는 것이나 비싼 레스토랑에서 멀거니 바라보는 지배인의 침묵의 눈길은 소외의 정점이다. 소리 없이 눈만움직이면서 표정 없는 사람들의 정지라니…. 조용미의 시가 보여주듯, 닫힌 공간에서의 똑똑똑 떨어지는 물소리처럼 숨이 막힌다.자기만의 방속에서는 따스한 잠이 있을지라도, 불안이 습윤한 공기처럼 퍼져 있는 독일‘사회’에서 완전한사랑이란 불가능하다고 파스빈더는 말한다. 뭐, 꼭 외국인 노동자만 불안하고 사랑 없는 늙은 여인만 불행하겠는가? 표정 없는 어린이, 노래 잃은 정규직들, 귀에 이어폰을 꽂은 지하철의 시민들은 다 불안의 증거다.그렇다. 불안하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으랴. 우리는 항상 불안하고 걱정을 당겨서 한다. 빚이 있는 사람은 작은 소수점의 이자율이 그리고 글을 써 본 사람은 마감이 영혼을 잠식한다는 것을 알 것이다. 어렵게 강박관념이라 말할 필요도 없다.고독만 불안을 낳는 건 아니다. 우리는 고독을 피해 사랑을 찾지만 사랑이야말로 사람을 불안하게 한다. 그러나 진정한 사랑에는 불안이 따르고 불안한 사랑이야말로 절실한 사랑 아닐까. 불안하지 않는 사랑은 사랑이 아니다. 아프기 때문에 몸이 소중한 것처럼, 불안하기 때문에 둥근 영혼을 맑게 가라앉히고 사랑 저 깊은 데로 몸을 맡겨야 하는 것이다.PS. 파스빈더의 데뷔작 <사랑은 죽음보다 차갑다>는 떫은 풋감 그대로지만 왕가위가 계승하여 멋진 작품으로 이어졌다. 영화읽기의 절반이 재미 아닌 의미에 있다고 믿는 독자께서는 <마리아 브라운의 결혼>을 꼭보시라. 비에 젖는 현대 독일의 역사 속에 남한 사람들의 진창의 역사가 어찌 그리 닮았는가를 고스란히 느낄수있을것이다. 음, 독일어를배우지못해,‘ 교주정성일’의글을아래인용하며글을마친다.‘불안은 영혼을 잠식한다’는 뜻의 원제목 <Angst Essen Seele Auf>는 알리가 자기 나라 속담을 서툰독일어로 번역하여 불안해하는 에미를 위로한 말인데, 독일 어법에 맞지 않는 말로서‘Angst ibt SeeleAuf’가 정확한 표현이다. 의도적으로 틀린 표현을 제목으로 사용한 것은 외국인들이 독일어의 동사 변화를정확하게 구사하기 어렵듯이 독일의 법칙에 따라 살 수 없다는 은유로 해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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