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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 |
[문화시평] 카페를 위한 뎃생
관리자(2010-01-05 17:43:15)
카페를 위한 뎃생 (11월 28일~12월 27일) Cafe 플로리안 윌리엄 모리스와 이경태, 전주의 아트앤크래프트 - 황성희 전북대학교 문화인류학과 박사과정 일찍이 윌리엄 모리스가 있었다. 그는‘세상의 모든 것을 디자인한다’는 평판을 들으며 예술작품으로서 저 높은 곳에서 홀로 빛났던 미술 작품과 그보다 열등한 것으로 취급받던장인의 공예품이 행복하게 만나는 지점을 제공했다. 세상의 아름다움을 향한 모리스의 탐욕스러움은‘아트앤크래프트’운동으로 꽃망울을 터트리며 영국의 디자인을 앤틱의 기준으로 만들었다.19세기 유럽의, 아니 세계의‘폭풍 전야’임이 드러났던 저 찬란한 벨에포크 시기를‘데코레이션’했던 윌리엄 모리스에게 영감의 샘물은 바로 중세였고 중세 미학의 아이콘으로 작용했던 아리비아풍 도안이었다. 아라비아풍 식물 문양에 중국의 관습적 색채로 굳어진 붉은 색 등 원색을 과감하게 끌어옴으로써 모리스는 동시대‘세계제국’의 미학을 장악했던것이다. 중세풍은‘원탁의 기사’들이 숱한 레이디들에게 헌상했던 궁정풍 사랑으로 충만했고 머나먼 제국 아라비아와 중국을 향한 이국적 정서는 아트앤크래프트적 낭만주의 스타일을 창조했다. 윌리엄 모리스와 이경태 전주, 중화산동 한적한 골목 안에 자리한‘카페 플로리안’을 장식한 이경태의 <카페를 위한 데생>전을 본 그날 윌리엄모리스를 생각했다. 특히 이경태 전시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다양한‘바느질 드로잉’소품들을 보면서 아내 제인버든에게 자수를 가르쳤던 모리스와 이경태가 오버랩되었다.시리아의 다마스커스가 고향이라는‘린넨’천위에 검은 색실로 투박한 듯 성긴 스티치를 한 다음 채색으로 마무리한 소품들은 단일 기법으로는 결코 작품을 완성하지 않은 작가의취향을 드러냈다. 때마침 마주친 이경태 작가에게 스티치의종류를 묻자, ‘그냥 바느질 한 거예요’라는 대답을 듣는 순간우문현답(愚問賢答)이 오히려 충만감을 주었다. 바느질의 스티치는 단지‘바느질 드로잉’시리즈에 갇혀 있지 않고 전시된 거의 모든 작품들을 관통하는 주요 방법론으로 자리매김해 있었다.바늘과 실로 풀어간 작가의 자유분방함은 바느질로서는 아플리케이고 미술기법으로서는 꼴라쥬에 해당하는 짜깁기 방법에서 가속화된다. 창문에 늘어진 대형 벽걸이 작품에는 린넨 바탕의 무채색에 대한 반전인 양 핫핑크 바탕의 플로랄 프린트의 천 조각이 아플리케 혹은 꼴라쥬 되어 있었다. 통일성의 기계적 논리를 깨부수는 파격으로 핫핑크 플로랄 프린팅천은 여러 작품에서 기세를 올린다. 거기다 니트 또한 린넨과결합하려는 의지를 보여줌으로써 색채의 통일성에 이어 재질의 단일성조차 파괴되고 삐뚤빼뚤한 수자와 아라비아 문자인듯한 문양의 바늘땀들은 구상의 영역에서 이륙한다.바느질과 린넨, 니트, 꽃 프린트와 프로방스적 원색계열을아낌없이 구사하는 이 작가의 정점은 화병 정물에 찍힌다. 빌로드 같은 천이 밑받침인지, 배경인지, 방점인지 카오스를 증폭시킬 때 청색 꽃 문양을 작은 별처럼 찍은 중국풍 찻잔과 함께 배치된 커다란 꽃병, 그곳에 원 없이 꽂혀 있는 수백송이의 흑장미다발은 아름다움을 넘어 처연한 욕망으로 불을 뿜는다. ‘채움’의 욕망이 실현될 듯한 그 순간, 채워도채워도 영원히 채울 수 없는인간 조건의 불완전함과 기어이 조우한다. 이렇게 꽉 채움으로써 도리어 채울 수 없음을 드러내는, 화려하게 불타오른 원색이 무채색보다 더 어두울 수 있다는 예기치 않은 역설이 발생함으로써 아름다움 앞에 탐욕스러워 보였던 작가는 허무주의를 전파하는 철학자로 물러서 버린다. 디오게네스적 이경태의 얼굴이 여인 뒤에 숨은 그림은 차라리 자화상에 가깝다. 카페를 위한 뎃생, 그 빈티지함에 대해 작가의 나무에 대한 편애도 공공연하다. 나무는 큼지막한 지중해산 꽃이 새겨져 있는 빈티지풍 스톨로 전시되었고 각종‘바느질 드로잉’소품의 프레임으로 그 존재감을 드러낸다. 표구점에 다녀와서 획일적인 틀을 가진 액자들은 그곳에 없었다. 작가 주변에 널려 있었던 인연으로 캐스팅된 빈티지 나무들이‘프레임이되 프레임’이 아닌 존재감으로 작가의 손끝에서 거듭났다.의도된 거침으로 다듬어지고 고가구의 경칩으로 장식된 나무 프레임에 그 빈티지한 올리브 그린이 채색되면 프레임 자체는 혼종적 미학으로 복잡한 정서를 불러낸다.관습적 창작기법 대신 바느질과 이질적인 천의 이음, 빈티지 나무 프레임 등으로 구사하는 그의몽환적이면서 빈티지한 세계에는 기획된 의도가 숨어 있다는 혐의를 받게 될 것이다. 윌리엄 모리스가 신혼집에 2년간 공들임으로써 전무후무한‘레드하우스’를 창조했듯이 이경태은 빈티지풍 카페의 실내 인테리어를 한 것이다.이번 이경태 전시회의 키워드는 트렌드, ‘이보다 더 트렌디할 수는 없다.’전주 거리에 들어설 이러저러한 작가 샵이 진정 빈티지함을 추구한다면 참조로서 방점을 찍을 수 있지 않을까? 전주적인아트앤크래프트가 이제야 그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전주는 전통의 도시이다? 황성희 이화여자대학교 정외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한 후 현재 전북대 문화인류학과 박사과정에 재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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