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킵 네비게이션


분야별보기

트위터

페이스북

2010.1 |
[문화시평] 연극 < 필례, 미친꽃>
관리자(2010-01-05 17:42:46)
연극 < 필례, 미친꽃> (12월 11일~27일) 창작소극장 사랑과 복수 그리고 광기와 허무가 융합된 연극적 실험 - 류경호 전라북도연극협회장 한때 우리 연극계는 번역극 혹은 번안극의 창궐을 지켜볼 수밖에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80년대 까지만 하여도 서양의 사실주의연극이 우리의 창작희곡을 압도하며 연극계에 절대적 영향을 미쳤다. 거기에는 그리스 비극과 서양의 고전 그리고 영미 사실주의희곡의 범람을 들 수 있다. 그러나 이에 대한 반성으로 출현한 것이 희곡의 발굴과 무대화에 관한 창작환경의 현실적 우대정책이다. 각종 연극제와 재단에서의 희곡공모에서의 창작희곡 우대, 그리고 문예 진흥정책에서의 창작초연 작품에 대한 우선지원 등에힘입어 양적으로 비약적 발전에 이르지만 아직도 한국희곡은 열악한 환경에서 지친 행보를 거듭하고 있다. 일그러진 세상에 고함 이러한 시점에서 연극계는 서구의 고전이나 유명희곡을해체하거나 재해석하여 무대화하는 작업을 선보여 우리의현실과 맞닥뜨리는 작업을 지속하며 좋은 반응을 이끌어 내기도 하였지만 일시적 흐름에 그치고 만 경우가 많았다. 그런 의미에서 창작극회의 <필례, 미친꽃>(곽병창 작/연출)은사랑과 복수 그리고 광기와 살육이 어우러지는 한바탕 유희가 전편을 관통하고 있지만 지역연극의 현실을 감안한다면한마디로 우리 전북연극의 우월감을 다시 한 번 확인할 수있는 작품이다.물론 이 작품이 완벽한 희곡적 완성도와 연극적 결실을 이루었는가에 대해서는 몇몇 아쉬움이 남는다. 먼저 이 작품의줄거리를 살펴보면 기존 셰익스피어의 <햄릿>을 변형 혹은차용한 것임을 알 수 가 있다. 특히‘해무’(햄릿)에 등장하는필례(오필리어)와 관련한 에피소드를 묶어 우리의 현실에 비춰 재생산하는데 성공한 것으로 보인다.사랑하는 이의 손에 아버지(보루/폴로니어스)를 잃은 필례는 매일 밤 악몽에 시달린다. 한편 사랑하는 이의 아버지를죽이고도 이를 말할 수 없는 신왕 해무는 괴로운 마음을 달래지 못한 채 향락에 빠져 허우적거린다. 양철 왕관과 일그러진 무대와 옥좌, 피비린내, 복수, 그리고 사랑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두 연인에게 허락된 순간은 숲에서의 달콤한밀회뿐이다.그러나 이를 만류하는 이수(호레이쇼)는 새로운 정권과 나라의 안정을 위해 진심으로 해무를 호위하지만 녹록치 않다.국정에 소홀한 왕을 두고 볼 수 없었던 충신 이수는 해무를사랑하는 궁녀 리향을 이용해 해무와 필례의 사이를 멀어지게 하려 애쓴다. 필례의 오빠 내아(레어티즈)는 무당의 도움으로 나타난 아버지의 혼령이 자신의 억울한 죽음의 범인을밝혀 달라고 하자 복수의 칼을 갈며 아버지의 원수를 갚겠노라 다짐한다.필례와 내아는 범인을 찾기 위해 해무의 궁궐에서 벌어진연회에서 아비의 죽음을 그린 거짓연극을 꼭두극으로 꾸미고, 결국 해무가 비탄에 빠지자 살인자임을 지목한다. 이내필례는 자신이 사랑하는 이가 아버지를 죽인 비극적 상황을맞이하며 실성 하는데, 복수를 위해 들판에서 만난 해무와내아는 칼부림을 한다. 그 사이 필례는 해무와 함께 동반자살하며 막을 내린다.이렇듯 줄거리를 살펴보면 셰익스피어의‘햄릿’에서 구성과 사건의 실마리를 빌려온 것처럼 보이면서도 내용상으로는 전혀 다른 연극적 상황을 만들어내고 있다. 하지만 여기서 간과할 수 없는 것은 <햄릿>에서 햄릿과 오필리어는 연인사이로 햄릿이 억울하게 죽은 선왕의 원수를 갚는 과정에서 연인 오필리어의 아버지를 실수로 죽이게 되고, 이어지는 햄릿의 광기어린 모습과 아비의 죽음에 실성한 오필리어는 연못에 빠져 죽고 만다. 햄릿은 아버지인 선왕의 원수를갚는데 성공하지만 자신 역시 오필리어의 친오빠 레어티스에 의해 칼에 찔려 죽임을 당한다는 사전 지식이 있다면 이작품이 어디로 흘러가는 지, 그리고 어떻게 얼마나 원작과달라졌는지에 대한 비교 평가가 쉽게 이루어질 수 있다는점이다. 또한 <필례, 미친꽃>에서는 원작 <햄릿>에서 비극적 운명을 해무와 필례로 되살려 우리 인간의 근원적 미해결 과제인 사랑, 복수, 광기, 환락과 파멸을 우리식으로그리고 있다. 생략과 비약의 긴장성 작가는 <필례, 미친꽃>에서 하나의 독립된 작품으로 원전의 비극적 결말이 갖는 허무와 고금을 통틀어 복수와 광기가판을 치는 세상에 대한 일침으로서의 가치를 더 존중하며,원작 <햄릿>으로부터 더 멀어지려는 듯 굳이 관객들에게 일일이 설명을 붙여 해설하고 싶지는 않아 보이며, 드러나는현상에 대한‘감상’을 요구하는 것 같다. 그 뿐만 아니라 필례를 살려내어 이 시대에 다시금 재연하는 상황적 접근에 대하여 작가는‘어제도 아니고 오늘도 아니다. 처녀하나 물에떠내려가는데, 찰랑찰랑 죽으러 가는데, 살려낸 것이 잘한건지 잘 몰라’라는 설정으로부터 시작하여 마무리 짓는 것은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의구심이 들게 한다. 작가는 비극적상황을 암시하는 용어로서‘잘한 건지 아직도 모르겠다’는의미를 내포하는 정도를 제시할 뿐이다. 하지만 작가로서 다른 분명한 선을 제시한다면 이를 통하여 관객들은‘또 다른해석을 제시할 수 도 있을 터인데’라는 아쉬움이 남는다.이 작품에 각기 등장하는 인물의 개연성에 보충설명이 필요해 보인다. 시종일관 심각한 이수의 대사와 연기에 설명이부족한 상황의 설정은 관객들로 하여금 수많은 추측을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연극에서 대사가 갖는 힘은 작가의 세계관을 실현하는데 있어서 절대적이라 할 수 있다. 그만큼대사가 없는 넌버벌 퍼포먼스나 마임과는 구분이 되는 정통연극에서는 대사의 중요성이 부각되는데 글로벌화하는 현재의 공연예술계는 스토리의 간결성과 대사의 최소화를 목표로 치달으며 상호 공감대의 형성에 치우친 나머지 사람의 감정전달과 국제 정서상 언어 이전의 표면적 교류에 의존하기도 한다.우리가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은 바로 상호 이해의 폭은 미묘한 언어를 통한 인간의 감성을 어떻게 전달하는가에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는 점인데 연극에서 그 감정을 적확하게 전달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더욱이 일상에서 조차 섬세한언어적 의미를 교감한다는 것은 그 소통의 구조가 얼마나 치밀한가에 따라 달라질 수 있기 때문에 무대에서의 연기자들의 발성과 호흡은 대단히 중요한 요소로 취급되어 왔다. 그런 점에서 <필례, 미친꽃>의 대사는 서정적이기보다는 영탄과 운문에 가깝다는 생각이다.예전의 드라마, 즉 고전연극은 극시를 차용한 운문 형식을빌려 무대상의 언어와 일상의 언어를 구분지었다. 하지만 현대극에서는 극히 일상적이면서도 자연스러운 화법을 구사하는데 비하여 이번 작품의 곳곳에서 비춰지는 대사의 간결함과 영탄에서 비롯되는 생략과 비약이 배우들의 내면연기를과하게 요구하거나 어렵게 하는 약점이 노정된다.예를 들어 해무의 대사에서‘지워질 수만 있다면, 네 기억속의 아버지가 그러듯이, 내가 내 손에 묻은 핏자국을 지워버릴 수만 있다면 어디든 못 가랴? 끔찍한 기억들을 지울 수만 있다면 어디든 천국 아니랴? 오오 사라져라 가 버려라 이비천한 몸, 더러운 얼룩들이여-’라든지, 내아의‘오, 온몸의피야, 말라붙어라! 쏟아지는 눈물이여, 이 두 눈을 차라리 멀게 해다오. 오, 필례, 나의 누이여, 오월 꽃처럼 아름다운 나의 누이, 필례야. 너를 이토록 미치게 한 자에게 반드시 복수하마’에서 살필 수 있듯이 대사의 어미나 서술어가 생략되어연계되는 말의 의미나 서정적 감정이 함께 생략되고 있다.궁극적으로 이 작품이 갖는 하나의 특징이자 시적언어의 특성이겠지만 그로 인하여 시대극 혹은 양식적 사극에서 나타나는 정형성에 갇히게 되는 손실, 즉 배우들의 연기에 있어서 함축적 의미망 보다는 긴장된 호흡과 경직성을 벗어나지못하는 한계를 보인다 하겠다. 또 하나의 연극실험 기폭제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작품 <필례, 미친꽃>은 우리 연극사적인 측면의 새로운 전기를 마련한 족적으로 남을 수 있을 것 같다. 창작 초연임을 감안한다면 상당히 만족할 만한여건은 아니지만 그나마 출중한 스탭진과 배우진이 함께한무대여서 작품의 완성도를 높인 것은 하나의 연극실험에 대한 기폭제가 되지 않을까 한다. 또한 양식미 넘치는 무대화와 소극장에서 다양한 장면을 실현해 내기란 작가적 인내력을 시험하기도 하는데 연출까지 도맡아 치러낸 곽병창 작가의 작품세계가 한층 더 깊어진 무대임은 분명하다. 류경호 전라북도 완주 출생으로 80년대부터 연극에 정진하며창작극회와 전북연극계에서 주로 연출활동을 해왔다. 현재 전북연극협회장이며, 주요 작품으로는 곽병창 작 <꽃신>, 엄인희작 <그 여자의 소설>, 최기우 작 <상봉>, <박동화 추모극> 등20여 편의 작품을 연출하였으며, 오페라와 창극연출도 겸했다.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