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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 |
새해편지
관리자(2010-01-05 17:39:06)
새해편지 매화나무 꽃망울이 아주 조금씩 - 박남준 시인 스님 건강은 좀 어떻습니까. 자주 문안인사 드리지 못해 미안한 마음 앙금처럼 남아 있습니다. 마음에 걸리는 것이 많으면 세상을 잘 살고 있는 것이 못 되는데 말입니다. 나이가 들수록 자꾸 걸리는 것이 많아지네요.일전 화계사로 찾아뵈었을 때 스님 건강이 그리 좋아 보이지 않아서 인사드리고 돌아오는 발걸음이 내내 무거웠습니다. 지리산 노고단에서부터 서울 그리고 임진각까지 비바람과 폭염의 더위 속에서도 쉬지 않고 강행을 하셨던 생명과 평화와 사람의 길을 물으며 124일간의 오체투지기도순례를 마친 후유증이겠지요.아직도 심장에 보조장치를 달고 계시기는 합니다만 다행이 회복이 되셨기에망정이지 용산참사현장에서 심장마비로 의식을 잃고 쓰러지셨던 문규현 신부님의 건강도 그렇고 이 땅에서 참된 구도자의 길을 가는 분들이 건강한 몸으로제자리를 꼿꼿하게 지켜주셔야 역사와 진리의 모습이 조금쯤은 바로 서 있을것 아닙니까. 제발 건강 좀 신경 써주세요. 부탁해요. 네~어제 떴던 해, 오늘이라고 다를 일 없겠지만 스님도 새해 첫날 떠오르는 해구경하셨는지요. 해가 바뀌면 대부분 그럴 것입니다. 새해, 떠오르는 해를 보며 소망할 것입니다. ‘올해는 어떤 일들이 내게 일어났으면 좋겠다’하는 바람을 띄우기도 할 것이고요 또한 어떻게 살아야지, 무슨 일은 꼭 실천해야지, 하는 각오를 다지기도 할 것입니다.걱정이 앞섭니다. 작년에도, 재작년에도 소망보다도 먼저 떠오르는 것이 걱정이었습니다. 산속에서 사는 사람이 무슨 걱정을 그렇게 하느냐고요. 다름이 아니라 강 때문입니다. 4대강 말입니다. 새해가 되었는데도 앞이 캄캄하고희망이 절벽입니다.자기 집 앞 도랑도 아닌 온 나라의 강을 파헤치고 죽여서 욕심을 채우려는사악하고 탐욕에 눈이 먼 자들이 나라의 권력을 제 마음대로 휘두르고 있으니무슨 희망이 이 나라에 있을 것입니다.그렇다고 좌절과 허무에 빠져 술타령과 한숨만 내쉬고 있을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누군가는 밭을 갈고, 누군가는 그 밭에 거름을 내며, 또한 누군가는씨앗이 되어 기꺼이 세상을 위해 자신을 온통 내놓고, 누군가는 그 씨앗을 뿌리고 물을 주며 거두기도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수경스님, 저는 스님과 함께 2008년 떠났던 생명의 강을 모시는 사람들 순례를 마치고 돌아와 이곳 제가 사는 악양에 동네밴드라는 밴드를 하나 만들었습니다. 정기공연도 벌써 두 차례를 치렀고요. 그 일로 인해섬진강과 지리산 사람들이라는 시민단체의 대표도 맡고 있습니다.이곳 악양에는 귀농을 하거나 귀촌을 한 젊은 사람들이 많습니다. 몇 사람이 집에 찾아왔어요. 농산물 직거래장터를 열고 싶다는 것입니다. 즐거운 잔치판을 한번 만들어보자고 가수를 초청하려고 하는 데 섭외를 좀 도와달라는 것이었지요.그런데 제가 그 계획을 바꿔서 문화를 돈을 들여서 수용만하지 말고 스스로 만들어 가보자는 유쾌한 반란을 모의했는데 그게 아주 대단한 대박을 터트렸던 것입니다. 지난 12월12일 두 번째 정기공연을 했는데 100명이 들어가는 객석에400여명이 넘게 몰려와서 와글와글 난리가 났었어요.이 작은 산골마을에 밴드가 있는 것도 놀라운데 사실은 아줌마, 아저씨로 구성된 필이라는 통키타반과 아이들 밴드 등악단이 3개가 있어요. 재작년 12월에 첫 번째 공연이 끝난후 초등학교 아이들이 몇 명 몰려와서 자기들도 키타를 배워서 밴드를 만들겠다는 녀석들이 있었어요. 올해는 그 아이 들밴드도 함께 3팀이 무대에 올라갔었지요.그리고 보니 작년에는 제법 굵직한 일도 했네요. 제가 대표를 맡고 있는 섬진강과 지리산 사람들이라는 단체의 사랑채를 18평으로 지었는데요. 처음에는 막막하기도 했는데 뜻에동조하는 이들의 100퍼센트 개미후원금으로 완공을 시켰다는 것 아닙니까.첫 월급봉투를 내놓은 사람, 건축자재를 기증한 사람, 돈은없으나 몸으로 때우겠다며 처음부터 완공이 될 때까지 땀 흘리며 애써준 사람, 건물이 지어질 땅을 내놓은 사람, 새참을만들어 오거나 장을 봐와서 직접 밥을 지어준 사람 등 정말아름답고 향기로운 날들이었습니다.처음에는 밴드 연습실이 필요하다고 해서 중고 컨테이너박스라도 하나 갖다놓자는 이야기가 나오다가 7평 건물로 짓자, 9평, 12평, 15평, 그러던 것이 18평으로 늘어나더군요.아예 밴드연습실 뿐만이 아니라 작은 문화교실 같은 프로그램 모임도 할 수 있는 건물을 짓자고 해서 풍악재라는 건물을짓게 되었는데 삶의 지혜를 나누는 모임에서부터 마음공부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하려고 합니다.그리고 섬진강과 지리산 사람들이라는 시민단체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길이라는 섬진강길, 19번 국도를 4차선으로 확장하는 것을 막아보기 위해 몇 사람이 뜻을 모으다가 2004년 스님도 함께 하셨던 생명평화탁발순례단이 이곳하동지역을 지날 때 같이 순례에 참여한 것이 중요한 계기가되어서 만들어진 생태환경단체입니다.구멍가게처럼 저 사는 이야기만 잔뜩 늘어놓았군요. 며칠전에는 친구들이 찾아와 동치미 익었냐고 묻더니 국수를 해달라고 하네요. 붉은 갓을 넣어 빨간, 하하 섹쉬한 동치미에국수를 말아먹다 무던히도 국수를 좋아하시는 스님 생각났습니다. 스님 보고 싶습니다.아직 매서운 추위의 날들 남아있겠지만 여기는 그래도 따뜻한 남쪽 땅이잖아요. 지난 가을에 여기저기 구들이 내려않은 안방을 고쳐서 장작 몇 개 아궁이에 넣으면 방바닥이하루종일 뜨근뜨근합니다. 기름 아끼신다고 썰렁한 방에 전기장판을 깔고 주무신다는 스님 생각을 하면 죄스러워지네요. 따뜻하게 주무셔야 무릎 아픈 곳도 풀리고 몸이 가벼우실터인데.들녘의 보리밭이 추위에도 아랑곳 하지 않고 푸르름을 잃지 않고 있으며 매화나무 꽃망울이, 목련나무 꽃눈들이, 이겨울에도 조금씩 아주 조금씩 부풀어지고 있네요. 곧 봄이 오겠지요. 우리들의 안타까운 마음속에도 봄은 오겠지요. 건강하시고요. 다시 뵐 때까지 안녕히. 박남준 1957년 전남 법성포에서 태어났으며 1984년 시전문지『시인』지를 통해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시집으로는『세상의 길가에 나무가 되어』『풀여치의 노래』『그 숲에는 새를 묻지 못한 사람이 있다』『다만 흘러가는 것들을 듣는다』가 있다. 산문집으로『작고 가벼워질 때까지』『별의 안부를 묻는다』를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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