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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7 | [서평]
온몸 모세혈관이 터져도 좋은 것 같은...
정동철 우석대 정보통신공학부 교수(2003-07-23 11:20:28)
내가 이병초 형을 처음 만난 것은 91년 겨울 무렵, 안도현 시인의 연락을 받고 나간 어느 술자리에서다. 그 자리는 애초 김용택 안도현 이병천 박배엽 시인 등이 주도하고 박노성 황의관 김선경이 참여하는, 전북청년문학회 준비모임 성격을 가진 자리였다. 그리고 나와 그는 그 말 많고 탈 많았던 전북청년문학회에 얼결에 참여하게 되었다. 이후로 우리는 일주일에 한번씩 만나 습작품들을 가지고 한바탕 푸닥거리를 해대곤 했다. 그 당시 우리들은 그저 문학이 좋고 시가 좋아서 환장한, 젊은 혈기들이기는 했지만 하나 같이 돈 한푼 지 스스로 못 만드는 백수들이었다, 학원 선생을 하는 이병초 형만 빼고. 그러니 당연지사 술값은 열이면 여섯 일곱이 그의 몫이었다. 그때 얻어 마신 술들이 지금에 와서 대가성 뇌물(?)이 될 줄이야 어찌 알았을까만. 벌써 10여년이 훌쩍 흘렀고 문학이 좋아서 환장했던 청년문학회의 벗들 중 많은 이들이 이제는 자신들의 밥을 벌러 세월 속으로 흩어져 버렸다. 나는 그때 그 술을 얻어 마신 죄로 지금 그의 시집 평을 쓰고 있고... 나는 문학예술을 포함한 모든 예술의 바탕에는 감동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감동이란 말 그대로 감정의 움직임이다. 슬픔이나 기쁨, 분노와 행복, 절망, 과거의 추억들로부터 반추되는 쓸쓸함 등이 그러한 것들이다. 이병초 형 시집에 수록된 많은 시들은 바로 이러한 감정의 움직임에 바탕을 두고 있다. 특히 1부에 수록된 황방산의 달 연작시들이 더욱 그렇다. 무언가 해야하는, 나를 감싸고 있는 그 무엇인가를 벗어나고 싶어 안간힘을 썼던 유년과 청년기의 기억들, 그래서인지 "구렁이 밟고 소스라치던 길/소스라치던 유년을 매달고/죽자사자 내빼 - 서시 中-"고자 했던 시절이었으며 "퉤퉤퉤 침 뱉어놓고/산지당 가는 아랫길로 죽자사자 내뺐었 -용천 中-"으며 "입으로 발로 오도바이를 탔다/우리는 순식간에 닭똥내를 벗어났 -하교길 中"던 길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다짐을 한다. "등뒤는 뒤돌아보지 말자//죽고살고 일해댄/저 논밭뙈기를 되돌아 보지 말자/우린 깡치없인 못산다 -꼭대기 中-" 고 말이다. 그런데 그는 그 유년과 청년의 기억에서 그리 멀리 도망을 친 것 같지는 않다. "외로울 때는 아무도 곁에 없다는 것을/떠돌아도 떠돌아도 갈곳이 없다는 것을/-둘째고개 中-" 알아버린 모양이다. 외롭고 힘들때는 "새우깡 봉지와 소주병 -둘째고개 中-"을 들고 황방산 밑 버드랑죽으로 돌아와 추억을 되새기니 말이다. "채 담지 못한 감자들이 하얗게/ 눈을 뜨고 나를 바라보았다....中略....참게가 있을까/우렁도 미꾸라지도 있을까 -헛간 中-" 궁금해하면서............. 그렇게 "해찰을 하면서 우리는/후딱후딱 나이를 먹었던 -하교길 中-" 것이다. 밤 은밀한 밤을 갖고 싶다 남들처럼 하룻밤에 만리장성을 쌓는 밤 너를 위해서라면 내 온몸의 모세혈관이 툭툭 터져도 좋은 밤 꼴깍꼴깍 침만 삼기는 병신 같은 밤은 제발 가고 한꺼번에 청춘이 폭싹 주저앉는 밤 쥐도 새도 모르게 수천 년이 뒤집히는 밤 수천 년을 뒤집어도 솟구치는 밤 천불 같은 밤 흔적도 없이 다시 오는 밤 나만 알고 꼭 너만 아는 밤 2부의 시들 중에 한편을 골라봤다. 감히 생각해보건대 나는 이병초형 시집 전체를 통틀어 가장 절창은 '밤'이라는 시가 아닐까 한다. 사실 이 시는 수 년 전 초고 때부터 읽었던 작품이다. 그러나 여전히 좋다. 우리는 누구나 비약을 꿈꾼다. 그리고 그 비약은 "너를 위해서라면 내 온몸의 모세혈관이 툭툭 터져도 좋"을 것이다. 그리고 "목젖 바로 아래 김이 설설나는 귓속말로 이부자리 깔고, 이틀이고 사흘이고 그냥 꽉 묶여버리고 싶다. 그렇게 아름답게 미치고 싶 -눈내리는 날 中-"은 까닭일 것이다. 이병초 형 시의 가장 큰 특징은 '쓸쓸함'에서 우러나오는 감동이다. 발문을 쓴 문병학 형은 "그것이 그의 시를 읽는 사람의 마음을 훈훈하게 감싸주기도 하지만 한편으로 답답하고 폭폭하게 만들어 버리기도 한다고" 지적한 바 있지만 나는 이 말을 일정부분 인정하면서도 전부 동의하지는 않는다. 문학을 포함한 모든 예술 양식이 반드시 이를 향유하는 이에게 행복과 삶의 결핍에 대한 대책을 줄 수는 없다고 보기에 그러하다. 그의 시들 중에 폭폭한 삶을 묘사한 작품들이 많이 있기는 하지만 이는 이를 감상하는 독자들로 하여금 '나만 폭폭한지 알았는디 여그도 폭폭한 사람이 있구만'하는 동의를 이끌어내기 때문이다. 결국 독자가 시를 읽는 행위는 독자와 시인이 시라고 하는 언어 예술 양식을 통해 서로 대화를 하는 소통은 아닐까? 마치 '못난 놈은 저처럼 못난 놈을 만나야 마음이 편한 것'처럼. 얘기가 나왔으니 하는 말인데 나는 오히려 이병초 형의 시집 곳곳에서 그의 삶에 대한 강인한 애착을 느끼곤 한다. 비록 이병초 형의 시들이 "물오른 처녀애들도 없는 논둑에는/할머니들이 떨리는 손으로 봄을 캔다/ 죽어도 이 바닥을 못 떠나는 병신들끼리/품삯도 없는 봄을 품어 먹는다 -봄에 中-", "내년에도/망태기째 쏟아질 일감들에 뒤섞여 목이 쉬리라/사람인지 일감인지 모르고 파묻히리라 -출근길에 中-"에서와 같이 폭폭하고 답답한 삶을 묘사하고 있기는 하지만 " 내 어떤 모습을/집어내고 싶은 것이냐 더 이상 넘지 말라는/금 그어놓고, 침 흘리며 이빨 드러낸 사금파리 끝을/맨몸에 긁히고 싶던 꿈처럼, 나 아직도/긁히고 싶은게 많다 어디를 작신 분지르고 싶은 것이냐 - 새벽에 中-"에서 처럼 세상에 대해서 여전히 당당함을 머금고 있기 때문이다. 더불어 나는 이병초 형의 시가 '외로움'에 기초하고 있다기보다는 '쓸쓸함'에 기초하고 있다고 본다. 다소 주관적인 의견이지만 외로움과 쓸쓸함은 그 의미가 다르다고 보기에 하는 말이다. 나는 외로움이라는 단어가 '홀로 되거나 의지할 데가 없어서 오는' 박탈의 감정이라면 쓸쓸함이라는 단어는 '적적하고, 소연(蕭然)한 가운데 느껴지는' 관조와 성찰의 감정이라고 본다. 하기에 쓸쓸함은 외로움보다는 훨씬 따뜻함이 느껴지는 관념이라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이병초 형의 시에 있어서 그 쓸쓸함은 또다른 의미에서 '세상과 그 세상을 이루는 사람들'에 대한 그리움이다. 따라서 이병초 형 시들의 성취는 폭폭한 삶을 노래하되 과도하게 징징대지 않는데 있으며 쓸쓸함을 이야기하고 있으되 추위에 몸을 움추리거나 냉소적이지 않고 따뜻함이 느껴지게 하는 데 있다. 바로 '봄날'이라는 시가 그렇고 '산책', '입추', '탱자꽃', '풀뽑기' 라는 시들이 더욱 그렇다. 그의 따뜻함과 쓸쓸함은 "남들은 다 타는 월급도 못 타고 어이없이 소주나 마시는 밤에 -순창집 中-"도 처연하게 "묵은 외상값 독촉도 잊어버리고 아줌마는 꾸벅꾸벅 조는 -순창집 中-" 여유로움과 만나고 있으며 "죽어도 이 바닥을 못 떠나는 병신들끼리/품삯도 없는 봄을 품어먹 -봄에 中-"으면서도 하늘은 "견딜만한 아픔을 내린다 -싸리꽃-"고 가슴을 쓸어내린다. 그리고 "썩을 게 썩지 않는 이 세상에서 끝내 묻을 수 없었던 말, 이세상을 사랑한다 -눈 내리는 날에 中-"고 나직이 외치고 있다. 봄날 어머니는 다리를 절뚝였다/왼쪽 겨드랑이를 내게 맡기고/탱자나무 울타리를 지나 내리막길로 접어들자/한참을 서 계셨다 그 힘에 부친 눈길을 따라/텃밭 거름자리에 봄햇살이 부서지고/곧 뜯길거라는 스레트 지붕이 아지랑이에/흐늘거렸다 그만 업히세요 해도 당신은 말이 없고/뒷목 뻣뻣한 세월 봄햇살에 펴 말리는/기다란 개나리 울타리가 눈부시다/놔주렴 놔주렴 뒷곁에 채곡채곡 쌓였을/그을음도 정히 놔주렴, 한평생 추리고 세리고/삽날처럼 버티었어도, 廢月일 수밖에 없는,/그러나 거기서 탯줄을 자른 내손을 꼭 쥐고/당신은 천천히 걸음을 떼셨다 이병초 형의 시집을 일독하면서 나는 문득 이렇게 말하고 싶어졌다. 좋은 시들이 모두 따뜻할 필요는 없지만 모든 따뜻한 시는 좋은 시라고. 그리고 그의 시가 이제 세상과 만나서 따뜻하게 화해하고 어울리면서 한세월 흘러갔으면 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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