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7 | [시사의 창]
학생인권을 '입도선매'하는 나라
NEIS사태의 본질은 인권
최 인 CBS전북방송 기자(2003-07-23 11:18:13)
정부는 왜 자꾸만, 끈질기게도 국민 개개인의 정보를 온라인 상에 집적시키려고 할까? 그 이유는 '전자정부'에서 찾을 수 있다. 국민의 정부는 지난해 11월, 화려한 전자정부 출범식을 갖는다. 그 11개 핵심 사업 가운데 하나가 바로 NEIS다. 전자정부의 시발은 95년부터이다. 95년 4월 당시, 김영삼 정부는 97년부터 주민등록증과 운전면허증, 의료보험증, 인감을 하나로 통합한 '전자주민카드'를 발급한다고 밝힌다. 실제로 과천과 서울 등 일부지역에서는 96년에 전자주민카드가 시범적으로 발급됐었다. 당시 언론에서는 전자칩이 부착된 신용카드 형태의 전자주민카드는 위·변조가 어려워 범죄 예방은 물론이고 주민 행정 편의가 향상될 것이라고 홍보했다. 전자주민카드는 이렇게 시작돼서 인권침해와 막대한 예산 투입 등의 문제로, 전면 백지화될 때까지 5년여의 긴 시간이 걸렸다. 시간만 허비했을까? 국가행정, 재정에 엄청난 낭비를 가져왔지만, 그 누구도 책임을 졌다는 얘기는 없었다.
9년여가 지난 지금, 또다시 아주 비슷한 상황이 전개되고 있다. 지난해 9월 교육부는 소위 '교육행정정보시스템'을 도입하려다 전교조 등 교원단체와, 시민사회단체의 반발로 2천3년 3월로 시행시기를 연기했었고, 지난 3월 전격 도입돼, 시행된 이후 현재까지 인권침해 논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너무나 흡사한 전자주민카드와 NEIS
교육부는 NEIS(National Education Information System)를 '네이스'가 아닌, 좋은 의미를 뜻하는 '나이스'로 읽는다고 친절하게 설명하면서 NEIS를 통해서 국민과 학부모를 위한 졸업증명서와 성적증명서 발급 등 민원서비스 질이 향상되고 자녀의 학교생활을 인터넷을 통해 안방에서 손쉽게 확인할 수 있다고 홍보하고 있다.
교사들은 잡무가 줄고 교육의 질은 높아진다고 설명한다. 교육행정 업무의 재설계와 정보화 사업을 추진하는 효과를 오는 2008년까지 환산하면 1조4천여억원에 이르고 이것은 초기 투자비용인 5백21억원의 25배에 이르는 효과를 거둘 수 있다고 밝혔다.
전자주민카드를 도입하려 할 때와 흡사하다. 당시 정부는 전자주민카드가 통용되면, 연간 1억7천만통의 주민등록등, 초본과 인감증명서를 대신 할 수 있어 1조원의 비용절감과 공무원 5천명의 감축 효과를 거둘 것이라며 "국민 편의"를 위한 제도라고 했다.
김영삼 정부는 말끝마다 전자주민카드는 '세계 최초로 손꼽힌다'고 홍보했다. 그러나 '전자주민카드 도입'은 무산됐다. 전자주민카드보다 국민의 기본권 침해가 '훨씬 더 심각하다'는 지적을 받고 있는 NEIS는, 국가인권위원회를 비롯한 헌법학자, 시민사회단체의 계속된 인권침해 문제 제기에도 불구하고 교육부와 시도교육감, 특정 교육단체는 막무가내로 시행을 밀어 부치고 있다. 심지어 인권변호사출신이라는 노무현 대통령마저 개인정보의 집적이 무엇이 문제냐고 역정을 낸다. 그런 면에서 NEIS는 이미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넌 게 아니냐는 자포자기의 심정이 들 수 도 있다.
포기할 수 없는 인권 문제
전자주민카드 도입을 막은 전례가 없었다면, 아마 NEIS 반대 싸움은 더욱 힘들었을 것이고, 벌써 포기했을 수도 있다. NEIS에 대한 인권침해 제소를 받은 국가인권위원회는 한차례의 유보 입장을 거쳐서, 지난 5월 중순에 NEIS의 27개 영역 가운데 '인권 침해 소지가 높은 교무·학사 등, 3개 영역을 삭제하라'는 권고를 교육부에 하게 된다.
처음부터 NEIS의 문제는 교원단체간 기싸움이 아니라 인권 침해의 문제였다는 것을, 명쾌하게 보여주는 결정이었다. 그런데도 자신은 오락가락 한 적이 없다고 항변(?)하고 있는 윤덕홍 교육부총리는 인권위 권고 이후에 이런 말을 했다. "큰 금고(NEIS)안에 개인 정보를 수집, 집적해놓고 보안장치를 철저히 하면 인권유린이 안 된다"고 말이다. 김창국 국가인권위원회 위원장은,'개인의 사생활에 관련된 정보를 수집해서 관리하는 그 자체가 기본권의 제한'이라고 반박한다. 아무리 NEIS의 보안장치가 삼중 사중으로 된다 해도, 개인정보의 수집, 관리 그 자체가 기본권의 침해가 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국가권력이 전자정부의 효율성이라는 미명(?)아래, 국민의 기본권은 묵살하고 불법을 자행하고 있는 것이다.
김창국 국가인권위원장은 지난 5월, "현실론을 따져서 교육부가 NEIS를 2년간 준비해왔고, 대학 수시모집이 눈앞에 다가왔고, 또 5백억원 이상의 예산이 들어 갔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가치는 바로 국민의 기본권 보호였기 때문에 3개항을 제외시키라는 결론을 내렸다"고 밝혔었다. 박경서 국가인권위 상임고문은 "학교안 정보가 학교 담장을 넘어가는 나라는 세계적으로도 없다"고 잘라 말한다.
NEIS 사태는 정보인권의 중요성 깨닫는 계기
처음부터 NEIS의 위헌, 위법, 부당성을 줄기차게 강조해 온 전북대 김승환 교수는 "소중하지 않은 개인정보는 없다"고 강조하면서, "NEIS는 정보자기결정권을 심각하게 침해한다고 지적한다. 곧 그것은 헌법에 보장된 사생활 보호의 원칙을 침해하는 것이 기 때문에, 교육행정의 효율과 편의를 이유로 개인 정보를 무단으로 수집·관리한 교육부장관과 시·도교육감이 형사고발된 것은 당연하며,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청구소송도 제기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성균관대 법과대학 김일환 교수 역시, 현재와 같은 네이스의 도입은 '헌법상' 허용될 수 없다고 지적한다. 김일환 교수는 네이스의 도입을 철회하는 것만으로 만족해서는 안 되며 오히려 지금부터 국가의 각종 정보화사업에 대한 전반적 검토가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다시 말하자면 이제 정보사회에서 개인의 사생활을 보호하기 위하여 국가의 정보화에 관한 전반적인 재검토가 필요함을 인식하고 무분별하게 추진되고 있는 국가정보화계획을 근본적으로 재검토한 이후에 개인정보를 보호하는 많은 법률들의 제정 및 개정작업이 이제부터라도 시급히 이루어져야만 한다고 말한다.
전자감시정부로 가는 지름길
헌법 학자들은 '정보화 사회에서 개발된 정보테크닉을 국가행정에 이용하는 것은 바람직하지만, 전자정부가 넘을 수 없는 울타리'가 있으며 그것은 '국민의 기본권을 불법적으로 침해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라고 강조한다. 전북대 법과대학 김승환 교수는 또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하는 울타리를 넘어선 전자정부는 어떠한 명분으로도 정당화 될 수 없으며 그 울타리를 넘어 선 채 개인의 정보를 인터넷상에 무단으로 불법적으로 취득하고 저장하는 행위는 전자정부가 아니라, 전자감시정부"라고 못박는다.
학생인권을 입도선매하는 교사들
요즘 학교현장에서는 교사들이 비밀투표나 거수로 NEIS시행을 결정하고 있다. 강압적인 분위기에 눌려서 혹은 침묵으로 일관하면서, 또는 학생의 인권에 관심조차 보이지 않으면서,서둘러 종전 시스템보다 편리하다고 하는 NEIS 사용을 위해 손을 든다. 교사들이 제자들의 인권, 기본권을 짓밟는 행위를 하고 있는 것이다. 전북대 김승환 교수는 '완벽한 불법행위'라고 규정한다. 교사들이 보호받아야 할 학생들의 인권을 맘대로 처분하고 있는 것이다. 자라나는 학생들의 인권을 온라인 상에 입도선매하고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 책임을 누가, 어떻게 질 것인가?
NEIS문제의 본질은 그 누구도 소홀히 할 수 없는 우리 모두의 인권의 문제인 것이다. NEIS 사태는 우리 사회의 인권의식이 어느 단계에 와 있는지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NEIS문제는 또, 전자정부의 모든 사업에 대해 그 위험성을 비싼 대가를 치르게 하면서 환기시켜주고 있는 셈이다. 이 단계를 어떻게 뛰어 넘느냐에 따라, 인권 선진국의 진입도 가능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