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7 | [파랑새를 찾아서]
교회, 일, 그리고 농사꾼
김찬곤 어린이 신문 굴렁쇠 대표(2003-07-23 11:15:18)
저희 회사는 교회가 아주 포위를 했습니다. 위층도 교회고, 바로 앞도 교회입니다. 그 바로 앞 옆도 교회를 짓는다고 두 달 전부터 공사가 한창입니다. 뭐 교회를 팔고 이쪽에다 새로 짓는다고 해요. 아주 크게 짓습니다. 이 교회 때문에 일곡 뒷산이 거의 보이지 않게 되어 영 마음이 안 좋습니다. 하지만 이 세상은 나 혼자 사는 것도 아니고, 좀 가리더라도 어쩔 수 있나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회사 옆에도 교회가 있습니다. 그러니 일요일 아침이고 평일이고 이거 시끄러워 죽겠습니다. 또 무슨 설교 소리가 듣기 싫어 죽겠습니다. 머시라 머시라 하는데, 아주 흥분된 소리로 합니다. 더구나 다 마이크로 해서. 나는 이리 시끄러운데, 그 바로 가까이에 사는 사람들은 어떻게 사나 싶습니다.
교회라.
저 또한 교회를 다닌 적이 좀 있습니다. 중학교 때 조금, 고등학교 때 조금, 대학교 때 조금 다녀 봤습니다. 제가 '조금'이라 했는데, 이렇게 조금밖에 못 다닌 까닭이 있습니다.
저는 고향이 전남 나주 금천입니다. 다 알 듯이 나주는 배로 이름난 곳이죠. 우리 집 또한 배 농사를 짓습니다. 그런데 이 배 농사란 게 일이 참 많아요. 사철 가리고 않고 한 해 내내 바쁩니다. 그래 어렸을 적부터 일을 거들어야 했죠. 구슬치기고, 딱지치기고 배 농사 때문에 한 번도 마음 편히 해 본 적이 없습니다. 동무들은 잘도 노는데, 어렸을 적부터 일에 시달렸으니, 그저 죽을 맛이었죠. 그래 일할 때 가끔, 어머니 뭔 일이 이렇게 많다요 했습니다. 그러면 어머니는, 일이 백 가지가 넘어 배라 했단다 해요.
이렇게 일을 했으니 토요일이고 일요일이고 어디 있겠습니까? 토요일 일요일만 되면 그 전부터 어머니는 어떻게 우리들을 부려먹을지 벌써 다 짜 놓았는데, 일요일 아침 저 교회 가야 해요 할 수 없는 노릇이죠. 아니 아예 말도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이러다 보니 한두 번 가게 되고, 결국 가지 못했어요. 더구나 가더라도 부모한테 미안해 마음이 영 편하지 않았어요.
땀 흘려 일하는 게 죄라고?
야훼는 일요일은 쉬어라 하는데, 이기 어디 농촌에서 할 말인가요? 그런데 지금 생각해 보면 말예요. 농촌에서 목회를 하는 목사들은요, 이 농사에서 대해, 땀 흘려 일하는 농사에 대해 한 번도 제대로 말해 주지 않은 것 같아요. 농사꾼이 사는 농촌에서 목회를 하는 목사들은 왜, 이 일에 대해 그렇게 한 번도 말해 주지 않았을까, 참 이상해요. 더구나 좀 이름난 목사들, 책도 쓰고 하는 목사들, 하지만 양은 한 사람도 없는 그 이름난 목사들 책을 봐도 일에 대해 절절히 말하는 목사가 없어요.
이게 좀 이상했는데, 얼마 전 황광우 선생님이 어디 신문에 쓴 글을 보고, 저는 제 무릎을 딱 칠 수밖에 없었어요. 이 세상에 일(노동)이 얼마나 귀한 것인가를 말하는 글이었는데, 거기에 창세기를 보기로 들면서 일(노동)을 무슨 죄로 못 박고 또 그걸 무슨 부끄러운 일로 써 놓았다 하면서, 아무래도 창세기를 쓴 사람은 일하는 사람이 아니었을 거라 했습니다.
나는 이걸 읽고 바로 이 때문이구나 싶었습니다. 땀 흘려 일하는 것을 죄라고 해 놓았으니, 그 목사란 사람들이 땀 흘려 일하는 농촌 사람들을 어떻게 볼 것인지 짐작이 가고도 남았습니다. 아니 어떻게 생각하지 않을지라도 그 사람들이 일을 어떻게 볼 사람들인지 알 수 있었습니다.
모두 알 듯이 창세기에는 아담과 하와가 야훼가 따 먹지 말라는 열매를 따 먹어 벌을 받는 대목이 나옵니다. 하와한테는 "아기를 낳을 때 몹시 고생하리라. 고생하지 않고는 아기를 낳지 못하리라." 하고 아담한테는 "너는 죽도록 고생해야 먹고살 수 있다. ……이마에 땀을 흘려야 낟알을 얻어먹으리라." 합니다.
이런 게 벌입니다.
더구나 카인과 아벨 이야기는 도가 더 지나칩니다. 하와와 아담의 자식인 아벨과 카인은 서로 하는 일이 다릅니다. 어느 날, 양을 치는 목자가 된 아벨은 야훼한테 양을 바치고, 밭을 가는 농사꾼인 카인은 땅에서 난 곡식을 바칩니다. 하지만 야훼는 아벨이 바친 양만 좋아하고, 카인이 바친 곡식은 하나도 반기지 않습니다. 그것도 아무 까닭 없이 말입니다.
이러니 목사들이 땀 흘려 일하는 것을 어떻게 볼지 뻔히 보입니다. 자기는 아니라고 할지라도 그 무의식 속에는…….
아니 생각해 보십시오. 사람이면 마땅히 땀 흘려 일해서 먹고살아야 하잖아요. 그런데 일하는 것을 무슨 벌이라 하고, 죄라고 합니다. 이렇게 되면 이 세상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죄다 무슨 죄를 지어 그렇게 사는 것일까요? 뭐 그걸 '원죄'라고들 하는가 보는데, 그게 또 무슨 빌어먹을 원죄입니까?
왜 우리 부모님들은 농사꾼을……
지금 생각해 보면 그렇습니다. 우리 어머니 아버지들은 농사를 짓는 농사꾼을 한없이 낮추어 보고 멸시했습니다. 그래서 제발 자식들만큼은 땀 흘려 일하는 농사꾼이 되지 말고 공부해서 공무원이 되고, 큰 회사에 들어가 사무 일을 보고, 판검사가 되고, 의사가 되고, 변호사가 되기를 바랐습니다. 아니 이런 직업을 얻지는 못하더라도 제발 농촌에서는 살지 않기를 바랐습니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 보면, 대체 왜 우리 부모님들은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을까요? 왜 이렇게 자기가 하는 일을 업신여기고 그저 못난 일로 여겼을까요? 이 세상에서 가장 귀한 일을 하는 사람들이 말입니다. 왜 이런 바보 멍청이 같은 생각을 하게 되었을까요?
나는 이런 게 다 먹물들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땀 흘려 일하지 않으면서, 이 나라를 쪼물딱쪼물딱하고, 죄다 해 처먹고, 또 앞에서 까불기만 하는 이 먹물들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놈들이 땀 흘려 일하는 것을 업신여기고 천대하고 멸시해서, 우리 농사꾼들이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지 않나 싶습니다. 그랬으니 우리 아이들도 커서 나중에 자기도 아버지 어머니 같은 이 땅의 농사꾼이 되겠다는 아이들이 하나도 없는 것이고요.
저는 가끔 학생 때 같이 학생 운동을 했던 동무들을 만나곤 합니다. 그래도 이 세상을 바르게 살아가려 하고, 남에게 폐 끼치지 않고 사는 동무들이기에, 만나면 그저 좋고 마음이 편합니다. 술을 좀 먹어 그 다음 날 힘들어도 기분 좋게 마십니다. 그런 자리 가면 당연히 자식들 얘기를 하게 되는데, 저는 그 때마다 우리 자식들이 자라서 우리들 나이 정도 되면, 그 때 가장 보람되고 귀한 직업은 농사꾼이 아니겠느냐 합니다. 하지만 어느 누구도 제 생각에 함께 한 동무가 없더군요.
저는 이렇게 말합니다.
그 때쯤 되면 이 세상은 발전할 대로 발전할 건데, 그러면 그 안 좋은 공기 마시며, 서로를 짓밟고 살아야 하는, 더구나 철저히 정글의 법칙이 통하는 사회에서 살아가야 하는데, 그 때쯤 되면 농사꾼이 얼마나 좋은 직업이 되겠느냐, 정말 좋은 직업이 될 것이다 합니다. 하지만 어느 누구도 제 생각에 함께 하지 않더군요.
저는 언젠가는 꼭 내려가야겠다 하고 마음먹고 있습니다. 하지만 도시에서 이룬 모든 것을 다 버리고 가야 하겠지요. 그걸 버리고 가겠다는 마음, 그리고 더 나은 걸 붙잡겠다는 마음. 이렇게 생각하면 시골로 내려가는 사람들은 정말 욕심쟁이 같습니다. 사람들은 보통 시골로 가는 사람들을 욕심이 없는 사람들이라 하지만, 내 보기에는 정말 욕심꾸러기 같습니다. 도시에서 이룬 것을 죄다 놓고 간다는 것은, 그만큼 욕심이 크다는 말과 같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