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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7 | [세대횡단 문화읽기]
지배자의 오만을 버리고'렛잇 비...'
환경지킴이 길봉섭/신진철(2003-07-23 11:03:16)
지배자의 오만을 버리고 '렛잇 비…' 환경은 인류 전체의 긴요한 화두이다. 인간의 삶과 가장 밀접한 연관관계를 맺어온 환경은 21세기 들어 개발과 보존이라는 양극의 논리로 치열하게 대치하고 있다. 자연을 정복하고 적극적으로 활용하기 위한 인간의 끊임없는 도전과 시도는 과학기술과 문명의 진보, 인간 삶의 편리성을 가져왔지만, 환경과 자연의 섭리에 순응하고 더불어 살아가야 한다는 보존의 논리 앞에서는 언제나 진리일 수 없다. 멀리 내다보지 못하는 근시안적 개발논리는 곧바로 자연과 환경, 생태계의 파괴와 인류의 삶을 위협하는 흉기가 되기도 한다. 환경보존과 개발의 논리는 지금 우리 앞에 던져진 중요한 화두이면서 균형을 맞춰가야 할 동전의 양면. 우리의 삶을 반성하고 돌아보게 하는 길잡이이자 인류 삶을 지탱해 가는 근원적인 뿌리, 자연은 저 스스로 순리와 진리를 만들어 가는 위대한 생명체이다. 오랫동안 학자의 위치에서 환경과 자연의 소중함을 역설해 온 원광대 길봉섭 교수와 시민운동단체 활동가로서 이제 막 환경운동에 뛰어든 시민행동21 환경센터 신진철 사무국장이 만났다. 인간이 오만한 지배자로 군림하려 할 때 자연은 반드시 보복을 가해 온다고 강조하는 길 교수와 더 나은 미래를 위해 '불편함'을 선택할 줄 아는 지혜를 기르자고 말하는 신 사무국장. 환경의 소중함을 전하는 이들의 메시지가 전주 천변과 푸른 산들과 넘실대는 바다를 지나 사람의 마음속으로 잔잔한 울림이 되어 들어선다. 환경 지킴이 길봉섭/신진철 신 : 선생님, 먼 발치에서만 뵙고 이렇게 정식으로 인사를 드리기는 처음입니다. 제가 관심을 갖고 발을 들여놓은 분야이긴 하지만, 환경운동이라 하기엔 아직 부족한 점이 많고 일을 시작한 지도 얼마 되지 않아서 좀 쑥스럽고 어려운 자리입니다. 더군다나 학부 때 생물학을 전공한 것도 아니라 많이 부족합니다. 저는 시민행동 21에서 환경센터 일을 맡아 진행해 온 지가 올해로 4년째입니다. 몇해 전 자연형 하천 문제로 전주시와 문제를 풀어가는 과정에서 약간의 마찰이 있었는데 그때 전북대 김익수 교수님이 힘을 많이 보태 주셨어요. 김익수 선생님과 전주천 일이 인연이 되어서 환경과 관련된 일을 맡게 되었습니다. 길 : 음, 그래요. 나도 젊은 운동가를 만나게 돼서 아주 반갑습니다. 시민행동 21 안에 환경센터가 있는 모양인데, 주로 어떤 일을 하고 있습니까? 신 : 전주천을 살리고 보존하는 일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들꽃사랑 꽃다지'라는 모임을 만들어 일반 시민들과 환경에 대한 소중함을 함께 나누고 있어요. '꽃다지'는 야생화, 들꽃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모여 공부도 하고, 그 들꽃들을 통해 자연과 생명의 소중함을 알리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아마추어 수준이긴 하지만 우리 지역에 자생하고 있는 들꽃들을 사진으로 찍어 홍보도 하고 시민들과 함께 들꽃기행이며 천연염색, 압화(꽃누름)를 만들어 보기도 합니다. 작년부터는 회원들 실력이 어느 정도 갖춰진 것 같아 매주 일요일에 전주 수목원에서 자원봉사 활동을 하고 있어요. 가족 단위 관람객들을 상대로 식물에 대한 생태적 특성을 소개하고 수목원 이용에 대한 캠페인도 벌이고 있습니다. 한마디로 들꽃 전도사 일을 해보자, 라는 뜻이었고 환경운동에 대한 소중함도 함께 전하자는 취지를 안고 시작한 일입니다. 길 : 참 좋은 일을 하십니다. 들꽃에 관심 많으면 사진 자료를 남겨 놓으실텐데, 사진 이외에 표본도 만드십니까? 신 : 아직 표본작업은 못하고 있습니다. 그래도 사진은 디지털로 찍어 시민행동21 홈페이지에 꾸준히 올려놓고 있습니다. 길 : 그럼 시민행동 21 홈페이지에 들어가 보면 들꽃 사진이 많겠습니다. 꼭 한번 들어가 봐야겠어요. 나도 야생화에 대해서 관심이 많습니다. 어떤 운동이나 행동으로 옮긴 건 없지만, 슬라이드는 좀 갖고 있어요. 기회가 되면 활자화 해볼까 하는 계획도 갖고 있어요. 제대로 된 식물학자 노릇은 못해 왔지만, 그래도 관심 있는 일은 그럭저럭 해본 것 같아요. 가르치는 학생들과 같이 작업해 표본도 꽤 만들어 놓았습니다. 대부분 들꽃에 해당하는 것들이고, 외래종들도 더러 포함돼 있어요. 현대사의 운명을 닮은 수수꽃다리와 라일락 신 : 그렇군요. 꽃다지가 만들어진지 3년이 됐는데 당시 전주 수목원에 계시던 소재현 선생님이 자신이 갖고 있는 지식을 어떤 보상 없이 회원들에게 가르쳐 주고 있거든요. 식물에 대한 소중함을 알리는 게 본인의 의무라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수목원에서 공부도 하고 때때로 가족 단위로 들꽃 기행을 다니면서 새삼스레 알게 된 사실이 수수꽃다리와 라일락에 관련된 이야기였어요. 우리 것이면서도 그것의 가치를 알지 못하고 지키지 못한다면, 내가 뺏기고 있어도 뺏기는 줄 모르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우리나라 현대사의 단면이 수수꽃다리의 운명과 너무 닮았다는 생각도 해봤습니다. 우리나라 특산종 식물 중 일본의 나까이 교수의 이름이 학명으로 붙어 있는걸 보면서 그동안 자연과학에 관심을 갖지 못했던 것이 참 안타깝더군요. 제가 몸소 느낀 것이라 아이들에게도 수수꽃다리와 라일락에 대한 이야기를 꼭 합니다. 자라나는 세대들이 자연 생태에 더 많은 관심을 갖게 해야겠구나 하는 생각이 절실해졌거든요. 저한테는 공부라는 것이 흥미를 좇아 이런저런 책을 보는 정도인데, 선생님은 평생 이 분야를 공부해 오셨잖습니까. 후배들에게 해주고 싶은 이야기가 많을 것 같은데요. 길 : 살다 보니까 금은 금이고 쇠는 쇠더군요. 금으로 못을 만들면 약해서 나무판에도 들어가질 않잖아요. 반대로 쇠로 행운의 열쇠를 만들어 선물하면 누가 귀히 여겨 고맙다고 하겠어요. 금과 쇠는 다들 나름의 가치와 쓰임새가 있다는 거죠. 들꽃은 오랜 지구의 역사를 거쳐온 진화의 산물이에요. 지금도 진화해가고 있고요. 우리나라 고유종이나 특산종, 예를 들어 금강초롱이나 미선나무 등등은 유전자 보호차원에서 대단히 중요하게 다뤄져야 할 것들입니다. 다른 사람들에겐 시시할지 모르지만 정말 소중한 것이고 귀하게 여겨지는 것이에요. 수수꽃다리의 경우와 비슷할지 모르겠는데 가깝게는 미국 사람들이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우리나라 고유종을 갖고 갔거든요. 재작년에 미국 코넬대학을 갔었는데 거기에 산딸나무가 있더라고요. 가깝게는 모악산에서도 볼 수 있는 나무죠. 가만히 살펴보니까 이건 틀림없이 우리나라 거예요. 그래서 현지 사람한테 물었더니 아닌게 아니라 한국에서 왔다고 대답을 하더군요. 원예종으로 다시 개량하지 않고 왜 그대로 심었느냐고 물었더니, 산딸나무는 한반도 기후에 잘 적응하고 추위나 더위에 강해 굳이 개량할 필요가 없었다고 대답을 해요. 신 선생도 잘 알다시피 일본 나까이 선생이 이름을 붙이고 간 조선 식물이 엄청나게 많았잖아요. 책을 찾아보면 거의가 나까이 선생이 붙인 이름이거든요. 어떻게 생각해 보면 나까이 선생이 우리나라에 와서 학문적인 침략을 한 게 아닌가 싶기도 하고, 학자로서 샘이 좀 나기도 해요. (웃음) 하지만 학자로서는 그 이상의 의미부여는 안 하려고 합니다. 지금도 기록되지 않은 식물이 꽤 있어요. 그런걸 공부해야 하는 거고, 앞으로 뺏기지 않고 우리 걸 지킬 필요가 있습니다. 다 빠져나가면 큰일이거든요. 신 : 예. 그렇습니다. 민족적인 정서를 염두에 두어서 하는 이야긴 아닙니다만, 사람도 자신에 대해 성찰이 필요하고 관심을 가져야 하듯이, 우리나라에 자생하는 특수한 식물도 우리가 잘 알고 연구하고 보존하기 위해서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길 : 그래요. 어쩌다 산에서 귀한 식물을 대하게 되면 긴장이 될 만큼 인심 고약한 사람이 되곤 합니다. 지금 덕유산에 광릉 요강꽃 여섯포기가 있어요. 절대 기자들한테 공개 안 할겁니다. 공개가 되면 어느새 다 가져가고 없어요. (모두 웃음) 그 꽃이 핀 그 자리에 그대로 두는 게 그 식물을 위하는 거라고 생각해요. 사람의 욕심이 환경파괴의 주범 신 : 전주천 살리기 활동 등 저희와 비슷한 일을 하는 단체들이 다슬기도 방사하고 쉬리도 방사하면 어떻겠느냐는 의견을 내놓기도 하는데요. 방사하는 것이야 취지는 아주 긍정적인데, 결과적으로 생태계에 부정적인 영향을 주는 측면도 있거든요. 가급적 하천 생태계 스스로 제 힘을 발휘해 잘 살 수 있도록 여건을 개선해 주는 쪽으로 활동의 초점이 맞춰져야 하지 않을까 싶어요. 전주천이 자연 하천, 예전의 모습에 가깝게 돌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게 사람의 역할인 것 같습니다. 길 : 그 의견에 전적으로 동의해요. 자연 환경을 살아있는 초생물체라고 말하거든요. 살아있다는 건 태어나서 성장하고 장년기를 거쳐 노쇠해지고 결국 죽는 것 아닙니까? 그 과정을 인위적으로 조작하려는 것은 사람들의 과잉친절이에요. 마음에 맞게 모양새 좋게 예산 붙여서 일을 추진하다 보면 오히려 환경에 지장을 줘서 결국 죽게 하는 경우가 생기는 겁니다. 생명체는 살아있을 때 가치가 있는 것이지 죽은 뒤엔 아무 소용없잖아요. 자동차도 엔진이 살아 있을 때 가속 페달을 밟고 전진하는 것이지, 고장이 나면 귀찮은 존재가 되는 거예요. 자연환경은 자연스런 순환 속에 놓여질 때 가치가 있는 겁니다. 신 : 맞는 말씀입니다. 결국 사람들의 욕심이 자연 환경을 파괴하는 주범이 아닐까 싶어요. 길 : 그렇습니다. 자연에 사람의 욕심을 얹어 고쳐 놓고 바꿔 놓는 건 사람한테 갈비뼈나 배, 등을 후벼파는 것과 마찬가지에요. 그러면 누구는 용케 살아남을 수 있겠지만, 피가 나는 건 당연하거든요. 예리하게 파헤쳐지면 심한 상처를 받게 되고, 재생불능 상태에 놓이기도 합니다. 이게 우리나라가 직면한 현실이에요. 개발이라는 논리로 자연을 훼손하는 것쯤은 아무 것도 아니라고 생각하거든요. 말로만 탓할 게 아니라 정말 큰 일이에요. 자연은 반드시 보복을 합니다. 그 보복은 우리세대에선 어금니 물고 참을 수 있는 정도지만, 우리 다음 세대들에게는 그렇지 않아요. 후손들이 아무리 원망해도 이미 늦은 겁니다. 물질문명이나 과학기술이 정신없이 발전해 오다 보니까 그걸 내 것으로 소화할 여력도 없이 남의 걸 그대로 받아쓰는 경우 가 많아요. 그러면서 문제가 생기는 겁니다. 지방자치 시대가 되면서 행정관료들은 실적을 내야 하니까 예산을 투자하고 예산이 투자되면 뭔가 달라지고 변해야 하니까 자연하천에 손을 대고, 멀쩡한 국립공원에 골프장이니 리조트니 만들어 대고 있잖아요. 여기서 나오는 매연이나 환경 오염물질이 맑은 공기, 깨끗한 공기를 밀어내는 거예요. 전주는 그래도 아직은 괜찮은 편이죠. 신 : 예. 대도시나 공업단지가 들어찬 여타 도시들보다는 환경이 나은 편이죠. 길 : 환경부가 만들어지면서 서울도 많이 달라지긴 했지만, 눈 올 때 한번 보세요. 밖의 온도보다 시내 온도가 3도나 높아 눈이 쌓일 새도 없이 녹는다잖아요. 남산에 올라가 보면 스모그를 직접 보고 느낄 수 있을 정도고요. 내가 맡은 과목 중에 '생태계와 환경'이라는 과목이 있는데 그 시간엔 전공을 막론하고 다양한 학과생들이 와서 듣습니다. 내가 그 시간은 굉장히 정성을 들입니다. 미리 공부도 많이 해오고 수업 시간엔 혼자 넋두리마냥 목청도 높이고 그럽니다. (웃음) 정치 행정 법학 경영학 순수미술 음악 의예과 한의예과 학생들이 다 듣는 시간이니까 이 사람들이 환경 전도사가 되길 바라는 마음에서 그렇습니다. 내 수업내용이 조금이나마 마음에 남는다면 그가 정치인이나 법관이 됐을 때 몽둥이로 철퇴로 갈기고 함부로 부셔버리는 그런 짓은 안 할거 아닙니까? 그런 기대도 하고 당부도 했습니다. 그 학생들이 사회에 나가면 어떨지 모르지만 그런 믿음은 갖고 있어요. 그 강의를 들은 누군가, 한 사람이라도 씨앗을 틔어줄 거라고 믿고 있어요. 신 선생이 열심히 일하는 것도 김익수 선생의 올곧게 살아온 모습이나 그 족적을 보고 배웠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신 선생을 이렇게 만나 나 역시 든든하고요. 환경운동가들은 사치스럽다? 신 : 그렇게 생각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웃음) 결국 인간이 자기 편리만 쫓고 욕심을 내니까 문제가 되는 것 같아요. 등산로를 넓혀라, 전주천변에 사람 걷는 길을 넓혀라, 조명을 좀 더 밝게 켜라 등등 민원이 많이 들어온다고 합니다. 하지만 밤에는 물고기도 잠을 자고 쉬어야 되지 않겠어요. 환경 보존은 어느정도 사람이 불편함을 감수하는 거라고 봅니다. 저도 차가 있습니다만, 항상 마음으로 그런 고민을 할 수밖에 없는 것 같아요. 더 나은 미래를 위해서는 과감히 불편함을 선택할 줄 알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길 : 나는 우리나라 사람들, 한국 민족처럼 빼어난 민족성을 가진 사람들이 없다고 믿어요. 내가 자연보호 운동을 시작 한 지가 20년이 넘었는데, 초기에는 자연보호 특강이랍시고 서울이니 경상도니 전국을 누볐습니다. 지금은 환경에 대한 의식수준이 처음 시작할 때와는 천양지차이에요. 국립·도립공원에서 삼겹살 구워먹는 모습, 이제는 볼 수 없잖아요. 그 전엔 나도 그랬고 많이들 그랬잖아요. (모두 웃음) 그런데 자연보호 운동하면서 사람들이 많이 변했어요. 지금은 환경 이야기를 하면 웬만큼은 다 안다고 하거든요. 물론 아직도 부딪히고 싸워야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내가 덕유산 리조트 만들 때 쫓아다니면서 반대를 많이 했어요. 도청 직원이나 리조트 관계자들과 입씨름도 많이 하고 내가 올라가려면 많이 막고 그랬어요. 개발이 한창일 때 향적목은 베지 말라고 부탁을 했는데, 그럼 어떻게 스키장을 만드느냐면서 대안을 내놓으라고 하더군요. 그래서 나무 위쪽으로 아치를 만들어 길을 내라고 했더니 그러려면 돈이 많이 든다고 해요. 그 사람들은 그깟 나무 하나 때문에 왜 저렇게 애를 먹일까 하면서 나를 이상하게 생각했을 겁니다. 대통령이 하라고 했는데 일개 사립대 교수가 왜 막느냐 하면서 결국은 몰래 다 벴더라고. (모두 웃음) 한 원예 전문가가 나무를 다른 곳으로 옮겨 심겠다고 해서 그렇게 되면 죽기 십상이라 고 했더니, 죽지 않게 잘 하겠다고 약속을 하더라고요. 그런데 3, 4년 지나서는 다 죽고 없더라고. 지금에 와서 그 사람 멱살을 잡겠어요, 나무 살려내라고 울겠어요, 다 소용없지. 물론 그 나무 하나 없다고 못사는 건 아니지만, 앞서 말했듯이 금은 금의 가치가 있고 쇠는 쇠의 가치가 있는 거니까요. 신 : 그래서 사람들이 가끔 환경보존론자들에게 사치스럽다는 이야길 하는 것 같아요. 사소한 나무 하나에 목숨을 거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하기 쉬우니까요. 길 : 맞아요. 덕유산이 구상나무의 북한계선으로 아주 의미가 있거든요. 그런데 덕유산 구상나무가 훼손이 아주 많이 됐어요. 나무 훼손하면 안 된다고 하면 배부른 사람, 사치스러운 사람이라고 오해를 받아요. 한반도 전체가 서울처럼 돼서도 안되지만, 강원도처럼 돼서도 안 되는 것 아니겠어요? 전라북도는 전라북도만의 특성을 살려야 한다고 그랬습니다. 경상도의 소득수준이 높다고는 하지만 앞으로는 전라도 사람도 잘 살 수 있을 거라고 믿어요. 전라도는 환경과 공기가 좋으니까 그걸 잘 보존하고 활용한다면 언젠가 많은 사람들이 이사 와서 살고 싶은 그런 도시가 될 수 있을 겁니다. 예전에 경상도에서 어떤 젊은 사람을 만나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게 됐는데, 그 젊은이는 충청도에서 왔다고 하더군요. 도시의 단위면적이나 인구수 대비 그랜저 보유율이 제일 높은 곳이 울산이라고 이야길 해요. 그런데 젊은 사람들은 울산 토박이가 거의 없고 다들 밖에서 돈을 벌러 온 경우랍니다. 그 젊은이가 하는 말이 공장이 많아서 돈 버는 것도 좋지만 사람 다치지 않게, 공해 때문에 병 안 걸리게 하는 그런 방안을 빨리 찾았으면 좋겠다고 하더라고요. 나는 이런 이야기가 미래에 대한 충분한 메시지가 될 거라고 생각해요. 자연을 지배하려는 오만에서 벗어날 때 신 : 예. 비슷한 이야기입니다만, 우리나라 사람들은 의식의 변화 속도가 굉장히 빠른 편인 것 같아요. 예전에 독일을 다녀온 한 친구가 독일이 환경 선진국이라고 생각했는데, 버스 정류장에 담배꽁초가 너무 많더라고 이야길 해요. 우리나라도 휴지통 주변에 휴지나 담배꽁초가 지저분하게 널려 있었는데 지금은 그렇지 않잖아요. 그것만으로 우리가 환경 선진국이라고 하기엔 무리가 있지만, 불과 몇 년 사이에 그렇게 변화될 수 있었던 건 의식 변화의 속도가 빠르기 때문이라고 봐요. 어른들이 추억 삼아 하는 이야기가 한벽루에서 멱감고 고기 잡았을 때가 좋았다고 이야기들 하잖아요. 아이들과 전주천에서 공부하고 체험하면서 앞으로 10년 20년이 지나 전주천에 대한 추억을 가진 이 아이들이 시민이 되고, 그 애들이 바라보는 전주천은 아무 추억이 없는 사람들과는 다를 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전주천을 삶의 터전으로 살아가는 무수한 생명체를 돌아보고 귀하게 여길 줄 아는 그런 시민이 될 거라는 믿음이 이 일을 하는 보람이 아닐까 싶어요. 지금은 작은 일처럼 보이지만 20년 후에는 뭔가 열매가 맺어질 거라고 기대하고 있습니다. 길 : 맞는 말이에요. 물고기 이름 하나 더 알려주기 보다 그 사람들이 발동이 걸려 스스로 움직일 수 있는 능력을 심어주는 게 더 중요할 것 같아요. 신 선생, 전주천에서 아이들을 거느리고 가르칠 때 되도록 욕심을 줄이세요. 그들이 스스로 발견에 대한 재발견을 할 수 있도록 배려해 주는 겁니다. 아이들이 스스로 신바람 나서 즐겁게 뭔가의 가치를 발견하게 된다면 그것으로 충분하지 않을까 싶어요. 나도 강단에 설 때 늘 그런 마음입니다. 딱딱하고 많은 걸 퍼주려고 하기보다는 기다려지는 강의가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학생들을 대하고 있어요. 환경운동도 그렇게 해야 되지 않을까 싶어요. 신 : 예... 좋은 지침으로 삼겠습니다. 환경을 보존함으로써 더 좋은 결실을 맺거나 환경운동의 성공 사례가 있다면 어떤 걸 꼽을 수 있을까요. 길 : 성공사례는 많이 있죠. 몸으로 막아서 성사된 사례도 많고요. (웃음) 한강 한번 가보세요. 굉장히 맑아졌습니다. 어류 쪽에서 보면 더 고무적인 상황이고요. 그건 성공사례 중의 하나라고 생각해요. 전에 김명자 환경부 장관을 만나서 이야기할 기회가 있었는데, 의례적인 인사가 아니라 한강을 저만큼 정화시킨 것에 보람이 참 크시겠다고 이야길 했어요. 한강 물이 맑아져 물고기가 찾아온다는 것만으로도 대단한 거라고 했더니 굉장히 기분 좋아 하시더군요. (웃음) 어쩌면 그 말에 더 힘을 내 일하려고 했을지 모르겠어요. 환경단체도 많지 않습니까? 선의의 경쟁을 하되 서로 좋은 이야기를 해 주면서 격려해 주고 박수 쳐주고 함께 할 수 있는 일들을 찾아갔으면 좋겠어요. 환경운동단체로서는 좀 아픈 소리가 될 지 모르겠지만, 본래의 일은 제껴두고 자치단체에서 주는 지원금 확보하려고 눈치보는 일들도 더러 있는 것 같아요. 어차피 맨손으로 시작한 일 아니겠어요. 어쨌든 비틀즈의 '렛잇비'라는 노래도 있잖아요. 자연환경은 그냥 놔두는 거예요. 자연을 지배하려고 하니까 문제가 생기는 겁니다. 자기가 지배자라고 생각하니까 마음대로 하고 싶은 거예요. 신 : 저는 생태주의에 대해선 잘 모르지만, 더불어 사는 것의 가치는 매우 귀중하다고 생각합니다. 선생님이 바람처럼 말씀하신 이야기가 마음에 와 닿는데요. 개발과 보존이 마치 합의할 수 없는 극과 극처럼 보이듯이 시민운동 내부에서도 같이 더불어 가고 합의해 가는 것이 좀처럼 잘 되지 않고 있습니다. 아직은 객관적인 조건도 성숙하지 못한 것 같고 운동하는 사람들도 깊은 고민이 필요한 때라고 봅니다. 한번은 일본에서 열린 강 살리기 대회에 참가한 적이 있어요. 거기서 1등을 한 단체가 강의 수질을 깨끗이 하고 강을 무대로 콘서트를 열어 마을 경제를 살려낸 곳이었습니다. 개발과 보존은 타협할 수 없는 걸로 느꼈는데, 그곳 사례를 보면서 서로의 입장이 다르더라도 우리보다는 훨씬 편하고 자유롭게 의견을 교환한다는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심사위원 중에는 경제학자도 있고 환경단체 사람도 있고 공무원도 있었거든요. 우리에게 좋은 미래가 뭔지 선택하는 과정, 그 과정에서 생각을 달리 하는 사람들이 마음을 열고 합의해 가면서 궁극적인 목표를 향해 함께 손잡고 가는 것, 중요한 건 그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시민운동을 하는 사람이나 미래를 생각한다는 사람들한테도 합의하고 타협하면서 상대방의 생각을 경청하려는 진지한 자세가 아쉽다는 생각입니다. 그건 앞으로 저희들이 풀어가야 할 숙제라고 봅니다. 선생님, 요근래 환경 관련 지역 현안사업들이 수면위로 떠올랐고, 주민들의 의견 대치도 치열합니다. 이런 현상들을 어떻게 보고 계신지요. 자연은 후손에게 빌려온 것, 그 견고한 진리 길 : 자연환경 문제에 관한 한 삿바 잡고 싸우라면 싸울 수 있겠지만, 비판만 하는 일은 하고 싶지 않습니다. 새만금이나 방사성폐기장 설치, 그린벨트 등 할 말은 많지만, 뒤에서 험담하듯 이야기하고 싶지는 않아요. 신 : 우리나라 사람들의 의식이 빠르게 변화하고는 있지만, 현실적으로 답답한 게 참 많습니다. 새만금도 최소한 전문가들이 차분하고 합리적으로 이야기하고 상대의 생각을 곰곰히 따져본 뒤에 찬성할 때 찬성하고, 반대할 때 반대하고 그래야 하는데, 그 과정없이 극한적인 찬·반으로 부딪히는 게 안타깝게 생각됩니다. 사회가 발전하려면 합리적인 토론문화가 제대로 정착되어야겠다는 생각을 많이 합니다. 사람들의 의식이 빠르게 변화하고 시대가 급변하고 있는 만큼 자기 고민이나 성찰이 반드시 필요하지 않나 싶어요. 환경운동도 마찬가지겠고요. 길 : 환경 문제는 누구의 목소리가 더 큰가, 또는 다수가결로만 결정할 수 있는 건 아니라고 생각해요. 사람도 자연의 일부이고, 자연 특유의 법칙이 있기 때문이죠. 흔히 자연은 후손에게서 빌려온 것이라고 이야기하는데, 잊지 말아야 할 진리입니다. 도로 없이 자동차가 어떻게 지나다니고, 아파트가 없었으면 그 많은 사람들의 주거 문제를 어떻게 해결했겠어요. 개발을 하지 않고 어떻게 삽니까. 하지만 흔한 말로 원금은 놔두고 이자만 따먹자는 이야기에요. 원금까지 계속 캐먹으려고 하니까 문제라는 겁니다. 그렇지만 특정인을 비판할 필요는 없어요. 그 사람과 얼굴을 맞대지 않은 채 비판만 한다면 흉보기밖에 안됩니다. 어쨌든 환경운동 하는 분들이 마음속에 간직해 주길 바라는 마음에서 하는 이야긴데, 개척자는 욕먹게 돼있고 비난받게 돼있습니다. 그러나 절대 외롭지 않아요. 신 선생도 힘들다고 해서 외롭다 하지 말고 힘을 내서 일하세요. 그러다 보면 제2, 제3의 후속단체들이 따라올 겁니다. 그렇게 되면 환경운동도 힘을 얻어 조금씩 자리잡아 발전해 나갈 거라고 믿어요. 신 : 예. 오늘 좋은 말씀 많이 들려주셔서 감사합니다. 환경운동을 하는 젊은이들에게 던지는 좋은 말씀이라 생각하고 기대에 어긋나지 않게 열심히 하겠습니다. 길 : 내가 죽으면 눈을 감겠지만, 환경 문제만큼은 죽어서도 눈을 감지 않을 겁니다. 환경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 과목이니까요. 진행·정리/김회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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