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7 | [문화와사람]
전주 소리의 생명력을 이어줄 노둣돌
판소리 동호회 '더늠'
김선경 객원기자, JTV작가(2003-07-23 10:28:33)
'스터디'라는 말은 나에게 좀 은밀한 의미로 다가온다. 대학에서 80년대를 살았던 나는 '스터디'를 통해 역사와 존재를 배웠다. 그런 이유로, 판소리를 스터디 하는 모임을 취재해 달라는 연락을 받았을 때 감(感)이 잘 오지 않았다. 판소리를 스터디 한다? 좋아하면 즐기면 그뿐이지, 웬 스터디씩이나? 싶었던 것이다. 모름지기 스터디란 오랜 시간과 열정을 필요로 한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다.
그들을 취재하기 전까지 내가 알고 있던 정보는 그들이 판소리를 '스터디'하는 사람들이고 판소리를 '전문적으로' 즐기기 위해서 모인 사람들이라는 정도였다. 그들의 이름이 '더늠'이고, 더늠이란 '명창들이 작곡해서 자신의 장기로 부르는 대목'이라는 것은 나중에 개인적인 스터디를 통해서야 알게 됐다. 아니리도 발림도 추임새도 아닌, 굳이 더늠이라는 어려운 이름을 취한 까닭은 또 뭐란 말인가?
판소리를 스터디한다? 그것이 어떻게 가능할까? 회장 권혁대씨(전북도립국악원 고수부)는 몸으로 그것을 보여줬다.
화요일 오후 7시 전통문화센터 경업당 안. 권혁대 씨가 등지고 서 있는 하얀 보드판에는 "합궁딱 궁딱딱 궁궁척 구웅궁"이라는 중머리 장단이 기어가는 글씨체로 씌어 있다. 무릎 앞에 북을 놓고 북 채를 쥔 회원들은 열심히 입장단을 하며 북을 친다. 한번 시작하면 대여섯 번은 반복해야 한 장단이 끝난다. 제법 우렁찬 북소리가 경업당 안을 가득 채운다.
"자, 여러분 보세요. 여기 태어나서 처음으로 북을 잡아본 사람이 오늘 1분만에 중머리 장단을 익혔어요. 어떠세요? 대단하죠? 박수 한번 보내줘요(박수). 자네는 이따가 막걸리 한 사발 사야 혀!"
판소리 공부는 그렇게 장단 배우기부터 시작된다. 판소리를 제대로 들으려면 먼저 장단을 알아야 한다. 장단을 모르고서는 판소리의 맛을 모르기 때문. 하지만 그 장단이라는 것이 한 번 배우고 나면 끝나는 것이 아닌 것을.
"북을 놓을 때는 먼저 양반다리로, 우리 딸 말로는 아빠다리로 앉아서 이 오른쪽 발꾸락이 북의 오른쪽을 따악 받치게 하고, 이렇게 허리를 쭉 펴고 앉아서 왼 손은 북의 정 가운데 사알짝 올렸다가 다시 엄지 손꾸락 매듭만침 사알짝 내리면 돼요."
다섯 명 정도에서 시작했던 스터디가 시간이 지나면서 한 명씩 한 명씩 늘어나더니 금세 열명 정도로 불어난다. 경업당 안은 자세를 교정하려는 회원들의 몸짓으로 부산해진다.
"차암 편안허죠? 이렇게 북을 치다 보면 내가 북을 의지할 때가 있고 북이 나를 의지할 때가 있어요. 글고 북을 칠 때는 채손(북채를 잡은 손)이 북을 벗어나서는 안 돼요. 두웅! 힘있게 끊어서 쳐야 돼요. 일부러 손목을 굴리는 것이 아니라 세게 끊어서 치니까 그 힘의 반동으로 손목이 움직이는 것처럼 보이는 것뿐이에요. 여러분도 치는 연습을 해보세요. 둥 소리는 하루아침에 나지 않습니다."
둥. 둥. 둥. 둥. 같은 둥 소리라도 모두 다른 소리들이다. 손목을 꺾지 말라고 하니까 더 힘이 들어간다. 보다 못한 권혁대씨는 일일이 손목을 잡고 자세를 교정해 준다. 그렇게 시간은 자꾸 간다.
"장단의 일정한 빠르기의 시간적 간격을 '한 배'라고 해요, 한 배! 알았죠? 장단은 느린 것부터 빠르기의 순서대로 배우게 됩니다. 오늘은 여기까지만 하고 다음 수업은 내일 여섯시 사십분에 이어가도록 하겠습니다. 그럼 오늘 배운 장단 다 함께 한번 해보도록 하죠. 어화 세상 벗님네들...."
권혁대씨의 벗님가가 시작되자 회원들은 기다렸다는 듯 중머리 장단을 때린다. 초보자가 섞였다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척척 들어맞는 장단이다. 이 재미에 판소리를 스터디 하는가 보다. 미리 전화하고 시간약속까지 했건만 취재기자는 본척 만척 강의에만 열중하던 권회장이 단가 한 대목을 끝내고서야 땀을 닦으며 아는 척을 한다. 드디어 내게도 취재할 시간이 주어진 것이다.
지난 3월부터 시작했으니 그리 연륜이 깊은 모임은 아니다. 사실 더늠은 '좋아서 즐기다 보니 저절로 만들어졌더라'는 식의 자생적 모임과는 좀 거리가 있다. 전통문화센터에서 주최하는 '해설이 있는 판소리'의 관객이 필요했고, 그래서 '판사모'(판소리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가 요청되었으며, 그렇게 모인 판사모 사람들이 '더늠'이 된 것이다. 장단을 모르고서는 소리를 이해할 수 없기에 모임은 자연스럽게 북장단부터 배우기 시작했다.
회원들 중에는 도립국악원에서 소리를 배우다가 더늠 회원이 된 사람이 많다. 총무를 맡고 있는 장미영씨는 원래 소리 전공인데 북을 배우고 싶어서 회원이 되었고, 무용을 했던 최정순씨는 "젊게 살고 곱게 늙고 싶어서" 이 모임에 들어온 경우다. 양사재 공동대표를 맡고 있는 김순석씨도 해설이 있는 판소리 공연을 보러 다니다가 어느 결에 더늠 회원이 됐다. 스터디 끝 무렵에 "차렷! 경례!"를 구령했던 반장 이수홍씨의 실제 직책은 고문이다. 교사를 정년 퇴임하고 도립국악원 판소리반에서 공부 중인 그의 나이는 66세. 오늘 일생 처음 북을 잡아봤다던 총각 회원과는 40년 가까운 나이 차이가 나지만 더늠 회원이 되는 데 나이가 걸림돌이 되지는 않는다. 해설이 있는 판소리를 진행하고 있는 최동현 교수도 더늠의 고문을 맡고 있다.
사실 더늠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해설이 있는 판소리' 공연에 대해 어느 정도는 알고 있어야 한다. 판소리를 해설해 주는 공연은 전국에서 이 공연이 유일하단다. 판소리의 유파, 제, 바디, 연원까지 전문적으로 알려주는데다, 어렵다는 판소리 가사도 영상으로 제공되기 때문에 눈과 귀가 한꺼번에 트이는 공연이다. 가히 소리의 고장 전주이기에 가능한 공연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대부분이 그렇듯이 전주에만 살다보면 전주의 가치를 잘 모른다. 23년째 국악인의 길을 걷고 있는 이 모임의 회장 권혁대씨도 한때 전주를 포기(?)하고 서울로 갔었다. 부인과 함께 소리를 배우며 만두집을 경영하던 권혁대씨는 소문난 부창부수로 한때 전주에서 '뜬' 국악인 부부였다.
"이왕 뜨는 거라면 서울에서 한 번 떠보자는 생각으로 서울로 이사를 갔었죠. 2년간의 서울 생활을 통해 깨달은 것은 '국악의 서울은 전주'라는 것이었습니다. 판소리의 서울은 다른 어느 도시도 아닌 바로 이곳 전주죠. 그래서 다시 전주로 돌아왔습니다."
'돌아온 고수' 권혁대씨가 지휘하는 더늠은 한 달에 한 번 정기모임을 갖고 일주일에 한 번씩 해설이 있는 판소리를 감상한다. 공부하고 감상하기도 벅차서 아직은 구체적인 사업계획도 세우지 못하고 있다.
"이제 시작이라서 거창한 계획은 아직 세우지 못했습니다. 회비가 어느 정도 모아지면 전주가 아닌 다른 지역에서 열리는 완창 발표회장도 찾아다닐 생각이구요. 판소리 유파별 더늠을 한자리에 모아서 '더늠 다섯 바탕의 멋'이라는 공연도 해보기로 기획 중에 있습니다."
판소리에서 더늠이 갖는 의미는 '창조성'이다. "판소리가 오랜 시간 동안 변함없이 사랑을 받을 수 있었던 이유는 변이라는 방식을 통해 새로운 생명력을 꾸준히 공급받아왔기 때문"이라고 최동현 교수는 얘기한 바 있다. 그 변이가 곧 더늠이고 '(새로운 것을 )더 넣다'는 의미에서 시작된 더늠은 소리꾼의 창조적인 능력을 인정받는 잣대가 되고 있다.
전주에서 이제 막 둥지를 튼 '더늠'도 전주 소리의 생명력을 이어주고 창조성을 발휘할 중요한 주체가 될 거라고 믿고 싶다. 그 짧은 둥 소리 하나 제대로 내기 위해, 백 날이고 천 날이고 북채를 내지르는 열정만 잃지 않는다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