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5 | [특집]
가족문화의 새로운 틀 짜기
조경욱 전라북도여성발전연구원 책임연구원(2003-07-26 11:33:26)
5월은 가정의 달이다.
푸르름이 더해가는 신록과 함께 아빠와 엄마, 자녀들이 밝게 웃고 있는 단란한 나들이 풍경이 쉽게 떠오르는 것은 여전히 텔레비전 광고나 드라마 속에서 접하는 가족의 전형적인 모습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현실 속 가족은 많이 변해 있다.
통계청이 발표한 ‘2002 한국사회지표’에 의하면 우리나라 가구는 2000년 현재 1431만 가구이며 평균 가구원 수는 3.1명이다. 혈연가구는 73%가 2세대 가구이며 3세대 가구는 계속 감소하여 10%이하이고 1세대 가구는 17%로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는 추세이다. 가구원수 감소에는 핵가족화 추세와 함께 출산율 저하, 독신가구 증가도 주요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1인 독신가구의 경우 70년 3.7%, 80년 4.8%, 90년 9.0%, 95년 12.7% 등으로 급속한 증가세를 보이며 급기야 2000년에는 7가구 중 1가구 꼴로(15.5%)로 늘었다. 이는 주로 농촌의 독거노인 가구 증가에 따른 것으로 2002년 말 현재 독거노인수는 61만여명으로 전체 노인인구의 16.2%를 차지한다. 또한 출산율도 계속 감소하여 한 여성이 평생동안 낳는 출생아 수를 나타내는 합계출산율의 경우 70년대 초 4.5명이었으나 74년 3명대, 84년에는 1.7명 정도로 감소한 데 이어 지난해에는 1.3명으로 줄었다.
그런데 사회를 유지, 계승하는 기초 단위로서 가정을 형성하는 것이 결혼이고, 결혼을 해소하는 것, 즉 결혼으로 이루어진 가정이 해체되는 과정이 이혼으로 볼 수 있는데 우리나라 혼인건수는 2001년 1000명당 6.7건으로 1980년 10.6건 이후로 계속 감소하고 있으며, 이혼건수는 2001년 1000명 당 2.8건으로 1990년 1.1건보다 크게 증가하여 작년에 하루 평균 370쌍이 갈라섰다. 이러한 이혼율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30개 회원국 중 미국(4.2), 호주(2.9), 영국(2.9)에 이어 4번째로 높은 수치이다.
이상과 같은 수치들로 집약되는 한국가족의 현주소는 세계 어느 나라보다 가족과 가정을 중요시한다고 생각되어지는 한국사회의 현실로 받아들이기에는 사뭇 충격적이다.
그러나 우리 사회는 지난 50여년간 급속한 산업화를 겪었으며 그에 따라 한국사회는 핵가족의 추세와 더불어 가족형태나 기능, 가치관에 있어 놀랄 만큼 변화해가고 있다. 이혼율 증가에 따른 한 부모?재혼가족의 급증 및 가족 가치관의 변화에 의한 무자녀가족?단독가구의 증가와 동거?입양?공동체 가족 출현 등 해가 갈수록 그 종류를 더하고 있다. 가족의 기능도 생산에서 소비 위주로 바뀐데다 자녀수 감소에 의한 가족규모의 축소 등은 가족관계의 변화를 내포하고 있어 이러한 일련의 가족의 형태, 기능, 가치관의 변화현상은 우리나라의 전통적 가족구조가 해체일로를 걷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으로 받아들이는 사람도 있다.
그렇다면 우리 사회에서 가족은 해체되고 있는가?
이같은 물음에 대하여 결론을 단언하기는 어렵지만 가족의 변화에 대한 확실한 인지와 대비를 요구하는 새로운 시대가 도래했음은 분명하며, 가족의 새로운 틀 짜기에 걸맞는 새로운 패러다임의 전환을 요구하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따라서 가족의 해체나 변화에 대한 정확한 원인을 알아보고 앞으로의 전망을 통해 가족에 대한 새로운 문화를 정착할 수 있는 준비가 개인과 사회에 요구되는 시기로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
우선 가족변화에 대한 주요 원인으로는 사회적 요인, 인구학적 요인 및 가족에 대한 가치관의 변화 등을 들 수 있다. 사회적 원인으로는 60년대 이후 급진전된 산업화와 도시화, 여성의 사회적 지위변화 등을 꼽을 수 있다. 이 가운데 교육수준의 향상과 취업증대 등에 의한 여성의 사회적 지위의 변화는 기존의 가족의 틀을 크게 흔드는 결과를 낳고 있다. 특히 기혼여성의 취업률 증가는 가족의 정서적 기능, 자녀양육, 노인부양 기능 등의 약화로 직결돼 여러 가지 사회문제의 발생 가능성을 높여주고 있다. 더욱이 최근들어(2000) 기혼여성의 경제활동 비율이 47.9%로 미혼여성의 경제활동 비율인 45.9%를 능가하고 있으며 각종 여론조사결과 여대생들의 높은 취업희망(95%)과 남자 대학생들의 맞벌이 선호(70%)경향 등의 태도나 추세를 볼 때 앞으로 맞벌이 가구의 비율은 계속 늘어 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이외에도 ▲초혼연령의 상승▲출산율의 저하 ▲평균수명의 연장▲조기사망의 증대▲남녀 사망률의 격차 등으로 인한 인구학적 요인도 가족변화를 부추기는 한 축이 되고 있다.
이와 더불어 결혼-자녀출산으로 이어지는 가족을 하나의 보편적인 제도로 받아들였던 과거와는 달리 이제는 개인이 선택하는 하나의 생활형태로 받아들이려는 성향 및 노부모 봉양 등 가족부양이나 부부관계에 대해서도 남녀평등의식의 확대 및 개인주의 추세에 따르는 가족에 대한 가치관의 변화 등이 최근의 가족변화의 주 요인으로 지적되고 있다.
한편, 이러한 가족변화에 대한 전망에 대해 가족연구자들은 앞으로도 가족규모의 축소, 가족세대의 단순화, 가족해체 및 결손가족의 증가에 따른 편부모-노인-소년소녀가장 등의 가구가 지속적으로 늘어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가족주기의 단계별 특성의 경우 자녀 양육기는 줄고 노인부부만의 기간, 여자노인의 독거기간은 느는 추세가 더욱 심화될 것으로 보고 있다. 또한 가족의 경제생활과 가족관계의 변화에 있어서도, 가족의 주 소득원 역할을 담당했던 남성 가구주의 비중은 점차 줄어드는 반면 기혼여성의 경제활동 참여에 의한 부인의 소득비중이 점차 늘어 사회와 가족에서 여성의 지위가 상승할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이에 따른 가정내 남녀간의 역할 분배나 의사결정권의 배분구조, 가족 구성원간의 복리의 배분 불균형도 재조정과정을 거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이상의 논의들을 정리해보면, 다양한 형태의 가족 출현과 가족 내에서의 기능과 역할변화에 대해 가족붕괴로 보기보다는 전통적인 가족개념이 변화하고 새로운 가족이 나타나는 것으로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농경사회나 산업사회에서는 그에 가장 적합한 가족이 출현하였듯이 미래에는 정보사회에 걸맞는 가족이 나타날 것이고 사회가 변한 만큼 가족의 개념에 변화 또한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과거, 우리들 대부분에게 있어 가족은 항상 편안한 안식처이고, 사랑의 공동체이며, 가족성원간의 기쁨과 즐거움을 공유하는 공간으로 인식되어 왔다. 험난한 사회적 경쟁과 갈등에서 벗어나 편안한 휴식을 구할 수 있는 장소인 것이다. 그러나 이상적인 가족에 대한 기대와는 달리 가족내의 구체적인 삶을 들여다보면 그 안에는 많은 갈등과 억압과 긴장이 잠재해 있다. 가족구성원 각자의 개성이 존중되기보다는 아내는 남편에게, 자녀는 부모에게 복종할 것이 요구되며 남편에 의한 아내구타, 부모에 의한 자녀구타, 노인학대, 등이 자행되면서도 가족내의 억압과 폭력은 사적인 문제로 은폐되기 쉽다. 결국 이러한 가족문제가 사적인 영역에서 해결되기를 바랄 때 가족문제는 가족의 해체로 이어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시대가 변하고 가족과 사회의 기능이 변한 만큼 아직도 사적 영역에 머물러 있는 가족을 일정부분 공적영역으로 끌고 나와야 한다. 이미 가족정책을 수립하여 가족의 문제를 공적영역으로 끌어들이고 있는 프랑스의 경우는 1998년 가족부를 설립해 통합적인 가족정책을 실행하고 있다. 프랑스 가족정책의 지향점은 다양한 가족의 인정과 공존, 가족의 연대성 확보, 가족내 개인의 행복권 보장, 부모자녀 관계의 안정성 등 크게 네 가지다. 이를 바탕으로 가족과 사회의 조화에 대한 정책을 수립해 실행하고 있다. 이러한 선진국의 가족정책이 시사하는 바는 가족의 형태를 바꾸는 구조적 개선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를 인정하면서 “가정의 기능”을 강화하는 방식이다. 예를 들면 고령화사회에 있어 국가는 “효도”라는 이름으로 노인문제를 가정에만 떠맡겨서는 안되며 이혼이나 사별로 인한 모자가정을 위해서는 경제적 기능을 강화시키고 부자가정을 위해서는 자녀보호와 가사 기능에 초점을 맞추어야 할 필요가 있다.
나고 늙고 병들고 숨지는 모든 과정이 가족 안에서 해결되던 시대는 지났다.
이제 결혼한 부부와 그들을 빼닮은 자녀로 이루어진 기존의 ‘가족’만으로는 우리 곁에 무수히 출현하는 다양한 가족들을 설명할 수 없으며 가정과 가족의 의미에 대해서도 새롭게 해석하려는 문화적 접근이 필요하다. 모자가정, 부자가정, 독거노인, 독신가구, 이혼남녀, 비혈연 가정 등 다양한 삶의 형태에 대해 우리 사회는 부도덕하거나 비정상적이라는 선입관을 갖고 보는 경향은 이제는 지양되어야 할 것이다.
다양한 형태의 가족 출현은 피붙이에 대한 본능적 결합보다는 삶의 질을 우선시하는 가족구성원의 인식에서 비롯되었다고 볼 수 있다. 즉 가족 구성원이 누구냐가 아니라 서로 얼마나 친밀하고 행복감을 느끼느냐가 더 중요한 가치로 떠오르면서 나타나는 결과인 것이다.
아울러 사회의 가장 중요한 기본 단위인 가정이 건강해야 나라가 바로 설 수 있으며 이를 위해 정부는 탄탄한 가족복지 정책과 변화되는 가정을 위한 새로운 프로그램 개발에 힘을 쏟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