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6 | [새책 및 새비디오]
새책 및 새 비디오
문화저널(2003-07-04 15:47:41)
<새책>
『오만과 편견』(임지현·사카이 나오키 지음, 휴머니스트 펴냄)
식민지라는 역사적 경험을 유쾌하게 허물어 버리고 서로가 서 있는 역사적·사회적 맥락의 차이를 인정하면서 대담에 참여한 임지현·사카이 나오키 한일 두 지식인의 문제의식이 흥미롭게 펼쳐진다.
해방 이후 한국의 학자와 일본의 학자가 두 나라 학계의 주류 담론인 '민족' 담론을 비판적으로 성찰하는 대담은 흔히 볼 수 없었던 장면. 『오만과 편견』은 임지현과 사카이 나오키가 '민족주의' 담론을 비판적으로 성찰하는 3년 동안의 말과 글의 성과를 담아냈다는 점에서 각별한 의미와 깊이를 더한다. 두 지식인의 대담은 당위에만 머물렀던 탈근대담론이 구체적인 역사적 사실 속에서 그 속살을 드러내 보이고 있으며, 탈근대 구축에 대한 이론적 논의의 가능성을 보여준다. 특히 국민국가에 의해 규정되지 않은 새로운 공간을 모색하는 두 지식인의 독특한 주장과 이야기들이 눈길을 끈다.
『민들레처럼』(안도현 지음, 이룸 펴냄)
시인 안도현이 펴낸 어른을 위한 여섯 번째 동화.
"마룻바닥에 펼쳐 놓은 일기장 위로 웬 솜털 같은 게 가만히 내려앉는 게 아니겠어요" 로 조용히 화두를 꺼내는 시인 안도현의 <민들레처럼>은 민들레 씨앗 한 개를 통해 눈에 띄지 않는 작고 보잘것없는 생명체의 아름다움, 한 생명의 소중함을 일깨워준다.
민들레 꽃씨는 멀게는 40㎞를 넘는 거리를 여행한다고 한다. 이렇게 길고 험난한 여행을 떠나기 전 꽃씨들의 마음은 어떨까. 작가는 여기에 착안해 두려움을 이기고 세상에 나아가기 위해 노력하는 어린 꽃씨들의 비장한 각오에 대해 이야기한다.
어린 꽃씨들이 스스로 몸을 일으키고 바람을 만들어 생명을 건 머나먼 여행길에 성공한다. 씨앗을 퍼뜨려야 한다는 또 다른 '나'의 속삭임에 힘을 얻은 것이다. 땅에 잎사귀를 붙이고 납작 엎드려 꽃을 피워야 하는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가 깨우쳐 가는 것이다.
『박재동의 실크로드 스케치기행 1, 2』(박재동 지은, 한겨레신문사 펴냄)
스케치북 속에 담아온 실크로드의 향기.
박재동 화백이 애니메이션을 만들기 위한 기초 작업으로 실크로드로 떠나 그곳의 장대한 풍경을 스케치해 두 권의 책으로 묶어냈다. 장편 애니메이션 <바리공주>에 대한 영감을 얻기 위해 떠난 광활한 미지의 땅에서 '일' 이상의 무엇을 그림 속에 오롯이 담아내고 있다.
만리장성을 가득 메운 인파, 병마총의 토기상들, 음식점의 악공과 무희, 시장에서 꽃 파는 소녀, 돈황의 토굴집, 달밤의 사막, 성과 사막에서 만난 사람들, 순진무구한 낙타떼, 노래 부르는 눈먼 소년, 끝없는 고원 등 눈에 비친 사물들이 저자의 펜 끝에서 생명력을 부여받아 스케치북에 옮겨놓고 있다. 34일 동안의 실크로드 여정은 500여 장의 컬러, 흑백 스케치로 담겨져 있다.
『아침 깜짝 물결무늬 풍뎅이』(구효서 지음, 세계사 펴냄)
구효서의 새 소설집 『아침 깜짝 물결무늬 풍뎅이』에는 소소한 일상이 익숙하면서 낯설게 느껴지도록 하는 묘한 힘이 담겨 있다.
아메리카 인디언을 취재하기 위해 미국에 들른 정길은 가이드를 맡은 미르라는 여대생을 만나게 된다. 정길은 미르를 가이드로 생각하기보다는 "신이 나서 함께 여행하는 가족 같다"고 느낀다. 우연히 조우한 한 인디언을 따라 정길과 미르는 인디언 마을에 들른다. 그곳에서 인디언들이 '자미자미 오 테'라 부르는, 나무 속에서 알 상태로 숨어 있다가 60년 만에 툭 튀어나왔다는 풍뎅이를 본다.
아버지의 부재를 '아침에 바람이 불거나 비가 오는 일'처럼 받아들이는 미르를 통해 정길은 사소한 일상처럼 기억에 흐릿하게 남은 첫사랑의 역사를 떠올린다. 느닷없이 존재를 드러낸 풍뎅이처럼, 미르의 어머니가 남긴 휴대전화 메시지는 미르와 정길이 부녀 관계라는 것을 알린다.
<새 비디오>
<갱스 오브 뉴욕>
1860년대 혼란스러운 미국의 암흑가를 배경으로 한 젊은 청년의 사랑과 복수를 그린 액션 대작이다. 1928년 출간된 허버트 애즈베리의 동명 실화 역사책을 원작으로 했으며, 마틴 스콜세지 감독은 무려 25년간이나 이 영화를 기획해왔다고 말해 더욱 화제가 됐다. <비치> 이후 2년만에 <캐치 미 이프 유 캔>과 동시에 캐스팅 된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의 연기 변신이 기대되는 작품.
1840년대 초, 파이브 포인츠는 뉴욕 최고의 슬럼가이자 위험한 거리로 이름이 나 있다. 월 스트리트 비즈니스 지구와 뉴욕 항구, 브로드웨이의 접경지대에 위치한 이 곳은 도시의 복잡한 성격만큼이나 다양한 인종, 여러 갱단들이 생활하는 곳이다. 사기, 도박, 살인, 매춘 등 범죄가 들끓지만, 아메리칸 드림을 꿈꾸는 아일랜드 이주민들이 매일 수 천명씩 모여드는 꿈의 도시이기도 하다. 이곳에서 벌어지는 암투와 사랑이 스펙터클하게 펼쳐진다.
<동승>
한국의 아름다운 자연을 배경으로 어머니를 향한 어린 스님의 그리움을 담은 드라마.
7년 전부터 이 영화를 만들기 위해 준비해온 주경중 감독은 '가장 한국적이면서 세계적인 정서는 무엇인가'에 대한 고민 끝에 빛과 그림자의 이미지, 진경산수화에서나 느낄 수 있는 여백의 미, 사시사철 변화하는 한국의 수려한 자연경관을 스크린에 담는데 주력했다.
천진난만한 아홉 살짜리 아기스님 도념과 외모에 관심이 많은 사춘기 총각스님 정심, 그리고 때론 할아버지처럼 자상하고 때로는 폭력적(?)이기까지 한 큰스님이 한솥밥을 먹으며 살고 있는 고요한 산사. 올해도 어김없이 꽃은 피고, 빨간 단풍이 졌고, 함박눈이 내렸지만 어린 도념이 기다리는 사람은 오지 않는다. 절에 나무를 해주는 아랫마을 초부 아저씨는 도라지꽃이 피면 엄마가 오실 거라며 어린 도념을 어루만진다. 이번에도 내 키가 저 나무만큼 자라면 오신다고 하겠지? 그러나 아저씨는 거짓말쟁이.
<질투는 나의 힘>
97년작 <깊은 슬픔> 이후 4년만의 영화에 출연하는 배종옥, 한국 영화계의 대들보 문성근, 그리고 <와이키키 브라더스> <국화꽃 향기> 등으로 한창 주가를 높이고 있는 젊은 배우 박해일이 주연을 맡은 멜로드라마. 이들 세 남녀의 엇갈린 연애담이 펼쳐진다. 27살의 남자 이원상은 친구의 부탁으로 문학잡지사에서 일을 시작한다. 이 잡지사의 편집장인 한윤식은 '로맨스가 남은 인생의 목표'인 연애 지상주의자.
유부남인 한윤식을 만나는 모든 여자들은 그에게 쉽게 빠져들고 그 역시 부담없이 사랑을 즐긴다. 이원상의 옛 애인 최미경 역시 한윤식과 사귀면서 이원상을 버렸다. 복수인지 질투인지, 호기심인지 알 수 없는 묘한 감정으로 한윤식의 주변을 떠나지 않는 이원상. 그는 사진기자로 함께 일하게 된 연상의 여인 박성연에게 새로운 연애감정을 느끼지만 그녀 역시 회식날 밤, 한윤식과 호텔로 향한다.
<애니 메트릭스>
올해 전주국제영화제 상영작으로 매진사례를 이루며 관객들로부터 인기를 모은 작품.
한국, 일본, 미국 3개국 거장 애니메이션 감독들이 옴니버스 형식으로 꾸민 애니메이션으로 '애니매트릭스'라는 제목에서 짐작할 수 있듯 영화 <매트릭스>의 탄생에 대한 새로운 사실들과 새로운 캐릭터들을 만날 수 있다. 이 작품 역시 <매트릭스>의 워쇼스키 형제가 기획을 맡아 두 작품 사이의 연관성이 긴밀하다. 총 8개의 에피소드로 이루어져 있는데 <무사 쥬베이>의 가와지리 요시아키, <이온 플럭스>의 한국계 미국인 미터 정, <카우보이 비밥>의 와타나베 신이치로 등 총 7명의 감독이 각각의 에피소드를 연출했으며 조엘 실버가 제작을 맡아 기대를 모았다. <매트릭스> <매트릭스 리로디드> <매트릭스 레볼루션>으로 이어지는 매트릭스 3부작의 신화적 요소를 증폭시키고, 관객들의 영화적 경험을 더욱 풍부하게 하는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