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6 | [파랑새를 찾아서]
또 다른 성취 일깨운 학급 마라톤 대회
김종필 동화작가 전주 팔복초등학교 교사(2003-07-04 15:41:36)
단축마라톤 대회를 했다. 워낙 마라톤 대회가 많다보니 학급 단축마라톤 대회를 했다고 해서 별로 튈 리 없지만 그 목적과 결과가 재미있어서 얘길 꺼냈다.
우리 반에는 나보다 키가 큰애가 세 명이다. 그리고 또 서너 명은 여름방학이 끝나고 나면 나보다 클 것 같다. 아이들 키를 볼 때면 나는 교육대학 입학 때 받은 신체검사가 생각난다.
내 기억으로 남자 키가 158㎝ 이하는 탈락이었다. 학생들보다 작아서야 선생님의 권위가 서지 않는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당시 초등학생 평균키를 가늠해서 나온 기준이었겠으나 지금 생각하면 170㎝ 쯤을 기준으로 해야 할 것 같다.
그런데 이렇게 멀대처럼 키만 컸다고 속까지 든 것은 아니다. 키와 사람의 속이 차는 것은 전혀 별개의 문제다. 손바닥은 냄비뚜껑만 해도 아이는 아이다.
지금 6학년을 가르치는데 남자아이들이 음악 시간을 여간 부담스러워하는 게 아니다. 변성기에 사춘기를 함께 앓고 있으니 소리내어 노래부르는 일이 퍽 버거운 모양이다. 교육부장관이 들으면 큰일날 소리지만 나는 예체능을 기능 위주로 평가하지 않는다. 얼마나 즐겁고 신나게 참여하느냐가 내게 점수 따는 비결이다. 인생을 즐겁게 살자고 배우는 과목인데 무슨 채점 기준표가 그리 까다로운지 참 못마땅하다. 해서 음악시간엔 음정이나 박자가 좀 흐트러져도 소리 크고 표정 좋으면 장땡이다. 이렇게 기준을 하향해도 남자아이들이 좀처럼 나서지 않는다. 그래서 언젠가 한 번은 사탕하나를 부상으로 내걸었더니 난리가 났다. 생각해 보라. 170㎝가 넘은 아이들이 사탕 하나 얻어먹겠다고 시켜달라고 소리를 지르고, 두 손 가지런히 앞에 모으고 진지하게 노래부르는 모습을. 이러니 애가 아닌가? 이 글을 읽는 어른들은 행여 아이의 키가 크다고 속도 함께 들었다고 착각하지 말라.
학급 단축마라톤 얘기를 하다가 엉뚱한 얘길 길게 했다. 초등학교에서는 보통 일년에 두 번 체육대회를 치른다. 어린이날 전후에 하는 가정주간 체육대회와 가을 운동회가 그것이다. 가정주간 체육대회는 더러 없어지거나 소규모로 실시한다. 그나마 일기가 불순하면 미루는 것이 아니라 취소하는 것이 다반사다.
우리 학교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학급 단축마라톤을 실시한 것이다. 한가지 더 이유를 굳이 말한다면 마라톤 하기 며칠 전에 있었던 중간고사 때문이었다.
아이들이 느끼는 시험의 스트레스는 의외로 컸다. 일기를 보니 날을 샜다는 아이도 많았다. 시험 날 아침에는 손마다 엿이 들려 있었다. 그러나 꿈꾸는 대로 결과는 나오지 않는 법이다. 속상해서 눈물을 보이는 아이도 있었고, 짜증을 있는 대로 부리는 아이도 있었다.
과목별 점수표를 만들고 석차를 썼다. 쪽지 형태의 성적표를 가정에 보내기 위해서다. 학부모의 요청이기도 했다. 개인별로 보내는 것인데 아무리 생각해도 마음에 걸리는 것이 석차였다. 꾸중의 자료밖에 될 수 없는 것을 보내서 뭘 어쩌자는 것인가! 석차가 쓰인 칸을 가위질해버렸다.
"도장을 찍어와야 하나요?"
"석차가 없네요."
"우리 엄마 기절할 거예요."
시끌시끌하다.
"석차는 선생님이 지웠고, 도장은 찍어올 필요 없다."
내 대답이 여기까지 이어졌을 때 "선생님, △△가 성적표를 삼켰어요. ○○도 씹었어요."
난장판이 따로 없다. 염소새끼도 아니고 종이로 만든 성적표를 씹어서 삼키다니…. 시험이 뭐라고 멀쩡한 얘들을 염소로 만든단 말인가!
그 날 생각해 낸 게 단축마라톤이다. 삶은 단거리 경주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해주고 싶었다. 뛰면서 스스로를 생각해보게 하는 것이 첫 목적이었다. 공부 스트레스를 달리기로 보상받길 바란 게 다음목적이었다.
어쨌든 토요일 교실수업을 일찍 마치고 학급 티셔츠(어린이날 속 깊은 엄마들이 장만해준 옷이다.)를 입고 삼천천으로 나갔다. 봄 날 우리 반이 옹기종기 둘러앉아 쑥 캐던 자리에서 출발하여 2.5㎞ 거리를 달려야 했다. 운동이 부족한 아이들에게는 이 거리도 부담이 된다. 학급 도우미엄마들이 일정한 간격에 자리잡고 심판을 겸하면서 차가운 보리찻물을 제공해주기로 했다.
출발 전에 기념 사진을 찍고, 친구와 손잡고 산책하는 것처럼 걸어도 좋으니 꼭 완주만은 해야한다고 강조해서 말했다. 그리고는 상품권을 흔들어 보였다. 아이들의 눈빛이 달라졌다.
출발 호루라기 소리와 함께 아이들이 뛰어나갔다. 50m 달리기 속도로 뛰는 아이도 있고 처음부터 숫제 걷는 아이도 있다.
15분쯤 지났을까, 아이들이 눈에 들어온다. 1등이 엉뚱하다. 평소 약골처럼 보였던 ◇◇이다. 내게는 말 한 번 붙이지 않고 지내는 아이다. 아빠가 계시지 않은 것을 큰 상처로 알고 비밀로 묻어두고 사는 아이다. 흐뭇해진다. 여자 일등 역시도 공부에서는 두각을 나타내지 못하는 아이다. 저절로 웃음이 나온다. 대체로 아직 공부에서는 별 재미 못 본 아이들이 상위로 줄줄이 들어온다.
들어와서 배를 움켜쥐는 아이도 있다. 최선을 다한 아이다. 같이 손잡고 다정하게 걸어 들어오다가 조금이라도 높은 순위를 받기 위해서 친구의 손을 뿌리치고 전력질주를 하는 아이도 있다. 조금은 얌체 같은 아이다. 먹는 것 밝히던 뚱보들은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시간이 흐르면서 꼴찌가 궁금해진다. 한참을 기다려도 보이지 않던 아이는 심판 보던 도우미 엄마들과 나란히 걸어오고 있다. 처음부터 끝까지 그 속도로 걸은 것이다. 아이는 평발이다. 거기에 죽음을 넘나드는 큰 병까지 경험한 아이다. 재작년까지 수업시간에 곧잘 사라져서 동생 교실에서 찾아왔다는 그 아이가 완주를 한 것이다. 속없이 감동이 된다. 자꾸만 등을 두드려준다.
이렇게 해서 마라톤 대회는 성공적으로 끝났다. 2학기에는 모악산 등반대회를 약속했다.
과제로 마라톤 대회를 주제로 글을 쓰게 했다. 또 한 번 가슴이 따뜻해졌다. 아이들이 나를 가르치고 있다. 모든 글들이 정말 훌륭하다. 어쩌면 이렇게 글들을 잘 쓸까 감탄을 한다. 그 중에서 우리 반 마라톤 꼴찌의 글을 소개한다.
'난 오늘 마라톤을 하였다. 처음으로 이렇게 먼 거리를 걸어서 가보는 것이다. 너무 힘들 줄 알았다. 그런데 걷다보니 하나도 힘들지 않았다. 조금씩 뛰어봤다. 친구들은 모두 나를 앞질렀다. 그래서 파워를 모아서 따라잡으려고 다시 걸어갔다. 내가 다시 뛰기 시작했지만 벌써 돌아오는 친구도 있었다. 친구들은 나보다 너무나 잘 뛰었다. 나도 잘 하고 싶었는데 꼴찌를 하고 말았다. 그렇지만 난 최선을 다 했다. 다음엔 더 열심히 해서 칭찬을 받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