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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6 | [삶이담긴 옷이야기]
핵폭발의 충격, 비키니 수영복
최미현 패션 디자이너(2003-07-04 15:38:01)
어떤 때는 옷이 참 요물스럽다는 생각이 든다. 돈의 가치로 환산해 보자. 백 만원을 주고 세탁기를 사면 10년은 쓰지만 같은 가격으로 옷을 구입한다면 십 년을 한결같이 매일 매일 입을 수 있을까. 유행이 얼마나 빨리 바뀌는가. 길었다 짧았다, 넓어졌다 좁아졌다, 부드러워졌다 딱딱해졌다 한다. (이렇게 써보니 그 법칙이 참 간단하다고 명료하게 느껴진다.) 그러나 실제로 이런 것들을 조율하는 것이 참 피곤하고 쓸모 없는 일인 것처럼 느껴지고, 무슨 이유에서 인간은 이런 급한 변화를 좋아하게 되었고 이 세상 대부분 사람들이 그런 가치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게 되었을까 스스로 물어 보고는 한다. 아마 지금처럼 예전 사람들은 변화에 빠르게 적응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특히 여성의 신체 노출에 있어서는 더 그랬는데 1910년대까지만 해도 교양 있고 사회적 수준이 있는 여성들은 바닷가에 가서도 물에 들어가지 않았다. 검은 피부색은 하층 계급을 상징했기 때문에 여성들은 피서지에 어울리는 드레스를 입고 예쁜 양산을 쓰고 바닷가를 산책하는 정도였다. 바다에 들어가고 싶으면 이렇게 입어야 했다. 머리를 가리는 모자를 써야한다. 물에 젖은 긴 머리는 다분히 에로틱하다. 칼라가 달린 긴 팔 셔츠에 무릎 밑으로 오는 바지를 입고 검은 스타킹을 신고 운동화를 신어야 한다. 요즘 젊은 사람들이라면 이렇게 말하겠지 '나 같으면 물에 안 들어간다.' 그러나 기독교 윤리가 엄격하던 유럽사회에서 이것도 커다란 변화였다. 1930년대 나일론이 발명되고 여성들의 의식이 변하면서 수영복은 오늘날과 같은 형태를 갖추게 되었다. 1946년 미국은 남태평양의 비키니 섬에서 핵 폭탄 실험을 준비하고 있었고 파리에는 수영복 패션쇼를 준비하던 젊은이가 있었다. 온 세계의 이목이 핵 폭탄 실험에만 집중되자 자신에게 관심을 갖지 않는 언론에 섭섭함을 느낀 나머지 자신의 수영복에 비키니라는 이름을 붙였다. 여성의 인체 중에서 배꼽을 드러내 놓다니…. 반응은 과히 핵폭발 만큼이나 위력적이었다. 복식사로 보자면 서기 200년경에 건축된 시실리의 피아짜 말머리나의 벽화에 비키니와 아주 흡사한 스타일의 차림을 한 10여명의 여성들이 모습이 보인다. 1700년만에 같은 스타일의 수영복이 복귀를 한 것이다. 돌고 돈다는 유행의 주기가 20년이라고 하는 이론이 여기에서는 틀렸나보다. 한 문화권에서는 또는 한 시대에는 아무렇지도 않은 노출이 다른 문화권이나 시대에는 죄악을 운운하게 만든다. 그 후 비키니는 소피아 로렌이나 브리지드 바르도 같은 유명한 여배우들이 영화 속에서 즐겨 입었지만 여전히 스트립 댄서의 의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아서 철저하게 거부를 당했다. 1960년대에 이르러서야 청교도적인 미국의 해안가에서 이 수영복을 입은 여성들을 볼 수 있었다. 더 이상 쇼킹할 것이 없을 것 같은데도 누군가는 그것을 콕 끄집어내어 다시 사람들을 자극하고 처음에는 거부하던 사람들도 점차 시간이 흐르면서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된다. 어떤 시기에는 열렬한 환영을 받고 어떤 시기에는 철저하게 냉대를 받는 이 교묘한 논리를 과연 뭐라고 설명해야 할까. 오늘도 나는 궁극적인 삶의 해답을 찾는 구도자처럼 내가 하고있는 일의 저변에 깔려있는 드러나지 않는 해답을 또 한번 되뇌여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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