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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6 | [교사일기]
좌충우돌 새내기 교사의 89일
장효진 부명정보산업고 교사(2003-07-04 15:37:13)
2003년 3월 2일 교사로 첫 발을 내딛었다. 부천의 부명정보산업고등학교. 이곳이 나의 첫 부임지이다. 첫 출근을 하는 날 아침! 교무회의에 들어가서 내가 2학년 5반의 담임이 된 것을 알았다. 교과를 가르치는 선생님이 아닌 반 학생들의 생활 지도를 도맡아 해야하는 담임이라는 직책이 새내기 교사인 나에게는 엄청난 짐으로만 여겨졌다. 그것도 1학년이 아닌 2학년, 학교에서 가장 말썽이 많다는 2학년의 담임이라는 자리는 정말 쉽지만은 않았다. 처음 교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35명의 우리반 아이들은 나를 신기한 눈으로 쳐다봤다. "선생님이 우리 담임선생님이예요?”아이들에게 들은 첫 마디. 얼굴에 약간의 화장은 기본인 여자아이들, 거의 대부분 담배를 피는 남자아이들. 이제 1년 동안 함께 생활해야하는 우리반 아이들의 모습이다. 내가 지금까지 경험했던 세계의 사람들과는 많이 다른 '성공보다는 실패를 많이 경험한 우리반 아이들'. 이들과의 조용한 전쟁이 시작된다. 처음 경험해 보는 학급경영, 다른 반과는 뭔가 다른 특별하고 멋진 우리반으로 만들고 싶은 나의 욕심에 처음에는 책을 사서보고 이것저것 시도하려 했다. 하지만 조·종례시간에 들어가면 아이들에게 하는 말이라곤 고작 "조용히 해"라는 말뿐이었다. 목이 터져라 조용히 시키고 나서 학교 전달사항만을 전달하고 나면 아이들은 주섬주섬 일어나 버려 종례가 끝난다. 내가 해보고 싶었던 특별한 학급 경영은 펼쳐보지도 못한 채 접어야만 했다. 3월 첫주부터 학교에서 해야할 잡무는 너무 많았다. 아이들 주민등록등본을 걷고, 주소록을 만들고, 사진첩을 만들고, 학생생활 실태를 조사하고, 학비 감면자를 선정·신청하는 등 이것저것 자질구레한 일들이 나에게 주어졌다. 매일 아침 학교에 가면 내가 해야할 일들이 쪽지로 날아와 있었다. 이런 저런 일들에 치이다보니 아이들 개인 면담·상담이 우선순위에서 밀리고 있었다. 환절기라 학교는 감기와 장염이 유행이었고, 우리반 한 여자아이가 결석을 했다. 당연히 감기때문일 거라고 생각했던 나에게 전해진 '학교폭력'이라는 단어. 정말 놀랄 수밖에 없었다. 전날 하교길에 다른반 여자아이들에게 맞아서 병원에 입원했다는 것이다. 가해자 학생들의 담임선생님들과 함께 병원에 찾아가고 부모님들의 학교 방문이 이어졌다. 같은 날 오전 우리반에서 매일 아프다며 찾아오던 한 남학생이 또 아프다했다. 병명을 묻는 나에게 그 학생이 말한 병명은 '성병'. 하룻동안 이 두가지 일을 겪으며 나는 아이들에게 너무나 많은 실망을 했던 것 같다. 심한 감기몸살이 나의 몸에 나타났고 다음날은 조퇴를 할 수밖에 없었다. 3월 두 번째주, 반장·부반장 선거를 실시했다. 우리반 반장으로는 김혜미라는 여자아이, 부반장에는 이희윤이라는 남자아이가 뽑혔다. 3월 첫째주부터 임시반장을 했던 혜미는 반장을 하기 싫다던 다른 아이들과는 달리 열심히 해 보겠다 굳게 다짐을 했다. 아무것도 모르는 초보 선생과 아이들 사이에서 이것저것 힘든 일이 많았을 혜미. 3월 마지막 주가 되자 혜미는 자퇴를 하겠다고 울면서 나를 찾아왔다. 초등학교를 졸업하면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까지 순서를 밟는 것이 당연하다고 여겨왔던 나. 지금 학교를 그만 두면 나중에 후회하게 될거라 설득하는 나에게 혜미는 "저도 나중을 위해 지금 학교를 다녀요"라며 "하지만 지금 이렇게 학교에서 스트레스를 받으면 그 미래에 제가 이 세상에 없을 것 같아요"라고 말했다. 혜미는 그 고민을 학교와 하교길에 담배를 피는 것으로 풀었다. 점심시간에 담배를 피다 선생님들에게 두번이나 적발을 당한 혜미. 학생자치부에 매일같이 불려가서 금연초를 피는 혜미에게 나는 담배를 줄이라는 말, 학교에서는 담배를 피지 말하는 말밖에 해줄 수 없었다. 며칠전 열린 학교 선도위원회에 혜미의 이름이 올라가 있었다. 학교 선도위원회는 세번이상 잘못을 한 학생들의 징계를 결정하는 기구이다. 학교측의 실수로 혜미가 올라간 것이다. 하지만 선도위원회에 올라가면 실장을 그만 두어야 한다는 학교내 교칙에 의해 다음에 한번만 더 잘못을 하면 혜미는 반장을 그만 둬야 할지도 모른다. 이런 혜미를 도와야 하는 우리반 부실장 희윤이. 희윤이는 다른 아이들과는 많이 다른 아이이다.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은 꼭, 시간을 가리지 않고 하고야 마는 아이이다. 교실 대청소를 하는 날, 아이들 한명한명에게 청소할 구역을 정해주고 그것만 마치면 집에 가도록 지시했다. 교무실에서 급한 일을 처리한 후 교실로 들어간 나에게 희윤이가 큰소리로 따져물었다. “선생님도 청소해요! 선생님은 왜 청소 안해요?” “선생님이면 청소 안 하는 거예요? 그럼 선생님이 학생해요! 내가 선생님 할테니까!” 누군가에게 한 대 얻어맞은 것처럼 멍해지는 나와 그것을 재미있게 지켜보는 우리반 아이들. 이날 일은 우리반 희윤이를 설명할 수 있는 대표적인 이야기이다. 이런 우리반의 반장과 부반장, 다른 선생님들은 모두 반장·부반장을 새로 뽑아야 한다고 말한다. 어쩌면 아이들을 잘 이끌지 못하는 나, 담임선생이 가장 먼저 다시 뽑혀야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누구나 시행착오를 거친다. 그러나 지금 나의 시행착오로 인해 아이들의 인생이 달라질 수 있다는 생각이 들면서 그 무게가 더해진다. 지난주까지 학교에 잘 나오지 않던 종민이도 학교에 꼬박꼬박 나오는 성실함을 보여주고, 혜미는 담배를 끊었다고 한다. 희윤이는 학교에서 실시하는 상·벌제인 블루카드(상점)에 목을 메면서 학급 일에 열심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아이들이 조금씩 나아지는 모습을 바라보며 아직도 "선생질 못해먹겠다"는 말을 밥먹듯 하는 나 자신을 돌아본다. 오늘도 2학년 부장선생님께 불려가 상담을 받은 혜미, 내일부터 혜미와 반장일기를 함께 써볼 작정이다. 오늘 혜미와의 반장일기를 위한 예쁜 공책을 한 권 준비했다. 지금 교사 생활 89일을 지낸 오늘도 나는 '자질부족'을 운운하며 눈물을 머금고 집으로 돌아온다. 오늘보다는 나은 내일을 꿈꾸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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