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6 | [시]
봄날
이병초(2003-07-04 15:36:09)
봄날
어머니는 다리를 절뚝였다
왼쪽 겨드랑이를 내게 맡기고
탱자나무 울타리를 지나 내리막길로 접어들자
한참을 서 계셨다 그 힘에 부친 눈길을 따라
텃밭 거름자리에 봄햇살이 부서지고
곧 뜯길거라는 스레트 지붕이 아지랑이에
흐늘거렸다 그만 업히세요 해도 당신은 말씀이 없고
뒷목 뻣뻣한 세월 봄햇살에 펴말리는
기다란 개나리 울타리가 눈부시다
놔주렴 놔주렴 뒷곁에 채곡채곡 쌓였을
그을음도 정히 놔주렴, 한평생 추리고 세리고
삽날처럼 버티었어도, 廢月일 수밖에 없는,
그러나 거기서 탯줄을 자른 내 손을 꼭 쥐고
당신은 천천히 걸음을 떼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