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6 | [문화저널]
나를 키운 세상의 노래/릴레이 연제
'노동의 역사'와 함께 한 사람들
김주환 치과의사(2003-07-04 15:33:36)
지난 3월엔 강원도 평창군의 봉평에 다녀왔다. 3월말임에도 산엔 눈이 많이 남아있었고, 스키장엔 많은 차량이 줄지어 서 있었다. 난 스키를 타러 갔던 것은 아니었고, 젊은 시절 존경하였고 어머님같이 우리를 돌봐 주시던 조화순 목사님의 칠순을 모두 모여 축하드리기 위해서였다. 오랫동안 서울을 떠나 진안이란 외진 곳에 지내왔기에 20여년 만에 만난 얼굴들은 모두 낯설어서 생소하기까지 하였다. 대부분 모습들도 많이 변했고 그 중에서 내가 가장 변해있었던 것 같다. 20여 년 전 50킬로 언저리이던 내 몸이 80킬로를 육박하니 날 알아보지 못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이리라. 그러나 잠시 인사를 나누고 함께 식사와 술을 하고 나선 곧 20년 전으로 돌아가게 되었다.
20년 전 1980년 5월 서울역에서 후퇴와 곧 이은 비상계엄확대로 우린 곧 숨어들었다. 계엄군이 학교에 진입하면 다음 날 아침 10시에 서울역에서 만나자고 했던 우리들은, 그날엔 서울역 주변을 서성이며 우물쭈물 서로의 눈치를 보다가 무겁게 발걸음을 돌리고 말았다. 그리고 광주에서의 소식은 처음엔 기대에서 그리고 학살 후엔 패배감과 절망감, 그리고 죄책감에서 헤어날 수 없었다. 아무런 대책도 없이 그저 멍하게 지내기만 하였다.
오랫동안의 좌절 후에 새로운 돌파구를 모색하기 시작하였고 짧은 논의 끝에 우리는 학내활동을 중단하고 인천 도시산업선교회에서의 진료를 통하여 타개해보기로 결정했다. 진료활동만 아니라 도시빈민 운동도 병행하자며 모두 함께 살아보자 하여 인천 만석동 대성목재 앞 판자촌에서 방을 구하였다. 내 경우엔 부모님께서 대전에 계셨고 연락도 거의 안 드리면서 지냈기에 쉬웠으나, 서울에 살던 다른 친구들은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 그렇게 인천에서의 생활이 시작되었다.
그때 만난 선배가 김근태 의원이다. 당시에 선배는 노동자 교육을 맡고 있었는데, 시간을 쪼개서 우리의 교육을 이끌어주었다. 그렇게 만난 책이 『노동의 역사』이다. 내가 첫 번째 발제자가 되었고 책의 처음부터 스팔타커스의 난까지, 봉건제 이전까지인 셈이다. 그리고 부교재로는 일리인의 『인간의 역사 1』이었다. 대학 입학한 후론 학과 공부도 안 했지만, 사회과학 세미나 준비도 안한 채 주로 몸으로 때우는 단무지(단순 무식 지랄)로 지내던 내가 처음으로 의미를 하나하나 새겨가면서 책을 읽어보았다.
그 사이 어렴풋하던 개념이나 의미가 새롭게 다가왔다. 노동, 소유, 분업, 잉여생산물, 생산수단, 생산력, 생산관계, 상품, 가치, 생산양식 등의 단어들이 그냥 책 속의 어휘들이 아니라 '앞으로 내가 사회를 어떻게 바라 보아야하며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 것이 의미 있는가' 를 살아서 말해주고 있었다. 1주일만에 노동의 역사, 인간의 역사 두 권의 책을 꼼꼼히 읽었고 30분 간 발제를 하고 친구들로부터 박수를 받고 당시 존경하던 김근태 선배로부터 '준비 잘했다' 라는 격려도 받아 무척 고무되기도 했다.
그리고 그 후, 여러 가지 문제로 어려워지거나 약해질 때 힘이 되었다. 얇은 나무판자 하나로 일 이층으로 나누어진 2층에 지내다보니 난방은 할 수가 없어 아무리 추워도, 등산용 버너에 밥을 하고 아침이면 동네 입구 가게 앞길에 큰솥에 끓여 팔던 콩비지 국을 먹으면서도, 주민 수에 비해 턱없이 부족하여 매일 아침이면 줄을 서서 기다리던 밀물과 썰물을 이용한 海세식 공중변소에서 발을 비비꼬고 서있으면서도, 더운 여름날 지독한 바다모기의 공격을 막기 위해 신문지로 이불을 만들어 덮고 제대로 잠도 자지 못하면서도, 제대로 빨래 할 물과 장소가 없어서 팬티를 뒤집어 한 달을 입고 지내면서도 힘든지 몰랐고 나도 노동자, 빈민과 함께 한다는 자부심도 있었다. 지금도 내 삶에서 그 때가 가장 부끄럽지 않은 시절이다. 그것을 받쳐주는 것이 '노동의 역사'란 아주 작은 문고판 책이다.
학교 졸업 후 여러 번 이사를 하였고, 책 정리를 하면서도 한번도 이 작은 책을 버릴 생각을 해본 적이 없다. 다시 들춰서 읽어보진 않지만 책장에 꽂힌 표지만 보아도 왠지 모를 뿌듯함이랄까 포근함이 생긴다. 며칠전 몇 사람이 책 이야기를 하다 어떤 분이 가장 잘 읽은 책을 물을 때 망설이지 않고 『노동의 역사』라고 대답했다. 그때 그 말을 듣던 다른 분이 초판이 남아있다면 민주화 운동 자료도 될 것이라고 했다. 그 말이 생각나서 집에 돌아와 확인하여보았다. 산업신서2, 지은이 바레, 프랑소아, 옮긴이 편집부, 펴낸이 이태복, 1979년 11월 20일 1판 인쇄, 1980년 4월 25일 값 1000원. 그리고 만년필로 80.11.27로 적혀있었다. 아마 그 날 샀었던 것 같다.
79년 11월이면 박정희가 죽은 후이고 80년 4월 25일이면 그 당시엔 탄압이 적었고 광주민중 항쟁 이전의 시기이다. 그래서 80년대 초 암울한 시기에 이 책이 서점에 나올 수 있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지난해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에서 민주화운동관련사료를 모은다고 해서 그 동안 보관하던 팜플렛, 정치신문, 자료집 등을 보내서, 기념사업회로부터 감사장을 받고 아이들과 아내에게 자랑할 때도 이 책을 보낼 생각은 전혀 하지 않았다. 그럴 리는 없겠지만 이 책이 꼭 사료로 꼭 필요하다고 해도 선뜻 내 놓지 못할 것 같다.
조화순 목사님의 생신에 모인 우리들은 '노동의 역사' 세대이다. 그날 모인 모두 -동일방직 해고 노동자, 노동 운동을 하였거나 도왔던 분들, 그리고 빈민과 함께 하려했던 사람들, 민주화를 위해 애쓴 종교인들- 노동의 역사와 함께 했던 사람들이다. 그리고 20년 만에 만났고 오랫동안 떨어져 있었지만 늘 함께 해왔던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오늘 이젠 누렇다 못해 약간은 붉은 빛을 띠는 종이와 아주 짙은 냄새가 마음을 편안하게 해준다. 책 서문을 다시 읽어보면서, 작은 책 '노동의 역사'에 고마움을 느낀다.
이 책은 배운 자와 못 배운 자를 가리지 않고 노동의 일반적 의미와 그 왜곡된 역사를 명확히 이해할 수 있도록 쉽고 간결한 문체로 되어 있다. 이를 통해 왜곡되지 않은 진정한 노동이 우리의 삶에 가지는 창조적 의미를 음미해 볼 수 있을 것이다.
김주환/1982년 서울대 치과대학을 졸업하고 건강사회를 위한 치과의사회 전북지부 회장과 화해와 평화를 위한 베트남 진료단 단장을 지냈다. 올 4월에는 개혁국민정당 전주시 덕진구 위원장을 맡아 활동하고 있다.
<나를 키운 세상의 노래>는 이달의 필자가 다음 필자를 추천하면서 바통을 이어 갑니다. 이달의 필자인 김주환 씨는 전주 효정여중에 재직중인 교사 김인봉 씨를 추천했습니다. 김인봉 씨는 오랫동안 교육운동에 몸담아 오면서 전교조 해직교사의 아픔을 치러냈습니다. 복직 이후 전라북도 교육위원과 전교조 전북지부 사무국장을 지낸 올곧은 교육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