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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6 | [특집]
영화같은 전쟁, 현실같은 영화
이종님 문화평론가(2003-07-04 15:20:34)
1895년 파리, 한 카페에서 하나에 10초정도 되는 짧은 길이의 영화들이 영화기계를 통해 상영되었을 때, 사람들은 현실과 하얀 스크린 속의 영화를 구분하기 어려울 정도로 현실적인 영화에 놀라워했다. 스크린 속에 기관차가 등장해 역에 도착하는 <열차의 도착>에서는 관객들이 정말로 열차가 자기 쪽으로 오는 줄 알고 고개를 돌렸을 정도였다. 그 이후 영화가 대중화되면서 세계전쟁 당시에는 군인들에게는 전쟁홍보의 수단으로 사용될 만큼 그 영향력이 커졌다. 이후 영화는 전쟁의 수단으로써의 가치를 높게 평가받으며 오랜 기간동안 이데올로기적인 인식의 수단으로서 활용되어져 왔으며 현재는 여가의 수단으로 자리잡아가고 있다. 물론 모든 영상물들은 다양한 주제를 담아낼 수 있기에 그 활용수단도 매우 다양하다. 그리고 영화스크린을 담아내는 내용적인 상업적 움직임뿐만 아니라 영화를 담아내는 용기마저도 상업화라는 흐름을 따라 더욱 빠르게 흐르고 있다. 스크린 속의 기관차가 현실인줄 착각하고 관객들이 고개를 돌렸던 원리는 지금까지도 그대로 스크린 속에 적용된다. 역사적 사건을 재현해내는 영화, 특히 전쟁을 재현해내는 영화들은 실재로 존재했던 사건들을 재배치한다는 것이 쉽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계속되고 있다. 영화가 표현해내는 힘은 그 어느 것보다 강력하기 때문이다. 이런 사실을 확인할 수 있는 전쟁이라는 공통된 소재를 통해 잔혹한 현실을 그려내고 있는 영화들은 무엇이 있을까. 세르게이 아이젠슈타인의 1925년도 작품인 <전함포템킨>(The Battleship Potemkin)은 영화가 어떻게 이데올로기적인 수단으로 쓰일 수 있는지를 가장 잘 보여주고 있는 대표적인 작품이다. 1905년 러시아 짜르에 반군을 들었던 포템킨 함의 사건을 민중의 항거라는 이데올로기에 충실하게 만든 이 영화는 이야기의 전개에서도 소련 공산주의에 동조하지 않는 관객들에게도 충분히 공감을 일으킬 것이다. 썩어서 구더기가 득실대는 고기를 양식으로 공급하면서 그것이 먹을만하다고 뻔뻔스럽게 거짓말하는 지배자에게 순종할 사람들은 없기 때문이다. 전쟁을 통한 역사적 반목은 지금까지도 이루어지고 있으며, 영화속에서 계속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씬레드라인(Thin red line, 1998)은 1942년 세계2차대전이 벌어지고 있는 태평양의 격전지 과달카날섬에서 일어났던 전쟁을 그려내고 있다. 호주점령과 미국 본토 공격에 반드시 필요한 남태평양 공격선의 주축인 과달카날섬에 일본군이 비행장을 설치하자 미군은 해병대를 지원대를 위해 육군지원부대를 섬에 파견시키는데 이 작전을 지휘하는 고든 대령은 고지벙커를 구축하고 있는 일본군을 격퇴시키기 위해 정면돌파라는 무리한 작전계획을 세운다. 이 때문에 아군들은 엄청난 희생을 치루지만 미군과 연합군은 남태평양 전선에서 전세를 뒤집을 수 있는 유리한 위치를 차지하게 된다. 그러나 동료대원들의 죽음, 개인적으로 느끼는 피폐함과 정신적 고통, 가족으로부터의 배신 등의 아픔과 좌절을 겪게 된다. 그리고 최근에는 리들리 스콧 감독의 영화 블랙호크다운(Black Hawk Down, 2001)이 있다. 영화속에서 젊은 병사들을 통해 나타나는 전쟁터는 <플래툰>(platoon, 1986)에서 크리스 역을 맡은 찰리 신이 헬기를 타고 전장을 떠날 때의 느낌과 별로 다르지 않다. 영화속에서는 항상 그렇듯이 아군에 비해 적군은 훨씬 큰 사상자를 내고 있다. 그러나 결과는 아군이 19명 사망한 결과를 더 부각시키며 '처참한 패배'라고 설명한다. 승리는 '단 한 명의 희생도 없는 것'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아프가니스탄 전쟁에서도 쉽게 확인할 수 있었다. 미국이 자랑하는 특수부대 정예 용사들은 동족을 마구 살상하고 UN의 구호식량까지 착취하는 민병대 대장 모하메드 파라 에이디드의 두 부관을 납치하기 위해 1993년 10월 3일 오후 반군인 민병대가 장악한 소말리아의 수도 모가디슈시내에 침투하는 작전이 진행된다. 그러나 작전은 민병대가 쏜 구식 로켓포에 의해 무산되면서 전쟁은 좀 더 복잡해진다. 레이저망도 통과한다는 헬기 '블랙호크'가 추락했기 때문이다. 그들에게 그것은 단순한 사실이 아니라 '공포'로 묘사된다. 인질납치 작전이 동료구출작전으로 바뀌면서 전장은 그들에게 위대한 평화의 실현 현장이 아닌 지옥이 됐다. 영화 <블랙 호크 다운>은 그 18시간의 기록이다. 총알이 어디서 날아올지 모르는 낯선 전장에서 한가롭게 비인간성을 한탄하거나, 동료의 부상과 죽음 앞에 잔뜩 애도의 눈물을 흘리며 비극성을 보이는 것이야말로 사치이고, 영화적 비현실이라고 비웃는 듯하다. 그들은 스스로 전쟁을 "아무것도 아니야(Nothing)"라고 설명한다. 얼마전 후세인의 동상이 무너지면서 끝났던 이라크와 미국의 전쟁에서 나왔던 무참히 학살되던 이라크 난민보다도 미군병사들의 사상에 대해 열을 올리던 미국의 CNN방송을 통해서도 이러한 사실은 또다시 재현되었다. 이제는 어떤 것이 영화적 허구이고 어떤 것이 현실의 보도인지 그 경계가 모호해지고 있다. 저명한 언론인이자 학자였던 리프만(Walter Lippman)은 사람들은 매스미디어의 보도활동에 의존하여 현실세계를 인식한다는 뜻에서 "매스미디어가 우리들 머리 속의 상(pictures in our heads)을 구축한다"고 설명하였다. 이는 아마도 미디어가 얼마나 세계를 바라보는 시각을 결정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는가에 대해 주목했기 때문일 것이다. 기술의 발달에 따라 새롭게 등장하는 미디어는 기존의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극복해 시청자들에게 보다 정확한 정보를 전달할 수 있는 중요한 매개적인 역할을 해오고 있다. 따라서 이라크 전쟁과 관련된 전쟁보도를 통해 전해지는 뉴스들은 시청자들에게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볼 수 있다. 직접 그 현장에 있지 않는 대중들은 텔레비전을 통해 혹은 그 외의 다른 채널을 통해 정보를 전달받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또한 뉴스보도에서는 보다 정확한 보도를 위해 가상스튜디오를 동원해서 전쟁 보도를 하였다. 그러한 가상 스튜디오를 통해 보여지는 상황을 접하는 시청자들은 마치 컴퓨터 모니터에서 자주 보던 게임을 보는 것 같은 느낌을 주기 때문에 현실적 상황에 대한 정확한 인지보다는 폭격지역이나 군병력의 이동을 설명하는 그래픽에 더 주목하게 된다. 카메라로 찍을 수 없는 장면을 컴퓨터로 재생산하여 스텔스 폭격기나 토마호크 미사일이 지상에서 발사돼 멋지게 비행을 한 뒤 목표물을 정확하게 명중시키는 모습들이 시각적인 부분에 몰입하도록 시청자들을 유도하기 때문이다. 수많은 영상이미지에 노출된 사람들은 현실세계와 허구의 세계에 대한 구분에 대해 더 이상 의미를 두지 않는다. 이제 매스미디어의 진정한 기능은 세계의 실제 현실에서 일어난 단 한번의 사건으로서의 성격을 약화시키고, 서로 의미를 보완하고 서로 참조하게 하는 동질적인 각종의 매스미디어로 된 다원적 세계로 현실의 세계를 대체시켜 버리는 것이다. 계속적으로 일어나는 미디어관련 기술의 발전과 함께 상업적 영상이미지의 생산은 대중들을 더더욱 비주체적인 인간으로 만들어가게 될지도 모른다. 영화속에서 재현되는 전쟁과 실제 뉴스에서 보여지는 전쟁장면의 차이는 이제 느끼지 못할만큼 현실과 비현실은 모호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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