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6 | [특집]
전쟁 반대와 평화를 위한 비나리
김회경 문화저널 기자(2003-07-04 14:41:29)
인류의 역사는 전쟁의 역사이기도 했다.
생존을 위한 종족간 전쟁에서부터 종교, 이데올로기, 인종 전쟁 등 반목과 갈등, 학살의 소용돌이 속에서 인류는 전쟁이 남긴 잔혹한 상흔을 간직해야 했고, 그 과정에서 문명의 파괴와 재건은 계속됐다.
그러면서도 전쟁의 악몽은 수없이 되풀이됐다. 최근 이라크 전쟁을 놓고 미국의 패권주의와 일방적 외교 전략에 대한 전 세계적 비난이 쏟아졌다. UN의 결의를 얻어내지 못한 채 '이라크 국민 해방'과 '독재자 타도'를 내걸며 끊임없이 전쟁의 당위를 내세웠던 미국은 결국 전쟁 승리를 이끌어냈지만, '오만한 제국주의'라는 오명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무고한 이라크 주민의 희생과 문화 유산의 파괴는 전쟁의 상처와 잔혹함을 다시금 되새기게 했다.
인류 역사의 진보를 떠받친 문명과 과학의 발전은 전쟁의 개념과 양상을 확대시켜 놓았다.
인쇄술과 화약의 발명, 세계적 교통의 약진, 항해술의 발전 등은 유럽의 강대국들이 아프리카 와 아메리카, 아시아 등지에 세력을 확장하면서 전략요지를 점령하고 식민지 건설에 앞장서게 했다.
19세 초 산업혁명과 때를 같이해 등장한 국가주의와 민주주의, 산업주의는 전쟁의 기술화를 촉진시켜 무장국가와 전쟁절대화의 경향을 강화시켰다. 19세기 후반 공업기술의 발달을 토대로 한 갖가지 발명은 무기의 진보와 전쟁기술의 기계화를 앞당겼다. 이러한 세계적 흐름은 직업군인(용병)을 국민 대중을 대상으로 한 상비군제도의 확립을 불러오기도 했다.
'세계대전 시대'는 항공기의 출현과 함께 시작됐다. 항공기가 참가한 입체전쟁의 탄생과 공업력을 배경으로 한 각국의 군비경쟁은 그 때까지 '해가지지 않는 나라'로 불리며 세계를 지배하던 영국의 지위를 뒤흔들어 18세기 이래의 팍스 브리타니카(Pax Britannica)의 종말을 가져왔다. 또 제1차 세계대전 이후 러시아에서 일기 시작한 공산혁명은 세계적 이데올로기의 대립을 예고했고, 제1차 세계대전의 전후 처리 실패 등이 원인이 된 제2차 세계대전의 결과는 세계를 민주ㆍ공산주의라는 양 진영의 분열을 촉발시켰다.
이데올로기의 대립은 한반도에도 전쟁의 그늘을 짙게 드리웠다. 1950년 6월 25일 한국전쟁 발발. 일제로부터 해방을 일궈냈지만, 한반도는 미국과 소련의 대리전쟁을 치르듯 주권국가로서의 권리를 제대로 행사해 보지도 못한 채 민족의 분열과 전쟁의 소용돌이에 휘말리는 불행한 역사를 경험해야 했다. 베트남 역시 한반도와 같이 이데올로기가 빚은 참혹한 전쟁의 악몽을 간직해야 했지만, 전쟁의 결과는 한국과 사뭇 달랐다. 한국은 한국전쟁 기간동안 미군에 의한 양민학살이라는 잊혀지지 않는 상처를 간직해야 했고, 베트남은 최근 한 시사잡지에 의해 한국군에 의한 양민학살의 문제가 제기돼 전쟁의 아이러니와 불행을 실감해야 했다.
1990년대 들어 소련을 중심으로 한 동구권 국가의 몰락은 이데올로기의 대립을 가라앉혔지만, 그칠 줄 모르는 국가간ㆍ종족간 분쟁은 잔혹한 전쟁의 상흔을 끊임없이 되새기게 하고 있다.
석유 에너지를 둘러싼 미국과 중동국가와의 오랜 반목과 힘겨루기는 '걸프전'과 '이라크 전쟁'을 야기했고, 중동국가 사이에서도 '이란-이라크 전쟁' '이라크-쿠웨이트 분쟁' 등을 촉발시키며 21세기에도 전쟁 위협이 상존하는 '화약고'로 여겨지고 있다.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은 세계의 중재노력에도 불구하고 첨예한 대립각을 거두지 않고 있다. 두 나라 사이의 민족ㆍ종교적 차이는 끊임없는 반목의 역사를 만들어내며 지금까지도 테러와 교전이 치열하게 벌어지고 있다.
지구촌에 남은 단 하나의 분단국가, 한반도 역시 전쟁의 위험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닉슨에 이은 전형적인 '매파' 정권인 공화당의 부시 정권은 최근 북핵 문제를 둘러싼 강경 대응으로 한반도 위기를 고조시키며 전쟁 위협을 낳기도 했다. 한반도 역시 불행하게도 중동과 함께 '3차 세계대전'의 '화약고'로 인식되고 있다.
최근의 이라크 전쟁은 전 세계적으로 대규모 반전 시위를 불러일으키며 전쟁은 그 어떤 명분으로도 정당화될 수 없음을 다시 한번 각인시켰다.
반전과 평화를 외치는 목소리에는 분명한 메시지가 담겨 있다. 전쟁은 죽음과 파괴의 기록이자, 승자가 없는 패자들만의 역사라는 사실이다.
한국전쟁 발발 53년, 그리고 잔인한 전쟁의 기억을 다시금 상기시켜놓은 미국-이라크 전쟁 종전을 맞아 이달 특집에서 전쟁이 인류 역사에, 우리에게 무엇이었는지를 곱씹어 보고자 했다. 이번 특집은 '전쟁'에 대한 학술적 접근이나 분석이 아닌, 전쟁 반대와 평화를 염원하는 비나리이면서, 상처를 교훈으로 승화시키기 위한 단단한 되새김질이다. / 김회경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