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킵 네비게이션


분야별보기

트위터

페이스북

2003.6 | [문화칼럼]
우리에게 푸른 내일이 있을까
박남준 시인(2003-07-04 14:34:32)
오월이 가고 유월이 왔다. 나무들의 잎새들이 그 푸름을 더한다. 키 큰 미루나무 위로 파랑새가 곡예를 하듯 내리 꽂힌다. 오랜만에 후투티를 보았다. 저 새들이 다시 찾아오는 것을 보니 이 작은 골짜기의 환경이 아직은 괜찮은 모양이다. 아 새들이 찾아오지 않는 숲에서 어찌 살 수 있을까. 서울청계천을 복원한다고 한다. 천 위를 덮어 햇빛 한 점 들지 않고 몇 십년 동안 오폐수가 흐르던 죽음의 청계천을 복원하는 일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니겠지만 한 정치인의 인기작전이나 전시행정으로 진행되어서는 아니 될 것이다. 전주가 정말이지 많이 바뀌기는 한 것 같다. 얼마 전 평화동 사거리에서 효자동 방향으로 들어서는데 옆에 있던 사람이 저게 무슨 나무냐고 묻는다. 하얗게 꽃을 피우고 있는 나무, "저 나무 이팝나무야. 그런데 웬일이냐 이팝나무를 가로수로 다 심을 줄 알다니" 새로 조성되는 거리들의 가로수를 보면 더 조금은 실감을 하게 된다. 이팝나무 참나무 느티나무 중국단풍나무 등을 심어놓은 길을 만나면 기분이 좋아지고는 한다. 우리나라 어느 도시를 가도 똑같은 은행나무나 벚나무 플라타너스들을 가로수로 만나고는 했는데 이쯤 되고 보면 이 나무들이 큰 그늘을 드리우도록 자랄 즈음이면 다른 지역의 친구들에게 자랑이라도 할 수 있을 것 같다. 전주가 바뀌고 있다는 것을 보다 실감할 수 있는 것들 중에는 전주천을 꼽을 수 있다. 분단의 철조망 같은 시멘트방벽을 걷어내고 하천부지를 이용해 만든 산책길을 산책하는 사람들이 무척 많은 걸보고, 그 즐거운 표정들을 보고 환경이 우리에게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다시금 깨닫는다. 비록 지금은 인위적으로 여기저기 갯버들을 심고 억새 밭을 조성하기도 했지만 전주천이 살아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이른 봄 버들강아지라고 부르는 솜털 보송보송한 갯버들가지를 전주천에서 만나는 일이란 얼마나 기분 좋은 일이며 가을날 억새가 서걱이는 천변의 길을, 쑥부쟁이가 하늘거리는 냇가를 걷는 일이 도심 한복판에서 말처럼 그리 쉬운 일이겠는가. 그렇지만 문제가 전혀 없는 것만은 아니다. 당장 꽃만을 예로 들어도 해마다 이른봄이면 정말이지 변함 없이 심어놓는 팬지꽃이며 요즈음 유행처럼 각 도시에 심어놓아 흔히 볼 수 있는 북아메리카 원산인 금계국이나, 마가렛들을 대신할 우리 꽃들도 있는데 그런 방면에는 아직 눈길을 돌리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아 아쉬운 마음이 들고는 한다. 그러나 정작 중요한 것은 그런 일들이 아니다. 전북지역에서 발행되는 신문들의 한결같은 목소리가 있다. 새만금사업에 대한 일방적 지지일변도가 그것이다. 내가 바라는 숙원은 새만금을 반대하는 일이다. 무슨 근거로 200만 도민의 숙원사업이란 말인가. 또한 묻는다. 전북지역발전추진 민간사회단체 총연합회라는 거창한 이름을 내건 사람들이나 애향운동본부라는 단체들이 도대체 전북지역의 미래를 조금이나마 생각을 하고 있느냐는 것이다. 새만금이 안되면 당장 굶어죽기라도 할 것 같은 목소리로 악다구니를 써대는 것을 보면 울화가 치민다. 속내를 들여다보면 다 자신들의 이권이 걸려있을 것이다. 사리사욕을 위해 수만년 쌓여온 갯벌을, 그 갯벌 위에 갯지렁이들을, 농게들을, 바지락이며 백합, 노랑조개들을, 순하고 여린 생명들을, 빛나는 생명들을 짓밟으려는 것이다. 거기에 각 기관 단체장들이 있다. 거기에 시장, 군수가 있으며 부동산 거간꾼들이 있으며 토목건설회사가 있으며 중장비업체들의 이권개입이 있다. 그런 속 검은 자들이 또다시 검은 뒷돈을 챙기려 삭발을 하고 억지를 쓰고 있는 모습을 며칠전 차를 타고 지나가다 보았다. 새만금과 전주권 그린벨트에 대한 문제를 분리처리 해달라고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망둥이가 뛰니까 꼴뚜기도 뛴다고 삭발은 아무나 하는 줄 아는가. 그건 의로운 일에 나설 때나 하는 것이다. 새만금은 새만금대로 막아 이 지역의 바다를 온통 죽음의 바다로 오염 몰사시키겠다는 것도 모자라 그린벨트를 해제해서 땅 투기를 하고 숨막히는 아파트단지들만 세우려는 속셈을 어찌 모르겠는가. 어디 그뿐인가. 이 지역의 좌장 격인 도지사는 다른 지역에서 모두들 손사래를 치고 있는 대표적 혐오시설인 방사성 폐기물처리 시설을 적극 유치하겠다고 한술 더 뜨고 있는 형편이다. 어디서 그런 해괴한 발상들이 나왔을까. 도대체 어쩌자는 것인가. 어리석고 부정한 자들이여. 너희들만 구린내 나는 뒷돈으로 치부하고 살면 된다는 것이냐. 한 시대, 한 지역의 문화는 바로 그 지역의 제반 환경에서 기인한다. 저만 잘살겠다고, 후대에 바른 환경문화를 물려주지 않겠다는 극도의 이기심들로 무장한 자들이 있는 한 전북의 미래는 암담하기만 하다. 그러나 여기 진실로 의로운 이들이 있었다. 지치고 아픈 몸을 이끌고 새만금 간척 반대를 위한 부안 해창바다에서 서울 광화문까지 삼보일배의 고된 십자가를 지고 숭고한 고행을 하신 종교인들과 뜻을 같이한 사람들의 대장정이 그것이다. 그 삼보일배가 끝났다. 그러나 삼보일배는 이제 다시 시작인 것이다. 생명을 소중히 여기는 사람들의 마음 곁으로, 자연이 우리에게 내린 축복의 유산인 갯벌을 지키려는 사람들 곁으로, 한 그루 나무를 심고 아끼는 이들의 곁으로 이제 삼보일배는 다시 시작하는 것이다. 거기 우리의 푸른 내일이 다가올 수 있는 것이다.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