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9 | [문화저널]
음식의 절제가 삶의 격을 높인다.
김두경 서예가(2003-07-04 11:47:50)
무더운 여름이 지났다. 유난히 무더운 여름이었다 말하며 많은 사람들이 산으로 바다로 휴가를 떠났다. 너도 알고 나도 아는 이름난 곳에서부터 이름 없는 조그마한 도랑 물까지 물놀이를 할 수 있는 곳이라면 어디나 사람으로 북적거렸다. 차량행렬에 갇혀 몇 시간씩 고생하면서도 집을 나섰다. 너 가는데 나 안가면 큰일나는 것처럼 그저 산으로 바다로 떠났다.
고기와 술은 기본이며 온갖 과일과 음료수를 비롯하여 과자와 빵까지 바리바리 싣고 떠났다. 이런 때 자가용 없으면 얼마나 서럽겠냐며 너 나 할 것없이 차를 타고 떠났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계곡 깊숙이 차를 들이대고 산꼭대기까지 음식물을 올려간다. 집에서 먹던 대로 산에서건 바다에서건 먹어야 되는 것처럼 오히려 더 잘 먹어야 하는 것처럼 바리바리 싸들고 올라간다. 산행의 즐거움이 오로지 시원한 계곡에 발담그고 먹고 마시는데 있는 것처럼 짊어지고 간다.
이런 현상은 바다라고 예외는 아니다. 먹고 마시고 노래부르고 물 속에 뛰어들어 자맥질하는 것 이외에 바다는 없다. 설령 있다 하더라도 광란하는 소음과 열기에 바다를 가슴에 품으려는 작은 감성들은 여지없이 짓밟혀 버린다. 산을 느끼며 산을 품으려는 마음도 가슴을 스치는 바람을 느끼려는 마음도 고기 굽는 냄새와 술 냄새에 묻혀버린다. 먹고 또 먹고 마시고 또 마시고 먹고 마시는데 한 맺힌 사람처럼 시도 때도 없이 먹고 마시며 쌍욕을 토해낸다.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놀거나 어른들 화투판 옆에서 잠들어 있고 어른들은 윗도리를 벗어 던진 채 고기를 씹으며 술잔을 기울이고 쌍욕을 입에 달고 화투를 친다. 이렇게 사람들이 놀다간 자리는 어디나 할 것 없이 쓰레기 천지가 된다. 몽땅 남은 음식물을 물고기 밥이다며 버리고 썩는 것이니까 거름이 되는 거라고 파묻는다. 태우거나 파묻으면 안 된다고 말하는 아이들을 나무라며 비닐은 태우고 깡통과 빈 병을 파묻는다. 그러면서도 자기가 잡은 자리가 남이 묻어 놓은 쓰레기라도 나올라치면 당연한 듯 쌍욕을 한다.
지금 우리들 자신의 휴가 문화는 이렇다. 심신의 안정을 위한 휴가가 아니라 심신의 무절제와 광란의 휴가다. 품격도 여유도 낭만도 없는 삼류 먹자판 휴가요, 난장판 휴가다. 이러한 먹자판 난장판 휴가가 품격과 낭만 여유와 멋을 찾으려면 음식을 절제해야한다. 먹고 마시는 동물적 본성에 가치를 두고는 사람이 멋스러워질 수 없다. 절제만이 자신을 아름답게 하며 세상을 아름답고 풍요롭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