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9 | [문화저널]
정말 아무일도 없었다 한다
옹기장이 이현배 이야기(2003-07-04 11:45:04)
가출(家出, 1997.11월호)을 해서는 영혼만은 끝까지 사수하겠노라 다짐했고 출가(出家. 1997. 12월호)를 해서는 이도저도 다버리고 허허하게 살 수 있을 줄 알았는데 또 무슨일 때문인지는 기억이 안나고 아무튼 나는 또 집을 나갔다. 부부간의 문제란게 늘 갑작스럽긴 하지만 평소에는 갈 데가 많아 보였다가도 막상 닥치면 하나도 생각이 안난다. 그래 또 만화방엘 갔다. 보다가 보다가 배가 고파 짬뽕먹고 더 봤다. 보면서 생각했다. 나는 왜 만화책을 보는가. 나이도 먹을 만큼 먹었고 더군다나 이런 심각한 상황에. 요즘에야 부부싸움 같은게 큰일이지만 돌이켜보면 인생에 있어서 절대절명이랄 수 있는 선택의 순간까지도 만화방에서 해결해 왔던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만화책에서 정답을 얻었던 것도 아니었는데….
내 알겠다. 만화책을 보고나면 나의 모든게, 세포 하나하나까지 확장되었던 것이다. 그러니 세상에 이루지 못할 꿈이 없고 어디 덤벼보지 못할 벽이 없다. 분명 인간은 대단한 존재다. 그러니 그렇게 생각하면 그렇게 되는게 인간이다. 옛날에는 만화적 상상력을 불량스럽게 여겼고 또 그렇게 사는 사람을 따로 취급해왔다. 하지만 요즘에는 가상세계가 또 하나의 현실로 존재하게 되었으니 이제는 어떻게 행동하느냐만큼 어떻게 생각하느냐 하는 것도 중요한 세상이 된 것이다. 한 생각이 손 끝에 전해지면 바로 새로운 세상으로 전환되는 그런 세상이 되었으니 말이다.
그러다 어떻게 어떻게 해가지고 집으로 돌아온다. 아무일도 없었다는 듯이…. 아무일도 없었다. 정말 아무일도 없었다. 누가 뭔일 있었느냐고 물으면 오히려 “예? 무슨 일이 있었던 거에요?”하며 반문할 것처럼 아무일도 없었다. 세상에 이해못할게 없고 작게 뭐하나 거슬릴 것이 없게 된 것이다.
가출(家出), 뒤집어서 출가(出家), 연이어서 가출가(家出家). 다 나의 행위였으면서 나는 아무일도 없었다 한다. 칼로 물베기처럼 행위만 있었지 아무일도 없었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