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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9 | [문화칼럼]
두 얼굴 지닌 가상공간의 ‘익명성’
정동철 우석대 교수?정보통신컴퓨터공학부(2003-07-04 11:40:36)
인터넷 고발 사건은 빠른 파급효과와 개방성 그리고 익명성 때문에 그 영향력이 막대하다. 그러나 인터넷 공간에 잘못된 정보가 올려졌을 경우, 악의적인 목적에 의해서건, 억울함에 대한 과장에 의해서건 간에 당사자는 당분간 해명할 기회조차 부여받지 못할 뿐만 아니라 보호받아야 할 지극히 개인적인 영역까지도 다른 사람들의 시선에 그대로 노출돼 버린다. 최근에는 대학생인 딸이 현직 파출소장인 어머니를 ‘간통죄’로 고발하면서 정말이지 잔인하게 어머니의 직장 주소, 친정집의 전화번호까지 공개해버린 사건도 있었다. 이를 가리켜 한 시사잡지는 딸이 어머니를 향해서 감행한 ‘사회적 살인’이라고까지 규정했다. 이러한 사건들의 시작과 끝을 얘기하려는 것이 이 글의 목적은 아니다. 이글을 쓰는 사람이 주목하고자 하는 사실은 한 개인의 사생활이 사건의 본질과는 상관없이 낱낱이 공개되고 있는 현실과 이른바 익명성으로 대표되는 인터넷 공간의 특성이다. 오랫동안 익명성은 인터넷을 대변하는 창이요 방패였다. 익명성은 폭압적 정치구조나 계급집단으로부터 약자일 수 밖에 없는 제보자를 보호하는 수단으로 사용되어 왔다. 사실 인터넷을 사용하는 대다수 사람들은 자신의 신분이 노출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특히 기성세대의 경우 과거 권위주의 정권에 대한 기억 때문인지 신분노출을 꺼리는 경향이 짙다. 그러나 이러한 익명성은 인터넷 공간을 ‘유언비어와 언어폭력의 장’으로 전락시킬 가능성 또한 가지고 있다. 연전에 있었던 ‘오양 비디오 파문’과 최근 논란이 됐던 ‘박남철 시인의 한 후배 여성 시인 성폭행’ 사건이 그것이다. 이러한 경우 사건의 본질과는 다르게 싸구려 호기심을 유발하는 쪽으로 흐를 가능성을 내비치는 예이다. 좀더 냉정하게 얘기하자면 익명성이 가지고 있는 또다른 특징은 비겁함이다. 제보자의 신분이 밝혀지지 않은 만큼 익명이라는 비겁함 뒤에 숨어서 서슴없이 무책임한 유언비어를 날조할 수도 있고 또 그 유언비어는 추잡한 호기심을 바탕으로 끊임없이 재생산되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이러한 익명성의 한 쪽 면을 근거로 해서 인터넷 이용자를 모두 실명화하자든지 인터넷 보안법(?)을 만들자는 식의 시도는 ‘벼룩 몇 마리 잡자고 초가삼간 태우는’ 식의 멍청한 발상이다. 진정으로 익명성이 가상 공간을 지키는 창과 방패로 거듭나려면 그 창과 방패를 예리하고 튼튼하게 벼리어야 하며 그길은 참과 거짓을 엄격하게 예단할 줄 아는 인터넷 사용자 스스로의 자정능력 뿐이다. 또한 익명성의 비겁함에 기대어 유언비어를 확대 재생산하는 인터넷 사용자들이 늘어나면 늘어날수록 예리한 창이 튼튼한 방패를 찌르는 모순은 깊어질 것이다. 인터넷이 앞으로의 열린 사회에서 부정과 비리를 고발하는, 사회적으로 소외된 사람들의 신문고 역할과 사회적 담론에 대한 논쟁을 주도하는 사회 변혁의 진원지가 될 것인지 무질서와 혼돈을 부채질하는 무정부주의자의 천국이 될지는 전적으로 인터넷을 사용하는 사용자 그들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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