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7 | [저널초점]
'프랑스 문화원’은 이미지 메이킹?
김회경 문화저널 기자(2003-07-04 11:28:23)
인류가 세계화 논리를 중심으로 지구촌이라는 거대한 ‘촌락’을 형성하면서 국가간 시간?공간적 제약을 사뭇 거뜬히 뛰어넘고 문화?경제적 경계마저 맥없이 무너뜨리고 있는 글로벌 시대.
지구촌이 지향하는 대동의 연대 바람은 서구와 동구, 국가와 국가, 도시와 도시간 교류의 창을 활짝 열어놓음으로써 서로를 새롭게 ‘탐색’하고 ‘활용’하는 선으로까지 연결되고 있다.
이같은 글로벌 시대에 타국의 언어와 문화를 배우고 익히는 일은 ‘세계화’를 위한 가장 기본적이고도 중요한 요체로 등장하고 있는데 타국 가운데에서도 특히 서구 선진국에 대한 문화적 동경과 연대의 요구는 더욱 확고해지고 있다.
세계적인 문화 선진국이자 패션 천국으로 불리우는 프랑스 역시 문화교류에 있어 매력적인 나라로 인식되면서 그곳의 선진 문화를 체험하고 공부하려는 인구나 그들을 위한 공간이 증가하고 있는 추세.
이러한 ‘세계화’의 물결이 어김없이 전주로 몰려들고 있음일까. 지난 5월 초 전주에도 ‘프랑스 문화원’이란 이름의 문화공간이 마련돼 언론과 불문학자?학도, 문화계 인사들의 폭발적인 관심과 전폭적인 애정이 쏟아졌다.
전주시 서노송동에 문을 연 ‘전주 알리앙스 프랑세즈 프랑스 문화원’이 바로 그것.
1883년 프랑스에 설립된 알리앙스 프랑세즈는 1964년 한국에도 뿌리를 내린 민간재단인데 현재 전주를 비롯해 서울, 대전, 광주 등 전국적으로 7개 도시에서 운영중이다.
전주 알리앙스 프랑세즈 개원일인 5월 16일 덕진구 서노송동 고려상호신용금고 건물에는 레오 주한 프랑스 대사를 비롯해 정동영의원(전주 덕진), 김완주 전주시장, 신치범 전주시의회 의장, 조희천 문화원 이사장, 김형길 원장 등 각계 각층의 인사들과 도내 보도진들로 성황을 이뤘다.
개원식을 기념해 지역 중진작가들의 전시회도 마련되는 한편, 내외 귀빈들이 참석한 가운데 개원 축하 리셉션도 성대히 치러졌다.
이쯤되면 전주 알리앙스 프랑세즈는 도내 그 어느 문화공간에도 뒤쳐지지 않는, 아니 훨씬 더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지역내 문화공간의 ‘총아’로 기본적인 문화적 의의를 부여받은 셈.
그러나 이같은 ‘세계화’에 따른 적잖은 의미에도 불구하고 개원에 임했던 자세와 그 과정에 대해서는 원칙적인 점검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한 나라의 언어와 문화를 보급하는 등 문화교류를 위한 공식적, 제도적 공간이 ‘문화원’이라면 전주 알리앙스 프랑세즈는 프랑스의 언어를 교육하고 보급하는 비영리 민간 어학기관. 우리가 일반적으로 이해하고 있는 문화원의 개념과는 엄격한 차이가 있다.
물론 그 이유만으로 개원의 의미를 폄하하거나 향후 역할 및 가능성까지 축소할 수는 없다. ‘한국내에 프랑스 언어와 문화를 소개하고 한불 문화교류의 창구를 마련하는 것’. 이것이 프랑스 문화원과 알리앙스 프랑세즈가 추구하는 궁극의 목적이라는 점에서 선진 문화와의 교류 가능성에 굳이 흠집을 낼 필요는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전주 알리앙스 프랑세즈가 준비단계에서부터 개원후까지 ‘프랑스 문화원’이라는 공식 명칭을 사용함으로써 대다수 시민들은 물론 개원을 적극 반긴 각계 인사, 이사진들에게까지 혼란을 안겨줬다는데 대해서는 비난을 면키 어렵게 됐다.
16대 총선 유세 과정에서 전주에 프랑스 문화원이 유치된다며 대대적인 홍보에 나섰던 정동영의원(전주 덕진)마저도 당초 알리앙스 프랑세즈가 공식적인 프랑스 문화원의 분원이 아니라는 점을 전혀 알지 못했다는 사실이 단적인 예다.
정동영의원 측은 문화저널이 보낸 서면질의서의 답변을 통해 “공식적으로 (프랑스 문화원)분원이냐 아니냐를 따지는 것도 의미가 있겠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실질적인 문화행사 개최와 문화교류 등 내용적으로 문화원의 역할을 다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입장을 보내와 나름의 ‘조사’를 거쳐 뒤늦은 의미부여에 나섰다.
문제는, 정 의원측이 밝혔듯 분원이냐 아니냐의 의미를 따지자는 것이 아니다. 사업을 추진하는 과정과 자세, 즉 첫 단추를 잘못 꿰어놓 은 상태에서 세인의 관심을 끌어모았던데 대한 ‘부정직함’, 사안을 끌어가는 원칙적인 태도에 대한 문제제기인 것이다.
또 문화계 한 관계자는 “프랑스 문화원측에서 전주를 전통문화 도시로서 인정하고 함께 준비한게 아니라 이쪽에서 미리 ‘판’을 다 준비해놓고 그저 들어와준것 만으로 ‘유치했다’는 말을 써가며 감격해 하는건 자세에도 문제가 있지 않느냐” 고 꼬집었다.
또 한가지, ‘프랑스 문화원’에 적지않은 예산을 선뜻 지원하고 나선 전주시와, 신청자들이 쇄도해 컷트 라인을 정할정도로 물밀 듯 밀려든 이사진(현 85명)들의 ‘과민 반응’에 대해서는 ‘문화 사대주의’라는 일각의 곱지않은 시선도 날아들고 있다.
이같은 비난을 그저 보수 논객들의 폐쇄성 정도로 치부하기엔 애정의 수위가 지나쳤다는 것이다.
도내 정?제계 인사, 언론의 환대 역시 들불처럼 일어났다. 자생적 지역문화에 대해서는 별반 눈길을 주지 않던 그들이 알리앙스 프랑세즈 개원에 이같은 절대적 지지를 보내온 까닭은 무엇일까. 그것은 프랑스 문화원을 앞세운 전주 알리앙스 프랑세즈의 이미지 메이킹 전략에 ‘포위’당했기 때문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결국 전주 알리앙스 프랑세즈 측이‘프랑스 문화원’이란 이름으로 이사진을 선임하고 대대적인 홍보에 나섬으로써 시민들과 각계 인사들을 ‘과잉 반응’케 하는 일종의 촌극을 빚어낸 셈이다.
당초 전주 알리앙스 프랑세즈는 문화원과 어학원의 두 가지 역할을 자임하며 한불 문화교류의 발판을 마련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심어줌으로써 적잖은 매력을 던져줬다.
전주시에서 개원 장소를 물색해주고 1천만원의 내부수리비를 지원하는 등 전폭적인 관심을 보내준 이유도 이같은 문화적 부가가치에 큰 기대를 품고 있었기 때문.
전주시 김선희 문화팀장은 “엄격히 말해 프랑스 문화원은 아니지만 공신력 있는 기관이기 때문에 지원을 결정하게 된 것이며 전주시가 과도한 반응을 보인다는 비판은 문화사대주의를 우려하는 사람들의 보수적 시각때문이 아니냐”며 일각의 비난을 일축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역의 문화인들은 전주시의 이같은 태도에 적잖은 불만을 토로한다. 음악인 김모씨는 “문화공연이나 행사에 그나마 지원금을 보조받기가 ‘하늘의 별 따기’인데 단지 외국 기관이라는 이유만으로 사설단체에 이같은 대대적인 지원을 보낸 것은 형평성에도 맞지 않을 뿐더러 이같은 태도가 바로 문화 사대주의의 증거가 아니냐”고 지적했다.
형평성에 대한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문화와 언어를 보급하는 모든 타국의 어학기구가 전주에 개원할 경우, 전주시에서는 이들 모두를 지원해 줘야 한다는 ‘억지 선례’를 스스로에게 남긴 셈이다.
결과적으로 실체 보다는 허상을 쫓는 ‘이미지 메이킹’시대의 단면이 전주 알리앙스를 둘러싼 해프닝으로 연출된 것은 아닌지 냉정히 뒤돌아 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