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11 |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사람 하나 만나기 위해 / 신명숙 공무
관리자(2008-11-18 18:50:47)
잊었다가도 가을이면 다시금 되뇌어 보곤 하는 시 구절 마냥, 가을날 해질 녘에 뜨락음악회를 찾아 나섰다.
마주하면 반가운 사람들 만나기 위해.
한창 음악회에 가는 것을 즐겨하던 예전에는 며칠 전부터 티켓 예매하고 프로그램 확인하며 미리 준비하는 과정들을 즐거움이라 여겼었다. 그러나 뜨락음악회는 아니다. 편안한 마음으로 저녁 산책길을 나서는 것처럼 가볍게 발걸음 해야 제대로 즐길 수 있다. 모처럼 박물관이 늦게까지 문을 열어 단정한 박물관 뜰에서 어둠이 내리는 것을 지켜볼 수 있는 때이기도 하다.
여느 때처럼 억새 하얗게 피어난 뜨락엔 온통 가을이 먼저 와 있다. 그리고 심통을 부리듯 뒤따라 온 비바람은 음악소리에 마음이 달래졌는지 어느 틈에 슬그머니 물러가고 있다. 소박한 선율들이 가을날 , 저녁 소풍을 나온 사람들에게 편안하게 안기어 온다. 옆 사람과 다정스레 소곤거려도, 살며시 일어나 객석을 벗어나 서성거리며 음악에 귀 기울여도 누가 뭐랄 사람이 없다.
그렇게 부담 없는 음악회를 마당에서는 해마다 한두 가지 찬으로 정갈하게 차린 밥상처럼 내어 놓는다. 화려하지는 않지만 소박함이 좋았고 또, 우리만의 정서가 함께 어우러져 스스로 만족스러웠다. 그랬기에 먼 길 마다 않고 해마다 가을이면 박물관 뜨락을 찾아 나서는지도 모른다. 예전에 비해 요즘에는 크고 작은 음악회가 여기저기서 열리곤 한다. 눈과 귀가 부지런하다면 부담 없이 참여할 수 있는 공연이 널려 있는 듯 하다.
문턱이 낮아진 문화소통의 마당들이 수적으로 많아 졌다는 것은 문화를 소비하는 입장에서 참 반가운 일이다. 그럼에도 기우에 지나지 않았으면 하는 , 서운한 마음이 살며시 고개를 들어 올린다. 함께 해야 할 즐거운 고민거리가 생긴다. 소위 문화가 대중에게 다가갈 때 그 눈높이를 어디에 맞추어야 할까. 단순히 문화가 아름다움을 향유하는 소비물로만 사용된다면 그것으로 만족할 수 있을 런지. 문화의 소비를 통해 철학적 사유와 정서의 재생산을 기대한다고 하면 고리타분한 이야기가 될 런지. 마당의 뜨락음악회는 감미로운 감성의 물결 속에 날카로운 이성의 명징함이 가슴 한켠에 자리 잡는, 그래서 마냥 편안하기만 하지 않은 자리이길 바란다. 내 곁의 당신까지 함께 아름다워야 하지 않을까. 10월의 어느 멋진 날, 가슴에 가득 고운 선율 담아 박물관을 나서는 길은 행복했다. 줄지어 선 느티나무의 붉은 단풍이 곱기도 했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