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11 |
예술의 사회참여와 자화상으로 바라 본 세상 / 이상조 전북대 교수
관리자(2008-11-18 18:49:17)
사)시대미술문화연구회에서 주최 주관하고 전라북도, 한국예총전라북도연합회, 한국농촌공사 새만금사업단이 후원한, ‘새만금을 보는 눈-내 안에 풍경전’이 가을의 끝자락처럼 느껴지는 10월 24일부터 10월 30일까지 전북 예술회관에서 열렸다. 사)시대미술문화연구회원들과 그들이 초대한 도내 청년작가들이 참여한 이 전시회는 아마도 ‘새만금’을 시각 예술가 집단의 담론의 장으로 끌어들인 최초의 시도라 보여 진다. 참가 작가들이 집단으로 현장을 방문하여 토론하고 작업에 임하는 형식의 전시회는 그간 전주에서도 몇몇 크고 작은 전시회를 통해 대중들에게도 익숙해져 있었기에 관심을 갖고 관람할 만한 일이었다. 전시회 타이틀에서 적시한 ‘새만금-내안에 풍경’이란, 새만금을 출품자 각자가 작위적으로 해석하겠다는 뜻으로 풀이되는바 어쩌면 새만금의 경제적 논리와 기대치에 관한 부담을 최소화하고 예술적 성취를 높이고자 하는 주최 측의 의도로 보인다.
그리고 이러한 컨셉이 집단화 작업에서 흔히 범하기 쉬운 획일화를 경계한다는 입장에서 성공한 의도였고 이 전시가 예술의 사회 참여라는 의미로 받아들일 수 있는 우려를 불식시킬 수 있었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아무튼 사)시대미술문화연구회가 지향하고자 하는 신진작가 발굴 지원 사업과 공공미술 사업은 어떻게 보면 이 사회가 할 일을 작가들이 대신하고자 나서는 것이다. 그 이유는 아직은 여러모로 준비가 되지 못한 이 사회에 원인이 있을 것이나 아무쪼록 예술의 공적 순기능을 잃지 말고 이 시대 미술문화를 준비해주길 바란다.
전시장을 돌아보면 이번 주에는 유독 인물을 주제로 한 작품전이 많이 눈에 띈다. ‘전북의 얼과 인물 특별전’(전주역사박물관 기획전시실), 제35회 청년작가 초대전‘박시완’(우진문화재단) 그리고 중국 작가 ‘설의’의 ‘비상하는 나의 마음’전이 그것이다. 중국작가 ‘설의’의 ‘비상하는 나의 마음’ 이란 명제의 개인전은 10월 22일부터 29일까지 서신갤러리에서 열렸다. 그는 중국 동부전력대학교 예술학원 부교수로 전북대학교 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수료한 작가로 그의 작업은 자화상의 형식을 통해 그가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을 관람자에게 보여준다. 그의 작업은 볼록렌즈를 이용한 사진 작업으로부터 시작된다. 볼록렌즈를 통해 왜곡되고 변형된 자기 모습을 그가 선택한 소품들, 예를 들면 나무 인형이라든가 오토바이, 화면보호기 등과 함께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드러낸다. 심지어 그는 3개월 가량 공들여 그린 극 사실 경향의 자갈이 화면 가득히 채워진 커다란 100호 F의 화면 중앙에 아주 작은 자기의 모습을 그려 넣었다. 공상 영화 베트맨을 연상 시키는 상의와 청바지와 흰 운동화를 착용한 채 베트맨이 잘 취하는 모습으로 옆구리에 양 손을 대고 떡하니 버티어 서서 심각한 모습으로 하늘을 우러러 쳐다보고 있다. 그가 볼록렌즈로 왜곡한 자기의 모습과 아메리칸 드림 차림의 자기 모습을 작게 표현한 의도는 현실에서는 있을 수 없는 모습을 드러내고 싶은 것이다. 즉 그는 초현실적 표현 기법으로 ‘세속적 현실 생활 속에 처해 있는 현대 도시인들의 정신 상태를 반영하고’ 싶은 것이다. 작품 하나하나 마다 나타나는 푸른 하늘, 원형 구도 중앙에 그려진 창공을 나는 나무 인형, 땅에서 튀어 오르는 모습의 자화상 등등 그는 끊임없이 날고 싶어 한다. 그가 그의 예술을 위해 과감히 잘라버린 머리카락과 중국인 특유의 남자상의, 그리고 금속제의 질감의 소품은 화면을 더욱 자극 한다.
그리고 그의 화면을 자극하는 것은 그 것들만이 아니다. 그의 화면에 드러난 색채는 과연 어떤가. 그의 표현을 빌어서 ‘냉담하면서도 세계를 방관 주시하는 익살스러운 색채’라는 그의 말이 사실로 느껴지지 아닐지라도 독특한 그의 색채선택은 그의 의도에는 최대한 접근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필자는 그의 작품 ‘비상하는 나의 마음 -화면보호기’를 보고 있으면 그의 익살스런 표정과 자세, 그리고 과장시키고 단순화한 손과 발, 과감하게 트리밍된 신체의 부분들이 전해주는 화면의 매력에 흠뻑 빠져 인간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또한 그가 그의 작품 속에 마지막으로 숨겨놓은 복선-잔디밭을 그려내며 남겨 지거나 운동하는 모습의 자화상 넙적 다리에 남겨진 표현주의적 흔적들(물감덩어리들)-은 그가 현대 미술의 다양함을 이해하고 있다는 사실을 잘 알게 해 준다. 어쩌면 그는 고향을 떠나 뉴욕이나 베를린 또는 파리와 같은 세계 현대미술의 각축장이 아닌 현대미술의 제 3세계라 일컫는 이 곳에서 훌륭한 연출가로 변모되어 가고 있는지 모른다. 그가 어느 때에는 그렇게도 힘들어했던 인간관계를 이겨내면서 가슴 속에 각인된 고통을 승화시키는 방법을 그의 예술을 통해 얻었는지 모른다.
그리고 그의 예술은 관람자가 다시금 인간을 돌아볼 수 있게 만든 것만으로도 값진 것일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