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11 |
얼굴은 달라도 우리는 하나 환경 지킴이가 되다 / 이동훈 성균관대 2년
관리자(2008-11-18 18:48:45)
Little Ramsar
휴학을 결심하고 의미 있는 일을 찾고 있었다. 전주환경운동연합 김진태 처장님께 전화가 왔다. 아시아 각 국의 청소년들이 한 자리에 모여 우리의 환경과 습지에 관한 사례와 경험을 나눌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하는데 함께 일 해보는 것이 어떻겠느냐는 내용이었다. '환경'이라는 공통의 관심사를 가진 아시아의 친구들을 만날 수 있다는 것은 정말 멋졌다. 그래서 주저 없이 'Little Ramsar 전주 아시아 청소년 환경캠프'에 몸을 실었다.
만남, 설레임
하루, 이틀 행사를 준비하며 설레임과 초조함이 마음속에서 자꾸만 같이 자라난다. 그래도 기대와 설레임이 더 크다. 얼굴도 모르는 몽골, 필리핀, 미얀마, 스리랑카, 일본, 중국, 말레이시아의 친구들에게 영어사전을 뒤져가며 이메일을 보내고 협의를 하는 것이 신기하다. 그리고 어떤 사람일지, 어떻게 생겼을지 궁금함도 시간이 지날수록 커지고 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Little Ramsar 전주 아시아 청소년 환경캠프'가 시작 되던 날. 시작 시간보다 먼저 도착해서 무대 준비도 하고, 접수대도 꾸리고, 이젤도 설치하고… 바쁘게 준비하고 있는데 "Excuse me"가 들렸다. 심장이 쿵쾅쿵쾅 뛰고, 군대 가서 첫 면회 때 부모님을 기다릴 때만큼 설렌다. 중국팀이 제일 먼저 행사장에 들어섰다. 이상하게 처음 봤는데도 반갑다. 이어서 몽골, 필리핀, 미얀마… 계속해서 외국 참가자들이 도착한다.
행복 #1
참가자들을 자리로 안내하고 나서 다시 한 번 진짜 행사가 시작되었음을 느꼈다. 첫 번째 순서는 전주천 민물조개 방사 퍼포먼스. 피부색이 다르고, 쓰는 언어도 다른 친구들이 언제나 곁에 있어서 지켜봐 왔던 우리 전주천의 건강을 기원하며 민물조개를 방사한다. 그 모습을 보고 있다가 가슴이 뜨거워짐을 느꼈다. 뜨거운 감자를 실수로 바로 삼켰을 때처럼 뜨거웠다.
이어서 각 국의 사례발표가 이어졌다. 중국은 외래종의 효율적인 이용을 통한 건강한 생태 만들기에 대해 이야기 했다. 무조건 외래종을 배척하기 보다는 이용함으로써 자국의 생태계에 도움을 주게 만든다는 아이디어가 참신했다. 필리핀은 시청각 자료를 이용한 아이들을 위한 환경교육에 대한 사례를 발표했고, 미얀마는 가난한 원주민들과 그들의 개발논리 사이에서 그들의 숙제를 풀기위해 노력하는 모습을 전달했다. 잘 알지 못했던 아시아 다른 나라들의 환경 실태를 파악하고, 이해하면서 우리나라와 비교할 수 있는 정말 좋은 시간이었다. 8개국의 친구들이 모여 환경을 주제로 이야기 하는 것만큼 서로의 문화를 이해하는 것도 좋은 경험이 될 것이라 생각해서 우리는 발표자가 전통의상을 입을 수 있도록 준비해 달라고 요청했었다. 여기서 생긴 에피소드 하나. 다른 팀들은 옷을 갈아입는데 전혀 문제가 없었는데 일본팀에서 문제가 생겼다. 수천만원을 호가하는 기모노를 절대 화장실에서 갈아입을 수 없다는 것이었다. 급하게 탈의실을 섭외하여 일본팀 발표자는 무사히 발표를 할 수 있었다.
사례발표가 끝난 후에는 몽골의 전통춤, 필리핀의 전통춤 공연이 이어졌다. 이어서 한국 청소년 댄스팀의 공연과 한벽극단의 한국적 리듬과 멜로디가 살아있는 퓨전공연으로 공식적인 개막일 행사는 마무리 되었다. 숙소인 송광 야영장으로 갔다. 거기서 간단한 자기소개를 하는 시간을 가졌다. 당일 입국한 참가자들이 많고, 둘째날의 빡빡한 일정을 고려하여 모두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행복 #2
행사 시작 둘째날 아침이자 첫 번째 맞는 아침. 한식과 양식, 채식주의자들을 위한 음식까지 모든 것이 준비된 아침식사를 마치고 가까운 곳에 있는 송광사를 찾았다. 한국의 불교, 한국의 스님, 한국의 절을 보고 외국인 친구들이 연신 셔터를 눌러댄다. 무엇을 느끼고 있을까 궁금했지만 물어봐도 대답을 알아듣지 못할 것 같아 그냥 참았다. 조금 후회가 된다. 다음 행사 때 꼭 물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오늘의 주요 일정인 만경강에 도착했다. 만경강에서는 보트 탐사팀과 수서곤충 및 어류 탐사팀으로 나뉘어 진행 되었다. 낙엽이 우거진 가을의 만경강변은 우아한 정취를 뽐내고 있었고, 그 아래에서 정신없이 낙엽을 줍고 있는 참가자가 보인다. 가까이 가 보니 필리핀 팀의 막내다. 가만히 있다가는 또 내년에 물어볼 일이 하나 더 생길 것 같아서 같이 낙엽을 주우며 왜 줍는지 물어봤다. 트레이드 마크인 함박웃음을 지으며 대답한다. 필리핀에는 낙엽이 없어서 친구들에게 줄 선물을 모으고 있는 중이라고 했다. 생각해 보니 필리핀에는 낙엽이 없을 것 같기도 하다. 다시 고개를 들어 바라보니 옷을 갈아입은 만경강의 나무들은 정말 아름다웠다. 함께 낙엽을 줍고 있는 동안 보트 탐사팀은 저만치 탐사를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는 보트 두 대가 서로 시합을 한다. 구호에 맞춰 노를 젓고, 옷은 물에 젖는다. 그래도 즐거운 소리만 들린다. 수서곤충, 어류 탐사팀은 벌써 족대질을 하며 물놀이까지 하는 중이다. 아시아가 만경강 안에서 하나가 되어 강물에 퍼진다. 아름다운 강물, 아름다운 강변, 아름다운 사람들…. 아름다운 만경강이었다.
다음은 국내팀 사례발표 차례. 저 멀리 경기도에서부터 전라도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습지 보전 활동과 아이들의 생태적 감수성 연마(?)의 사례가 발표된다. 자연 속에서 웃고 있는 아이들이 행복하다. 그리고 들로, 산으로 아이들과 함께 해 주시는 지도 선생님들께 감사하는 마음을 가져본다. 그리고 책상 앞에 앉히는 대신 들꽃과 산벌레 앞에 아이들을 풀어주신 부모님들께도 감사하는 마음을 갖는다.
다시 송광 야영장으로 돌아왔다. 둘째날 밤에는 모닥불에 고구마를 굽기로 했다. 쿠킹호일 없이 고구마를 굽기 위해 전문가까지 초빙했다. 확실히 모닥불은 서로의 마음을 열고, 손을 잡게 하는 마력을 가진 듯하다. 이제 우리는 서로에게 모든 마음을 열었다. 일본팀은 무반주에도 "쏘란, 쏘란"을 외치며 무지하게 긴 전통춤을 끝까지 해냈고 박수를 받았다. 바통을 이어 받은 필리핀 팀은 준비해온 전통 악기를 하나씩 나눠주고, 강습까지 하는 시간을 가졌다. 한국, 중국, 일본, 몽골, 필리핀, 미얀마, 스리랑카, 말레이시아 8개국의 명예를 건 대표들의 악기실력 대결이 한 판 벌어졌다. 모두가 신나고, 모두가 즐겁다. 이제 모두가 친구가 되었다. 친구가 된 기념으로 노릇하게 잘 익은 군고구마가 한 무더기 차려진다. 시작할 때까지만 해도 같은 나라끼리 모여 있었는데 이젠 그냥 끼리끼리 모여서 놀고 있다. 송광 야영장의 모닥불 앞에서 아시아의 청소년들이 하나가 되었다. 고구마가 꿀맛이다. 진행팀이 정리하기 전까지 참가자들은 잠들 생각이 없어 보였다.
행복 #3
'Little Ramsar 전주 아시아 청소년 환경캠프' 세 번째 날. 대한민국뿐만 아니라 이 세상의 모든 철새들에게 미안한 새만금 간척사업이 이루어지고 있는 현장을 찾았다. 대회에 참가한 다른 나라들 또한 철새들의 중간 기착지로서의 역할을 담당하고 있지만 그 규모와 능력에서 새만금을 따라갈 수는 없다. 그래서 새만금은 중요하다. 세계적인 습지 파괴 현장을 찾았다. 거전 갯벌에서 갯벌택시를 타고 가까이에서 바라본 갯벌은 더 이상 갯벌이 아니다. 생선 썩은 냄새가 진동한다. 숨 쉬지 못하고, 생명을 품지 못하는 갯벌은 더 이상 갯벌이 아니다. 세계적인 갯벌 파괴를 막지 못한 미안함이 가슴속에서 일어난다. 내·외국인 참가자들 모두 인상을 찌푸린다. 죽어가는 갯벌 앞에서. 그래도 아직 살아 있는, 아니 죽어가는 갯벌에서는 '아직' 죽지 않은 게도 있고 조개도 있다. 하지만 땅을 파 보면 그 안에 품고 있는 모든 것이 죽어있다. 살아 있어야 생명이고, 갯벌이다. 환경에 대한 살생은 이제 그만 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사람을 죽이는 것도 나쁘지만, 사람만을 위한 것이 아닌 자연을 죽이는 것은 더 나쁘다. 새만금을 뒤로 하고 전주 객사 주변을 자유롭게 관광하는 시간이 이어졌다. 한국 노래를 많이 알고 있던 몽골 친구들은 원조 한국 노래방에 가보고 싶은 꿈을 이뤘고, 모범생 말레이시아 친구들은 주최측에서 마련한 한옥마을 가이드 투어에 올랐다. 어쨌든 전주시내 관광을 마치고 돌아온 모든 참가자들의 얼굴과 목소리에 전주가 꽉 들어차 있음을 느낄 수 있었으니 기쁘다.
전주에서의 마지막 밤을 보내며 각 국의 대표단이 한 자리에 모였다. 전주환경운동연합 김진태 처장님의 진행으로 '제 1회 Little Ramsar 전주 아시아 청소년 환경캠프' 선언문과 행동지침 문안을 회의했다. Little Ramsar에 대한 참가자들의 뜨거운 열의를 볼 수 있어서 아주 좋았다. 열띤 토론과 토의는 사랑 없이는 나오기가 쉽지 않은 것이다.
새벽 3시. 첫 번째 출발팀은 미얀마팀이다. 안녕!
작별
마지막 날 아침. 분주히 아침 식사를 하고 폐막식에 참석하러 갔다. 폐막식에서는 경쟁으로 치러진 국내팀의 시상과 모든 참가자들에게 수여되는 수료증 전달이 있었다. 하지만 시상보다 중요한 것은 뜨거운 우정이었고, 아쉬움의 눈물이었고, 작별의 포옹이었다. 외국 참가자들은 고국에서 가져온 선물들을 나눠주느라 정신이 없었고, 한국의 참가자들 역시 이방인 친구들과 연락처를 주고받느라 정신이 없었다. 진행팀도 아쉬움을 달래느라 정신이 없었다. 다들 정신없이 작별의 인사를 나누고 있었다. 아까 그 필리핀 팀의 막내는 한국에 더 있고 싶다며 성화다. 고맙다.
다음 대회를 기약하며 포옹을 하고, 악수를 하고, 눈인사를 하고, 또 손을 잡고…. 떨어질 줄을 모른다. 그래도 헤어져야 다시 만날 수 있다고 생각하며 버스를 떠나보냈다. 하지만 내 마음속의 버스는 아직도 시동을 걸어 놓고 빨리 이방인들이 버스에 오르길 기다리고 있는 그대로 서 있다. 아, 환경오염 되니까 시동은 꺼둬야 하겠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