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11 |
숲 보기, 읽기, 담기
관리자(2008-11-18 18:48:01)
우리 전북은 바다와 산과 들이 어우러진 천혜의 고장이다. 동쪽의 고원지대부터 출발해서 서쪽으로 내려서면 너른 평야가 펼쳐지고 그 끝에는 바다가 있다. 곳간 있는 곳에 인심난다고 했던가. 다양한 환경이 어우러진 전북이 인심이 후한 것은 다 이유가 있다. 삭막한 콘크리트 빌딩에 둘러쌓인 도시 생활이지만 이십 여분만 차를 타고 나가도 우린 단풍과 낙엽들을 손쉽게 만나볼 수 있다. 기린봉 코 밑까지 아파트가 들어 섰지만 아직은 산세를 유지하고 있기도 하다. 도심 속 소음을 떠나 숲 속으로 들어가 보자.
지난 10월 7일부터 전북환경운동연합과 전북일보가 공동으로 주최하는 ‘2008 초록시민강좌’가 전주시평생학습센터에서 열리고 있다. 10월 7일 안철수 카이스트 석좌교수의 강연을 시작으로 14일에는 숲전도사로 명성을 날리고 있는 국민대학교 전영우 교수가 ‘숲’을 주제로 강연을 했다. 그 내용을 정리하여 옮겨 싣는다. 숲이 주는 풍요로움과 우리 숲의 가치를 재인식하게 되는 시간이 되리라 믿는다. 앞으로 문화저널에서는 몇 개의 강좌를 지상중계한다. 이번 초록강좌를 통해 환경에 대한 관심과 우리가 미처 깨닫지 못하고 있던 우리 주변의 생태환경을 다시 되볼아 보는 계기가 되고, 미처 참석하지 못한 독자들의 아쉬움을 달래보고자 한다.
나무에서 받게 되는 경외감
가장 오래 사는 생명체, 가장 몸뚱이가 큰 생명체, 가장 키가 큰 생명체는 무얼까요? 어린왕자가 가장 무서워하는 생명체는 무얼까요? 가장 오래 무려 오천년을 사는 브리스톨 콘 소나무입니다. 겨우 백년사는 것을 가지고 우리는 허덕거리는데 이런 나무 옆에 서면 나무라고 하는 생명체가 무엇인지 고민하지 않을 수가 없지요? 그 나무들이 모여 사는 화이트마운틴이라는 곳은 해발 3,000m가 되는 장소입니다. 단군이 한반도에 틀을 잡고 고조선이라는 나라를 열었을 적에 이 나무는 지켜보고 있었을 거에요. 대륙 동쪽에 나라를 열었구나 하고요. 자이언트 세콰이어라는 나무는 키가 80m에 달하고 나이는 한 삼천 년 정도 먹었습니다. 나무 밑둥은 육차선 고속도로 폭 만큼 넓습니다. 이 나무를 베면 방5개짜리 목조가옥을 한 삼백 채 정도 지을 수가 있습니다. 이 나무는 키가 112미터까지 자랍니다. 지구상에 사는 생명체 중에 가장 큽니다. 저런 나무 앞에 한번 선다면 거기서 오는 경외는 아주 대단합니다. 아무리 자연에 대한 감흥이나 교감을 못 느끼는 사람일지라도 이런 나무 앞에 서면 인간의 삶이 뭔가 그리고 자연의 일부인 나무는 뭔가라고 우리는 얘기할 수 있을 겁니다.
‘문명 앞에 숲이 있고 문명 뒤에는 사막이 남는다’
오늘 얘기하고자 하는 것은 나무와 숲에 관한 얘기입니다. FAO는 ‘20세기 한국의 성취’라고 얘기했고, 세계적으로 유명한 환경저술가 레스터 브라운은 ‘세계적 성공사례’라고 했고, 또 누구는 ‘한민족의 자존심이다’라고 했습니다. 레스터 브라운은 ‘대한민국이 세계의 모델이다’라면서 세계를 다시 숲으로 덮을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FAO는 1982년도 연차보고서에서 ‘대한민국은 2차 대전 이후에 국토를 녹화한 유일한 개발도상국’이라고 밝혔습니다. 연세가 지긋하신 분은 아마 식목일쯤 돼서 나무 심는 부역에 인부로 차출되어 나무를 심은 경험이 있을 겁니다. 나무와 숲에 관한 유명한 경구가 하나 있습니다. ‘문명 앞에 숲이 있고 문명 뒤에는 사막이 남는다’ 프랑스의 낭만파 문인이자 외교관인 샤또 브리앙이 이백년 전에 설파한 것입니다. 인류 4대문명 발상지에 이 경구를 대입하면 딱 맞아 떨어집니다. 인류문화사적으로 숲을 복구한 나라는 엄격하게 얘기하면 단 두 나라뿐입니다. 한 나라는 그것을 산업혁명기인 18세기에 이루었습니다. 오늘날 세계에서 숲을 가장 잘 가꾸는 나라, 산림에 대한 기술이 가장 앞선 나라, 임업과학기술·환경정책이 가장 앞선 나라 바로 독일입니다. 이백년 전에 그 당시 강국인 네덜란드는 해군력과 상선을 유지하기 위해 목재가 필요했고 독일로부터 목재를 충당했습니다. 마치 우리나라의 오육십 년대만큼 숲이 사라져 참혹했습니다. 그 숲을 산업혁명과 함께 복구시켰습니다. 독일의 숲은 이백년의 역사가 있기 때문에 벌기가 몇 번 지나가서 임업기술이 앞서 있습니다.
우리 숲은 세계적 자랑거리
식민지수탈과 전쟁의 참화를 겪은 나라, 국제 유수의 언론이나 국제기구나 이 나라를 본받으라고 하는 나라, 오늘날 제3세계의 여러 나라에서 이 나라의 녹화기술을 배우기 위해서 오늘도 이 나라에 오고 있는 나라, 그런데 정작 그 나라 국민들은 하늘이 만들어 준 양, 제 스스로 생긴 양 치부하면서 자기들이 가지고 있는 것의 가치에 대해서 알려고 하지도 않고 어떤 의미가 있는지 고민하지 않는 나라. 바로 우리나라입니다. 세계인들이 칭찬을 아끼지 않습니다. 그런데 우리들은 그 가치나 의미를 별로 모르고 있습니다. 왜 숲이냐? 우리는 인류문명발전에 기여한 우리만의 독특한 것이 있는가? 철학이나 사상이나 종교나 또는 특별한 발명이나 생각을 해 봤으면 합니다. 어떤 이는 한글을 얘기하기도 합니다. 또는 경제적 기적을 얘기하기도 합니다. 21세기는 흔히 환경과 문화의 세기라고 합니다. 우리가 세계에 자랑할 만한 것은 산림학자의 입장에서 ‘숲’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자랑하고 떠벌려도 결코 지나치지 않습니다. 너무 그 가치를 모르고 있기 때문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 알려고 하지도 않기 때문에 산림학자인 제가 얘기하게 됩니다. 1930년대 일제 때의 사진이나 6·25전쟁 직후의 사진들을 보면 중동지역의 사막과 별반 다르지 않은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숲은 찾아볼 수 없습니다. 일제의 식민지수탈, 6·25전쟁을 통해 우리 숲은 망가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지난 30여 년 동안 무려 200억 그루를 심었습니다. 그 중 100억 그루 정도는 죽었습니다. 박정희 대통령은 ‘애국가를 부르며 산으로 가자’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나무를 심었습니다. 그래서 조선조 이래로 베어 먹고 방치했던 약탈식 산림이용 대신 재생적 산림이용의 시대로 접어들게 되었습니다. 그 당시 우리는 어떻게 나무를 심었는가? 요즘의 조사, 연구의 대상이기도 합니다. 국민소득이 200불정도 일 때 우리는 나무를 심었습니다. 아이를 업고 가서 나무를 심기도 했습니다. 미국잉여농산물, 즉 옥수수가루를 타기 위해서라도 아낙네들이 아이를 업고 나왔습니다. 거저 얻은 것이 아니라는 얘기입니다. 민둥산이 울창한 숲으로 태어나게 된 것입니다. 바닷가에 있는 해안사구는 나무가 살지 못하기 때문에 일일이 산에서 흙을 가져다가 나무를 심어서 오늘날과 같은 숲을 만들었습니다. 여러분 주변에서 볼 수 있는 모든 숲은 나무를 심은 곳입니다. 우리 앞선 세대가 나무를 심은 덕분입니다. 그 당시에는 얼어 죽지 않기 위해서 나무를 주변에 있는 가까운 곳에 있는 임산연료를 장작이라고 해서 땔 수 밖에 없었습니다. 대도시 주변에, 사람들 손길이 가는 주변에 있는 대부분의 산은 우리가 만든 인공림입니다. 그 의미를 무시해서는 안 됩니다. 전남 장성에 있는 축령산의 삼나무 편백숲에 주목하시기 바랍니다. 1950년대 후반부터 삼십년 동안 임용복씨가 약 사백 헥타르의 숲을 별천지로 만들었습니다. 오늘날은 산림학을 하는 사람이나 환경에 대해 관심이 있는 사람은 한번은 다녀와야 되는 곳입니다. 한 개인의 의지가 국토의 얼굴을 바꿀 수 있다는 사례를 볼 수 있는 곳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어떻게 보면 앞선 세대가 심은 혜택을 누리고 있는 지도 모릅니다. 우리가 자긍심, 자존감을 가져도 됩니다. 또 정부는 손 놓고 있었는가하면 그렇지는 않습니다. 영동고속도로가 지나는 대관령휴게소 근처는 독일의 산림학자들이 겨울이 길고 바람이 강하고 춥기 때문에 숲을 가꿀 수 없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나무 하나마다 모두 말목을 해서 바람에 맞서게 하고 방풍막을 쳐서 숲을 만들어 냈습니다. 오늘날 여러분이 찾는 숲이 만들어 진 것입니다. 국토의 3분의 2가 산림으로 이루어진 나라에서 산림이 갖는 의미가 무엇인지 알 필요가 있습니다. 세계는 한국의 산림녹화에 칭송을 아끼지 않고 있습니다. 이 시간을 통해서 강조하고 싶습니다.
북한기아탈출의 첫 단추는 산림복구부터
북한은 70년대까지 산림축적이 남한보다 좋았습니다. 오늘날 남한은 삼천평, 1헥타르에 약 100입방미터입니다. 70년대에 우리는 15~20입방미터였고 북한은 우리의 두 배가 넘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식량증산을 위해서 다락밭이 산꼭대기에까지 들어서 있습니다. 북한이 지난 90년대부터 왜 외국의 식량원조에 의존하게 되었는가? 산림학자의 입장에서는 숲을 망가뜨렸기 때문입니다. 숲은 녹색댐입니다. 비가 오면 빗물을 머금는 스폰지와 같은 역할을 합니다. 갈수기에 물을 서서히 흘려 보내는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설악산이나 지리산 같은 곳에서 비가 오지 않아도 계곡에 물이 흐르는 이유는 숲이 녹색댐의 역할을 하기 때문입니다. 숲이 망가지면 스폰지를 이루고 있는 산림토양이 빗물과 함께 하천으로 쓸려 내려가게 됩니다. 하천으로 쓸려 내려간 토양은 하상을 높이게 되고 작은 비에도 홍수가 나게 되고 작은 가뭄에도 큰 한발이 들게 합니다. 당연히 농사는 흉년이 될 수 밖에 없습니다. 남한에서도 북한의 산림복구를 위해서 다양한 활동을 전개하고 있는데 북한을 기아로부터 구해내려면 제일 먼저 숲을 복구해야만 합니다. 학생들과 함께 백두산을 갔다가 두만강 상류 쪽으로 하산을 했는데 중국 쪽은 숲이 울창했지만 북한 쪽은 참혹했습니다. 숲의 가치를 알려고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지금까지는 우리 숲을 어떻게 볼 것인가, 즉 숲보기였습니다.
숲을 통해 본 한국인의 자연관
두 번째는 숲 읽기입니다. 나무나 숲을 통해 본 한국 사람의 자연관에 대한 이야기해 보고자 합니다. 경상북도 안동군 길항면 용계리에는 칠백년 된 은행나무가 있습니다. 이 나무 인근에 임하댐이 들어서서 물에 수몰될 위기에 처해 있었습니다. 용계리 주민들은 할배나무라고 부르는데 안동시청에 가서 이 나무를 살려내라고 요구했습니다. 20억 원의 비용을 들여서 인공섬을 만들고 4년에 걸쳐 상식공사를 했습니다. 이 나무를 베어서 팔면 목재 값은 한 이천 만 원 정도 나온다고 합니다. 오늘날 경제원리가 엄격하게 작동하는 세태에 가능한 일인가? 지금은 생태관광지가 됐습니다. 석송령 소나무, 부자소나무로 알려진 나무가 있습니다. 수령은 육백년 정도 됐습니다. 이 나무는 일제 시대에 예천군 감천면 토지대장에 보면 소화2년(1927) 이수복이라는 사람이 토지와 집을 석송령에게 남겨줍니다. 매년 예천군은 석송령 소나무에게 재산세를 부과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석송계를 모아서 계총무가 납부하고 있습니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는가? 경북 청도에는 역시 칠백년 정도 된 천연기념물인 소나무가 있습니다. 음력 삼월 삼짓날 제비가 돌아오는 날이 되면 비구니들로부터 물 12말을 막걸리와 섞어서 공양을 받고 있습니다. 벌써 몇 백 년 째 해오고 있습니다. 조선왕조실록에는 소나무와 관련된 기사가 칠백여회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송충이구제를 어떻게 해라, 누가 능역에 들어가서 소나무를 베었으니 귀양 보내라 등의 기사가 있는데 어디에도 세조임금이 법주사 행차하는 길에 정이품 소나무가 가지를 들어 올려서 타고 가는 연이 걸리지 않게 되어 정이품을 하사했다는 기록은 없습니다. 전설인 것입니다. 사실처럼 믿는 것입니다. 나무가 무엇일까? 도대체 왜 이런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에 대해서 의문을 가져 보아야 한다. 창덕궁 후원에 영견당이라고 하는 사대부 한옥이 있습니다. 그 안쪽 정심수에는 아주 민망한 돌이 꽂혀 있어요. 갈라진 가지 틈을 여성의 성기라 보고 남성을 상징하는 양석이 박혀 있는 겁니다. 성적 감흥을 불러내는 모방주술행위라 볼 수 있어요.
왜 우리 조상들은 나무까지 시집을 보내려 했을까요? 삼국사기나 삼국유사에 모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경주 부근 오금산 자락에는 여성의 성기를 닮은 여근곡 숲이 있는데 그 숲에 백제군사가 있으니 빨리 가서 물리치라는 이야기가 실려 있습니다. 왜 우리 조상들은 자연을 살아 있는 유기체로 보았는가? 도대체 자연이 무엇이길래 벼슬도 주고, 재산도 주고, 술로 대접도 하고, 결혼도 시키고 마치 자기 가족처럼 유기체로 보았는가? 어떤 이유 때문일까요? 나무를 향한 우리 감성의 발로는 아무리 현대화 되어도 끊어지지 않고 이어지고 있습니다. 이것은 미신이라고 보지 않아요. 이것은 자연과 인간을 이어주는 매개체로서 아주 아름다운, 우리가 유지하고 지켜야 할 것이라고 봅니다. 원주에는 성황림이 있습니다. 숲 자체가 종교의 대상이 되고 있고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어 있고, 경주의 계림에는 김알지의 신화가 있습니다.
왜 우리 조상들은 숲을, 나무들을 살아있는 인격체나 유기체로 봤는가? 왜 종교의 대상이나 한 부족이나 씨족의 시작으로 봤는가? 또는 우리는 분명한 줄거리가 있는데 하필이면 단군이 태백산 신단수, 즉 박달나무 아래에 신시를 열었을까? 왜 바위도 들도 강도 아닌 신단수일까? 바로 하늘과 땅을 연결시켜 주는 연결고리였을 것이다라고 얘기할 수 있을 겁니다. 이런 자연관은 자연에 대한 배려와 예의에서 싹트고 문학에 뿌리 내리고 우리들의 삶 속에 녹아들어 있기 때문에 오늘날조차도 정보화의 강풍이 부는 속에서도 그 연결고리를 끊지 않으려고 우리의 마음을 표하는 것은 아닌가 합니다. 이건 이제 서구에서 환경문제가 심화되니까 어떻게 하면 자연과 인간이 공생을 꾀할까하는 면에서 좋은 모델이 될 수 있습니다. 우리 것에 이미 있어왔기 때문입니다. 우리 숲의 의미, 나무와 숲을 통해 본 우리 자연관의 의미를 옳게 읽어야 우리 것에 대해서 더 당당할 수 있을 것이고 이른바 생태주의, 생태사상을 외국의 것에서 찾을 것이 아니라 우리 것에서 찾을 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현대인들이 숲을 대하는 태도-숲 담기
그 다음은 담기의 방법입니다. 우리 사회는 어떻게 숲을 보고 있는가, 또 그것은 어떻게 표출되고 있고, 어떤 문화현상이 나타나고 있는가를 정확하게 알아야 숲은 우리 삶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를 생각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예를 들어보면 아파트 모델하우스를 오픈하면서 이 아파트가 시설이 좋은지, 교통이 얼마나 좋은지 언급하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단순히 숲에 산다는 광고를 볼 수 있습니다. 아파트는 전혀 보이지 않으면서 말입니다. 이름에도 숲을 차용하는 경우까지도 있습니다. 왜 녹색을 팔고 있는가? 교육여건이나 쇼핑, 교통은 언급하지 않고 숲과 녹색을 판매하고 있는 겁니다. 우리들의 녹색을 향한 바램은 소위 그린 프리미엄으로 나타나고 있기도 합니다. 숲이 아파트의 가격을 결정하고 있는 것입니다. 1억 5천만 원의 차이가 있는 경우도 볼 수 있습니다. 서울의 경우 한남동, 성북동, 평창동의 예를 들어 보자. 재벌들이 살기도 하고 외교공관이 있기도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숲이 있다는 것입니다.
환경행태학, 녹색심리학의 연구 중 숲이 있는 공공주택에 사는 사람들의 사회성과 그렇지 않은 경우를 비교분석하니 숲이 있는 곳에 사는 사람들이 공공성을 위해서 잘 뭉치고 사회적 비용을 줄이기 위해 절제하는 모습들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숲이 있는 곳은 찾아오는 방문객 수마저도 더 많습니다. 우리나라의 경우에도 여관과 술집이 1% 늘면 강력범죄는 20% 증가하고 녹지면적이 1% 늘면 범죄는 1% 줄어든다는 결과도 있다. 일본에서는 개발사업에 의해 녹지가 없어지면 이지메와 같은 현상이 증가한다는 결과도 나왔습니다. 켄실베니아 주립대학교 울리시 교수의 연구에 의하면 수술환자를 두 그룹으로 나눠 숲이 보이는 경우와 그렇지 않는 경우를 비교분석했더니 숲이 보이는 쪽의 환자들이 훨씬 빠르게 회복하고 항생제에 대한 부작용이 적을뿐더러 의료진에 대한 불만도 적었다고 사이언스지에 발표하기도 했습니다. 그때부터 녹색에 대한 연구가 확산, 촉진되게 되었습니다. 교도소의 죄수를 상대로 한 연구에도 숲이 보이는 쪽창이 있는 수감자의 경우 의무실을 찾는 경우가 훨씬 적다는 연구결과가 발표되기도 했고 창이 없는 사무실의 경우에는 4배 이상 그림, 포스터를 많이 부착하고 그 중 75%는 녹색과 관련이 있는 것이라는 결과도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경우 직장근처에 숲이 있는 경우의 직무만족도와 이직률을 조사한 결과 숲이 있는 쪽이 직무만족도가 높고 따라서 이직률도 낮다는 결과도 있습니다. 학교의 경우에도 숲이 있는 경우 애교심과 학교에 대한 소속감, 인성발달, 환경의식이 더 높게 나타나기도 했습니다.
숲의 가치를 알고 숲과 소통하는 삶
마지막으로 숲을 어떻게 봐야 되는지, 우리 조상들이 쌓아온 자연관을 어떻게 읽을 것인가, 그런 숲을 어떻게 담아야 될 것인지 얘기하겠습니다. 제가 숲 안내를 하는 경우 맨발을 벗게 합니다. 처음에는 대단히 불만이 많이 나옵니다. 여성문인 오십 인과 용문산 뒤 문필봉을 오른 적이 있었습니다. 낙엽이 가득한 곳에 앉으라한 후 앞의 낙엽을 걷어 흙을 파 냄새를 맡아 보게 했습니다. 우리가 잊고 있던 인공의 냄새에 길들여 있던 감각이 우리 조상들의 세계로 인도하게 됩니다. 하산 후에 맨발로 걸은 기분이 마치 첫날밤을 회상하게 했다라거나 내 작품에 흙냄새를 모티브로 넣고 싶다라고 하는 반응들이 나왔습니다. 숲은 우리 조상들과 연결해 주는 가장 중요한 연결고리일지 모릅니다. 전주의 번화가에 가만히 서 있어 봅시다. 거기서 듣는 소리, 맡는 냄새, 보는 시각들은 30년 전의 과연 그것들일까? 백 년 전 우리 앞선 세대가 맡았던, 체험했던 그런 것들일까? 아닙니다. 모두 인공적인 것입니다.
교양과목을 수강하는 학생들에게 한 학기 동안 나무하고 얘기한 것을 레포트로 제출하라 한 적이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반발이 심했습니다. 그러면 어릴 때 생명이 없는 인형은 어떻게 가지고 놀았는지, 의사소통을 할 수 없는 애완견과는 어떻게 그렇게 잘 지낼 수 있는 지를 얘기합니다. 학기 종료 후 레포트를 받아보면 나무와 대화를 하면서 고민과 좋았던 일 등을 어느 순간 나무한테 전달하는 내 자신을 발견하게 되었고, 무슨 일이 있으면 나무 밑에 가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되었고 그래서 그 장소, 그 나무가 있는 내 학교가 더 특별한 학교가 되었다고 한다. 게다가 내가 자연과 소통할 수 있게 되었다는 보고서를 제출하게 됩니다.
결국 자연을 어떻게 받아들일까. 오늘 보름달이 너무 고맙고 귀해서 그 감회가 새로웠습니다. 바로 우리 옆에 있는데. 바빠서 또는 소통할 줄 몰라서 우리는 가슴에 담지 못하고 있습니다. 저는 물질적인 만족은 이룰 수 없다고 봅니다. 좀 더 좋은 자동차, 아파트, 카메라 등등. 아직껏 한 번도 휴대폰을 바꾸지 않고 쓰는 사람이 과연 있는지. 산업사회라는 것은 끊임없이 욕망을 확대, 재생산시키고 있지 않은가? 아침에 눈 떴을 때 보라색 나팔꽃 하나에서 풍요로움을 느껴봅시다. 나이에 관계없고 성별과 빈부와도 아무 관련이 없습니다. 우리가 찾으려 하면 자연은 우리 곁에 있습니다.
우리 모두는 재벌이 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마음만 먹으면 우리 모두는 자연과 소통하고 교감을 나눌 수 있습니다. 어떤 이들은 2050년이 되면 인간보다 지능과 육체적 능력이 뛰어난 사이보그가 나올 수도 있다고 합니다. 자연의 질서 속에 우리 삶이 맞추어 가야 합니다. 물질에 대한 욕망 때문에 정력을 소진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합니다. 주변 작은 것에 즐거워하고 행복해 하고, 또 그런 순간에 의미를 두는 것이 자연을 가슴에 담는 자세입니다. 숲을 어떻게 볼 것인가, 읽을 것인가, 이른바 녹색심리학이라고 하는 숲의 가치를 어떻게 담아서 오늘의 삶을 교감과 소통하면서 살 것인가가 오늘의 주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