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9 | [문화저널]
무형 유산의 걸작, 판소리의 세계화
최동현 군산대 교수?국문과(2003-07-04 11:19:40)
유네스코에서는 인류 문화 유산 중에서 보존의 가치가 특히 높다고 인정되는 유형문화재에 대하여 등록 사업을 추진해 왔다. 그래서 그 동안 우리나라에서도 불국사와 석굴암, 해인사 팔만대장경, 종묘, 창덕궁, 수원 화성이 등록되었고, 현재 고인돌(고창, 화순, 강화)과 경주(복합 유산)의 등록을 추진하고 있는데, 고인돌의 경우는 지정이 거의 확정된 상태로 알려지고 있다.
그런데 유네스코에서는 내년부터 무형문화재에 대해서도 걸작을 선정하고, 이의 보존?증진에 기여한 개인 및 단체에 대하여 시상을 하기로 하였다. 정식 명칭은 ‘인류 구전 및 무형 유산 걸작 선언(Proclamation of Masterpieces of the Oral and Intangible Heritage of Humanity)’이다. 전세계 유네스코 회원국의 무형문화 유산 가운데서 예술적?역사적?학술적 가치가 크거나, 소멸의 위험이 있는 것을 인류의 무형유산을 대표하는 걸작으로 선정하여, 이의 보존?연구?보급을 장려함으로써, 각국의 문화적 다양성과 전통성을 보존하려는 것이 그 목적이다. 이 제도는 1993년 12월에 한국이 제안하여 채택되었으며, 올 5월에 정관이 확정됨으로써 시행을 보게 되었다.
각 유네스코 회원국은 올해 말까지 후보작을 신청하며, 일차 선정된 걸작은 2001년 5월에 발표될 예정이다. 후보작은 예비 후보를 포함하여 한꺼번에 다섯 건을 순서를 정하여 신청하는데, 유네스코에서는 2년마다 전세계에서 신청된 후보작을 심사하여 6∼10건을 수상 대상으로 권고하게 된다. 그래서 지금 우리 문화재청에서는 후보작을 선정하기 위해 각 단체로부터 후보작 신청을 받고 있는데, 12월 31일까지 유네스코에 신청하기 위한 절차를 진행시키기 위해서는 9월 중에는 후보작들이 선정되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면 구전 무형 유산이라는 것은 구체적으로 어떠한 것들을 지칭하는 것인가. 유네스코에 의해서 채택된 「전통문화와 민족의 보존을 위한 권고서」(1989)에는 다음과 같이 기술되어 있다. “문화적 사회적 정체성을 반영하는 한 지역사회의 기대를 반영하는 것으로 인정되고, 단체나 개인에 의해 표현된 문화사회의 전통에 기반한 창조물의 총체이다. 그것의 표준과 가치는 흉내나 다른 수단을 통해 구두로 전승된다. 그것의 형태는 언어?문학?음악?춤?놀이?신화?의식?관습?공예?건축?기타 예술로 나타난다.”
유네스코에서 인류의 구전 및 무형 유산 중의 걸작을 지정하기로 한 것은 오히려 늦은 감이 있다. 전 세계가 하나로 획일화되어 가면서 민족의 전통적인 문화들이 이미 소멸해 버렸거나, 급속한 소멸의 과정에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많은 사람들은 무형 유산의 중요성에 대해서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 유형의 문화 유산은 눈에 보이기 때문에 그 가치나 중요성을 쉽게 알 수 있는 반면에, 무형의 유산은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에 그 중요성이나 가치에 대해 소홀하기 쉬운 것이다. 그러나 앞에서 든 예들을 통해서도 알 수 있는 바와 같이 무형의 유산은 유형의 유산보다도 훨씬 그 중요성이 크다. 무형의 유산에 의해 우리들은 각자 다른 문화를 지닌 독특한 집단 개인이 된다. 곧 ‘문화적 사회적 정체성’을 담보해 주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무형의 유산은 현재의 우리의 삶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 유형의 유산이 대개 이제는 우리의 삶과 직접적인 관련을 상실한 데 비해, 무형의 유산은 삶에 어떤 형태로든 녹아들어 아직도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까 무형의 유산이 사라진다는 것은 곧 독특한 삶이 사라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다양한 무형의 문화 유산이 존재한다는 것은 그만큼 인류가 다양한 능력과 가능성을 지니고 있다는 징표이다. 그러기 때문에 다양한 문화 유산, 곧 다양한 삶을 지켜내야만 하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서 우리 지역에서는 판소리가 ‘인류 구전 및 무형 유산 걸작’ 후보로 선정되게 하기 위한 노력을 하고 있다. 판소리는 우리 모두가 인정하는 민족 예술의 결정체이다. 서울대 국문과 교수인 조동일은 그의 저서 『카타르시스 라사 신명풀이』에서 한국인의 조건으로 ‘판소리를 감상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을 든 바 있다. 그만큼 판소리는 우리 민족의 예술적 감성을 대표하는 예술이라는 것이다.
판소리의 예술적 우수성은 이미 3백년 이상 우리 민족의 최고의 흥행 예술로 기능해 왔다는 데서 확인된다. 또 세계 어디에 내놓아도 전혀 손색이 없는 최고의 예술이라는 점이 이미 다양한 방면에서 확인되고 있다. 1972년 김소희 일행의 카아네기 홀 공연실황 음반 해설 첫 부분에서, 코트와 루이스턴(Cott & Lewston)이라는 미국인이 “이처럼 대단한 전문성과 힘을 가진 발성의 전통 면에서 볼 때, 한국의 판소리가 한국 외에서 이처럼 알려지지 않은 것은 참으로 기이한 일이다”라고 아쉬움을 표현한 것은 그 대표적인 예에 속한다.
판소리는 고도의 전문성을 지닌 예술이다. 이는 판소리 창자가 되기 위해서 엄청난 시간과 노력을 들여야 한다는 데서 단적으로 나타난다. 판소리 창자가 되기 위해서는 수십 년의 집중적인 수련 과정을 거쳐야 한다. 뿐만 아니라 명창이 되기 위해서는 그야말로 초인적인 수련을 쌓지 않으면 안 된다. 이른바 백일 공부, 혹은 독공이라는 수련 방법이 그것인데, 그것도 한 차례가 아니라 몇 번이고 소리꾼으로서 활동하는 한 계속해야만 한다. 이 과정에서 소리꾼들은 수많은 고통을 겪게 된다. 목에서 피를 쏟는다거나, 온몸이 부어 똥물을 먹어야 한다거나 하는 일들이 바로 이러한 수련 과정에서 겪어야 하는 어려움이다. 아마도 이러한 혹독하고도 긴 수련 기간을 거쳐야 하는 성악은 세계적으로도 그 유례가 없을 것으로 생각된다. 탄생에서부터 1950년대에 이르기까지 판소리가 우리 나라 공연 예술로서는 거의 유일하게 흥행성 있는 예술로서 존재한 이유가 바로 이러한 고도의 전문성을 기반으로 한 예술성 때문이었다.
판소리가 유네스코의 ‘인류 구전 및 무형 유산 걸작’으로 선언되어야만 하는 이유는 이 정도만으로도 충분하다고 할 것이다. 판소리가 반드시 유네스코의 ‘인류 구전 및 무형 유산 걸작’으로 선언되어, 판소리를 만들어내고 가꾸어 온 우리 지역의 문화적 전통이 더욱 빛날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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