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11 |
생명을 위한 예술, 창조성과 상상력 / 최효준 전북도립미술관장
관리자(2008-11-18 18:38:11)
예술, 미술을 주제로 출간된 책은 많지만, 예술, 미술에 관한 우리들의 의문을 속 시원하게 풀어줄 책은 쉬이 접하기 어렵다. 다행히 최근에 좋은 책 한권을 만났다. 스티븐 나흐마노비치(Stephen Nachmanovitch)라는 이가 쓴『놀이, 마르지 않는 창조의 샘』(원제: Free Play, 이상원역, 2008, 에코의서재)이라는 책이다. 저자는 바이올린 연주자이며, 심리학과 문학, 인식사(認識史)를 공부한 작곡가, 시인, 교사로서, 전 세계를 다니며 즉흥연주 공연을 하고 음악과 그래픽을 결합시키는 비쥬얼 뮤직 분야에서도 적극적으로 활동하는 이다. 이 책을 정독하면 아래와 같은 질문에 다음과 같은 답을 얻는데 도움이 된다.
아름다움이란 무엇인가?
겉보기에 아름답거나 예쁜 것만이 예술적 아름다움은 아니다. 감정을 자극하는 아름다움이 있고 아이디어를 자극하는 아름다움이 있다. 하지만 그보다 더 깊은 차원으로 가면 존재의 근원을 생각게 하는 아름다움도 있다. 젊은 예술가들은 독창성을 새로움과 혼동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자신의 중심부에서 나오는 것만이 독창적인 것이고 아름다운 것이다.
좋은 예술이란 무엇인가?
전문적 기술에 집중하다보면 영감의 필수요소를 소홀히 하게 되고 과정을 희생하고 결과를 강조하게 된다. 이런 예술에서는 무언가 부족한 느낌을 받는다. 반면 실수가 많은 서툰 연주, 어린아이의 노래, 거리 악사 공연 같은 것을 듣고 눈물을 흘리는 일도 있다. 예술 작품이 다소 거칠고 추악하다 해도 깊은 감동을 줄 수 있다. 반면 더할 나위 없이 깔끔하고 세련됐지만 어째서인지 마음을 끌지 못하는 예술품도 있다. 기교를 평가하기는 상대적으로 쉽지만 영적 자질을 평가하기는 쉽지 않다. 그것은 직관으로 파악해야 한다. 한참 시간이 지나야 분명히 드러나는 경우도 많다. 인기를 누리는 책, 음악, 영화, 텔레비전 프로그램이 모두 쓰레기이고 영혼이 없다는 말은 아니지만 그런 경우가 많은 것도 사실이다. 창작자의 경우, 자유로운 놀이와 판단하는 마음을 서로 보완해야 한다, 이 대립적인 두 극단 사이에서 무한히 균형을 맞춰 나아가야 하고, 자유로운 충동의 흐름, 그리고 끊임없는 평가 사이에서도 균형을 찾아야 한다. 판단이 너무 적으면 쓰레기 예술이 나오고 판단이 너무 많으면 창조성이 벽에 부딪친다.
예술과 기법
창조에는 기법, 그리고 기법으로부터의 자유가 모두 필요하다. 일정수준에 다다르고 나면 기법이 모습을 감춘다. 아무 힘들이지 않고 쉽게 만든 듯 보이는 많은 미술작품도 실은 삶과 죽음이 오가는 처절한 창조적 전투의 결과물이다. 기법은 꿈의 세계에 숨어 있던 무의식적 재료를 눈에 보이도록 해주는 도구다. 예술의 단계에 이르려면 기술이 필요하지만 기술에 매달려서는 안 되고 기술을 넘어서야 창조할 수 있다.
일과 놀이와 즉흥적 창조
아이들이 놀이에 열중하면 아이와 세상은 다 사라지고 그저 놀이만 남는다. 자신을 벗어나 자기가 하는 일과 하나가 되는 것이다. 집중하면, 신체적 요구는 줄어들고, 시야가 좁아지며, 시간감각이 멈춘다. 스스로 활력을 느끼며 힘든 일이 힘들지 않게 된다. 지신의 노래 소리나 손으로 움직이는 도구 안에 자기 자신이 사라지고 마음을 빼앗기고 시간도 공간도 자기가 누구인지도 잊는다. 이것이 몰입과 몰아, 완전한 집중의 순간 즉 삼매(三昧)경이다. 이때 창조력이 번득이며, 일과 놀이는 하나가 된다.
즉흥연주, 작곡, 글쓰기, 그림 그리기, 연극, 발명 등 모든 창조적 활동은 놀이의 다른 형태다. 놀이는 창조성의 시작점이자 삶의 근본 형태이다. 창조적인 마음은 좋아하는 대상을 가지고 논다. 놀이는 독창적인 예술이 꽃피우도록 하는 뿌리이며 예술가가 새로운 기법을 만들고 익히기 위한 원재료다. 아무리 힘든 노동이라도 즐기는 마음으로 하면 이는 놀이다. 옛 사람들의 노동요를 생각해 보면 이해가 된다. 즉흥적인 창조는 전통적으로 연극과 무용 분야에서 중요시되었다. 음악이나 미술 분야에서도 많은 예술가들이 시시각각 변하는 자신의 영적 상태를 뒤따라가며 즉흥적 창작을 해내었다. 그들은 무의식에서 나오는 원재료를 가지고 의식이 한바탕 자유로운 놀이를 벌이게 했다. 모든 창조적 행동은 놀이의 다른 형태이며, 놀이는 창조성의 시작점이자 삶의 근본형태인바, 놀이가 없다면 학습이나 진화는 불가능하다. 즉흥적 창조 작업이 어떻게 우리 안에서 이루어지는지, 무엇이 그것을 가로막고 방해하는지, 그 능력을 어떻게 해방시킬 수 있는지를 알아야 한다. 위대한 예술적 창조는 잘 훈련받은 성인 예술가가 어린아이의 순수한 놀이 의식으로 돌아갈 때 얻어진다. 다른 누구의 창조력이 아닌 스스로의 창조력을 발휘할 때 에너지, 단순함, 열정이 샘솟는다.
어떻게 누구나 예술가가 될 수 있는가?
예술로 자기를 표현하려는 사람뿐만 아니라, 독창적인 논문 한편을 쓰려는 사람, 혁신적인 계획을 세워 사업을 성공시키려는 사람, 의견이 상충하는 상황에서 타협을 이루려는 사람, 애인과 새로운 대화법을 시도하려는 사람, 그들 모두가 자기를 실현하고 채울 권리를 가지고 즉흥적 창조를 시도하는 것이다. 창조력의 힘은 성스러운 놀이라는 개념 안에 있다. 즉흥 작업을 이어가려면 창조적 영감이 얼마간 유지되어야 하고 그래서 즉흥작업자는 그 순간적인 섬광을 잡아 늘여 일상의 활동에까지 연결해야 한다. 즉흥작업의 창의력과 자유를 평소의 마음가짐이나 행동에서 느낄 수 있게, 그러한 순간이 단절 없이 계속 이어지게 하는 것이 가능해질 때에 특별한 예술은 없고 다만 자신이 하는 모든 일이 예술이 되는 상태에 도달하게 된다. 이때 우리는 누구나 예술가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창조성의 퇴화
어릴 적 그린 아이의 그림이 자유롭고 거침이 없고 너무도 독창적이어서 피카소나 미로의 무애한 그림과 방불하였는데 커가며 학교 교육을 받고 어떤 틀 속에 갇히면서 그 창조성과 상상력은 어느덧 사라져 버리는 경우를 왕왕 본다. 아이의 상상과 탐색의 날개는 조만간 꺾여버리고 어른들의 세상은 아이를 찍어 눌러 예측 가능한 사회구성원이라는 틀에 맞춰 넣는데, 이것이 우리 창조성의 퇴화이고 그 과정은 유치원에서부터 대학을 거쳐 사회생활을 하면서 강화된다. 최신의 강력한 교육제도인 텔레비전과 대중음악은 획일화를 이루는데 더욱 큰 효과를 발휘하고, 그래서 인스턴트 음식처럼 키워진 우리는 사회의 좋은 먹잇감이 된다.
우리 창조성 되살리기
친한 사람들과 자유로운 대화를 나눌 때, 생각이 잘 정리되고 스스로 놀랄 정도로 말이 술술 잘 나와 “이것을 그대로 녹음해서 옮겨 적으면 아주 훌륭한 글이 되겠구나”하고 느끼는 경우가 가끔 있다. 예술가로서, 어느 순간에 나의 내면의 창조성이 절묘하게 발휘되어 만족스러운 작품이 만들어지는 경우도 있는가하면, 아무리 노력하여도 한 치도 진전이 없어 절망감에 사로잡히곤 하는 경험을 하기도 한다. 우리는 일상생활에서, 일터에서, 타인과의 관계에서, 때론 스스로도 감탄할 만큼 아주 독창적이고 거침없이 닥친 상황을 잘 풀어나가는 경험, 또는 그 반대의 경험을 하곤 한다.
나흐마노비치에 의하면 우리는 모두 즉흥 연주자다. 가장 흔한 즉흥연주 형태가 누구나 하는 일상의 대화이기 때문이다. 모든 대화는 재즈 연주와 같다. 우리 창조의 열정 너머에는 더 깊은 차원의 헌신, 우리를 넘어선 전체와의 합일 상태가 있다. 그 합일이 놀이와 합쳐지면 단순한 창조성을 넘어 사랑으로 행동하는 상태가 된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행하는 글쓰기, 연주, 그리기, 춤 등의 활동 속에서 창조성을 되살린다면 우리 스스로를 슬픔, 낙담, 좌절에서 벗어나게 하는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창조성과 상상력이 중요한 이유
지구 전체의 생명 유지 체계가 위기에 처한 오늘날 이 상황을 타개하는데 인간이라는 종(鍾)이 사용할 수 있는 유일한 능력은 상상력이다. 파괴의 유일한 해독제는 창조성이며, 인류의 창조성을 되살리는 것은 절박한 게임이니, 이제 ‘예술을 위한 예술’이 아니라 ‘생명을 위한 예술’을 목표로 삼아야 한다. 창조적 영감은 직업예술가·같은 특별한 삶들에게만 가능한 일이 아니며, 그들에게 창조 능력을 넘겨버리는 것은 의사에게 치료 능력을 넘겨버리는 것과 같다. 전문가들은 필요하지만 진정한 치료, 진정한 창조성은 우리 안에 있는바, 우리 개개인이 그 능력을 버린다면 인류는 파멸할 수밖에 없다.
분야를 막론하고 우리 자신의 퇴화된 창조력을 되찾고 그것을 강화하고픈 사람이라면, 상상력을 최대로 사용할 때 얻어지는 기쁨, 책임감, 이해력, 평화 등을 널리 퍼뜨려 파괴와 죽임의 흐름에 대항하려는 마음을 가진 이라면, 함께 깊이 생각해 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