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12 |
[서평] 『느림보 마음』
관리자(2009-12-03 10:44:00)
『느림보 마음』
마음의 쉼표를 찾아서
서덕민 원광대학교 강사
휴대폰이 변기에 빠져 서비스센터에 갔다. 직원들은 친절했다. 물에 빠진 휴대폰은 어떻게 수리해야 하는지, 그리고 어느 정도의 시간이 필요한지 친절하게, 정연하게, 그리고 빠르게 설명해 주었다. 로비에 앉아 책을 읽고 있는 내게 여직원이 커피를 건넸다. 책을 들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신문을 권하기도 했다. 허리를 숙인 단정한 자세와 바른 말씨가 마음을 편안하게 했다. 물에 빠진 휴대폰은 30분 만에 정상적으로 작동하기 시작했다. 우려했던 것과는 달리 문제는 쉽게 해결되었다.
고장난 마음을 수리하는‘느림보 마음’
첨단 기술이 내재된 기기가 고장 난 지점에서 세계와 나의관계는 새롭다. 서비스센터에서 나의 욕망과 문명은 동일한것을 지향한다. 행복하고 편안하게 살기, 잘 살기이다. 그래서나는 첨단 문명과 인간성을 견원지간으로 비유할 수 없다. 무엇인가가 고장 나고 무엇인가를 고쳐야 하는 시스템은 원형적이다. 멀게는 신과 인간의 관계가 그렇고 가깝게는 의사와 환자 또는 기계와 엔지니어의 관계가 그렇다. 서비스센터는 어쩌면 인간과 세계가‘소통’하는 가장 극적인 장소중 하나일것이다.문태준의 책은 고장 난 마음을 수리하는 서비스센터이다.이 책은 물에 젖은 마음을 건져 드라이로 말리고 단단하게 조여진 마음의 나사 몇 개를 풀어낸다. 문태준이라는 엔지니어는 하나의 생각을 독자에게 꾸준히 반복 숙지시킨다. 그래서어떤 부분은 지루하고 느리다. 성질 급한 나는 짜증이 올라온다. 어찌 보면 미숙한 직원들로만 구성된 서비스센터 같다.“그래서 어디가 어떻게 고장 난 것이냐구요! 수리비는? 시간은 얼마나 필요하죠?”이렇게 다그치다 보면 보리수 아래서가부좌를 틀고 있던 부처가 입을 연다.“마음을 지니되 마땅히 네모진 돌과 같이 하세요. 돌이 뜰가운데 놓여 있으니 비가 떨어져도 깨지 못하며, 해가 뜨겁게비춰도 녹이지 못하며, 바람이 불어도 움직이지 못하나니, 마음을 지니되 마땅히 돌과 같이 하세요”.부처의 중얼거림이 칭얼거리는 우리의 마음에 방점을 찍고,어머니의 약손과 들밥 먹는 농군의 모습이 느림의 가치를 부각시킨다. 이 책이 보여주고 있는 세계와 인간의 모습은 우리의 보편적 체험 속에 있는‘그대로의 것’이다. 그것은 특별하지도 않고 새롭지도 않다. 그것은 그저‘수레와 배와 물고기’처럼자연스럽게움직이고흘러가는것이다.“ 돌은돌의일을,바람은 바람의 일을, 구름은 구름의 일을, 꽃은 꽃의 일만을”하듯이.
소통과 닿음, 그 따뜻한 시선으로 본 세상
사실 이 책의 매력은 일상의 소소한 문제의식이‘느림’이라는 주제로 형상화되는 구태의연한 패턴에 있지는 않다. 이 세상의 누구보다 빠르고 바쁘게 살아가는 우리에게 느림의 가치는 새삼스러운 주제가 아니다. 이 책의 진정한 매력은‘소통’을 통해 인간성을 회복하고자 하는 저자의 마음씀씀이를 확인하는데서 시작한다.그래서 이 책은 3장‘느린 닿음’이 가장 매력적이다. 특히서두에 간략히 제시되었던 손에 관한 에피소드가 책의 3장에서 구체적으로 변주되어 드러나는 것이 인상적이다. 대입시험을 치르던 날 자신의 손을 뜨겁게 잡아주었다던 아버지의 손이 새끼를 핥아주는 짐승의 혀와 아이들의 볼을 부비는 저자자신의 볼로 변주되어 드러난다. 손과 혀와 볼이라는 소재를통해 세계와 소통하는 방식에 대해 서정적으로 언급해 내고있는 부분이 특별하다.“손과 혀와 볼의 닿음을 다시 생각합니다. 손과 혀와 볼은좋은 옷입니다. 다른 사람에게 행복을 입혀 줍니다. 다른 사람이 행복해지면 나도 그 행복을 돌려받고 나눠받습니다. 해서우리의 손과 혀와 볼은 물새의 깃털보다도 부드러운 힘을 갖고 있습니다. 몸은 마음을 운반하는 나룻배입니다. 우리는 몸을 사용하지만 나의 몸을 받는 사람은 나의 마음을 받습니다.닿음의 감각을 자주 사용할 일입니다. 우리의 마음에 버들잎이 돋고 따사로운 햇살이 내릴 것입니다. 나는 나의 손과 혀와볼로써 이 세계를 만집니다. 하나의 꽃봉오리처럼 세계가 아름답습니다”.다양한 대상들을 통해‘소통’혹은‘닿음’의 의미를 읽어내는 저자의 따뜻한 시선은 아름답다. 그리고 그 대상들을 대하는 문태준의 통찰력은 시집 못지않은 짜릿함을 선사한다. 첫돌을 맞은 아이를 안고“이 우주에서 당신을 이렇게 다시 만나행복합니다”속삭이거나, 삼년 만에 집으로 돌아온 제비를 보며“나의 삶에도 이처럼 반갑게 돌아 올 것이 있구나, 내가 혹시 빠뜨리고 초청하지 않은 손님들은 없는가”생각해 본다는저자의 목소리를 통해 독자들은 소통과 닿음의 의미를 새롭게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문태준의 특유의 시적 수사와 불교적 세계관에 익숙한 사람이라면 이 책을 재미있게 읽을 수 있을 것이다. 그의 상상력이이끄는 대로 몸을 맡기면 어느덧 배꼽에 태반이 달리고 척추는 둥그렇게 말릴 것이다. 그리고 곧 양수로 가득 찬 핑크빛가죽 주머니에 담겨 몽고반점을 즐겁게 긁을 것이다. 아마도그 곳이 우주의 서비스센터이리라.
서덕민 원광대학교 문예창작학과와 동대학원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현재 원광대학교 문예창작과 강사로 활동 중이다.2004년 대산대학문학상 시부문에 당선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