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12 |
[서평] 『혁명은 이렇게 조용히』
관리자(2009-12-03 10:43:44)
『혁명은 이렇게 조용히』
새로운 상상과 실험으로 꿈꾸는 도전
신진철 전주의제21 사무국장
미네르바가 구속되었다. 중앙대학교가 진중권의 교수직을 거두어가고, 홍대에서도 시간강의를 주지 않기로 했단다. 손석희도, 김제동도 밥그릇을빼앗겼다. 그러나 그들의 입을 막지는 못하리라.자칭 C급 경제학자라고 소개하는 우석훈. 위험하다. 불온하기까지 하다. 내란음모죄나 유언비어 유포죄를 물어 지금이라도 당장 구속시켜야 하지 않은가. 그것이 이명박 시대의 상식이 아니던가. 그러나, 지독하게 외로워 보인다. 이 사람. 강준만처럼 외로워 보인다. 자기가 사랑하고자 몸부림치고 있는 정작 그들로부터 사랑받지 못하고 있다. 그들에게 아직 그는 또 하나의‘엄친아’일 뿐이다. 아이러니하게도 그가 아직껏 구속되지못하고 있는 이유일 듯싶다.
혼자 꾸는 꿈은 꿈이지만, 함께 꾸는 꿈은 현실이 된다
외로운 전투를 벌이고 있는, 아직도 혁명을 꿈꾸고 그 잔영에 사로잡힌 사람의 인생은 결코 편할 수 없다. 아니, 때로 목숨을 건 승부를 내야 할 때도 있을 것이고, 무엇보다도 가슴 아픈 일은 그 선택 때문에 자신의 가장 가까이에있는 사람들이 고통 받는 것을 견뎌내는 일일 것이다.정작 나는 우석훈을 잘 알지 못한다. 그러나 그의 글을통해서 여전히 나에게도 혁명을 꿈꾸는 사람에 대한 그리움이 남아 있다는 사실에 먼저 감사하고 싶다. 그리고 이잔인한 현실을 외면하지 못하고, 가혹한 운명의 십자가를짊어진 그에게 비겁한 경의와 지지를 보낸다. 386으로 살았던 한 사람으로서 나는 우리 세대만의 고민에 갇혀 좀 더멀리, 좀 더 넓게 주위를 둘러 볼 엄두를 내지 못하고 살았고, 지금도 마찬가지다.그가 말하는 것들이 얼마쯤 사실이고, 얼마쯤 공감을 살것인지는 경제문제에 문외한인 나로서는 어찌 판단할 도리가 없다. 하지만, 실제 온도와 체감 온도가 다를 수 있듯이, 고통에 가까이 서 있는 사람에게는 그만큼 고통의 무게가 더 무거운 법이 아니던가. 정작 남겨진 중요한 숙제는얼마나 자신의 문제로 받아들이는가 하는 것 아니겠는가.문화저널의 독자는 누구일까. 내 허접한 서평을 읽어 줄 사람은 누구일까. 우석훈이 끊임없이 송신하고 있는 20대들일까? 아니면, 나처럼 무디어져 가는‘꼰대’들일까. 같이부끄러워하고, 함께 고민해 볼 시간이길 바란다.
20대여, 겁내지 말고 부딪치자
이 책은 이미 2년 전 출판되었던『88만원 세대』의 연작이다. 그러나 여전히육화된 신자유주의에 포로가 되어 누구에게 짱돌을 던져야 하는지를 묻고, 수업의 마지막 5분 요약을 기대하는 이들에게 그가 던지는 메시지는‘혁명’이다. 토익점수와‘스펙 쌓기’에 방살이를 하고 있는 그들에게 더 이상 쫄지 말고, 방문을 열고 나와 소통하고, 진을 짜라고 말한다. 시민단체들을 두드려 보고, 정치운동도 모색해보고, 편의점 알바노조를 만들 궁리도 해보며, 스스로 권리선언문도써 보자고 호소하고 있다.사람이 하늘을 날고, 여성이 투표권을 갖는 일이, 당연해 보이지만 채 100년도 안된 일들이다. 잠시도 손을 놓지 않고, 문자와 영상으로 세상과 소통하는 그대들의 휴대폰, 채 10년도 안 되는 일이다. 도저히 불가능해 보이던 일들이었다. 시작하기 전에는. 그렇게 부딪쳐 보고, 깨져 보라고 더 이상 겁내지 말라고끊임없이 말하고 있다.그에게는 애정이 있다. 비록 그의 글이 거칠고, 마디마디가 짧고 읽어 따라가기 벅차게 호흡이 빠르게 느껴질지언정 그에게는 20대들을 향한 애정이 있다.코코 샤넬과 마크 제이콥스를 빌려 오고, 자신의 치열한 경험들을 쥐어 짜내, 찌꺼기를 걸러내고 정수만으로 그들의 마음을 열어 보려는 그의 몸부림에 공감하지 않을 수 없다.상상력이 부족한 이들에게는 절망적인 현실마저도 혁명의 자양분이 되지 못한다. 혁명, 나도 한 때 혁명을 꿈꿨던 적이 있었다. 오줌마려 오는 긴장. 무한한상상력의 힘과 소통이 주던 벅찬 감동. 시위대가 막 교문을 나서, 그 끊어질듯한 팽팽한 긴장을 만날 때면 나는 늘 심하게 오줌이 마렵고 했다. 포위망을 뚫고한양대 노천극장에서 밤새워 목청을 높여도, 그 열정과 감동을 잠재울 수 없었던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이 역시도 취한‘꼰대’가 술자리에서 씹어대는‘안주발’일까?언젠가 읽었던 베르베르의『개미』에도 혁명이 나온다. 내가 상상하지 못했던,너무 무계획적이고, 준비되어 있지 못해 결국 아무것도 이루지 못할 조열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 순간에는. 하지만 결국 과거의 기억에 갇혀 상상력이 부족하고, 조열했던 것은 나였다.이제 이 책의 뒷부분에 부록처럼 실린 그들, 20대들의 이야기를 들어야 할 시간이다.여러 종류의 노예계약서가 있는데, ‘필요할 경우 수업시간이 늘어날 수 있다’는 조항이 있고, 이 조항에 따라 수업시간을 팍팍늘리기도 해요. ‘이 학원을 그만뒀을 때, 반경 몇 킬로미터 학원에는 옮기지 않는다’같은 것도 있어요. 애들이 옮겨 갈까 봐. 얼마동안 근무하는 걸 의무로 하는 곳도 있구요. 무단으로 돈 받고 잠적하면 100만 원 배상을 해요. 의무 약정계약을 하고, 얼마의 배상을 하는 거죠. 그래서 계약서를 꼼꼼히 읽어 봐야 한다는 게 학원 바닥의 룰이에요. 몇 가지 예를 더 들면, 3일에 근무를 시작하면 월급날이 보통 3일이 되어야 하잖아요. 그런데 10일에 줘요.일주일 치를 묻어 놓는 거죠. 왜 그러냐면, 강사가 한 달 치 월급만 받고 그만둘 경우를 대비해서 일주일 치를 잡아 놓는 거예요.다방 레지도 아니고. 월급을 적립하는 곳도 있어요. 퇴직금 명목으로. 그러니까, 월급에서 몇 퍼센트를 뗀다. 정상적으로 그만둬야이걸 주고, 그렇지 않으면 안 주는 식이죠. 일종의 착취라고 할 수있는 거예요. 그래서 학원 관련해서만 전문으로 일하는 노무사 분들도 계세요. (20대 학원강사로 살아남기 중에서, p.183)그러나 그것도 잠시. 등록금을 미처 마련하지 못해 학자금 대출을 받아야 한다는 생각에 눈앞이 캄캄해졌다. 학교를 다닌 지 3년밖에 안 됐는데 내 이름으로 된 대출금만 1천만 원이 훌쩍 넘는다. 휴학을 해야 하나. 교수님께 제발 장학금 좀 받게 해 달라고사정해 볼까. 이런 생각들이 정점에 이르면 차라리 죽고 싶다는생각만 든다. 그러다가도 나 하나 죽는다고 해서 등록금이 내려갈까라는 생각이 들어 자살도 또 쉽게 단념하고 만다. 정말 미칠 노릇이다. 과외를 아무리 해도, 이쪽저쪽으로 아르바이트를 구해 봐도, 손에 겨우 움켜쥔 돈은 감쪽같이 사라지고 만다. 워낙 푼돈이다 보니 차곡차곡 저축을 해 보려 해도 잘되지 않는다. 그저 내가쓸데없이 돈을 많이 써서일 거라는 자책만 늘었다. 분식집, 베이커리, 헬스클럽, 카페 알바를 거쳐거쳐 일을 해 보아도 남는 것은‘웃으면서 울기’라는 스킬뿐이다. 스펙 하나 없이, 토익 점수 하나없이 말이다. 능력도 쥐뿔 없는 것이 감히 취직을 생각하다니! (웃으면서 울기 중에서, p.213)결국‘쿨함’은 20대의 마지막 도피처다. 지금의 고립 상태가집단에 대한 공포에서 발생했다는 것을 인정하지 못하는 알량한자존심 때문에, 20대들은 차라리‘믿음 자체에 대한 불신’이 마치자신의 정체성인 양 행동하게 되었다. 마치 저 포도가 시큼할 것이 분명하니까 포도를 맛보기 위해 시간을 낭비하느니 차라리 가던 길을 가겠다고 결심하는 이솝우화의 그 여우처럼 말이다. 그러나 그‘낮은’장애물조차 쉽게 포기한 여우에게 어느 날 갑자기풍요로운 세상이 나타날 것 같진 않다. 그보다 더 낮은 수준에서포도를 먹겠다는 얘긴데, 그렇게 해서는 포도를 별로 먹지 못할게 뻔하기 때문이다.생각해 보자. 등록금이 일 년에 10퍼센트 올라가도 무관심한척하면서, 편의점의 삼각김밥을 살 때는 10퍼센트 할인되는 카드를 꼭 챙기는 20대가 사회에서 먹을 수 있는 포도는 얼마나 될까? 고작 5~10퍼센트 할인해 주는 코코펀과 맛집 정보는 찾아도, 학교 식당의 위생이나 관리에는 전혀 관심 없는 20대가 누릴수 있는 이득은 얼마나 될까? 이미 누가 포장까지 끝내 놓은 상품들만 계속해서 소비하려 든다면, 20대는 딱히 쓸 만하지도 쓸모없지도 않은 잉여의 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사회가 돈을주어야 한다는 의무감에 시달리지 않으면서도 손쉽게 그들이 가진돈을 빼앗을 수 있는 그 잉여인간들 말이다. 물론 대부분 20대는자신의 친구들은 잉여인간이라고 생각해도, 자신만은 잉여인간이되지 않으리라는 착각을 믿기 위해서 별짓을 다하겠지만 말이다.(잉여들의 새로운 시작 중에서, p.240)새로운 상상과 실험이 용납되지 않는 사회는 발전을 기대할 수 없다. 좀 더 심하게 말하자면, 이미 늙고 병들어 있다고 할 수 있다. 사람이 늙어지면, 고집스러워지고 변화에 둔감해지며 새로운 것에 귀찮아진다고 한다. 사회도 늙고 병들면 그러하리라. 찰리채플린의 <모던타임즈>를 한 번 더 권한다.
신진철 현재 전주의제21 사무국장으로 활동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