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9 | [문화저널]
기능장애보다 더 무서운 사회적 편견
김동인 전주시 정신보건센터장?예수병원 신경과장(2003-07-03 16:45:07)
“정신병은 못 낫는 병이다” “정신질환자는 위험한 사람들이다”라는 생각은 우리사회가 일반적으로 갖는 고정관념인 것 같다. 놀랄 만큼 과학이 발달한 요즈음에도 정신질환을 바라보는 시각은 수천년전의 생각과 별로 달라진 것이 없는 듯 보인다.
사실 정신질환은 환자 자신이 병이 있다는 사실(병식)을 모르고 있고, 가족들은 감추어지길 원하고, 사회는 환자를 두려워하고 위험한 사람으로 생각한다. 그러한 이유로 정신질환의 치료는 환자 자신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가족 그리고 지역사회가 그 대상이다.
그 사회가 정신질환자를 어떻게 보느냐? 하는 것은 그 사회가 얼마나 열린 사회이고, 민주적이며, 인간의 다양성을 존중받는가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전주시 정신보건센터에서는 2000년 4월 18일부터 6월 17일까지 2개월에 걸쳐 전주시 40개 동(洞) 1천4백19명을 대상으로 정신보건 욕구도와 정신질환에 대한 인식도 조사를 시행하였다. 이 설문조사에서 전주시민은 몇 가지의 특징적인 결과를 보여주었다.
첫째로 전주시민은 자신이 사는 지역이 정신적으로 안전하다고 느끼고 있었다.
전체적으로는 72.9%가 안전하다고 답했고 교동 91.7%, 동산동 92.3%, 중앙동 90.9% 순으로 ‘이 지역이 생활하기에 안전하다’고 답하였다. 팔복동 42.8%, 남노송동 38.4%, 동서학동 37%의 주민들이 ‘이 지역이 생활하기에 안전에 문제가 많다’고 응답하였다.
이것은 전주 토박이들이 많이 사는 지역의 정신적 안전도가 유입된 인구들이 거주하는 지역보다 상대적으로 높다는 것을 시사한다.
둘째로 지역의 거주에 대한 정신적 만족도는 지역 별로 큰 차이를 보였다. 교동 83.3%, 중노송동 71.4%, 우아동 70.8%의 주민들이 그 지역에서 생활하는데 만족하였고, 이와 반대로 팔복동 35.7%, 서노송동 35.5%, 풍남동 33.4%의 주민들이 다른 지역 주민들에 비해 더 많이 ‘이 지역에서 생활하는 것에 불만족한다’고 답하였다. 이것은 지역의 안전도와 비례하며 전주에 오래 거주한 사람 일수록 만족도가 높은 것으로 평가되었다.
셋째로 전주시의 정신건강 문제는 시급하지 않다고 인식하고 있었다.
팔복동 78.1%, 동서학동 69.7%, 송천동 62.6%, 서완산동 61.1% 순으로 정신건강 문제 해결이 시급한 것으로 보고하였고, 이와는 달리 우아동 70.4%, 중노송동 65%, 진북동 59.1%의 주민들이 정신건강 문제의 해결이 시급하지 않은 것으로 보고하였다
넷째로 정신건강 문제가 심각하다고 느끼는 순서를 보면, 청소년 비행, 알콜중독, 성폭력, 치매, 가정내 폭력(배우자 학대, 아동학대 등), 우울증, 신경성 질환, 정신질환, 정신박약, 약물중독, 간질 순 이었다. 이는 전주시에서 많이 나타나는 질병의 순서라기 보다는 정책적으로 이미 많이 홍보되어 있는 질환에 대해서는 높게 나타나고, 기타 많이 홍보되지 않았던 질환에 대해서는 정신건강과 관련된 정보들이 적었기 때문에 낮게 나타났던 것으로 시사된다.
다섯째로 지역별로 정신건강의 시급성이 달랐다.
풍남동만이 치매가 가장 시급한 것으로 보고하였고, 동완산동 지역주민들은 청소년 비행, 가정내 폭력, 신경성 질환의 치료를 모두 가장 시급하다고 보고하였으며, 다른 지역은 모두 청소년 비행을 가장 시급한 문제라고 보고하였다. 그 다음으로 시급한 정신보건 문제로서 풍남동, 교동, 태평동은 성폭력을 시급한 것으로 보았으며, 남노송동, 서노송동, 중화산동은 치매를, 서완산동, 동서학동, 서서학동은 알콜중독을, 효자동은 우울증을, 중노송동은 가정내 폭력을 두번째 시급한 문제로 보았다.
여섯째로 지역에 정신보건 시설 설치의 찬성이 과반수를 넘지 못했다.
지역 내 정신보건 시설(외래 진료소, 정신질환자 주거시설, 주간치료소)이 설치되는 것에 대한 의견을 살펴본 결과 ‘찬성한다’가 49.1%, ‘모른다’ 34%, ‘반대한다’16.9%였다. 각 지역별로 보면 풍남동, 서완산동이 찬성률이 가장 높았고, 동서학동, 동산동 순으로 반대율이 가장 높았다. 정신병원이 설치되는 것에 대한 의견은 서완산동, 동완산동 순으로 찬성률이 높았으며, 동산동, 동서학동, 교동 순으로 반대율이 높았다. 이러한 결과로 볼 때 정신보건시설 보다 정신병원의 설치를 더 많이 반대하는 것으로 보인다. 또한 정신보건 시설이 설치되었을 때 반대행동을 알아본 결과, ‘반대는 하는데 적극적으로 행동하지 않는다’가 35%, ‘개인적인 반대활동을 하겠다’ 2.7%, ‘집단적으로 반대활동을 하겠다’ 5.6%, ‘이사 가겠다’가 5.3%로 나타났다.
일곱째로 전주시민들이 제공받기 원하는 프로그램은 상담 및 상담교육이 17.5%, 스트레스 대처 프로그램이 16.3%, 우울증 프로그램이 14.1%, 가족관계 향상 프로그램이 12.7%, 자녀 교육 및 청소년 비행예방 프로그램이 8.5%, 치매 예방 및 노인 프로그램이 8.2%, 레크레이션 및 수양법이 5.9%, 성폭력 대처방법 및 성교육 4.5%, 노약자 상담 프로그램이 2.5%, 금연 프로그램이 1.1%, 기타 5.1% 순이었다.
여덟째로 전주시민의 정신질환자에 대한 태도는 대체적으로 타 지역과 비교해 볼 때 훨씬 더 부정적이고 정신질환에 대한 정보가 부족하였으며, 사회적 활동 및 참여를 제한하여야 한다는 견해가 우세하였다. 특히 여성, 저학력층, 노령층, 기혼자가 부정적 견해가 많았다. 그러나 정신질환자에 대해 다른 지역보다 더 동정심이 많았다.
정신질환 만큼 우리사회가 편견이 많고 이해가 더딘 것도 드물 것이다. 오늘날 정신질환의 치료 약물은 짧은 기간 동안 놀랄 만큼 발전을 거듭하여 급성 정신질환의 80%이상이 약물치료로 가능해졌고, 그 대부분의 원인이 뇌의 신경전달물질이 이상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정신병이 걸리는 사람들 대부분은 마음이 너무 약해서 사소한 일에도 쉽게 겁을 먹는 심성을 가지고 있다. 일부의 환자들이 난폭해지는 경우가 있는데 증상이 극히 심해진 짧은 기간 동안이며 이때에도 망상이나 환청이 주는 괴로움이 너무 커서 자신을 지키기 위한 몸부림이라고 할 수 있다. 정신질환자는 ‘난폭한 사람’들이 결코 아니며 정신병은 ‘못 고치는 병’이 더더욱 아니다. 환자는 약물치료와 재활 프로그램에 적극 참여하고, 가족들은 현재의 상황을 잘 받아들이고, 사회는 장애우에 대한 지지적 환경을 만들어 줄 때 정신질환의 완치는 가능하다. 많은 정신장애우들은 병에 의해서 생기는 기능적 장애보다는 사회적 편견이 갖는 장애 때문에 더욱 고통을 받고 있다.
dikm@netsg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