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12 |
장영란의 자급자족 이야기 마지막 회
관리자(2009-12-03 10:41:43)
장영란의 자급자족 이야기 마지막 회
가을걷이, 그리고 겨울준비
겨울의 들머리에서
쌀은 우리 먹을 거를 남기고 나머지는 모두 팔아 농작업에 들어간 비용은 빠진 정도. 콩과 들깨를 넉넉히 거두어들였다. 아, 흐뭇해라. 농사 가운데 가장 쉽다는 콩과 들깨. 그게우리한테는 그리 만만한 곡식이 아니었다. 그러다 올해는 마음먹고 콩과 들깨에 관해 공부를 했다. 그 덕인지 날씨가 도와주었는지 올해 콩과 들깨를 푸짐하게 거두었다.감자는 씨앗보관에 문제가 있었는지 싹이 제대로 안 나와 망했지만, 야콘은 넉넉히 나와서 몇 상자 팔 수 있었다. 태풍이 오지 않아 기장은 조금 심은데 견주어 먹을 만큼 거두어들였고, 수수는 새가 쪼아 먹었지만 우리 먹을 거는 나왔다. 녹두하고 검은깨는 결국 심지못하고 넘어갔고, 내 손으로 받아온 씨로 심은 고추는 올해 잘 되어 우리 씨앗에 자신을 가지게 되었다.가을걷이를 하여 집 안팎 곳곳에 먹을거리를 쌓으면서, 도대체 네 식구가 저렇게나 많이먹나 싶다. 하여간 사람은 이 지구상에서 놀라운 포식자이다.메주도 끓여놓았으니 이제 김장만 담그면 가을걷이가 얼추 끝난다. 곡간에 곡식 쌓여있으니 김장해서 땅에 묻고 나면, 곶감이나 빼먹으면서 지내도 될까? 겨울 들머리에서 겨울나기를 생각해 본다.산골에서 자연재배를 하는 우리한테 땅이 어는 겨울은 사실상 농사 휴가다. 물론 논밭에가면 일거리는 널려있다. 논둑 밭둑에서 자라는 잡목과 칡을 쳐내야 하고, 낙엽을 긁어다가 밭에 이불처럼 덮어주어야 한다. 밭마다 돌면 아직 정리 못한 일거리가 남아있다. 이런 저런 일이 있긴 하나, 이건 날이 따실 때 몸 풀기 삼아 하면 된다.방 두 개가 구들이니 날마다 땔감도 하고 불도 때야 한다. 하지만 이것도 이제 웬만큼 이골이 나서‘겨울철에 이만한 일도 없으면 무슨 재미로 사나!’한다. 이 정도면 휴가라 할만하지 않은가.겨울, 또 다른 나를 성장시키다놀고먹는 겨울이 좋기도 하지만, 그래도 봄이 다가오면 벌써 겨울이 다 갔어? 하고 안타까워 하지만, 산골 겨울에도 어려움이 있다.날은 추워 그제는 수도가 얼고, 어제는 길이 빙판이 되어 밤에 뒷간에 가려다가 미끄러지고, 오늘은 눈이 쌓여 길이 막힌다. 산골 겨울에 불편한 게 하나둘이 아니다. 먹을거리가 잔뜩 쌓여있는 것 같아도 해먹어 보면 다람쥐 쳇바퀴 도는 것 같아물린다. 그리고 시간이 많이 남는다. 저녁에 일찍 자고 아침에 늦게 일어나도 하루가 길다. 그것도 춥고 서글픈 하루가.이런 겨울을 몇 차례 겪으며 겨울이 다가오면 겨울에 할일을 미리 잡아놓는 게 중요하다는 걸 배웠다. 일 가운데서도 가장 중요한 건‘즐겁게 몸 움직이는’일이다. 눈보라 치는 겨울날 집안에서도 할 수 있으면 좋다. 겨울은 아무래도 몸 움직임이 적다. 어디 출퇴근을 하는 것도 아니니 날이 차거나 궂은 날은 집안에서 대부분 보낸다. 그러다 보면 몸이 찌부둥해지고여기저기 아프다. 또 마음도 어두워진다. 그래서 알게 된 게 산골에서 겨울을 건강하게 나려면 즐겁게 몸 움직이는 일을 하나 정해 놓아야 한다는 거다.지난 몇 년을 돌이켜 보면 어느 해 겨울에는 큰애가 댄스세라피를 배워 와서 함께 몸을 흔들며 막춤을 추기도 했고,어느 해 겨울에는 태극권을 배웠다. 올겨울에는 탱고를 배워볼까 한다. 아니 산골에서 웬 탱고? 남편이 인터넷에 들어가서 열심히 탱고를 연구하니 나는 못이기는 채 따라 추면 될 일. 그동안 텔레비전에서 남이 그런 춤을 추는 모습을 보면, 다음 생애는 꼭 해 봐야지 했는데, 이 생애 하게될 줄이야…….그 다음으로는 자신의 성장을 위한 일이 필요하다. 농사철에 논밭에서 자연을 배우는 재미도 있지만, 진득하니 앉아 내 정신세계를 성장시키는 공부를 하기는 쉽지 않다. 농사일도 몸과 마음이 하나가 되어야 하지만, 아무래도 몸 움직이는 단순노동이 많다. 이것만 하고는 여기서 사는 보람을 가지기 어렵다. 산골에서 자급자족하고 살기가 그리 호락호락한 것만은 아니더라. 여기에 살아내려면 내가 여기살기에 이렇게 멋지게 살 수 있다는 자족하는 마음이 필요하다.올해는 무엇으로 나 자신을 성장시킬 수 있을까? 일단은내가 쓴 책『자연달력 제철밥상』개정판 원고를 마무리해야 한다. 자연에서 살아가는 하루하루를 담은 이 책을 5년만에 내용도 더 보강하고, 전에는 없었던 사진과 그림을 넣는 작업을 하면서 책이 발전하는 만큼 나 역시 성장하리라.한데 이건 말 그대로 일이다. 그것 말고 부담 없이 자신을성장시킬 수 있는 일은 없을까? 아직 못 찾았다.이웃들과 함께 글쓰기 공부를 한 재미에 겨울을 난 해도있고, 애니어그램을 공부하면서 보낸 해도 있다. 혼자서 만다라를 그리며 지낸 해도 있고, 남편과 함께 우리 아이들기른 이야기를 모아『아이들은 자연이다』라는 책을 쓰며서로를 많이 이해한 해도 있었다. 이번 겨울에는 내가 정신에서 성장했다고 느낄 수 있는 게 뭘까? 그걸 만날 수 있게끔 나를 열어놓고 기다리고 있다.그동안 자급자족 이야기를 읽어주신 여러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새해 원하시는 일이 이루어지길 빕니다.
장영란 산청 간디학교에서 교사로 활동하기도 했으며 지난 98년 무주로 귀농하여 온 가족이자급자족하며살고있다. 자연에서느낀생각을담은『자연그대로먹어라』,『 자연달력제철밥상』『, 아이들은자연이다』등여러권의책을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