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12 |
[문화시평] 뽕짝 브라더스
관리자(2009-12-03 10:40:12)
뽕짝 브라더스
(10월 23일~11월 8일) 소극장 판
뽕짝속에 담긴 우리네 인생을 보다
최정 극작가, T.O.D랑 대표
겨울도 아닌데 어찌나 바람이 차고 매운지 옷깃을 자꾸 여몄다. 옷깃을 여며도 서늘한 바람은 기어이 가슴 한 복판을 훑고 지나갔다. 연일 계속되는 팍팍하고 우울한 날들에 마음까지 여민건가? 사람들로 북적일 줄 알았던 금요일 밤의 소극장은 예상과 달리 한산했다. 관객들이 하나 둘 객석을 채우자 무대는 어느새 현란한 조명이 돌아가는 나이트클럽이 되었다. 그리고 이어지는 귀에 익숙한 음악소리…. 한 시간 사십 분 동안 눈과 귀를 즐겁게 한 <뽕짝 브라더스>에는‘쿵짝 쿵짝 쿵짜작 쿵짝’익숙한 네 박자의 뽕짝 음악과 우리네 희(喜), 노(怒), 애(哀), 락(樂), 네 박자의 인생 이야기가 담겨 있었다.
니가 기쁠 때 내가 슬플 때 누구나 부르는 노래
어느 트로트 전문가의 말을 빌리면, “뽕짝. 발음부터 고급스럽지 않다. 듣기만 해도 우습고, 어딘가 저속한 냄새가폴폴 풍긴다. 그나마 좀 낫게 부르는 사람은‘성인가요’라는 표현을 쓴다. 트로트의 주 팬 층은 40~50대 이상의 중장년층이다. 삶의 쓴맛, 단맛, 매운맛까지 볼 만큼 다 보고나름대로 산전수전, 공중전까지 겪어온 사람들이‘뽕짝’의팬들이다”.불과 몇 년 전만 해도 트로트는‘2:8 가르마에 반짝이 의상’이란 이미지와 함께 구세대가 선호하는 구식음악, 단순하기 그지없는 네 박자의 뽕짝 리듬에 진부한 내용의 가사가 얹어진 촌스러운 음악으로 평가받았다. 그러나 이 촌스럽고 통속적인 음악이 일제강점기에서부터 오늘날까지 대중과 가장 가까운 곳에서 서민의 고통과 슬픔, 즐거움을 함께 노래해왔음을 부인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내려 보는 사람도, 위를 보는 사람도’누구나 부를 수있는 노래, 투박하고 뻔하지만 쓴맛, 단맛, 신맛, 매운맛까지 우리네 인생의 깊은‘맛’이 담긴 노래. 백민기 작, 연출의 <뽕짝 브라더스>는 이 뽕짝에 청춘을 바치는 두 사내의 이야기가 주된 축을 이룬다. 가진 것 없지만 노래를 향한 열정만큼은 배고프지 않은 두 청춘과 가게 보증금을 날리고 홀로 어렵게 아이를 키우는 여인, 한물 간 아줌마 가수, 쇠락해가는 클럽의 지배인…. 이들이 보여주는 무대 위삶은 촌스럽고 투박하고 통속적이기 이를 데 없지만 바로이 익숙하고 진부한 통속의 힘이 뽕짝의 참맛을, 배우의 참맛을, 대중극의 참맛을 곱씹게 만들었다.
사랑도 있고 이별도 있고 눈물도 있네
다 쓰러져가는 전주의 한 클럽에서 웨이터를 하고 있는 춘식과 달식. 그들의 보금자리인 남루한 대기실만큼이나 무엇하나 빛나는 것 없는 팍팍한 현실 속에서도 둘은 트롯 가수라는 빛나는 꿈을 버리지 않는다. 그러던 어느 날 춘식과 달식,‘ 식브라더스’는다른가수의펑크를메우기위해그토록바라던 무대에 서게 되지만, 돌아온 것은 관객들의 싸늘한반응 뿐…. 업친데 덥친격으로 달식은 새파란 신인에게 야심차게 준비하던 곡마저 빼앗기고, 클럽은‘식 브라더스’가 아닌 신인 걸그룹‘텐프로’를 보강하고 영업에 박차를 가한다.버려도 버릴 수 없는 꿈과 열심히 살아도 나아지지 않는 현실의 경계에서 춘식과 달식은 끊임없이 흔들리고 사람에 속고 삶에 좌절하지만 끝내 꿈을 접지 못한다. 탭댄스와 뽕짝을 비빔밥처럼 버무린 탭트롯을 들고 다시 한 번 꿈을 꾸는뽕짝 브라더스, 둘은 꿈이라는 외투로 매섭고 싸늘한 오늘의바람을 견딘다.남루하면서도 웃기고, 웃기면서도 눈물 나고, 눈물 나면서도 흥겨운 뽕짝 같은 연극. 어디선가 한 번쯤 들어 본 우리네꿈, 사랑, 이별, 배신의 이야기가 버무려진 이 연극이 마음을건드리고 어루만진 데는 무엇보다‘식 브라더스’를 연기한배우 안대원 분과 최한성 분의 역할이 컸다. 사람 좋고 어수룩해 사람에 속고, 돈에 우는 전형적인 캐릭터 춘식과 달식에 숨을 불어넣고, 과하지도 덜하지도 않은 감정으로 가슴속 애환을 표현한 두 배우는 산만한 플롯 속에서도 극의 완급을 조절하며 극을 진솔하게 이끌어가는 콤비의 역할을 십분 발휘했다. 극의 감초 역을 톡톡히 했던 뷰티권 권지인 분의 연기와 노래 또한 꺾고 떨고 튕기는 감칠맛 나는‘뽕짝의맛’을 제대로 보여주었다.
울고 웃는 인생사 연극 같은 세상사
<뽕짝 브라더스>의 미덕은‘뽕짝의 맛’을 닮은 통속의 맛이다. 그동안 가족극 시리즈와 여러 편의 코미디 작품을 제작하며 남녀노소 누구나 쉽고 재미있게 볼 수 있는 대중연극을 지향해 온 백민기 연출은 쉬운 멜로디에 우리네 애환을담은 음악 같은 연극 <뽕짝 브라더스>를 통해 새로운 대중극의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극의 초반 다소 길었던 등장인물들의 말장난과 국제결혼, 지구 온난화 등의 사족을 덜어내고산만하게 벌려놓은 이야기의 군살을 뺀다면, 연출의 바람처럼 이 연극이‘우리에게 향수이자 가슴 답답함을 해소하는약이자 일상의 어려움과 힘듦을 잠시나마 잊을 수 있는 탈출구’가 됨은 물론 쓴 맛, 단 맛, 신 맛, 매운 맛 우리네 인생사의 진한 맛이 담긴, 보다 맛있는 연극이 되리라 생각되었다.관객이 모두 돌아가고 오늘밤도 무사히 한 판 꿈, 한 판 인생의 막을 내린 배우들이 삼삼오오 극장 밖에 모여 버려도버릴 수 없는 그들의 빛나는 꿈을, 좀처럼 나아지지 않는 남루한 현실을 도란도란 이야기 나누었다. 무대라는 외투로 차가운 오늘을 견디고, 따뜻한 내일을 꿈꾸는 그들의 모습은어딘지 모르게 춘식, 달식의 모습과 닮아있었다.집으로 돌아가는 길, 바람은 여전히 매서웠다. 하지만 옷깃을 여미지 않아도 오늘밤은 제법 따뜻할 것 같았다. 이제는너무 많이 알려져 가끔은 진부하게 느껴지는 푸시킨의‘삶이그대를 속일지라도’를 나지막이 읊조렸다.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하지 말라./ 우울한 날들을 견디며믿으라/ 기쁨의 날이 오리니.// 마음은 미래에 사는 것/ 현재는 슬픈 것/ 모든 것은 순간적인 것, 지나가는 것이니/ 그리고 지나가는 것은 훗날 소중하게 되리니”. 그래, 가끔은 이렇게 통속적이고 진부한 것들 속에서 따뜻하게 위로 받고, 견딜 수 있는 힘을 얻는다.
최정 전북대 국문과 재학 때부터 <숨길 수 없는 노래>, <이화우 흩날릴 제>등을 집필하여 공연하였으며 이후 <이등병의 편지>, <이화만발>, <안녕, 오아시스!>, <모두 다 사라진 것은 아닌 달> 등을 꾸준히 발표하였다. 올해 초 젊은 연극인들을 중심으로 모인‘Truth Of Dram 랑’을 창단하여 전북 연극에 새로운숨통을 틔우기 위해 준비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