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12 |
[문화시평] 이세덕 설치조각전
관리자(2009-12-03 10:40:01)
이세덕 설치조각전
(11월 2일~9일) 서신갤러리
반 형태 미학의 설치미술
최병길 원광대학교 교수
전주 서신갤러리(2009. 11. 2~9)에서 10년 만에 네 번째 개인전을여는 이세덕(50)은 갤러리 내부 바닥을 가득 메운 개당 30kg에 달하는 400여개의 화강석을 자신의 작업장이 있는 군산에서 1톤 트럭으로 8번이나 날랐다고 한다.
시·공간을 초월한 과거와 미래로의 여행
그의 이번 설치미술은 한마디로 규정하자면 반 형태(anti-form) 미학이다. 사물의불변성으로서의 존재론이 아니라 가변성으로서의 존재론을 표방하는 것, 그것이 그의예술철학인 것이다. 그는 미술 사물들을 한 장소에서 다른 장소로 옮겨놓을 때마다 그이미지가 항상 변하게 되는 가변성에 주목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한 그의 이념은 마치 흥망성쇠를 거듭하는 자연의 변증법처럼 그의 미술 사물들의 존재성을 자연법칙에내맡기는 것이다. 가변적인 것, 덧없는 것, 일시적인 것이불변적인 것, 불멸적인 것, 항존적인 것에 비하여 무가치한것인가?이 세계의 모든 사물들은 모두 자연법칙에 의하여 존재할 뿐이다. 그것이 자연의 변증법이다. 갤러리 바닥 공간을 온통 적색의 화강석으로 설치하면서부터, 작가가 반-형태 미학을 추구하면서부터 그는 현재로부터 과거로의시·공간적 회귀를 시도하고 있다. 그러나 그것은 현재로부터 과거로의 여행만을 암시하는 것이 아니라 그와 동시에 미래로의 여행도 암시하고 있다. 왜냐하면 과거, 현재와 미래란 인간이 편의상 그어 놓은 시간의 구분에 불과하기 때문이다.그러한 시·공간을 초월한 과거와 미래로의 여행을 통하여 그는 두려움과 그리움, 삶과 죽음, 분노와 열정 등의 개인적인 원초적 심상으로부터 작가 자신의 성씨, 주위의 지역사회, 한반도라는 시·공간 속으로 확대되어 나간다. 그것은 작가 자신의 개인적 존재를 규정하는 변증법으로부터그것을 생성시킨 지역적, 역사적 존재들의 규정하는 변증법으로 확산되고 있는 것이다.
반 형태 미학을 통한 존재성 확인
그는 그것을 일러“혈의 기원”이라고 주창하고 있다. 여기서‘혈’이란 그가 말하려는 한민족의 혈통이자 그 민족의 명맥을 면면히 이어오는 인간들의 끈을 말함이며, 그 자신의존재규정에 필수적인 것으로 판단한 생물학적, 물질적 존재들에 대한 반추이다. 그리고‘기원’이란 말 그대로 전자에 대한 작가 자신의 경건하고 숭고한 태도나 사유하는 존재의 외양적 양태라고 말할 수 있다. 천연안료로 붉게 칠한 화강석들의 전체적인 색상 이미지가 매우 강렬하며 숭고한 분위기를 형성하도록 시도한 이유인 것이다. “작업 자체가 자기수양의 과정이었다”는 작가의 변에서 알 수 있듯이 작가가 그자신의 상상력의 한계를 초월하여 시·공간을 넘나들 수 있음은 그만의 육체적, 정신적인 인고가 가져온 혜안일 것이다. 그런가 하면‘혈의 기원’이라는 시 1편을 음각한 돌판을우측 전면에 위치시키고 있음도 본 전시의 주제에 대한 작가자신의 경외감을 엿보게 하는 대목이다.정과 망치로 화강석 표면에 우리나라의 150개 대표 성씨를 양각하고, 전국의 250개 시·군 지명을 음각했다. 돌에새겨 넣은 지명과 성씨는 삶의 토대를 이루는 대상들로서,작가는 터를 잡거나 축대를 쌓는데 쓰이는 간지석에 성씨를양각으로, 비명을 음각으로 새겨 빨간색을 칠한 것이다. 서신갤러리 박혜경 대표는 이러한 특성을 일러“아버지의 아버지로부터 이어 내려온 성씨와 누대에 걸쳐 삶의 터전이 된땅의 이름은 삶은 유지되고 확장되며, 미래는 과거에 뿌리를두고 있다”고 평했다.그러한 개별적인 이미지를 담은 화강석들의 자연스러운나열은 관람자가 실제로 작품 주위를 거니노라면, 특정 부지(specific-site)에 온 것 같은 느낌, 즉 폐허가 된 성곽이나돌담을 연상하기도 한다. “터와 축대는 기준이고 기본이다.무너져 사라져가는 서낭당 돌무지가 어디 한 두 곳인가. 아무쪼록, 편안한 시간에 그냥 와서 서로를 아껴주고 달래고돌아보는 자리가 되길 바라며…”라는 작가의 변에서 그러한폐허의 이미지를 읽을 수 있다.결론적으로 이번 이세덕의 설치미술은 그가 화강석들을여기서 저기로 옮겨 놓을 때마다 전체적인 형태가 변화하는반-형태 미학의 추구요, 따라서 그 이미지가 변화하는 가변성의 세계를 설파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그가 조상, 역사,국토 등 그를 둘러싼 콘텍스트에 대한 시·공간적 투영을 제시하는 것은 그 자신의 주관적 존재성을 객관적, 역사적 존재성 위에서 규명해보려는 시도라고 말할 수 있다.
최병길 현재 원광대학교 미술대학 순수미술 학부장이자 환경조각과 교수로 재임 중이다.『 인체조소』,『 세계조각의 역사』,『인체해부학』등 다수를 집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