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11 |
[서평] 『클래식 중독』
관리자(2009-11-06 18:01:57)
『클래식 중독』
고전의 향기와 함께 떠나는 영화 이야기
정진욱 전주영상위원회 사무국장
프롤로그
책 제목만으로도 저자의 클래식 사랑이 느껴진다. 그런데 부재에서‘클래식=고전영화’의 등식을 보았을 땐 고전영화의 고리타분한 냄새를 희석시키기 위해 클래식이 주는 고급스런 어감을 사용했나 하는 의문 부호를 달게 만든다.고전이란 오랫동안 많은 사람에게 널리 읽히고 모범이 될 만한 문학이나 예술 작품을 말한다. 그러나 한국영화에서 고전이라는 것은 어딘지 모르게 생소하게 느껴지는데, 이유는 해방 후많은 영화들이 남아있지 않아 원로 감독들이 만든 영화들을 고전이라는 큰 틀에서 봐 왔지 문학이나 해외영화처럼 고전 50선이런 형식의 틀을 만드는 노력을 하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이 책에서는 이렇듯 접하기 힘든 고전영화들과 원로 감독들을 학술적으로 무겁게 탐구하기 보다는 풍부한 자료와 경험담을 중심으로 읽는 재미를 선사하고 있다.시대를 이끌어 가는 천재들‘천재’란 무엇인가? 천재란‘보통 사람의 능력 이상을 선천적으로 타고난 사람’의 사전적 의미를 지니며 중요 특징으로‘창조성과 생산성’을 지닌다고 한다.1960년대를 풍미했던 이만희 감독은 한국 영화사에서 가장독특한 소재를 다룬 감독이라는 점에서‘창조성’을 과시하고,15년이라는 기간 동안 50여 편의 영화를 만들었다는 점에서 생산성을 증명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이 책에서는 이러한 천재성을 지닌 이만희 감독이 불행한 미완의 천재로 남을 수밖에 없었던 시대적 배경, 비관주의 태도를진지하게 풀어나가고 있다.책의 첫 머리를 장식한 감독은 이장호 감독이다. 저자는 많은감독들 중 이장호 감독을 왜 처음에 언급했을까? 영화에서 시작5분이 중요한 것처럼 이장호 감독이 독자들에게 시선을 끌 폭탄선언이라도 책속에 숨어있을까? 궁금했다. 그러나 폭탄선언같은 것은 책 속에 없었다. 저자는 한국영화사에 있어 과거와현재의 연결고리 중심에 이장호 감독의 존재성을 인식시키고,『무진기행』의 김승옥 작가와 견줄 수 있는 무한한 가능성을 느끼고 있는 듯 했다.이장호 감독은 <바람불어 좋은날>, <어둠의 자식들> 등1980년대 초반 한국영화계에 새로운 바람을 몰고 왔으며, ‘뉴웨이브의원조’,‘ 새로운리얼리즘’등의수식어를달고충무로를 이끌어 갔던 천재 감독 중 한명이었던 것이다.또한‘1990년대 충무로에서 가장 아방가르드에 가까웠던 감독’으로 장선우 감독을 뽑는다. 아방가르드는 원래 군사용어로서 전투할 때 선두에 서서 돌진하는 부대를 뜻하는 것이었다.이후 19세기 중반부터 미지의 문제와 대결하여 지금까지의 예술을 변화시키는 혁명적 예술경향이나 그 운동을 뜻하는 예술용어로 정착되었는데, 아방가르드의 특성상 형식과 내용이 있는 것이 아니기에 한국영화에서 무엇을 아방가르드라 불러야하는지에 대해 저자가 의문을 가지는 것처럼 좀 더 논의가 필요하다고 느껴지는 부분이다. 그러나 과거와의 단절, 필사적으로새롭고자 함, 관객에서 아부하지 않기, 논쟁과 비난을 두려워하지 않음 등에서 장선우 감독만의 아방가르드 기질을 찾는 것에개인적으로는 동조한다.거장들과 함께 한 과거 그리고 현재저자는 1960년대 영화들을 만났을 때“이삿짐 싸다가 장롱구석에서 까맣게 잊고 있던 저금통장을 찾아낸 것 같은 기분이었다”라고 말한다. 당시를 한국영화의 르네상스라고 부르는 것은 비단 외형적인 발전뿐만 아닌 유현목, 신상옥, 김기영, 이만희 같은 뛰어난 감독들이 배출되었기 때문이다.유현목 감독은 <오발탄>, <카인의 후예>, <김약국의 딸들>등 그 시대의 이슈가 되었던 문학작품을 영화로 만들어 내는능력을 보여 주었다. 그리고 이만희 감독의 <귀로>는 오늘날상업영화에서는 용납이 되지 않는 비관주의와 문제제기로 감독과 관객이 소통하는 통로역할로 한국영화사의 한 축을 담당하였다.책 목차내용 중‘왜 아직도 임권택인가’라는 다소 부정적인 시각에 궁금증이 앞선다. 그러나 책을 읽다보면 어린 시절부터 수십 년 동안 한국의 영화산업 격동기를 이겨내고 100번째 영화를만든 흥행감독, 국민감독으로 성장하는 과정을 진솔하게 그리고있어 그 어느 내용보다도 마음이 따뜻해짐을 느끼게 한다.예술은 시대를 투영하는 거울2004년 이후 중국과 러시아에서 필름들을 발굴해 들여왔는데 사라졌던 역사 유물의 귀환에 흥분하면서도 발굴된 과거가결코 아름답지도, 그다지 반갑지만은 아니었던 것이 영화들의거의 대부분이 군국주의 협력영화, 말하자면‘친일영화’였기때문이다. 저자는 예술은 그 시대의 사회문화에서 자유로울 수없음을 책 중간 중간 직설적이고 은유적으로 강하게 표현하였기에 영상자료원에 의해 발굴된 아름답지 않은 영화들을 보며가슴 아파 했으며, 영화 <지원병>, <조선해협> 등과 시 <조선의 학도여>, <전망> 등을 소개하는 장면에서는 감독들과 문학인들을‘민족의 죄인’으로 강하게 질타하며, ‘시대적 조울증’과‘스톡홀름 신드롬’으로 해석했다.에필로그책을 읽어가는 동안 영화 하나하나를 보며 클래식 레코드판처럼 소장하고 싶은 충동이 들었고, 많은 거장들을 한권의 책에서 만난다는 것이 마치 한편의 영화를 보듯 즐거웠다. 이 느낌 그대로 책에 소개되어진 요즘 잘나가는 상업영화들보다 현존하는 최고(最古)의 필름인 안종화감독의 <청춘의 십자로>를보고 싶어졌고, <오발탄>, 스릴러의 걸작인 <하녀>가 더욱 더보고 싶어졌다. 저자의 표현처럼 영상자료원이 아니면 감히 접할 수 없는 작품들이 대다수이고 짧은 시간에 원고를 쓰기에영상 텍스트와 비교를 하지 못함은 아쉽지만 우리나라의 영화사에 일제침략, 해방, 전쟁, 전혀 이해 할 수 없는 검열 등 숱한상처 속에 훌륭하고 멋진 작품들이 있었다는 건 독자로서의‘발견’이자 고전영화에 대한 목마름을 느낄 수 있었고 현재‘천만관객’이라는 속살이 나오게 된 밀알이 아니었나 싶다. 끝으로 작가가 심열을 기울인 영화 <꽃잎>에 대해 언급하지 못해 아쉬움이 남는다.
정진욱 메디아 영상 디지털 감독과 전주대학교 겸임교수, 전남영상위원회 사무차장을 역임한 바 있다. 현재 전주영상위원회 사무국장으로 재임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