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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1 |
[백제기행] 붓으로 그린 세상, 몸으로 그린 인간
관리자(2009-11-06 18:00:13)
붓으로 그린 세상, 몸으로 그린 인간 우리가 만난 겸재 정선과 두명의 무용수 첩첩히 쌓인 선에 담긴 역사를 만나고,열한 춤을 통해 신화의 현재성과 연속성을 확인할 수 있었던 여행.지난 10월 17일, 120회 마당의 백제기행이 나에게 준 선물이다.서울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린 <겸재 정선, 붓으로 그린 천지조화>전과2009 서울세계무용축제의 해외초청작인 그리스 루트리스루트 무용단의 <침묵의 소나기>를 찾는 여정.설레였던것 보다도 더 큰 감동을 나는 이번 기행에서 얻었다.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그 감동의 경지쌀쌀한 날씨가 완연한 가을을 말해주는 듯 싶었다. 차가운 바람 한 줄기에도 설레는 마음은 감출 수 없었다. 기행단이 처음 찾은 곳은 서울의 국립중앙박물관. <겸재 정선, 붓으로 그린 천지조화>전을 보기 위해서다. 이번 전시는 겸재 정선의 서거 250주년을 맞아 이를 기리기 위해 지난 9월 8일부터 11월 22일까지 국립중앙박물관이마련한 전시다. 이번 테마전에는 모두 30건 142점이 전시되고 있었다.인물화, 풍속화에도 뛰어났던 천재화가겸재 정선(鄭敾)은 우리나라 회화사에 큰 획을 그은 거장이다. 서울 명문 가문에서 태어난 그는 36세부터 82세에 이르는 제작 연대의 작품이 보여주듯 끊임없이 그림을 그렸다. 어려서부터 남달리 그림 솜씨가 뛰어났던그는 주로 중국의 자연을 소재로 하던 산수화에서 벗어나 한국의 산천을 독창적인 화법으로 화폭에 담았다. 그덕분에 진경산수화(眞景山水畵)를 창출해 한국 회화에신기원을 마련한 겸재는 한국미술의 역사에서 빠트릴 수없는 화가다.이번 전시에서는 특별히 주목을 받은 작품이 있었다.정선의 초기 화풍을 보여주는 두 개의 작품과 80년 만에 우리 곁으로 돌아온 겸재 정선 화첩이다.정선의 초기 화풍을 보여주는 두 개의 작품은《신묘년풍악도첩》과《북원수회도첩》. 《신묘년풍악도첩》은 정선이 36세 때 그린 화첩으로 14면의 작품이 이번 전시에모두 공개됐다. 그의 초기 진경산수화풍을 한눈에 확인할 수 있는 모처럼의 기회였던 셈이다. 이 작품은 경유지의 현장성과 감동을 표현하고자 했던 새로운 모색이 엿보였다.《북원수회도첩》은 이번 전시를 통해 처음으로 대중들에게 공개됐다. 정선이 41세 때 제작한 작품으로 정선의 인물화 중 가장 빠른 시기의 작품이며,기록화로서도 드문 작품이다. 더구나 진경산수화의 창안자인 겸재 정선이 진경산수화뿐만 아니라, 풍속화 분야의 전개에 있어서도 주도적인 인물이었음을 보여주는 특별한 작품이다. 1716년 제작된 이 작품은 전 공조판서이광적(李光迪)의 과거급제 60주년을 맞이해 북악산 및인왕산 기슭에 거주하던 70세 이상의 노인들과 그 자손들이 모여 장수를 서로 자축했던 모임을 그린 것이다.정선은 이 모임의 발의자 박견성이 외숙부였던 까닭에이 그림을 그린 것으로 알려져 있다. 특히 이 서화첩에는 발의자 박견성의 시를 차운(次韻)해 참석자들이 지은시들이 있고, 그림 속의 노인들과 노비, 여종들의 모습까지 묘사돼 있다.《겸재 정선 화첩》은 많은 사연을 담고 있는 작품이다.1925년, 흑백무성영화‘고요한 아침의 나라에서’촬영을 위해 조선에 왔던 독일 오틸리엔 수도원 노르베르트베버(1870~1956) 아파스(수도원장). 그는 금강산의 한호텔에 머물면서 화상(畵商)들로부터 흥미로운 그림 몇점을 입수하게 된다. 그리고 귀국하면서 가져간 그림들은 화첩으로 만들어졌고, 그 후 쭉 수도원 박물관 한편에 전시됐다. 그곳을 지나간 몇 명 한국인들을 비롯,1976년 당시 유학생이던 유준영 이화여대 명예교수가그 존재를 한국에 알릴 때까지도 수도원은 그 화첩의 가치를 제대로 알지 못했다. 그것이 바로 겸재 정선의 그림 21점을 모은 화첩이었다.이후 수도원은 아무렇게 전시돼 있던 화첩을 거둬들여수도원 깊은 곳에 꽁꽁 숨겼다. 크리스티 등 경매회사는50억 원의 가치를 매기고 눈독을 들였다. 하지만 수도원 측은 화첩을 간직해오다 베네딕도 수도회 한국 진출100년을 맞아 2006년 왜관수도원에 영구임대 형식으로 반환했다. 우여곡절을 겪은《겸재 정선 화첩》이 80년만에 드디어 일반에게 공개된 과정이다.이밖에도 <청풍계도>, <금강내산총람도>, <비로봉도> 등 다양한 작품을 통해 진경산수화의 대가 정선의 모습뿐만 아니라 인물화, 풍속화에도 능했던 정선의 모습을 볼 수 있는 즐거움은 컸다.산은 山이 아니고 물은 水이 아니다진경산수화는 화가가 직접 풍경을 대면하고 그려내는실경산수화와 비슷하지만 눈앞에 펼쳐지는 풍경에 작가의 감흥을 더해 그려낸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이번 전시를 통해 만난 정선은 진경산수화의 창시자다. 그의 그림은 그저 눈에 보이는 것만 담고 있지 않다. 보다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정선의 눈(目)이 바라본 조선의 산하(山河)는 보다 진정한 조선의 산하(山河)를 담고 있다. 진경(眞景), 참된 우리의 경치라는 뜻처럼 그의 그림은 내면의 아름다움까지 표현해내고 있는 것이다.정선은 자신의 화법을 통해 300년 전, 사실로서 보이기만 하는 산과 강을 진정으로 느낄 수 있는 산과 강으로표현했다. 그의 그림 안에서 산은 그저 山이 아니고 물은그저 水이 아니었다. 그 자신만이 가진 생각과 느낌으로때론 과감하게, 때론 섬세하게 작품을 그렸다. 특히 70세에 그린 <비로봉도>에서 보이는 그의 대담함은 그가 화선(畵仙)의 경지에 이르렀음을 보여준다. 신(神)은 7일에걸쳐 천지를 창조했다고 한다. 정선을 결코 신이라 말할수는 없지만, 그의 84년 한 생이 그려낸 그림들은 또 다른 의미의 창조가 아니었을까 싶었다.격렬하거나 치열한 몸짓의 언어두 번째로 향한 곳은 서울 예술의 전당이다. 2009 서울세계무용축제의 해외초청작 그리스 루트리스루트 무용단의 무용 <침묵의 소나기>. 올해로 12회를 맞는 서울세계무용축제는 지난 1998년 한국의 무용을 세계에 알리고세계무용의 흐름을 국내에 소개하기 위해 만들어진 축제다. 멕시코의 세르반티노 축제, 프랑스 몽뺄리에 무용축제, 싱가포르 아트 페스티벌 등의 세계적인 축제와 공동제작을 통해 한국 공연예술의 우수성을 세계무대에 알리는 선구자의 역할을 하고 있다는 평가다.‘춤’, 몸으로 표현하는 또 하나의 세계<침묵의 소나기>는 그리스의 고전 호메로스의 <일리아드> 중 헥토르와 그의 아내 안드로마케의 마지막 만남에서 영감을 얻은 작품으로 무대에서 펼쳐지는 50분간의 격렬한 전투다. 무용가들은 치열한 감정의 극단적 대립과 연인의 절절한 사랑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한치의 오차도 허용치 않는 무술과 아무 제약 없는 피지컬시어터의 긴장감 높은 결합은 남녀 간의 끝없는 끌어당김과 저항을 사실적으로 묘사한다. 사랑과 전쟁을보여주는 이 작품은 단순한 남녀 간의 이야기가 아닌 사랑, 질투, 증오 등 인간 내면에 잠재해있는 수많은 감정들을 보여주었다.이 작품은 수많은 축제에서 공연됐으며, 에어로웨이브(Aerowaves)2008, 2008 에딘버러 프린지 페스티벌에서 토탈 시어터 어워드(Total Theater Award-YoungCompany)부분 후보에 각각 선정된 작품이기도 하다.순수한 몸의 언어를 만나다공연 내내, 무대에는 남·여 두 명의 무용수만이 존재한다. 이들은 나무 막대와 몸을 이용해, 대립되는 감정을표현한다. 그들은 한 치의 오차도 허용될 수 없는 긴장감높은 결합 속에서 침묵과 갈등, 고뇌를 보여준다. 이 작품을 보며 두 사람의 몸짓이 그저 하나의 몸짓으로만 느껴졌다. 너무나도 정교하게 짜인 그들의 호흡에 감탄할뿐이었다. 흡사 무도에 가까운 그들의 움직임은 감탄을넘어 경이로움을 불러 일으켰다.공연이 진행되면서, 무용수들의 움직임은 더욱 격렬해졌고 몸과 몸의 충돌, 그리고 서로에 대한 끌어당김과 밀어냄이 더욱 거세졌다. 그들의 움직임을 보며 처음에 느꼈던 감탄은 점차 한없는 슬픔으로 바뀌었다. 그저 한인간과 다른 인간의 관계가 가진 갈등과 번민이 얼마나진한 것인가를 두 무용수의 몸짓은 너무나 극단적으로보여줬다. 언어가 결코 말할 수 없는 그것을 그들의 몸은 너무나 순수하게 말하고 있었다.너무나 다른, 하지만 너무나 닮은서로 다른 성격의 전시와 공연. 200년 전, 조선의 산하를 그린 겸재 정선과 2000년 전의 그리스 신화를 현대적으로 해석한 루트리스루트 무용단은 너무나 동떨어져 보인다. 하지만 겸재 정선의 전시와 <침묵의 소나기>를 본 후, 나의 생각은 달라졌다. 그들은 너무나 다르지만 한편으로는 너무나 닮았다.겸재 정선은 붓 자락 끝에 진정한 시대의 모습을 담아내고자 했다. 그가 사실보다는 사실 속에 담긴 내면의 모습을 붓으로 표현하려 했듯이 루트리스루트 무용단도 치열한 몸짓을 통해 인간의 내면을 나타내려 했다. 살아가는 시기도, 사상도 달랐지만 결국 이들 예술의 도달점은사실 속 진정한 내면의 모습을 찾고자 하는데 있었다.사실(事實)이란 실제로 있었던 일이나 현재에 있는일이다. 겸재와 루트리스루트는 사실을 단지 사실로만이 아닌, 내면 깊숙이 자리한 진실을 보고자 했다.<붓으로 펼친 천지조화>전과 <침묵의 소나기>. 장르도 주제도 시대도 서로 다른 이 전시와 공연 체험으로부터 내가 얻은 것은 예술의 진정한 가치였다. 송민애 문화저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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