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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1 |
[신귀백영화엿보기] 지독한, 너무도 지독한!
관리자(2009-11-06 17:58:05)
지독한, 너무도 지독한! <사라방드, 2003> 2005년 전주국제영화제 상영작품인데, 귀신이 만든 영화다. 놀라워라. 디지털로 이렇게 아름다운 화면이 나오다니. 두 노인의 스웨터에 오른 만추의 햇살처럼 따뜻한 디지털 장면의 가을동화는 결코 따뜻하지 않다.가족관계의 불화를 그린 수많은 작품들은 항상 그 회복과 화해에 초점을 향해 이야기를 진행한다. 하지만 베리히만이 승천(200707.30)하기 전에 만든 <사라방드>는 인간이 만든 영화가 아니기에 그런 인지상정을 부순다. 그동안 우리가 보아 온 가족이 벌이는전쟁과 그 많은 화해들은 가짜 아니면 유사품이라는 말이렷다. 이 고집불통 노인네가 찍은 선명한 인장은 다가올 우리의 노년을 불안으로 이끈다. 아 비 와 아 들 사진은 죽어가는 시간을 붙든다. 오두막 작은 방의 책상 위에는 시간에 저항한 수많은 사진이 널려있고 몇장의 사진을 든 할머니 마리안(리브 울만)의 독백으로 영화는 시작된다. 이혼한 뒤 30년 만에 삼백마일을 달려 남편이란 관계를 맺었던 늙다리 요한(엘란드 요셉슨)을 찾아와 여러 날을 머무는 이야기. 숙모의 유산으로한적한 시골에서 경제적으로는 넉넉한 노년을 보내는 요한에겐 아들과 손녀딸이 근처에 살고 있다. 그는 아들과 화해하지 못하고(안 하고) 자기식대로 살아간다.미수(米壽) 노인의독백‘. 나는이미죽어있는데나만모르고있나보다’. 안다. 노인은. 내답안지에쓰여있는 인생은 엉망이고, 전혀 의미 없고 바보 같은 인생이었다는 것을. 결혼생활도 마찬가지였다고 요한은 전처마리안에게 말한다. 늙어 삶을 회고할 때, 자신의 삶을 미화하는 노인네들과는 다르다. 노인은 말을 잇는다.‘괜찮은 삶에는 좋은 우정과 흔들림 없는 에로티시즘이 필요하다’고. 자기 몸 가누는데도 힘이 드는데 정신만큼은 은화처럼 맑은 것 또한 형벌일 것. 정신 멀쩡한 것은 예순 셋 마리안도 마찬가지여서‘당신은 바람둥이였어. 나도 그랬지만’이라고 응수한다.마리안 이전에도 결혼한 적이 있는 요한에겐 같이 늙어가는 아들이 있다. 한눈에 봐도 선함이 묻어나는 아들 헨릭은 은퇴를 앞둔 웁살라 챔버 악단단장으로 낙엽 같은 인생을 살아간다. 아내가 죽은 후 첼로를 공부하는 열아홉 딸내미와 함께 살아가는데, 인생에는 돈이 든다. 딸의 첼로 구입을 위한 돈 때문에 헨릭은 원수인아비를 찾아간다. 책으로 둘러싸인 방에서 거룩하게 키에르케고르를 읽고 있는 아비 앞에 늙은 아들이 나타나 유산을 미리 땡겨 줄 것을 이야기하지만 노인에겐 씨도 안 먹힌다. 이 노인에겐 세월도 약이 아니니까. 요한에게 자녀 사랑의 유통기한은 이미 며느리 안나가 들어오면서부터 끝이 난 상황. 영감태기에겐 물러터진채로 살아가는 아들이 싫은 것. 거기다 자신이 은근히 사랑한 며느리 마리안(사진으로만 영화 속에 존재하는)이 아들 때문에 죽었다고 영감은 생각한다. 날것 그대로인 이들 부자간의 대화 한 토막.“저에게 창피를 주는 것이 즐겁습니까? 그 고약한 입으로 안나를 올리지 마세요”.“네 전반적인 유약함 속에 건강한 증오가 남아 있는 것은 좋은 거야”.초식동물 아들과 육식동물 아비의 대화는 상처에 소금을 뿌리는 것으로 끝이 나는데. 카린에게 비싼 첼로를 사준다는 약속을 하지만 아비는 끝내 아들을 비아냥댄다.‘당신은 아비도 아니’라는 아들에게‘솔직한 증오는 존경받아야 한다’고 독을 뿜는대화는 우리들이 여태 보아 온 영화 속 화해가 기만이었다는 것을 이야기한다. 의 붓 어 미 와 아 들 그 리 고 딸 베리히만은 오두막 세트에서 계속 투샷을 만들어 간다. 아무래도 디지털 영화라서멋진 풍경이나 복잡한 조명보다는 단순한 샷 위주 그리고 대화에 초점을 맞추는 것.긴장으로 가득 찬 장과 장(신과 신)을 연결하는 음악은 마치 인서트 장면과 같다. 파국을 향한 비극은 담담하고 음악은 따뜻하기만 한데….같은 이불에서 자고 때론 진한 키스를 하는 헨릭은 이미 성적으론 불구의 몸이다.딸에게 전수하는 가혹한 음악적 훈련을 사랑이라고 믿는 헨릭에게‘이건 레슨이 아니라 동물학대’라며 아비와 다툰 딸내미는 할아버지의 오두막을 향한다. 이 상처받은 어린 양은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할미와 함께 와인을 마시며 처음 본 마리안의품에 안겨 운다. 아빠를 미치광이로 정신병원에 보내든 아님 경찰에 신고하고 싶은마음과 그를 버리고 떠나야 하는 예비 된 고통에 카린은 운다. 머리를 묶었다 푸는마리안은 카린의 이야기를 천천히 들어준다. 하늘에서 내려온 천사가 할 일이 있다면 들어주고, 안아주는 그것 말고 무에 더 있을까 싶다. 이제 마리안은 전남편의 아들이 연주를 하는 교회를 찾아간다.따뜻한 연주를 한다고 해서 연주자의 마음이 따뜻한 것은 아니다. 갑자기 방문한아비의 전처를 재산이 탐나 나타났을 거라고 믿는 꼬인 헨릭의 마음이 쉽게 풀어질리 없다. 오르간으로 학위를 받은 아들 헨릭은 의붓 엄마 앞에서 음악에서 희미한 빛을 찾고 있다고 말한다. 진심일 것이다. 깊은 눈으로 상처로 가득한 짐승을 쓰다듬는마리안은 나이가 거의 비슷한 아들에게 자신 역시 모든 면에서 그 영감을 증오한다고 말한다. 오래되고 낡은 교회에서의 대화를 마치고 그녀가 어두운 바닥의 창 앞을지날 때 빛이 쏟아져 들어온다. 그리고 침묵. 베리히만 노인의 의도를 가장 정확하게짚을 수 있는 부분이다.아비와 할아버지는 카린이 최고의 음악가가 되길 바라지만 손녀는 평범한 인생을살고 싶다며 솔리스트 아닌 보통대학의 합주연주자의 길을 찾아 떠난다. 그리고 이어지는 헨릭의 자살시도. 고약한 아버지는‘하는 일마다 실패구만, 자살 하나도 성공하지 못한다’고 비아냥댄다. 그는 어디서 이런 경멸을 주워 온 것일까? 이 증오의 오두막에서 변호사인 마리안은 누구도 심판하지 않고 모두를 변호하는 것. 이러다 보면 마지막엔 네 사람의 화해의 윤무가 펼쳐지리라 예상을 해보지만 천만의 말씀. 베리히만은 떠나는 자 떠나게 하고, 죽는 자 죽게 한다.깊은 밤, 잠을 이루지 못하는 요한은 마리안의 방을 찾아온다. 마리안의 방 문 앞에 엉거주춤한 요한이 서 있을 때, 걸려있는 검은 코트는 죽음이 문 앞에 기다리고있는 듯한 느낌. 가끔 이런 생각이 들어. 엄청난 형벌이 날 기다리고 있다고. 그 독백이 말하는 형벌은 다름 아닌 그 혼자만 남게 되는 것. 아들은 죽고 손녀는 솔리스트 아닌 합주를 위한 이유로 제 삶을 찾아 떠나고 30년 만에 찾아온 아내마저 이제는 가야 할 시간인 것. 결국 두 노인 벗고 주무신다.남자는 늙어도 아기이고 여자는 그를 품어주는 것. 그렇지만 이것을 화해라 믿고 싶진 않다.세상에서 제일 어리석고 배신당한 아내라 생각하며 살았던 이 노여성은 오래 전 남편이었던 불쌍한 남자를재우고 비틀린 심성을 가진 비슷한 또래의 아들을 위로하고 손녀를 안아주며 한 달여를 머문다. 끝마무리 역시 마리안의 원샷으로 문을 닫는 줄 알았는데 에필로그가 한 장면 더 있다. 마리안은 병원에 있는 친딸 마르따를 찾아간다. 화해가 한 컷 더 남아있는 것. 다 시 아 비 와 아 들 인간은 누구나 상처를 가지고 살아간다. “저는 부모님을 용서하지 않습니다. 우리 부모님은 제 용서가 필요없습니다”. 소설가 파울로 코엘류의 말이다. 그에게 아버지는 오래도록 상처를 주었고 그 상처는 평생 남았다고 고백한다. 정직한 모습이다.나는 정직할 수 없다. 다만 흘러갈 뿐. 어렸을 때, 학교에서 집으로 보내는 인적사항란에 존경하는 인물란이 있었다. 거기에 아버지를 쓰는 아이를 위선이라 행각했다. 아들과 아비의 애증관계를 나는 경험했고 또 경험하고 있다. 아들은 아버지를 경멸하고 또 세월이 흐른 후에는 오히려 가엾이 여기는 방식으로 살아왔다. 그리고 아빠가 된 아들은 자식새끼는 때려서라도 가르쳐야 한다고 믿고 그리고 실천해왔다. 자식이 라훌라이며발목을 잡아채는 덫이라는 것을 수많은 책이 알려주고 삶이 증명한다. 그래서 웬수에게 잔소리를 하다보면추락하는 나와 추락하는 관계를 발견한다. 어쩔 수 없다. 양보할 마음이 아직은 적다. 자식에 대한 양보 역시선택에 대한 기회비용 아니면 보험의 성격일 수 있겠지만, 아직은 아니다. 단지 선을 싹둑 자르지는 말아야한다는 것.가족들이 고통 받는 이유는 크게 돈 아니면‘관계’의 어긋남에서 온다. 가족이라는 관계는 대개 불가분의 관계로 설명되기 일쑤여서‘불효자는 웁니다’라고 노래 부르며 적당히 화해한다. 부모의 몸이 텅 빈 것을 보여주거나 후회로 가득 찬 자식의 모습을 보여주면서. 그런 전형성의 함정에 절대로 빠지지 않고 가짜 화해 안하겠다는 베리히만 노인, 징하다. 냉담과 증오에 이르는 과정을 이해 못할 것은 아니지만, 독하다. 그래도 마리안 여사께서 상처받은 남자들의 이야기를 듣고 또 안아주는 모습을 보여 준 것은 죽은 마눌에게 보내는 반성문일지 모른다는 생각에 이 영감님이 그리 나쁜 노인네는 아닌 것 같고. butgood@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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