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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1 |
[문화시평] 목판으로 만나는 한글 문화유산전
관리자(2009-11-06 17:57:35)
목판으로 만나는 한글 문화유산전 (10월 6일~11일) 풍남문화관, 최명희문학관 고전의 향기, 거기 놀라운 감동이 있더라 한창훈 전북대학교 국어교육과 교수 좀처럼 가지 않을 것 같았던 무더위가 어느새 물러가고 있다. 아침저녁으로는 제법 쌀쌀하고, 더욱 높아진 하늘과 몸을 털어내는 나무들의 움직임이 이제 완연한 가을이 되었음을 알린다.어느덧 다가온 이 가을에 전주에서 뜻 깊은 행사가 열렸다. 전주목판서화체험관에서, 지난 10월 6일부터 11일까지 <목판으로 만나는 한글 문화유산전>이라는 제목의 전시회를 가진 것이다. 이 행사는 목판서화체험관, 최명희문학관, 풍남문화관등 전주 한옥 마을 내 3개 장소에서 열렸으며, 훈민정음 언해본과 용비어천가, 한글소설 구운몽, 별춘향전 등 한글 목판 수십 점이 전시되었다. 대중 문화를 대표하는 전주 완판본 우리나라에서 학교를 다닌 사람이라면 누구나 국어 시간에 한 번쯤은 들어 보았을, 그 귀중한 고전의 목판본을 실제로 볼 수 있었던 좋은 기회였던 셈이다. 더구나 세계에자랑할 수 있는 문화유산인 한글의 창제를 기념하는 한글날을 끼고 행사가 이루어져 더욱 뜻 깊었다 할 수 있다.우리는 흔히 문화를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지만, 문화는곧 우리 인간들의 삶이며, 그것을 대표하는 것은 곧 책이다. 문자는 대량의 정보를 많은 사람들에게 한꺼번에 전달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오랜 동안 보관할 수 있는 것이다.그래서 책 출판을 그 사회의 문화 수준의 척도로 삼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금속 활자를 세계만방에 자랑하고, 구텐베르크의 금속활자 발명을 세계적인 문화 사건으로 기억하는것도 다 이 때문이다.우리나라에서는 각 시대별로, 그리고 각 지역별로 독특한 출판 문화가 발달되어 있었다. 특히 조선 시대는 학문을근간으로 하는 양반 사대부들이 사회를이끌어가던 때라 문자나 출판에 대한 관심이지대했다. 조선후기에 이르러대량 출판의 필요에 따라 목판 등에 글을 새기고 출판하는 방법이 등장하게 되는데, 이를 일러 소위 방각본 출판이라 한다.방각본 출판은 크게 세 군데가 유명하다. 서울, 전주, 안성이 그곳인데, 우리의 관심을 끄는 전주에서 출판된 책들을 가리켜 완판본이라고 한다. 이번 전시회에 선보인 많은목판들이 바로 이 완판본의 저본을 보여주는 것들이다. 특히 완판본은 한글로 된 문헌들이 유명한데, 이번 전시회에서도 대부분의 목판이 한글본이 중심을 이루고 있었다.많은 이들에 의해 이야기되어 왔지만, 완판본이 전주에서 등장하게 된 것은 여러 가지 요인이 작용했을 것이다.우선 들 수 있는 것은 판목을 만들 수 있는 목재 공급의 수월성을 생각할 수 있다. 지금도 한지하면 전주를 떠올릴 정도로 유명한 것처럼, 책을 찍어낼 한지의 생산과 공급이 요이하였을 것이다. 현재 국내 최고의 종이 박물관이 전주에위치하고 있는 것도 이런 역사적 전통의 연장선상에 있다고 보아야 한다. 출판을 담당할 수 있는 재력도 주요 요소가 된다.그러나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그러한 책을 쓸 수 있는다양한 서예가가 많이 있었을 것이며, 판각을 할 수 있는조각가가 있었을 것이다. 이렇게 보면 전주야말로 전통 예술과 문화의 중심지라는 말이 허언이 아님을 알 수 있다.이런 연유로 나는 이런 행사를 주최한 전주목판서화체험관이야말로 이런 문화 체험의 최전선에 위치한 기관임을 짐작할 수 있었다.전북대 국문학과 이태영 교수에 의하면, 완판 방각본 한글 소설은 1823년『별월봉긔하(하권, 48장본)』가 전주시평화동 원석구에서 발간되면서 출판이 시작되었다. 이후많은 작품들이 출판되었으나, 특히 판소리계 작품들이 눈에 많이 보인다. 완판본 한글 고소설들은 처음에는 낭송을하면서 필사를 하게 된 것으로 추정된다. 때문에 판소리의고장이 아니었으면 낭송체의 완판본 고소설도 등장하기어려웠을 것이다.이처럼 완판본은 판소리로 대변되는 당대 서민들의 대중 문화의 성격을 한눈에 보여준다. 이는 서체를 통해서도 알 수 있다. 서울에서 출판된 경판본은 오늘날 서체의 명칭으로 말하면 궁체의 하나인데 비해, 완판본은민체에 해당하는 것이다. 그러고 보면, 경판본이나 안성판본과 완판본을 비교해 보면, 그 차이점이 적나라하게 드러날 수 있다. 이번에는 그럴 겨를이 없었다고 믿어지고, 현실적 어려움도 있으리라 생각되지만, 다음에는 이처럼 각판본을 비교할 수 있는 전시 기획이 요망된다 할 수 있다.출판 문화의 메카, 전주를 기대하며이번 전시회는 기본적으로 박물관적 기획 전시라 할 수 있다. 이를 통해 우리는 평소 접하기 힘든 귀한 유물을 진품으로 볼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된다. 그러나 이에 그친다면, 그야말로 일회성 행사로 그치게 될 것이다. 고전은 과거의 화려했던 영화를 되새긴다고 해서 만들어지지 않는다. 고전이그야말로 살아 있는 고전, 오늘날에도 가치를 잃지 않는 고전이 되기 위해서는 몇 몇 노력이 필요하다고 본다.우선 디지털 정보 사회에 걸맞게 관련 자료들을 디지털화하여, 언제 어디서도 참고하고 즐길 수 있는 조치가 이루어져야 한다. 최근 각 분야에서 이런 노력이 경주되고 있으나,지역 문화 유산의 경우 지역 주민들의 참여와 관심이 그 어느 때보다도 필요하다. 완판본 서체를 활용하여 공예품을 만들거나 간판 등에 활용하는 일도 고려해 볼 만 하다. 전주 인터체인지의‘호남제일문’글씨가 나름의 상징성을 띠고 있음을 기억하자.그리고 전주를 우리나라의 출판 문화의 메카로 만들어보려는 노력은 어떨까? 정부의 행정력에 힘입어 수많은 출판사들이 경기도 파주로 이사하면서 출판문화단지가 조성되었다. 그에 필적하기는 힘들다 하여도, 우리 지역에서도 나름좋은 출판사들이 지역 문화 발양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적어도 내가 생각하기에 내 고장 출판사나 출판물에 우선적 관심을 두는 것은 단순한 향토애 발현을 넘어 필요하고 또한중요한 일이다.이 가을의 한 때를 고전의 은근한 향기와 더불어 사는 전주 시민들과 즐길 수 있었음을 기쁘게 생각한다. 그래서 드는 생각이니, 이런 문화 체험의 기회가 자주 있고, 또 더 많은 이들과 함께 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바쁠수록 허리를 펴고 주변을 돌아보자. 재미있고 보람찬 일들이 여기저기에서우리들을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한창훈 1968년 제주 출생이다. 고려대 국문학과에서 박사 학위를 취득한 후 2002년부터 전북대학교 사범대학 국어교육과에서 교수로 재임 중이다. 주요 관심사는 고전시가 교육과 지역민속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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