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11 |
[테마기획] 간이역 사람들 2
관리자(2009-11-06 17:56:37)
넉넉한 느림의 여유, 내 마음의 고향 천원역
빠르게 변화하는 세상, 한때는 전국에서 밀려드는 사람들로 북적이던 나이든 역사(驛舍)가 있다. 시간에 밀려 뒤처졌지만 여전히 세상을 넉넉히품고 안아주는 천원역. 처음엔 왕심리에 있었으나 1986년에 지금의 천원으로 이전했다. 정읍문화원에서 펴낸『조선환여승람정읍편』을 보면‘수곡부곡천원역’이라는 이름으로 전해진다. 또 다른 이름으로는‘수다역(水’多驛)이라는 말도 있는데 수곡은 물골이요, 수다는 물이 많다는 뜻으로모두 천원이라는 이름과 관계있다.
천원역은 1945년 설립됐으나 1950년 6·25 전쟁으로 불타 사라졌으며 5년 후인1955년 다시 복구됐다. 어느덧 사람들의 발길이 끊긴 텅 빈 천원역에는 고요함만이 가득하다. 고요하지만 넉넉한 이곳은 마음의 조급함도 잠시 내려놓게 하는 곳이다.들녁 하늘에 매달린 노을이나 아침 햇살 주워 먹으며 저 자리는 청보리처럼 살고 싶네/ 바람을지집 삼아 옆구리에 끼고 덤으로 준다는 별빛이며 달빛이며를 평생 이웃하며 희희낙락 살고 싶네/(이해경, 「천원역」중에서)이곳의 마지막 역장으로 천원역과의 추억, 아픔, 기쁨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임재훈 씨. 그는 기차가 지나갈 때 빼놓고는 시끄러움이 없는 맑은 하늘과 평온함이 있는곳이라며 천원역을 떠올렸다.천원역은 신라시대부터 역의 기능을 했으며 조선시대에도 말을 갈아타는 역이었다고한다. 한때는 역 앞 마을에 직물 공장들이 많아 그만큼 화물과 여객수송의 기능이 활발했던 곳이다. 인근에 입암산이 있어 등산객들도 자주 내리던 곳이다. 지금도 그 명맥을유지하고 있지만 연탄공장이 있어서 연탄을 주로 사용했던시절에는 주원료인 석탄수송의 한 축도 담당했다고 한다.그는 겨울에 전라북도 내 철도역 중 눈이 제일 많이 내리는 곳이 천원역이라고 말했다. 하얀 눈이 가득 쌓인 천원역. 오직 바람과 하얀 눈만 존재하는 그곳의 적막함은 이세상의 것이 아닌 듯싶다.임 역장은“어릴 적 기차를 타고 가다보면 간이역 승강장에 서 있는 작은 소나무며, 역무원들이 팔 흔드는 동작을보며 정겨움을 느꼈고 그래서 간이역에서 근무하고 싶다는생각을 갖게 됐다”고 말했다. 그에게 간이역은 마음의 고향이자 동경의 대상이었다.그러나 역장이 되고 난 후“역을 책임지는 수장의 입장에서 의욕과는 반대로 점점 효율화 차원에서 없어져가는 간이역의 미래를 생각하면 마음 한쪽에서는 늘 허전함을 느꼈다”고 말했다. 그는 앞으로 간이역은 점점 사라질 것이고 이제 사람들은 다른 곳에서 마음의 고향을 찾아야 한다며 안타까움을 토로했다.인근에 있는 초등학교를 열차로 출근하던 교장선생님,역에 예쁜 글씨로 낙서하던 소녀 등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게 해 준 간이역. 그는 그 중에서‘교통안전체험 프로그램’을 운영하며 만났던 정신지체장애를 가진 이들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말했다. “그때 교통안전체험 프로그램에 참여한 대부분의 단체는 주로 유치원이었다. 그런데 특이하게 정읍의 정신보건세터에서 참여한 적 있다. 정신연령이조금 뒤쳐진 어른들이신데 그분들이 오셔서 철길 건널목건너는 요령 등을 배웠다. 직접 가까이에서 만나보니 너무천진난만하고 구김이 없는 분들이었다. 그분들을 보며 세상에 찌든 삶을 살아가는 나 자신을 되돌아보게 됐다”며역 광장에서 그분들과 노래하고, 이야기하던 기억이 새삼떠오른다고 한다.간이역이 세상 사람들의 마음에 고향 역할을 할 수 있기를 바란다는 그. 넉넉하고 포근한 마음이 천원역과 꼭 닮았다.
송민애 문화저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