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11 |
[테마기획] 내 추억 속 간이역 2
관리자(2009-11-06 17:55:49)
그 여자는 떠났네
한정화 시인
시내를 벗어나자 들판이 보였다. 수확하기 조금 이르다 싶은 때의 들판은 꼭 고흐의 해바라기처럼 눈이 부신데, 그 들판을 바라보다가 나는 명암을 배웠다. 고등학교 미술시간에 유화를 그릴 때 아무리 해도 어설퍼 덧칠만 하다가 망가뜨리던 그 밝음과어둠이 이맘때의 들판에서는 확연히 깨달아지는 것이었다. 눈부신 들판과 들판 가장자리의 나무 그늘. 거기에 명암이 있었다.버스는 이내 고속국도로 들어섰다.
춘천 가는 길이었다. 알 수 없는 것이, 혹은 알고 있는 것이 마음 가득 넘실대다 위험수위까지 차오르는 때에 무작정터미널로 기차역으로 가곤 한다. 그래서 바다나 강, 어쨌든물을 볼 수 있는 곳으로 가는 버스나 기차에 훌쩍 오르는데이번에는 춘천이었던 것이다. 춘천은 십여 년 전 잠깐 들렀던 적이 있을 뿐 마음먹고 혼자 나서기는 처음이다. 수원,의왕, 성남 표지판들을 스쳐 남양주 시내로 들어가 도농, 금곡, 평내, 마석을 지나고, 그리고 북한강이 나타났다. 북한강……. 열리지 않는 유리창에 바짝 붙어 강물을 내다보았다. 깊어 보였다.모텔 간판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청평이 가까워진 것이다. 그렇다면 잠시 후 가평. 그제야 깨달았다. 이 길은 그냥스쳐가지 못할 기억이 새겨진 길이었다는 것을. 기사가 마이크를 잡고 가평입니다, 가평. 가평 내리세요. 했다. 서너명이 내렸다. 버스가 출발하기 직전 나도 모르게 내렸다. 내려 버렸다.생전 처음 낯선 곳에 뚝 떨어진 사람처럼 두리번거렸다.하기는 생전 처음이라 해도 지나친 표현이 아니게 변해 있었다. 우선 터미널 건물이 그렇고 24시 편의점이 그렇고 한눈에도 두어 개가 넘는 게임방이 그렇고 빼곡하게 늘어선상가들이 그랬다. 길만 좁다 뿐 영락없는 도시 모습에 잠시실망스러웠으나 원래부터 주변 경관이 빼어난데다 한류열풍을 일으킨 드라마 촬영지까지 근처에 있으니 어련할까 하고 말았다. 이미 방향감각을 상실한 나는 편의점에 들어가길을 물어야 했다. 가까운 줄은 짐작하고 있었지만 민망하게도 역은 터미널 바로 뒤편에 있었다.기차가 도착할 시간이 되었는지 적잖은 사람들이 우르르플랫폼으로 나가는 틈에 섞여 차표도 없이 나도 따라 나갔다. 곧 기차가 도착하고 사람들이 떠났고 반대 방향에서 또기차가 도착하고 다시 사람들이 왔다. 기차도 사람들도 다빠져나갈 때까지 서성이다가 개찰구에서 멀리 떨어져 역무원의 시야에 잡히지 않는 의자에 앉았다. 햇볕을 받아 따뜻해 보이는 침목에 드러눕고 싶다는 생각을 밀어내고 얌전히앉아 있었다. 여느 간이역과 달리 다국적으로 몰려들었을관광객 탓에 노동량이 늘어난 철로가 힘겨워 보였다.얼마나 앉아 있었을까. 다시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체험학습 다녀오는 길인지 유치원 아이들이 몰려왔다.인솔교사의 말에 잘도 대답하면서 해찰들도 해가면서 합창을 해댔다. “여우야 여우야 뭐하아니 밥먹느은다 무슨바안찬 개구리 바안찬 죽었니 살았니”를 끝도 없이 되풀이하면서 무엇이 그리 재미있는지 까르르까르르 자지러진다. 어쩌다 단체로 개구리 바안찬을 빼먹었는데 그 뒤로는 계속 무슨 바안찬에서 곧바로 죽었니 살았니 한다. 자꾸 듣다 보니무슨 반찬인지 모르는 사람처럼 괜히 궁금해지려고 했다.다시 기차가 들어오고 갈 사람들은 가고 또 기차가 들어오고 올 사람들은 왔다. 오고 가는 기차와 사람들 사이에 잠시 서 있었다. 가고 오는 것. 어느 쪽이 가는 쪽이고 어느 쪽이 오는 쪽인가. 그건 순전히 내 시선과 마음의 방향에 달린것이었다. 상행열차든 하행열차든 내가 바라보고 있는 쪽에서‘오는’것이고 또 내가 바라보는 쪽으로‘가는’것이었다. 사람도 마찬가지겠다. 내 시선이 마음이 온전히 머물지않으면 그저 스쳐 지나가는 것일 뿐 온 것도 간 것도 아니겠다. 그가‘온’것은 내가 그쪽을 바라보고 있었다는 것이었고, 그가‘간’것은 내 마음이 아직 그에게서 방향을 돌리지못하고 있었다는 것이었겠다. 다시 적막해진 철로의 침목과레일이 점점 거리를 좁히다가 한 점이 되어가는 것을 오래바라보았다.“어제 나는 슬펐네. 그 여자는 떠났네. 떠난다는 말없이사라져가 버렸네……”. 송창식의 <애인>이라는 노래가 느닷없이 튀어나왔다. 쏟아지는 빗속에 말없이 사라졌다는 그여자가 이 맑은 가을날 왜 튀어나온단 말인가.DJ로 아르바이트를 했던 학교 앞 음악다방 <우리는>. 수업이 끝나면 무리지어 드나들던 남학생들 중 한 사람. 가끔허락도 없이 불쑥 음악실로 들어와 유리창 아래 앉아 노래를 듣던 사람. 빨갛고 꼿꼿한 머리털, 가무잡잡하고 갸름한굴에 자글자글한 주근깨. 눈썹이 진하고 눈매가 매서운사람. 웃음소리도 웃는 입도 무지하게 큰 사람. 통이 큰 바지에 바람을 잔뜩 집어넣고 다니던 사람. 주다스 프리스트의 <새벽이 오기 전에>를 폭발적으로 부르던 사람. 조그만찻집 <몽마르뜨>에 언제나 먼저 와서 기다리던 사람. 떠난건 그 남자인데…….스무 살 봄은 학력고사를 치르고 졸업을 앞둔 차가운 새벽 자전거에 신문을 실어 나르다가 천천히 왔다. 대학 등록마감일 오후까지도 장학금을 제외한 등록금을 구하지 못해이불 뒤집어쓰고 서울로 튈까 부산으로 튈까 궁리하는데 어머니 또 어디서 단내 나는 돈 빌어 간신히 등록한 봄. 자연계 수학 100점짜리 자랑스러운 내 쌍둥이 동생은 수학교육과 합격하고도 끝내 비싼 사립 등록금 구하지 못해 구로공단으로 튀었다가 붙들려온 봄.그렇게 와서 갈피를 못 잡던 어느 밤. 나와 내 동생은 불도 안 켜고 구석방에서 몰래 소주를 마시고, 문 밖에서 집한 채가 홀랑 엎어지고 깨지는 익숙한 소리가 들려오고, 식구들은 나동그라져 뿔뿔이 흩어지던 그 봄밤. 다음 날 나는낯선 곳에 가벼웁게도 혼자 서 있었다. 경기도 가평군 설악면. 헤아려지지 않는 날들을 눈 뜨면 냇가에 나가 빨래를 하고 쑥을 캐고 하던 봄날. 나는 여기 멀리 해가 뜨는 새벽 강에 홀로 나와 그 찬물에 얼굴을 씻고……, 짙은 안개 속으로새벽 강은 흐르고 나는 그 강물에 여윈 내 손을 담그고……,아주 우울한 나날들이 우리 곁에 오래 머물 때……, 웅얼거리며 속절없이 깊어가던 그 봄날들.편지 한 통이 날아왔다.사랑이 오라 하면/ 불로라도 물로라도 아니 가오리까/ 사랑이손짓하여 부르면/ 험한 것을 사양하오리까/ 사랑이 오오 사랑이나를 찾는다면/ 마중하러 먼 길을 아니 가오리까/ 만나거든 다시는 떠나지 않도록/ 사랑이여 나더러 오라 하소서/ 발 벗은 채로뛰어 가오리다/ 사랑이여 나더러 빨리 오라 하소서/ 모든 것 버리고 달려 가오리다/ 사랑이여 나를 따라오라 하소서/ 땅 끝까지가오리다/ 그 명령이 그런 힘을 나에게 줍니다주요한 <명령>편지지에는 시 한 편이 적혀 있었고 맨 밑에는 새 한 마리가 그려져 있었다. 그리고 며칠 후 찾아온 그는 대뜸 화를냈다. 왜 아무 말도 없이 사라졌냐고, 얼마나 헤매고 다녔는지 아느냐고. 설악에서 가평으로 나와 짜장면을 먹고 문 열린 어느 교회당에 들어가 기도는 안 하고 독학으로 외웠던베토벤의 피아노 소나타 <월광> 1악장을 떠듬떠듬 나는 두들기고 그는 듣고 하다가 역으로 갔다. 기차를 탈 생각도 않고 태울 생각도 않고 안 가? 가야지. 안 가? 가야지. 바보들처럼 되풀이하며 하염없이 앉아 있었다. 막차 시간이 다가오자 그는 철로에 한참을 쪼그리고 앉아 있더니 내 손을 펼치고 손바닥에 무엇인가를 올려놓았다. 작은 칼이었다. 수술용 메스야. 그냥 갖고 다녔어……. 이제 버리려고. 그리고는 조심스럽게 집어 종이에 돌돌 말아 쓰레기통에 던지고손가락으로 철로를 가리켰다. 그가 앉아 있던 자리에 나도쪼그리고 앉았다. 침목 귀퉁이에 작은 글자 하나가 새겨져있었다. 너.날이 저물고 있었다. 불이 켜지고 다시 하나씩 둘씩 사람들이 모여들고 있었다. 가늠할 수 없는 어딘가에‘너’는 아직 있을까. 철로 가까이 가려다가 왁자지껄한 웃음소리에그만두었다. 삼십대 후반으로 보이는 여자 네 명이 몰려왔다. 야, 창동에 만 원짜리 나이트 있다는데 서울 도착하면가자. 나는 못 가. 아이고 죽겠다. 애가 전화에 대고는 엄마술 먹었지? 하는데 죽는 줄 알았다니까. 아까 그 군인들 어땠어? 니 신랑도 군 출신이라고 했지? 아니다 그건 다른 사람이었나? 야 조용히 좀 말해라 좀, 앗 뜨거……. 붕어빵을먹어가며 얼큰한 목소리들은 지칠 줄을 몰랐다. 기차는 약오십 분 간격으로 상하행선이 거의 동시에 들어오고 있었다. 그러니 한꺼번에 우르르 하다가 썰렁해지는 것이었다.제법 서늘해진 저녁 바람에 소름이 돋았다.마음속에서 넘실대던 것들은 다 흘러 나갔을까 아닐까.그만 가야겠다. 그렇구나. 나도 가는구나. 그랬겠다. 그가혼자 떠난 게 아니었겠다. 그에게서 나도 떠난 것이었겠다.수없이 왔다 간 사람들 중에서 가평역은 누구를 기억하고있을까. 그는, 그녀는, 언젠가 다시 올까. 변해버린 모습에나처럼 잠시 방향감각을 잃지는 않을까. 오지 않은들 어떤가. 설사 찾지 못한들 또 어떤가. 누군가에게 그때 그 자리는 영원히 그때 그 자리인 것을.어젠 비가 내렸네. 종일토록 내렸네. 쏟아지는 그 빗속에사라져가 버렸네……. 오늘밤 비가 내린다고 했었다.
한정화 전북 전주 출생이다. 전북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한 뒤 2002년 <시와 시학>에 당선돼 등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