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11 |
[문화칼럼] 전통은 미래다
관리자(2009-11-06 17:54:16)
전통은 미래다
김명곤 전주세계소리축제 조직위원장
나는 전주에서 태어나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전라도 밖을 벗어나지 못하다가,1971년 대학생이 되었을 때 처음으로 고향 땅을 떠나 서울로 왔다. 그 뒤 20대 후반에 온 가족이 서울로 올라오게 된 뒤로 점점 고향과 멀어졌다.물론 공연이나 일 때문에 가끔 고향에 내려가기는 했지만 오래 머물지 못하고 금세올라오곤 하다 보니 고향이 점점 낯설어졌다. 새로 뚫린 도로, 우뚝우뚝 들어서는 아파트들, 점점 번화해가는 거리들 때문에 추억 속의 장소들은 희미한 흔적만을 남긴채 사라져버렸다. 그래서 예전에는 고향이라고 내려가도 밥집이나 술집 말고는 특별히 마음을 끌어당기는 장소가 없었다.그런데 요즘 내 마음을 끌어당기는 장소가 나타났다. 바로‘한옥마을’이다. 풍남문, 경기전, 전동성당, 오목대, 한벽당 등과 어우러진 한옥마을 곳곳에 새로운 문화공간들이 생겨났기 때문이다. 예전에는 그저 오래된 한옥들만 들어서 있던 무미건조한 교동마을에 십수 년 전부터 아름답고 운치 있는 집들이 생겨나더니 어느 덧 나름대로 독특한 향기를 가진 문화공간이 되었다.『혼불』의 작가인 최명희 문학관, 전통문화체험관인 동락원, 강암 서예관, 향교, 전주전통문화센터, 전주 한지 체험관인 한지원, 조선의 마지막 황손인 이석 씨가 머무는승광재, 다도를 체험할 수 있는 설예원, 한옥생활 체험관, 술박물관, 공예관, 학인당,교동 아트센터 등등 흥미로운 문화공간들이 나의 발길을 붙잡는다. 또 계속해서 세워지고 있는 새로운 공간들에 대한 기대로 나는 전주만 오면 한옥마을에 들르곤 한다.한옥마을은 이제 전주를 대표하는 관광지로서도 인기를 끌고 있고, 놀랍도록 활기가 생기고 아름답게 가꿔지고 있다. 나는 한옥마을 근처인 중앙동에서 태어났지만 내가 태어난 동네보다 한옥마을을 더 사랑하게 되었다. 전통문화가 현대의 삶 속에 녹아 든 훌륭한 본보기로서 너무 자랑스럽다.세계 어느 나라나 전통은 현대 문화의 위세에 눌려 맥을 못 추고 있다. 그러나 선진국일수록 자기 나라의 전통을 지켜내기 위해서 세심한 배려를 아끼지 않는다. 일본은일찍이 60년대부터‘3K 4S’전략, 곧 카부키, 키모노, 카라데, 스시, 사쿠라, 사무라이, 사케 등 자국의 전통문화의 세계화 전략을 세우고 그 실행에 엄청난 공을 기울였다. 그 결과 일본의 전통문화는 세계인의 의식주 문화에 깊은 영향을 주고 있고, 일본의 전통문화에 매료된 수많은 외국 전문가들과 애호가들을 배출해냈다.중국은 중화주의의 기치 아래 중국의 고대 문명과 공자의 유학을 현대 중국의 통합에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인도의 전통문화는 일찍이 동양문화의 원류로 평가되며 유럽이나 미국의 수많은 문화예술인들을 매혹시켰고, 여전히 종교와 철학과 예술등의 분야에서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또한 유럽의 여러 나라도 미국의 대중문화에 대항해서 자국의 전통 예술을 살려내려고 혼신의 힘을 기울이고 있다. 프랑스는 일찍부터 강력한 문화정책으로 유럽의 문화중심국으로 부상했고, 영국은 토니 블레어 정부 때부터‘창조산업(Creative Industry)’육성의 기치를 내걸고 문학, 연극, 뮤지컬, 디자인 등 자국의 전통을 현대화하고 산업화하는정책을 시행해 오고 있다.이처럼 일찍부터 자국의 전통문화를 가꾸어 온 여타 나라들에 비해 우리나라는 너무도 뒤늦게 전통의 가치를 깨닫게되었다. 실제로 오랜 문화적 전통 속에서 화려하고 부유한 애호가들에 둘러싸인 서양의 전통 문화에 비해 소박한 촌로와서민들에게 둘러싸여 지내 온 이 나라 전통 문화의 현실이 너무 마음 아프다.많은 분들이 전통을 사랑하고 키워내야 한다고 말은 하면서도 실생활에서 전통은 아직도 편견 속에서 소홀하게 취급당하고 있으며, 때로는 무시당하고 있다. 이러한 현실에 대해 수많은 전통문화 종사자들은 슬픔을 느끼면서도 오로지 전통에 대한 애정과 열정으로 힘겨운 삶을 지탱해 나가고 있다. 그들이바라는 것은 주변 사람들의 편견 없는 사랑과 관심이다. 그들이 문화예술인으로서 진정한 자부심을 느끼고, 성장할 희망을갖도록 마음을 써 주는 주변의 깊은 배려인 것이다.나는 장관 재직 시절에 우리나라의 전통문화 중‘한’으로시작하는 한글, 한옥, 한식, 한지, 한복, 한국음악 6가지를 현대화하고, 산업화하고, 세계화하는‘한 스타일(Han Style)’사업에 심혈을 기울였다. 문화콘텐츠산업의 새로운 바람을 불러일으킬 원 소재로서 전국가적 사업으로 육성시켜야 한다는정책적 기조에서 적극적으로 추진했던 사업으로 전주 또는 전라북도는 그 산업을 일으킬 수 있는 최적지라고 생각한다.육자배기의 구슬픈 가락을 들어보거나, 살풀이의 처연하고애소하는 듯 끊어질 듯 이어지는 몸짓을 보거나, 애간장을 끊을 듯 처절하게 어우러지는 시나위의 가락이나, 한편으로는비장·처절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웅장·경쾌·호탕하기 그지업고 또 한편으로 포복절도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드는 판소리의 다양한 음악성이나, 전라도 민요의 꿋꿋하고 힘차고 발랄한 가락을 들어보면 전라도에 얼마나 다양한 우리 음악의 콘텐츠가 남아 있는지 놀랄 것이다.게다가 유명한 전주 한정식이나 비빔밥이나 콩나물 국밥을맛 볼 수 있는 밥집과, 막걸리 한주전자를 시키면 눈이 휘둥그레지게 안주가 나오는 막걸리집과, 한옥에서 와인을 즐길 수있는 와인바와 같은 특색 있는 밥집이나 술집이나 찻집들이속속 들어서서 전주만의 독특한 맛을 체험할 수 있게 해준다.또한 전주 한지의 아름다움과 서예의 멋, 한옥마을 비롯한고풍스러운 가옥들…. 예향으로서 전라북도가 가진 그 수많은 전통 문화의 여러 요소는 문화콘텐츠산업을 일으키는 풍부한 자양분이다.전통은 과거 삶의 흔적이다. 대부분의 전통은 나날이 서구화되어 가는 현대의 삶속에서 버림받고 박물관의 유물로 남아 있게 되는 슬픈 운명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나는 전통이박물관을 박차고 나와 현대인의 삶속에 살아 숨 쉴 때, 참다운 가치를 발휘한다고 생각한다. 그런 점에서 나는‘전통은과거로부터 이어진, 현재이며 미래’라고 생각한다. 전주 한옥마을은 과거의 마을이었지만, 과거를 박차고 변화함으로서‘현재의 마을’이 되었고, 점점 더 전주를 풍성하게 해주는‘미래의 마을’이 될 것이다.지금 전라북도는 새만금 사업이라든지, 무주 태권도 공원설립과 같은 대규모 개발 사업을 앞두고 지역의 미래상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나는 전주와 전라북도의미래는 전통을 기반으로 한 문화관광체육산업의 중심지가 되는 길에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21세기형 창조적이고 혁신적인 새로운 지역사회의 비전을 확고히 세워야 할 때다.우리 지역의 문화발전을 위해 끊임없는 노력을 아끼지 않는 <문화저널>의 존재는 그래서 더 절실하다. 21년간 우리지역의 건강한 문화를 지키기 위해 끊임없는 노력을 아끼지않았듯이 앞으로도 지역 문화의 발전을 위해 더욱 분발해야할 것이다. 문화저널이 지역의 건강한 문화 발전을 위한 디딤돌이 돼주길 진심으로 바란다.
김명곤 연극인. 제8대 문화관광부 장관을 지냈다. 현재 전주세계소리축제 조직위원회 위원장을 맡고있다. 1993년 청룡영화상 남우주연상과 영화평론가협회상 남우주연상 등 많은 상을 수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