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10 |
[서평] 『인권은 없다』
관리자(2009-10-09 17:00:22)
『인권은 없다』
인권의 이중성과 포스트민족주의적 실천
문만식 농부
린 헌트(Lynn Hunt)는 미국 캘리포니아대학 로스앤젤레스 캠퍼스(UCLA)의 근대유렵사학 교수다. 이미『프랑스혁명기의 정치, 문화, 계급』과『프랑스혁명의 가족로망스』등으로 한국에 소개돼 있다. 『인권의 발명』은 린 헌트가 학부생들을 위한 강의용으로 편집하고 번역한 사료집인『프랑스혁명과 인권: 간추린 기록사』(1996)를 발전시켜 2007년에 발간한 책이다(린 헌트 지음, 『인권의 발명』(원제: Inventing HumanRights), 돌베개, 2009).
인권의 미래를 위해서는 이중성을 인정해야
이 책의 화두는“인간의 권리가 지닌 역사적 맹점에도 불구하고 인권에 대한 18세기적 전망을 아직도 지속해야 하는가?”에 대한 저자의 성찰이다. 그녀에 따르면 인간의 권리의 맹점은 크게 두 가지, 즉 민족주의와 폭력의 문제에서 발견된다. 민족주의는 1815년 이후, 특히 19세기를 거치면서 점차 권리를위한 지배적인 틀로 자리 잡았다. 인권은 민족자결에 근거를두게 되고 필연적으로 인권과 민족의 우선순위가 뒤바뀌게 되었다. 더욱이 자국민 보호라는 새로운 기운 속에서 민족주의는더욱더 외국인 혐오 및 인종주의적 성향을 띠어갔다. 게다가민족주의의 쇄도와 침투는 사회주의와 공산주의 운동에 대해서도 예외가 아니었다.인권은 또한 프랑스 혁명기에 저항 세력에 대한 탄압과 적으로 간주된 자들에 대한 무더기 처형을 동반했다. 저자는 프랑스혁명에 대한 맹렬한 비난자였던 에드먼드 버크의 주장을 인용한다. “프랑스에서의 선언은 다름 아닌‘형이상학적 추상’에의존하고 있기 때문에 복종을 이끌어낼 만한 감성적 힘을 충분히 갖지 못했다…. 혁명가들이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폭력을 행사해야 할 것이다.”한편, 권리가 보편적이고 평등하며 자연적이라는 선언에 맞서 생물학적으로 배제를 정당화하려는 흐름이 19세기에 폭발적인 힘을 보여주었다. 저자는 이를“아이러니하게도 인권이라는 바로 그 관념이 부지불식간에 더욱 악의적인 성차별주의,인종주의, 그리고 반유대주의의 포문을 연 것”이라고 본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권의 미래를 위해서는 이러한 맹점과아이러니, 즉 이중성을 인정해야 한다고 저자는 강조한다. 폭력, 고통, 지배의 효과가 어느 때보다 강력해졌지만‘공감’은고갈되지 않았으며 그 어느 때보다 선(善)을 위한 강력한 힘이되었다는 것이다. 게다가 인권은 악에 대항하는, 우리가 공유하는 유일한 보루이므로 인권에 대한 18세기적 전망을 아직도지속적으로 개선해나가야 한다는 것이 그녀의 주장이다.감정의 분출에서 권리의 선언까지이 책은 총 5장으로 구성돼 있다. 제1장「감정의 분출: 소설을 읽고 평등을 상상하다」에서 저자는 심리적 동일시와 공감이타인에게 연민을 느끼게 한다고 지적한다. 그리고 인권은 오직대중들이 타인들을 근본적으로 동등하게 생각하도록 배울 때에만 자랄 수 있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를 통해 모든 사람이그 길로 즉시 나설 수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는 점도 지적한다.이어 제2장「그들 뼈의 골질: 고문을 폐지하다」에서는 인권의식이 성장하면서 고문과 인도적 처벌에 대한 새로운 태도가유럽과 아메리카 대륙에 나타나는 과정을 묘사한다. 저자가 이장에서 특히 주목하는 점은 인간 신체에 대한 새로운 관심의출현이다. 이 대목에서 저자는 음악과 연극 공연, 실내 건축,초상화 등 문화와 예술 분야에서 18세기에 나타난 변화들이 개인적 감수성의 발달에 큰 자극을 주었다고 본다. 고통과 신체가 공동체가 아니라 오로지 개인에게 귀속된다는 관념은 감성에 대한 긍정적인 평가가 일반화되는 것과 궤를 같이 한다.3장의 제목은「그들은 훌륭한 모범 사례를 만들었다: 권리를선언하다」이다. 저자는 이 장에서「인간의 권리와 시민의 권리에 대한 선언」이 왜 선언의 형태로 권리를 공포하는가에 주목한다. 1789년에는‘헌장’,‘ 청원’,‘ 장전’같은 청원형 단어가권리를 보장하는 과업에는 부절절한 것으로 여겨졌다는 것이저자의 대답이다. 즉「권리선언」은 주권의 획득을 의미한 것이다. 그것도 보편성의 어법을 사용해서였다. 이 장에서 중심개념은‘보편성’이며 중심내용은 그것의 실천적 확대이다.제4장은「그것은 끝이 없을 것이다: 선언의 결과」다. 이 장에서 저자는「권리선언」의 효과로 종교적 소수자들과 자유 신분의 흑인, 노예 그리고 인종들이 평등한 권리를 획득해나가는지난한 과정을 소개한다. 그 과정이란 여러 복합적인 사건들이인간의 권리의 적용 가능성을 여러 영역에 인정하도록 강제하는 과정에 다름 아니었다.인권, 결국은 현실의 대중운동들의 몫이 책은 풍부한 사료를 제시하면서 인권의 초기 형성 과정을드러내는 데서 강점을 보인다. 또한 민족주의 및 폭력과 결합한 역사적 인권의 맹점을 과감하게 지적하기도 한다. 사회주의및 공산주의와 인권의 관계를 부각시킨 제5장의 논의도 인상적이다. 그녀의 기본적인 관점은 사회주의 및 공산주의 조직들이 권리라는 목표의 중요성을 부득이하게 감소시켰다는 것이다. 여기에는 두 가지 까닭이 있었다. 우선, 마르크스 자신이「권리선언」의 원리 자체를 비난함으로써 마르크스주의 운동 안에서 인권에 대한 논의를 차단했다. 둘째는, 공산주의와 사회민주주의의 분열이었다. 이 점에서 저자는“사회주의 국가는개인의 권리를 보장하는 한에서만 비로소 정당성을 확보한다”고 주장한 프랑스사회당의 창건자 중 한 사람인 장 조레스에주목한다.저자가 더 이상 논의를 진척시키지 않는 점은 아쉽다. 저자는 인권에 대한 역사적 분석과 근대적 인권의 맹점(한계)을 제시하면서도 그에 대한 어떠한 탈근대적 실천도 제안하지 않거나 못하고 있다. 제안이라면 국제조직과 국제법정 등 인권의실행체제를 이용하기, 인권의 보편성에 대한 요구를 확인하기,그리고 결국‘공감[인권감수성]의 확대’에 대한 주문이 있을 따름이다. 따라서‘인간의 권리’와 그것에 대한‘공감’사이에 사다리를 놓는 일은 독자의 몫이다.우선 저자의 시사에 따라 무엇보다도 근대적 민족공동체 속에 개인성(주체와 그 실천)이 편입됨으로써 그동안 억압되어 온다양한 차이와 갈등들을 부각시키는‘반(反)근대적’시각이 요구된다. 이러한 실천에는 저자가 이 책에서 일관되게 언급하는‘성차별주의에 반한 실천’을 우선 들 수 있다. 또한 폭력이냐비폭력이냐 하는 이분법적 사고를 초월하는 반전평화의 관점이 고무되어야 한다. 반인종주의 및 생태주의 또한 인권의 민족주의적 한계를 뛰어넘는 국제주의적 보편적 인권의 실천이될 것이다. 결국 인권을 현대정치의 새로운 진보이데올로기로위치하는 것은 현실의 대중운동들의 몫이 될 것이다
문만식 인권운동사랑방 부설 인권운동연구소 연구원으로 활동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