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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0 |
[신화이야기] 한국의 신화를 찾아서
관리자(2009-10-09 16:51:29)
중(中)세경  자청비의 비밀 - <세경본풀이>읽기 정인혁 전북대학교 인문한국 쌀·삶·문명 연구원, HK연구교수 무속신화, <세경본풀이> 이제는 잘 모르지만 우리는 많은 신들과 함께 살았다. 대문 앞에는 문전신이, 부엌에는 조왕신이, 변소에는 측신이, 뒷산에는 산신령이 언제나 우리들과 함께 있었다. 이신들에 대한 내력을 설명하는 것이 무속신화이다. 무속신화는 대부분 무속인들이 부르는 노래로 전해지기에 무가라고 하기도 한다.우리 민족은 오천년의 역사를 갖고 있다. 오천년이라 말이 쉽지 정말 장구한 시간을 살아온 민족이다. 그런 만큼유구한 문화유산을 갖고 있다. 그 중 하나가 농사이다. 충북 청원군 소로리에서 발굴된 쌀의흔적은 세계적으로 최고(最古)임을 자랑한다. 물론 아직 공식적으로 인정되지는 않았지만.우리 민족과 함께 해 온 쌀은 곧 우리 민족의 정체이자 상징인 것이다.그런데 흥미롭게도 우리 신화 속에 쌀이 등장하는 예는 찾기 어렵다. 신화가 우주와 신, 인간과 인간의 삶의 기원을 설명하는 것이라면 응당 쌀을 중심으로 한 우리 문화에서 쌀에 관한 신화가 없다는 것은 조금 이상하다. 과연 없는 것일까, 아니면 있었는데 전해지지 않는 것일까.쌀에 관한 신화는 아니지만 농경의 신, 곡식의 신에 관한 이야기는 건국신화 속에 삽입되어 전해지고, 또 무속신화로도 전해진다. 환웅이 인간 세상에 내려올 때 데려온 풍백, 우사,운사는 모두 농사와 직접적으로 관련 있는 업무를 관장하는 이들이었고, 고구려 건국신화에서 유화는 부여를 떠나 고구려를 건국할 아들, 주몽에게 보리 종자를 내어준다. 신라 시조 박혁거세의 아내 알영의 이름 속에 곡식의 신이었음을 짐작케 하는 단서가 들어있다. 알영의‘알’이 곡식‘낟알’을 의미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들 신화는 건국신화이고 시조신화이지농경신화는 아니다. 즉 이들 신화 속에서 농사는 건국이라는 궁극적인 목적을 이루는 주요요건으로 삽입된 것이다. 곡식의 유래와 농사를 관장하는 신에 관한 것을 주제로 하는 농경신화는 무속신화로 전한다.무속신화 <세경본풀이>가 대표적이다.왜 자청비는 중세경이 되었을까<세경본풀이>란 농경의 신인 세경신(世經神)의 근본(本)을 설명하고, 풀어주는 것이라는 뜻이다. 이야기에 따르면농경신인 세경신은 셋이 있는데, 상(上)세경, 중(中)세경, 하(下)세경이 그들이다. 이야기의 주인공인 자청비가 중세경,그의 남편인 옥황상제 아들 문도령이 상세경, 자청비네 하인, 정수남이 하세경이 된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아무리보아도 이야기의 주인공은 자청비인데, 정작 주인공인 자청비가 상세경이 아니라 중세경이 된다는 것이다. 왜 자청비는하필 중세경이 될까. 보통은 가부장제 사회에서 남편이 먼저이고 아내가 그 다음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무언가 답답하다. 아무리 좋게 해석하려 해도 문도령은 무능할뿐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또 그렇다면 굳이 세경신을 셋이나둘 필요가 있을까. 하세경인 정수남은 주인공 자청비를 겁탈하려 한 게으른 노비임에도 불구하고 세경신이 된다. 이 문제를 풀어보기 위해 먼저 <세경본풀이>를 읽어보자.김진국 대감은 큰 부자였으나 자식이 없었다. 부부는 수심이 깊었다. 그들 부부의 집 앞을 지나던 은정절 화주승이 자신의 절 부처님께 공을 드리면 아들 자손을 볼 수 있다고 하였다. 대감 내외는 정성을 들여 재를 준비했다. 은중절로 향하는 길에 무광절 스님을 만났다. 무거운 짐을 지고 먼 길을 가던 그들에게 무광절 스님은 멀리 갈 것 없이 자신의 절에 재를 올리라고 하였다. 대감내외는 그렇게 하였다. 이 소식을 들은 은중절 스님이 화를 내더니 아들을 얻을 것을 그르치게 되었다고 하였다. 김진국 내외는태몽을 꾸고 아이를 낳았는데, 딸이었다. 마침 하녀 정술데기도 태몽을 꾸고 아이를 낳았는데, 아들이었다. 김진국 대감의 딸인 자청비는 용모는 천상 여자인데 행동거지는 남자 아이 같았다. 정술데기의 아들 정수남은 게으르기가 한이 없었다.자청비는 어느 날 정술데기의 빨래하는 손을 보고 참 곱다고 생각했다. 정술데기는 빨래를 하다 보니 손이 고와졌다고 거짓말을하였다. 자청비는 집안 옷을 모두 걷어 주천강 여울로 빨래를 하러갔다. 한창 빨래를 하는데 하늘 옥황 아들 문도령이 글공부를하러가다 자청비를 보게 되었다. 문도령은 참 고운 아가씨라 생각했다. 자청비도 문도령과 글공부를 함께 하고 싶었다. 그러나 여자의 몸이라 함께 할 수 없었기에 자청비는 남장을 하고 남자 행세를 하며 문도령과 함께 글공부를 시작했다.자청비는 문도령, 삼천 선비와 더불어 3년을 기약하고 공부를시작했다. 장원은 자청비의 차지였다. 문도령은 샘이 났다. 달리기시합을 청했다. 자청비가 이겼다. 씨름을 청했다. 이번에도 자청비가 이겼다. 오줌발 멀리 날리기 시합을 청했다. 하지만 이번에도아래에 죽순 대롱을 끼워놓고 오줌발을 날린 자청비의 승리였다.그러던 어느 날 하늘로부터 문도령에게 편지가 왔다. 서수왕 아기와 결혼하라는 내용이었다. 문도령은 떠나야함을 고한다. 자청비도 부모님을 뵈러 간다고 함께 길을 나섰다. 자청비는 자신이 남장을 하고 속여 왔지만 3년이 지나도록 한 방을 쓴 자신을 알아보지못한 문도령이 야속했다. 주천강 여울에서 자청비는 나뭇잎에 글을써서 문도령에게 띄워 보낸다. “눈치 없는 문도령아, 멍청한 문도령아. 삼년간 한방을 쓰고도 남녀 구별도 못한 문도령아”.그제서야 문도령은 함께 수학했던 그 친구가 실은 자신이 반했던 자청비임을 알게 되었다. 둘은 자청비의 집에서 첫날밤을 보냈다. 자청비는 물었다. 언제 돌아오느냐고. 문도령은 박씨 하나를주며 박씨를 심어 박이 열어 따게되면 돌아오겠다고 하였다. 문도령은 그렇게 떠났다.마침내 문도령의 박씨에서 싹이트고 잎이 자라서 박이 열리게 되었다. 항아리처럼 커진 박을 딸 때가 되었지만 문도령은 돌아올 줄몰랐다. 자청비는 시름에 겨워 하릴없이 서성이다 밖을 내다보았다. 오순도순 길을 걷는 청춘남녀가 보였다. 심술이 났다. 괜히 한 쪽에 허위허위 앉아 이를 잡고 있는 정수남을 나무라도 해오라고 타박을 했다. 정수남은 나무는 하지 않고 잠만 늘어지게 잤다. 허기에 잠을 깬정수남은 데리고 간 아홉 마리 소를 다 잡아먹었다. 정수남은 이렇게돌아가면 자청비에게 한소리를 들을 것 같았다.정수남은 연못가에서 문도령이선녀들과 놀고 있는 것을 보았다고 거짓말을 지어댔다. 자청비는문도령을 보고 싶은 마음에 정수남의 말만 믿고 함께 가자하였다. 그러나 도착한 연못가에 문도령은 그림자도 보이지 않았다. 속은 것을 알았을 때 정수남은 이미자청비를 겁탈하려고 하였다. 자청비는 정수남을 슬슬 달래며 이를 잡아주겠다고 하였다. 자청비의 무릎에 머리를 베고 누운 정수남의 귀를 자청비는 청미래 덩굴로 꼬챙이를 만들어 푹 찔렀다.정수남은 피를 흘리며 죽었다. 그 몸에서 부엉이 한 마리가 날아올랐다.정수남의 겁탈 위기를 벗어난 자청비는 집에 돌아가 김진국 대감에게 사실을 알렸다. 대감은 죽을 때까지 일을 할 종을 죽였다고 화를 내었다. 자청비는 자신이 그 일을 하겠노라고 답하였다.자청비는 넓은 밭에 좁씨를 뿌렸다. 대감은 좋지 않은 날에씨앗을 뿌렸다고 화를 내며 다시 한 톨도 빠짐없이 주워오라고 하였다. 자청비는 울면서 닷말 닷되 되는 좁씨를 하나씩 줍기 시작했다. 그런데 한 톨이부족했다. 대감은 자청비를 쫓아냈다. 울면서 집을 나서는데개미 한 마리가 좁씨 한 톨을물고 가는 것이 보였다. 자청비는 한탄하며 개미 잔등을 푹 밟았다. 이때부터 개미 잔등이 가늘어졌다.자청비는 남장을 하고 집을떠나 정처 없이 떠돌았다. 한마을에 이르렀는데, 사라장자의뒷동산에 낯선 부엉이 한 마리가 온 후로 마을에 흉험이 내렸다고 하였다. 자청비는 사라장자의 뒷동산에 가서 부엉이에게말했다. “정수남아, 정수남아.네가 나 때문에 원한이 맺혔구나. 이리 내려앉아 내 품에 안기라”.다음 날 자청비는 부엉이를 품에 안고 사라장자에게 찾아갔다.사라장자는 고마워하였다. 자청비는 사라장자 서천꽃밭의 환생초를 달라고 하였다. 사라장자는 당연히 그러하겠다며 자신의 소원도 하나 들어달라고 하였다. 자신의 딸을 아내로 맞아달라는 것이었다. 사라장자의 딸과 결혼까지 한 자청비. 그러나 그는 여자였다. 사라장자의 딸이 아버지에게 남편이 자신을 돌아보지 않는다고 하소연을 하였다. 자청비는 이를 눈치 채고 긴한 일이 있어 몸 깨끗이 하느라 그런 것이니 다녀오면 될 일이라고 하였다. 환생초를 얻어 나온 자청비는 정수남의 죽은 몸 위에 환생초를 문질렀다. 정수남이 살아났다. 자청비로인해 살아난 정수남은 예전의 정수남이 아니었다. 고분고분하고 부지런해진 것이었다.자청비는 정수남을 앞세우고 김진국 대감 앞에 머리를 조아렸다. 그러나 대감은 사람을 죽였다 살렸다 하는 요망한 것이라며 다시 자청비를쫓아냈다. 자청비는 눈물을 흘리며집을 나와 다시 정처 없이 떠돌았다.헤매던 자청비는 해 저문 산중에서빛을 발견했다. 하늘 옥황 문도령의결혼식에 쓸 비단을 짜는 주모 할미의 집이었다. 자청비는 주모 할미를거들어 비단을 짜다 끝에 이렇게 수를 놓았다. “가련하다 자청비, 불쌍하다 자청비”.문도령은 주모할미에게서 비단을받아 보다가 깜짝 놀랐다. 자청비의이름 석자가 새겨져 있었던 것이다.문도령은 주모 할미로부터 자청비이야기를 들었다. 할미에게 자신이오늘밤 갈 것임을 자청비에게 전해달라고 하였다. 소식을 들은 자청비는 갑자기 마음이 바빠졌다. 문도령을 기다리는데, 창밖에서 들리는 문도령의 목소리, 자청비는반갑고도 얄미운 마음이 들었다. 문도령이 창구멍으로 손가락을내밀자 바늘로 톡 찔렀다. 깜짝 놀란 문도령은 놀라서 하늘로 올라가 버렸다. 이 일을 들은 주모 할미는 말썽쟁이라며 자청비를내쫓았다.다시 길로 나온 자청비, 머리를 깎고 중이 되어 시주를 다니기시작했다. 어느 날 선녀들이 울고 있는 것을 보았다. 선녀들은 문도령의 시녀인데 문도령이 자청비와 글공부 할 때 함께 목욕했던곳의 물을 떠오라고 하였는데, 찾지 못해 운다고 하였다. 자청비는그들에게 물을 찾아주고 대신 옥황으로 데려가 달라고하였다.또 한 번의 재회, 그러나문도령은 곧 서수왕 아기와혼인을 하고 남의 남자가 될상황이었다. 자청비는 문도령에게 묵은 장이 새로 담은 장보다 더 좋다는 것에 비유하여 옥황께 예전부터 사랑하는 사람이 있음을 알리라고가르쳐준다. 시키는 대로 하는 문도령. 문도령의 부모는자청비와 서수왕 아기에게며느리 자격 시합을 치르게한다. 뜰에다 숯불을 피워놓고 그 위에 칼 선 다리를 놓고 건너는 것이었다. 서수왕아기는 울면서 포기하였다.이윽고 자청비의 차례, 자청비는 벗은 발로 칼선 다리에올라 건너기 시작했다. 발뒤꿈치가 살짝 배어 피가 나자치맛자락으로 쓸어 닦았다. 이것이 월경(月經)의 시작이었다.자청비는 드디어 문도령의 아내가 되었다. 자청비를 며느리로삼은 옥황은 서수왕 아기집에 혼인을 무르는 편지를 보내었다. 편지를 받은 서수왕 아기, 분을 내며 편지를 태워 물에 타 먹고는]앓아누웠다. 며칠 뒤 죽은 서수왕 아기의몸에서 새가 나왔는데, 머리에서 두통새,눈에서 흘깃새, 코에서 악심새, 입에서 헤말림새가 나왔다. 이 후로 사이좋은 부부간에도 이 새가 들면 안 좋은 일이 생긴다고 혼례를 할 때면 신부가 상을 받고서 숟가락을 들기 전에 이들 몫으로 음식을 조금씩 걷어서 내려놓는 풍습이 생겼다.자청비와 문도령의 금슬을 시기하던 자들이 마침 일어난 인간세상의 변란을 해결할 인물로 문도령을 내세웠다. 문도령은걱정에 빠졌다. 이를 안 자청비는 자신이변란을 막을 테니 그동안 사라장자의 집으로 가서 그의 딸과 함께 지내다가 돌아오라고 하였다. 다만, 보름을 넘기지 말 것을 당부했다.청비는 자기 대신 문도령을 사라장자의 딸에게 보내고 자신은 문도령 대신 전장으로 나아갔다. 변란을평정하고 돌아온 자청비. 그러나 보름이 지나도 문도령은 돌아오지 않았다. 사라장자의 딸과 단꿈에 빠져 세월 모르고 있던 문도령, 자청비의 전갈을 받고서야 황급히 떠날 준비를 하였다. 사라장자의 딸은 문도령이 돌아오지 않을까봐 말을 거꾸로 태워 보냈다.자청비는 남편을 맞이하러 나갔다. 그런데 그 모습이 말까지 거꾸로 타고 사라장자의 집 쪽을 바라보면서 오는 것이었다. 이제자신을 더 이상 보고 싶어 하지 않는다고 생각한 자청비, 옥황에서의 삶을 포기하고 옥황께 갖은 곡식 종자를 받아 인간세상으로내려와 부모를 찾기로 하였다.대감은 자청비를 위로하며 종이라도 데리고 가라고 하였다. 자청비는 정수남을 데리고 세상 농사를 돌보았다. 자기네를 알아보는 사람들은 밭도 갈아주고 하늘곡식 종자를 나누어주어풍년이 들게 하고 자기네를 무시하는 사람들은 흉작이 들게 하였다. 자청비는 중세경, 정수남은 하세경이자 목축의 신이되었다. 상세경은 문도령의 차지였다.자청비가 하늘에서 온갖 곡식을 갖고올 때 메밀씨를 잊고 왔다. 뒤에 다시 가서 받아왔기에 지금껏 메밀이 다른 곡식보다 늦게 되는 이유가 이 때문이다.비정한 아버지, 배신하는 남편, 폭력적인 하인여신들의 내력이 그러하듯, 자청비도 세경신이 되기까지 참 파란만장한삶을 살았다. 아버지에게 두 번이나내쫓기고 종에게 겁탈의 위협을 당하며, 믿었던 남편의 배신도 맛보았다. 자청비의 참견하기 좋아하고 솔직한 성격이 때로 문제를 만들기도 했지만, 자청비는 우리가 생각하던 순종적이기만 하고 자신의 주장이 없는 수동적인 여성이 아니었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세상의 문제를 해결하는 적극적이고주체적인 인물이다.그를 힘들게 한 것은 그를 둘러싼 남자들이었다. 아버지는겁탈의 위협을 받은 딸의 안위보다 집을 위해 일할 종의 죽음을 더 걱정하고 딸을 내쫓는다. 아버지답지 않은 아버지다. 문도령은 하늘 옥황의 아들이지만 무능한 인물이다. 자청비보다 공부도 못하고 달리기, 씨름, 심지어 오줌발 멀리보내기도 못한다. 한방을 쓰면서도 자신이 좋아했던 그녀를알아보지 못한다. 사랑하는 사람을 앞에 두고도 부모님께 그사실을 말하지 못한다. 옥황의 아들이면서도 인간세상의 변란을 막을 자신도 없다. 뿐만 아니라 약속도 지키지 못한다.박씨가 열리면 돌아오겠다는 약속도 지키지 못하고, 자기 대신 목숨을 걸고 전장으로 나가는 아내와의 약속, 보름 내로돌아오라는 것도 외간 여자의 품 안에서 까맣게 잊는다. 정수남은 말 그대로 천하의 악한이다. 열심히 일을 해야 할 종이지만 게으름은 어느 누구에게 못지않다. 꾀는 있지만 나쁜쪽으로만 발달했다. 주인 자청비를 겁탈하려고 거짓말에 속임수를 가리지 않는다.그런데 이런 자청비 주변의 남자들은 모두 용서를 받고 오히려 상을 받는다. 김진국 대감은 어떤 원망도 듣지 않고, 능력이 없기에 아무것도 하지 않는 문도령은 상세경이 되며 악한 정수남은 하세경이 된다. 정작 모든 문제를 해결하고 주변 사람들을 위해 헌신하고 인내하며 자신에게 해를 입히는사람들을 용서하는 자청비는 중세경이 된다.지금까지 이는 가부장제 사회의 반영이라고 생각했다. 다시 말해 가부장제 사회에서는 아무리 뛰어나고 주도적인 여자라 하더라도 여자라는 한계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실제 우리 사회는 오래도록 가부장제 사회를 유지해왔다. 아직까지도 딸보다는 아들을 원하고 여자보다 남자들이우위에 오르는 경우가 많다. 자연히 <세경본풀이>도 그와같은 사회를 반영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조화로운 세계의 중심, 중세경 자청비하지만 그런 것을 떠나 생각해보면, 자청비는 남자보다 못해서, 또는 사회구조상 성적, 신분적 한계로 인해 중세경이된 것이 아니라, 그가 중심에 있어야만 능력 없는 남자, 악한남자, 비정한 남자들로 구성된 이 세계가 그런대로 안정을누리면서 유지될 수 있기 때문 아닐까. 옥황의 아들이면서도 인간에게 어떤 유익함도 주지 못한 무능력한 문도령이 농경의 신 중 가장 높은 상세경이 됨으로써 인간세상 농사일을관장하게 되는 것도 자청비가 아니었으면 불가능했을 것이며, 게으르고 폭력적인 정수남이 농사의 풍성한 수확과 목축을 관장하는 하세경이 되어 인간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인물이 될 수 있었던 것도 그를 되살리고 변화시킨 자청비의지혜와 용서가 없었으면 불가능했을 것이며, 두 번이나 자식을 내친 비정한 아버지 김진국 대감에게서 실로 아버지다운말을 하게 함으로써 끝내 아버지다움을 회복하게 하는 것도자청비가 그를 원망하지 않고 되돌아왔기 때문에 가능했던것이다.세경 아래에 있는 중세경이 아니라 상과 하, 천상과 지상, 선과 악의 중심에서 이들을 서로 화해시키고 중재하여이런 상반되는 것들로 구성된 우주와 세계를 안정시켜 존재할 수 있게 하는 것, 다시 말해 그 모든 것들, 귀하고 천한것, 높고 낮은 것, 심지어 악한 것까지 품어 안은 것이 바로중세경 자청비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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